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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순애'
 
작성일 : 02-06-14 20:42
순애 제2권 / 제8부 쌍궁리 나루
 글쓴이 : 장종권
조회 : 1,887  


 제8부 쌍궁리 나루


 1.
 내촌으로부터 남쪽으로 조금 걸어 나가 쌍궁나루를 건너서 쉬지 않고 논두렁길을 반 시간여쯤 더 걸어가다가 연포천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아담한 김촌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촌마을은 거의 평지에 가까운 들녘에 고즈넉이 앉아있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낮은 야산은커녕 언덕배기 하나도 솟아있지 않은 평지였다.
 마을 한가운데로는 작은 둠벙이 있어 흘러가던 물이 잠시 쉬곤 했다. 이 둠벙으로 서른 호 정도의 마을이 그나마도 둘로 나뉘어져 서로를 '다리건너'라고 부르며 앉아 있었다. 이 둠벙에는 연꽃과 마름풀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피기도 하고, 다 자란 줄풀과 신위대가 바람에 흔들거리기도 하여 비릿한 흙냄새나 풀냄새를 풍겨주곤 했다.
 김촌에도 전쟁의 공포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나 산 목숨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목숨을 잃을지 몰랐다. 사람들은 이런 비극을 한마디로 난리라고 말했다. 난리가 터지면 싸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 누구보다 가장 먼저 죽음의 공포와 만났다.
 일용네 안방에는 일용 내외와 회암댁, 그리고 코를 빠뜨리고 있는 삼용과 일용의 큰아들 정두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지금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일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다 군대로 나오라는디, 이 일을 어쩐다냐?"
  일용은 삼용 앞으로 배달이 된 입영통지서를 받아들고 있었다.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삼용이 말이다. 당장 나가야 헌다는디, 워떡헐 거여? 정두는 아적은 괜찮을 거 같고....."
 장지문 쪽에 앉아 있던 회암댁이 입을 열었다.
 "안 가면 어찌케 되능겨."
 "안 간다고 별 뾰족헌 수가 있겄어요?"
 회암댁이 다시 말했다.
 "논을 팔아서라도 목숨을 일단 건져야 쓰는 것 아녀?"
 일용이 딱한 얼굴로 회암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돈으로 될 것 같으먼 누가 이러코롬 걱정을 헌대요? 날 리가 터졌는디, 어디 있는다고 살 수가 있는겨요?"
 삼용은 답답했다. 인생살이가 왜 이다지 험난한지 알 수가 없었다.

 두 해 전 삼용은 혼례식을 올렸었다. 신부는 태인 가는 길의 두지 마을에 사는 처녀였다. 삼용보다 세 살이 아래인 그녀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는 무난한 신부였다. 제 신세를 잘 알고 있는 삼용은 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감동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자신의 앞날에는 그야말로 빛나는 서광만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이 혼인이 잘못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처음부터 그랬다. 그녀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겁먹은 눈빛이었다.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만을 왔다갔다 할 뿐이었다. 그것은 삼용과 단둘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삼용은 시집온 여자들이 대개 그러기 마련인 부끄러움이나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작은 불안쯤으로 여기고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얼굴 좀 피지 그려요. 야그도 조메 하먼 좋겄네요."
 삼용이 지나는 말처럼 한 마디를 던지면 그녀는 말했다.
 "죄송허구만이라오......."
 그리고는 고개를 수그렸다.
 삼용은 어느날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부엌에서 들려오는 앙칼진 형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방님은 내가 키웠구만. 날 우습게 알먼 안 될 거여. 시악씨라고 언지까지 방구석에만 있을 것여? 나와 일혀!"
 마당에서 어정거리다가 한참 후에야 다가가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었다. 삼용은 못본 척 부엌을 지나 장독대로 나갔다. 무언가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그녀는 그를 따라나서지도 못했다. 삼용은 형수가 못내 야속하였다.
 김제읍에 장이 서는 날이었다. 삼용은 바람이라도 쏘일 겸 해서 아내를 데리고 읍내로 나섰다.
 모처럼 곱게 단장을 한 아내는 웃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단 하루였지만 숨이 막히는 시집생활 중 모처럼의 해방이었는지도 몰랐다. 삼용은 손윗 동서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배불리 먹여줄 생각도 갖고 있었다.
 "힘들어도 쪼메 참어야 허는구만. 형수님도 맘이 나쁜 사람은 아닝게로 잘 혀봐."
 "아는구만이라오. 괜찮여요......."
 "그러코롬 기가 죽어 있으먼 내가 민망허잖여?"
 "지도 노력허고 있어라오......."
 김제읍은 멀었다. 두어 시간 이상은 족히 걸어야 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 틈에 끼어 부지런히 걸었다. 아내는 양산을 받쳐들고 있었으므로 뙤약볕을 약간은 피할 수가 있었다.
 읍내의 장터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이었다. 앞서가던 삼용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처진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굴러내리는 땀방울로 가득했다. 그녀는 땅바닥만 쳐다보고 열심히 걷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걸음걸이는 누가 보아도 한눈에 지쳐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녀의 다리가 약간씩 휘청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용은 동시에 그녀의 얼굴색이 너무 하얗다고 느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던가. 무심히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삼용이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가 아프기라도 헌 겨?"
 아내는 얼굴의 땀을 힘겹게 훔치며 대답했다.
 "아니구만요......."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힘없이 흩어졌다. 날씨가 더운 탓일까. 햇빛이 뜨거운 탓일까. 아니면 너무 많은 거리를 걸었기 때문일까. 삼용은 잠깐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길가의 미루나무 그늘로 데려갔다.
 그녀를 편안히 앉도록 도와준 후에 그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막 한숨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돌연 아내가 앉은 채로 뒤로 벌렁 넘어지고 있었다.
 삼용이 깜짝 놀라며 재빨리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자꾸 윗쪽을 향하여 숨어들어 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입에서는 거품이 보글보글 솟아나고 있었다. 삼용은 황급히 그녀의 입 언저리를 닦아주며 소리쳤다.
 "정신차려 이 사람아! 머땀시 어런디야? 어디가 아프먼 아프다고 혀야 헐 것 아녀요? "
 그녀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삼용의 존재는 그녀의 안중에 없었다. 그녀는 무의식 중에도 땀에 젖은 그녀의 저고리를 벗으려고 애를 썼다. 견딜수 없을 정도로 몸에서 열이 나고 있다는 증거였다. 삼용이 다급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길을 지나다가 이 모양을 지켜본 나이든 아낙들이 몰려들었다. 남자들은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중 누군가가 혀를 차며 말했다.
 "간질인 거 같여! 어여 막대기 하나 줏어와요!"
 삼용이 그녀들에게 아내를 맡기고 일어나 번개같이 길가의 싸릿대를 꺾어 왔다. 아낙은 그 가지를 아내의 입을 벌리고 이빨 사이에 끼어넣고 있었다.
 "쪼메 기다리믄 될 거여. 인자 됐구만이라오. 쯧쯧! 시악시 같은디......."
 아낙들이 아내의 몸을 여기저기 주무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삼용은 그늘 밑 한쪽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온몸에 땀이 흥건하였다.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잠시 후 아낙들의 어깨 너머로 넌지시 바라본 아내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눈만 껌벅거리고 누워 있었다.
 마침 장터를 벗어나는 달구지에 올라앉아 삼용은 김촌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겁먹은 얼굴로 삼용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삼용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일용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일용은 그녀의 친정인 두지마을로 사람을 보냈다.
 소식을 듣고 김촌 누이집에 찾아온 그녀의 오라비는 별다른 말도 없이 누이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불쌍헌 것!"
 탄식과 함께 그의 눈에 절망의 빛이 서렸다. 그는 김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삼용은 그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코를 빠트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삼용에게 말했다.
 "몸이 허해지닝께 더허는 것 같구먼......."
 삼용이 불안하기도 하고 괜시리 미안하기도하여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었다.
 "나을 수는 있는가라오?"
 "그게 문제랑게......."
 "어찌케 혀야 헐지 모르겄네요?"
 그러자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걱정허지 말게. 내가 데리고 감세."
 "어디로요?"
 "어디긴 어딘가? 바로 우리 집일세."
 "병원엔 안 갈 건가요?"
 "병원에 간다고 혀서 나을 병이 아니구만."
 삼용도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이튿날 그는 아내를 데리고 김촌을 떠났다.
 "병약헌 상태로 아이를 보내어 면목이 없구만요. 나이가 들기 전에 딱 한 번 저런 증상을 보였는디요, 그 후론 별일이 없어 걱정을 안 혔었구만이라오. 시집 가먼 오히려 더 나아질 줄 알었는디....... 데려다가 완전히 나으먼 그때 다시 데려오든 뭐하든 혀야겄지요. 참말로 죄송허구만요"
 아내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는 삼용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무심한 때문에 병이 더 악화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더 이해하고, 더 감싸주고, 더 다독거려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도 일었다.
 두지마을의 처남은 두어 번 김촌의 일용이네를 다녀갔다. 그럴 때마다 그의 말보다 더욱 어두워지는 얼굴빛에서 삼용은 그녀의 병세가 더 악화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해 삼용의 처남은 김촌으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왔다. 기가 막혀 허탈감에 빠진 삼용을 버려두고 일용이 두지마을에 다녀왔다.
 돌아온 일용은 혀를 끌끌 차면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삼용은 어이가 없어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자신 앞에 떨어진 이 비극적인 불행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김촌의 젊은이들도 하나둘 전쟁터로 떠나기 시작했다. 논두렁길로 나서는 아들의 손을 붙들고 어머니가 흐느꼈다. 공포에 질린 아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살아온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 추억이 가득한 고향들녘과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못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들의 눈에서도 급기야 눈물이 흘러내렸다.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끝내 그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삼용도 차라리 잠시 피해 있자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 끝이 날지 몰랐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 어디에 깊숙히 숨을 곳이 있겠는가. 오히려 군대에 합류하여 총이라도 쥐고 있는 것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고 삼용은 생각했다.
 삼용이 마음을 굳혔음에도 불구하고 회암댁의 만류는 갈수록 극에 달했다. 그녀는 일용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쳤다.
 "보내믄 죽는구만. 죽어도 내 앞으서 죽어야 혀. 못가, 못 보낸당게. 예편네도 없는 홀애빈디, 가를 내보내믄 니는 죽일놈인겨. 어찌케 혀서든 안 가게 혀봐"
 회암댁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다가 분에 못이겨 제 가슴을 쳤다. 놀란 삼용이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쉬지 않고 일용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니가 막둥이 잡을라고 환장혔구나. 어떠케 이럴 수가 있냐? 알어나 봤냐? 니가 성이냐?"
 일용이 차갑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러믄 어떡헌데요? 다들 나가서 싸우는 판인디요. 아니믄 잽혀가는 판 아닌가벼. 삼용이만 안가믄 갸가 여그서 살 수는 있는 것여요? 살어 오겄지요. 살어 오기만 기달러야지요."
 형의 말마따나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 삼용은 회암댁의 손을 뿌리치고 전선으로 향했다.


 2.
 통지서에 적힌 집결지는 이리역이었다. 삼용은 함께 통지서를 받은 인근 동네의 또래들과 함께 터덜터덜 김제역으로 걸어나가 기차를 잡아탔다. 안가도 그만인 자원입대였다. 통지서는 강제성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가는 것이 더 낫다고 그들은 이미 여러 번이나 합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이 이리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난데없이 비행기의 공중폭격이 시작되었다. 혼비백산한 젊은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민가로 달아났다. 삼용도 친구들과 함께 이리역을 벗어나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갈 곳이 없었다. 동네로 돌아간들 다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시 이리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달아났던 젊은이들도 다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달아난다고 붙잡을 사람도 없었지만 달아난들 별 다른 수가 없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 중에는 학생들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가차에 올라 남원역에 도착한 삼용은 다시 군용 트럭에 실려 밤길을 달려야 했다. 인민군이 코앞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남원에서 훈련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초장부터 빗나가고 있었다.
 트럭 안에는 어둠과 침묵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어둠은 곧 공포를 가져다 주었으며, 침묵은 또한 분명 슬픔일 것이었다. 이제 가면 살아올 가능성은 얼마나 있을 것인가. 십중팔구 죽은 목숨이었다. 머지않아 들판에 버려져 까마귀밥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며 그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사이에도 틈만 있으면 하차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가 여차하면 다시 이동이었다.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기약이 없었다. 인민군은 계속 밀려들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신병이 훈련중에 퇴각이라니.
 결국 삼용 일행은 대구에 이르렀다. 대구에서는 그래도 한동안의 훈련을 받을 수가 있었다. 대충 교육이 끝난 삼용은 전투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이른바 징집 1기였다. 학도병 1기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는 실전이었다. 처절한 낙동강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낙동강을 건너 대반격을 시도한 지 꽤 여러 날이 흘렀다. 그들은 이미 서울과 평양을 거쳐 청천강을 넘어서 있었다. 그러나 다시 후퇴였다. 국군은 여기저기서 중공군의 포위공격을 받고 있었다. 삼용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후퇴하는 대열을 따라 어둠이 깔린 신작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삼용은 아직 살아 았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 서서히 달빛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귀를 찢는 따발총 소리가 들렸다. 산 속에 매복해 있던 적의 공격이었다. 대열이 일시에 흩어지며 신작로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여기저기서 섬광이 번쩍였고, 비명 소리가 터졌으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렸다. 순식간에 노출된 병사들이 적탄에 쓰러져 갔다. 삼용은 갑작스런 적의 출현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능선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신작로를 그대로 뛰어라."
 소대장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삼용은 우선 몸을 날렵하게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구르듯이 몸을 날려 달려나가는 부대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삼용도 다시 일어나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길가에 길게 누워있는 마른 풀들이 발목에 걸렸다.
 삼용이 비오듯한 총탄세례를 의식하고 마악 신작로 가의 도랑으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삼용은 발 밑에서 화산처럼 솟아오르는 돌무더기 세례를 느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부드럽게 솟아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맞았어. 내가 맞은 거여.'
 다음 순간 눈물에 가득 젖어있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엄니.'
 정신이 가물거리며 모든 것이 끝나는 듯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웃는 얼굴로 삼용에게 손을 내밀었다.
 '막둥아! 정신 챙겨라.'
 삼용이 허공에 손을 내밀었다.
"헉!"
 모래흙과 함께 솟아올랐던 삼용은 신작로에 털퍼덕 나가떨어졌다.
 "엎드려!"
 뒤따라 뛰던 병사들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누군가가 엎드린 채로 삼용에게 다가가 삼용의 얼굴을 제꼈다. 더 다가가 가슴에 귀를 대어보았다.
 "아직 살아있어! 누구 도와줘!"
 아직은 아무도 도울 수가 없었다. 그는 엎드린 채로 신작로 밑 작은 도랑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삼용을 도랑으로 끌어들였다. 벌써 삼용은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잠시 적의 총탄이 잦아들자 신작로 뒤편에서 아군의 트럭들이 질주하여 달려왔다. 트럭은 전투가 벌어진 지점에 급정거했다. 앞장 선 선도차량의 헌병 하나가 삼용을 건져올렸다.
 삼용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을 때, 그는 환자들로 가득한 군용 트럭에 실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온몸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군화가 벗겨진 오른쪽 다리에는 피묻은 붕대가 아무렇게나 동여매어져 있었다. 고통은 주로 그 발끝에서 오고 있는 듯했다.
 손을 들어 답답한 머리를 더듬어보니 머리에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트럭 안은 처절한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는 무거운 신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총소리는 자장가처럼 멀리 사라져 있었다. 아직은 살아 있구나. 삼용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어젯밤 무수하게 쓰러졌을 부대원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여 능선이나 길가에 처참하게 드러누워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이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트여진 트럭의 뒤쪽으로 차량에서 빠져나가는 짙은 연기가 뿌옇게 휘날렸다.
 삼용은 다행스럽게도 다리를 잃지는 않았다. 총알은 발바닥을 여지없이 꿰뚫고 지나갔지만, 신기하게도 뼈는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삼용은 구 평양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응급처지로는 힘든 상황이었고, 육군병원이 구평양에 있었던 것이다.
 웬만큼 치료가 되자 삼용은 다시 신평양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유엔군과 국군이 총퇴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잠시의 작전상 후퇴가 결코 아니었다. 이미 군율은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었다. 떠나는 차량들을 붙잡으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부상병들이 아우성을 쳤다. 중상자들은 울면서 애원하다가 지쳐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삼용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몇 명의 부상자들과 함께 다리를 절름거리며 기차역으로 몰려갔다. 이미 군용 트럭은 모두 떠난 후였다. 그들은 무조건 세워져 있는 기차에 올라탔다. 석탄차였다. 거기에는 미군들도 상당수 끼여 있었다. 덮개가 없는 기차 위에서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추위와 싸워야 할 것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기차는 공격받기가 쉬워. 저걸 타면 영락없이 죽을 거야. 다른 방법을 찾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이 길밖에 없어. 죽든 살든 가야 해. 나는 탄다."
 그가 성큼성큼 기차에 올랐다. 미군들도 따라 올랐다. 이미 민간인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러나 기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움직이지 않자 그 중 한 사람이 기차를 내려갔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
 그가 곧 돌아와 말했다.
 "기관사가 없어."
 모두가 기겁을 했다.
 "기관사가 없어서 못 가."
 "그러면 어떻게 해?"
 "기다려봐. 갈 사람이 있다는 거 같아."
 그가 다시 내려갔다.
 한참이나 더 기다린 후에야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남쪽으로 가겠다는 기관사들이 나섰다는 것이었다. 기차는 움직였으나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동강을 건너는 것이 가장 무서운 고비라고들 말했다. 여기서만 공격을 받지 않으면 일단은 안심이라 했다.
 다행스럽게도 대동강을 건너는 기차는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차가 서울의 신촌역에 도착하는 데에는 무려 3일 이상이나 걸렸다. 자꾸 멈추고 서행하는 기관사들에게 병사들은 총뿌리를 들이댔다.
 "빨리 안 가면 죽는다. 선택해라."
 그들은 사색이 되면서도 오히려 부탁했다. 서두른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차가 멈추어 있는 동안 삼용 일행은 민가로 나가 음식을 구해야 했다. 동시에 그들은 군복을 벗어 버리고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대부분 다그랬다. 혹시라도 적의 공격을 받게 되면 살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삼용 일행은 기차가 신촌역으로 들어서자 그동안 눈여겨 보아두었던 미군들의 짐보따리를 훔치기로 했다. 한눈에 미군들이 사용하는 군수물자일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삼용 일행은 두 개조로 나뉘었다. 그들은 단 두 명이었으므로 일은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한 조가 미군들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헬로!뭉키!"
 미군들이 겁먹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너희들 탈영병 아냐?"
 알고보면 모두가 탈영병이요, 패잔병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예 그 말을 알아듣지고 못하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그들 중 하나의 멱살을 잡아 구석으로 끌고갔다. 나머지 한 명이 말리는 시늉을 하며 따라왔다. 작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머지 한 조는 그들의 보따리를 빼돌려 사라진 후였다.
 보따리 안에는 기가 막힌 군수품들이 잔뜩 눌려 묶여 있었다. 대부분이 잠바를 비롯한 미군들의 옷가지였다. 환호성이 터졌다. 그들은 일단 길거리에 물건을 늘어놓고 길가는 사람들과 흥정을 시작했다. 커다란 수확이었다. 순식간에 돈은 상상 이상의 거금이 되었다.
 뜻밖에도 헌병들이 다가섰다. 헌병들은 그들의 보급품을 보자 군침부터 먼저 흘렸다. 곧 연락을 받은 헌병대장이 들이닥쳤다. 삼용 일행은 나머지 보급품을 그들에게 넘겨 주는 대가로 더 이상의 추궁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추궁을 받는다 하더라도 기차 속에서 주웠다 하면 그뿐일 것이었다. 헌병대장은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삼용의 일행 중 누군가가 제안을 했다.
 "대장님, 저희가 술 한잔 살까요?"
 두말할 것 없이 승낙이었다. 그날 저녁 삼용 일행은 그들이 마련한 돈의 거의 절반을 헌병대장에게 넘겼다. 그 대가는 헌병대장이 사인한 20여 일간의 귀향중이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집은 부산이다. 전쟁이 끝나면 놀러와. 반갑게 대접해 주겠다."
 헌병대장은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3.
 동네사람들은 삼용의 무사한 귀향을 축하해 주었다. 김촌에도 이미 인민군이 들어왔다가 나간 후였다. 모두가 회암댁의 정성이 하늘에 통하여 삼용을 살린 거라고 말했다. 아침 저녁으로 뒤란의 팽나무 밑에 정한수를 차려놓고 치성을 드렸던 회암댁은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넘쳤다.
 자식을 살려보내준 신령님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제 막동이의 다리가 아물어가는 사이에 전쟁이 끝나 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면 막동이는 살 수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삼용을 다시 전선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사이 회암댁의 의지가 되어 있었다.
 어떤 젊은이가 이 처참한 전쟁 중에 막동이처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막동이와 함께 전선으로 나갔던 다른 청년들은 거의가 전사통지서가 되어 돌아온 판이었다. 끝까지 마을에 남아 있다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간 젊은이들은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그들은 지금 안타깝게도 총알받이가 되어 국군에 총뿌리를 겨누고 싸우고 있을 것이다.
 용재의 어머니는 삼용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회암댁 네를 찾았다. 그녀의 둘째아들 용재는 삼용과 함께 고향을 떠났는데 이미 전선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했다.
 "자네는 살어왔능가! 울아들 용재는 죽었는디, 자네는 용케도 살어 왔능가!"
 용재 어머니는 쉬지 않고 삼용의 손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울먹였다.
 "자네라도 살어왔응게 천행이지. 다 죽으먼 워떡헐 거여! 아이고! 울 아들은 시방 워디 있디야!"
 삼용은 용재 어머니의 손을 꼭 마주 쥐었다.
 "용재 엄니, 고정허셔요."
 "나는 인자 어떠케 산디야? 우리 용섭이는 또 혼자서 어띠케 산디야? 아이고!"
 "지가 아직꺼정은 살어 있응게로요, 부족허지만 지라도 용재 대신 아들 노릇 헐 것이로구만요."

 시간이 흘러 삼용이 귀대해야 할 날자가 다가오자, 아니나다를까 두려움에 떨던 회암댁은 결사적으로 삼용의 귀대를 막기 시작했다.
 "안 되아. 다시 가믄 인자는 죽능겨. 애비 없이 자란 것도 불쌍헌디, 예핀네도 죽어뿌린 홀애빈디, 살어온 지옥을 워떠케 지발로 다시 간단 말여. 워떠케 다시 보낸단 말여."
 삼용 역시 한 번 다녀온 사지에 다시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 처참한 전쟁터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완벽한 자살행위와 다를 것이 없었다. 훗날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살고봐야 했다. 발바닥의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성한 사람처럼 발바닥을 쓰기에는 아직 불안했다.
 초조해진 삼용은 하루하루를 술로 보냈다. 그는 절름거리는 다리를 어렵게 끌며 여기저기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디든 무사통과였다. 그의 주머니에는 군의 정보계통 기관에서 발행한 가짜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이 전쟁통에서 저 용감한 부상병에게서 누가 감히 시비를 걸을 수 있겠는가. 그는 조만간 다시 전쟁터로 나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사람이었다. 삼용은 하루하루 조금씩 더 흔들리며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삼용은 급기야 읍내로 나갔다. 동생뻘 되는 아이들을 윽박질러서 그들의 자전거 뒷자리를 얻어타기도 하고, 어쩌다 장터까지 나가는 소달구지에 몸을 싣기도 하여 읍내까지 나간 삼용은 천하의 제왕이 부럽지 않았다.
 전쟁 중임에도 해가 저무는 대로 읍내의 술집들은 문을 열고 손님들을 기다렸다. 삼용은 어기적거리며 술집 골목을 걷다가 아무 집에나 들어섰다.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열려진 문짝을 아직도 불편한 발로 몇 번 부실듯이 차고는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미 술은 머리 끝까지 올라와 있었다.
 술집 주인은 삼용의 행색을 바라보고는 미리부터 기가 질렸다. 그는 부상당한 군인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문짝을 향한 발길질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거나, 주먹이 먼저 날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었다. 전시에는 군인이 왕이었고, 상전이었고, 할아버지였다.
 "아이고, 이거 웬일이십니꺼?"
 주인은 삼용을 보자마자 먼저 인사를 했다.
 "빌어먹을, 웬일은 먼 놈의 웬일....... 술이나 한 사발 주쇼."
 삼용은 먼저 시비를 걸어보지만 상대가 재빨리 죽어들자 재미가 없어졌다. 대드는 놈이 있어야 한 판 붙어 볼 것인데 그러지 않으니 약간 싱거운 것이었다.
 "한사발 갖고 되겠능겨? 드시는 대로 다 드릴 거닝께 맘 놓고 드시쇼."
 그걸로도 부족한지 주인은 돌아서서 어두컴컴한 쪽문을 향하여 소리쳤다.
 "야, 김양아! 너 후딱 나와서 손님 좀 안 모실래......?"
 "알았구만이라오."
 쪽문이 열리며 매말랐지만 화장발이라서인지 꽤 곱상한 얼굴의 아가씨가 불안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쭈, 고거 쓸만헌디......."
 "고맙구만이라오. 기왕이믄 방으로 들어가서 드시먼 좋겄는디요."
 "좋지. 밖으서 이러믄 장사에 방해가 된다 이 말씀이여......."
 삼용이 어두컴컴한 구석방으로 들어가 두 발을 제멋대로 뻗고는 자리에 앉자 그녀가 재빨리 술상을 들였다.
 "드시지라오. 지는 김양이라고 하는구만요."
 삼용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술을 따르는 그녀의 앞가슴을 들여다 보다가 갑자기 그녀의 옷고름을 잡아챘다. 옷고름이 불시에 사정없이 뜯겨지자 깜짝 놀란 아가씨가 몸을 빼면서 따르던 술을 엎어버렸다.
 "요런 잡것이......."
 삼용의 손바닥이 여지없이 날라가 그녀의 귀퉁백이를 갈겼다.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지는 그녀를 쫒아가며 삼용이 더 때릴 듯이 손바닥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엎어진 막걸리가 삼용의 바지에 잔뜩 묻어났다.
 "일루 와봐!"
 그녀는 겁에 질려서 잔뜩 웅크린 채로 천천히 삼용에게 다가섰다. 삼용이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벗어봐, 이 썅년아!"
 아가씨는 벽에 등을 바짝 기대고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서! 너 한번 죽어볼래?"
 삼용이 거듭 겁을 주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었다. 옷고름이 뜯겨진 저고리를 벗고, 이어 빨아입은 지가 몇 달이나 될성싶은 찌들은 치마를 벗었다. 삼용은 그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겁에 질린 그녀가 삼용의 눈치를 보며 고쟁이까지 모조리 벗은 후에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깡마른 그녀의 가슴에 매달린 젖무덤이 달랑거렸다. 건조하게 흘러내리는 그녀의 허리곡선을 따라 삼용의 눈이 그녀의 연약한 사타구니에서 멎었다. 삼용은 취한 눈에도 그녀의 검은 숲이 몹씨도 메말랐다고 생각했다.
 "인자 이리 와 똑바로 앉어서 술을 따러 봐."
 그녀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삼용이 시키는 대로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술을 따랐다. 그녀의 젖가슴이 삼용의 바로 눈앞에서 출렁거렸다. 삼용이 손을 들어 그녀의 검붉은 젖꼭지를 건드렸다. 길게 빠져나온 걸로 미루어 아이를 갖은 적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술을 다 따를 때까지 젖꼭지를 만지던 삼용은 그녀가 뒤로 물러서려 하자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뜻밖에도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앞으로 당겨 끌어안았다. 그녀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삼용의 품으로 안겼다. 삼용은 벌거벗은 그녀를 일으켜 그녀가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는 그녀의 등을 감싼 채로 그녀의 얼굴을 당겨 입술을 맞추었다. 그의 입에서 진한 술 냄새가 그녀의 코를 자극했는지 그녀가 심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입술을 뗀 삼용이 겁을 주었다.
 "머야, 이 년? 술 파는 년이 술이 싫단 말여?"
 그녀가 오들오들 떨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고만요. 지가 잘못혔고만요."
 "그려야지."
 삼용은 그녀의 젖가슴으로 손을 가져갔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잠시 안쓰러운 생각이 삼용의 머리를 스쳤으나 그는 스스로 도리질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젖가슴을 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그대로 삼용의 무릎에 안겨 있었다. 삼용의 입술이 그녀의 젖가슴으로 옮겨져 젖꼭지를 사정없이 유린하여도 그녀는 별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머야, 이 년! 맘대로 혀봐라 이거여?"
 삼용이 거듭 호통을 치자 마지못해 그녀의 손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삼용의 왼팔이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양 허벅지 사이로 깊숙히 들어갔다. 그녀는 삼용이 화가 나지 않도록 알아서 다리를 더 벌려주며 들릴 듯 말 듯한 야릇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삼용의 손이 제멋대로 그녀의 중요한 부분을 어루만졌다. 삼용은 그녀가 더 이상의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싱거워졌다. 그는 아예 그녀를 방바닥에 드러눕혔다. 그제서야 그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돈은 있능가라오. 쪼메만 주시먼 좋겄는디요. 지가 기분좋게 혀드릴 것이구만요."
 "돈? 그려 있지. 돈이야 있지."
 삼용은 바지 주머니에서 몇 장의 지폐를 꺼내 던지듯이 술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삼용의 앞에 무릎 꿇고 앉더니 그의 지저분한 군복을 벗겼다. 삼용의 손은 계속 그녀의 허벅지 위에서 그녀의 맨살을 더듬고 있었다.


 4.
 인민공화국이 밀려간 내촌 마을에 첫봄이 왔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내촌의 들녁은 고요하였다. 틈뚜럭을 빠져나온 물이 작은 수로를 타고 흐르며 여유있게 조잘거렸다. 대지를 얼룩지게 만들던 겨울의 잔해도 이제는 말끔히 사라졌다. 눈이 녹은 후로는 아직 한번도 침범당한 적이 없는 논바닥이 정결하게 물기를 머금고 분주한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짙은 풀빛이었고, 지평선을 가로막는 아지랑이가 뭉실뭉실 꿈처럼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지난해의 슬픈 일들을 평생동안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적군 치하의 짧은 한두 달 동안 사람들은 살기 위하여 그들이 어떻게 해야했는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내 가족이 살기 위하여 다만 눈감아버린 슬픈 존재들이었다.
 사람들은 또다시 저들이 물러가던 날 악몽처럼 지나갔던 며칠 밤의 공포가 얼마나 무섭고도 슬픈 것이었던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입을 다무는 것만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여도 목숨을 부지하는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
 저들은 북행을 위하여 산 속으로 후퇴해 들어가기 전 그동안 그들이 비협조자로 지목해 두었던 몇 사람들을 끌어갔다. 총은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나 비협조적인 사람에게 보란듯이 가장 강력한 보복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쓰러지는 그들을 향해 가능한 한 즐거운 웃음을 흘려주었다. 악마의 웃음이었다. 다행히 피를 흘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세가 뒤집어지면서 한 순간 기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기쁨을 드러내놓은 순간 그들은 다시 찾아온 저들에게 여지없이 목숨을 잃었다. 저들이 물러가고 그동안 기세가 꺾여있던 반공주의자들이나, 분노한 피해자들이 복수의 칼을 빼들자, 더 깊숙한 해안지대에서 후퇴해 오던 인민군들은 지나는 길목에서 또 그들을 그냥 두지 아니 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세상이 바뀌는 아수라장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물러간 뒤에 일부의 상처받은 사람들은 끈질기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면서 천하를 휘젓고 다녔다. 그들은 재빨리 동조자들을 규합하여서 후퇴하는 인민군들을 공격하여 그들에게 타격을 입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노한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신이었다. 인민군에게 조금이라도 협조를 한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끌어다가 무참하게 죽이거나 다시 형무소에 집어넣었다. 이제 누구라도 그들에게 조금만 밉살스럽게 보이면 그는 순식간에 빨갱이가 되어 처참한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사람들은 아픈 과거를 들추어 다시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정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관대한 용서와 망각으로 세월 속에 묻어두길 원했다. 그것이 그들에겐 보다 더 현실적이고 습관적인 간절한 극복의 방법이었다.
 그들에겐 수천년 삶을 통해서 얻은 삶의 철학이 있었고, 그 철학은 불행한 전쟁 중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 남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일제망령의 잔존세력이 오히려 새나라를 가로챌 수 있었고, 그리하여 우리는 그 댓가로 전쟁을 통한 뼈아픈 피를 흘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어쩌면 본래가 순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난리통에도 다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신성한 토지와 인간에 대한 참을성 있는 견고한 애정으로, 그 커다란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는지 몰랐다.
 그것은 굳이 말한다면 그들은 국가나 정부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와 민족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난리를 견뎌냈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전쟁이 위쪽으로 물러가자 꽁꽁 얼어붙었던 아낙네들의 발걸음은 어느 정도 나굿나긋해져서 마을 한가운데에 아늑하게 패인 둠벙의 빨래터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틈뚜럭의 수로를 흘러나와 들녘을 휘돌다온 물들은 여기 모여 유리처럼 맑은 속을 보이는 둠벙을 이루었다. 언제 저 물이 피에 젖은 들을 흘렀었느냐 싶었다. 아낙네들은 손이 시려운지도 모르고 빨래감을 챙겨들고 둠벙으로 모여들었다.
 순애는 육리댁의 손을 꼬옥 붙들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차가운 손이 그녀의 손안에서 파르르 떠는 것만 같았다. 코끝이 찡하여 왔다. 무슨 말이건 꼭 해드려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기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예 생각조차 나지 아니했다.
 무슨 말이 꼭 필요할까 싶기도 하여, 순애는 그저 육리댁의 깊이 패인 주름살만 바라보았다. 육리댁도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기세인 가여운 순애의 얼굴을 아까부터 바라보고만 있었다.
 "할므이……, 할므이……."
 순애는 입술을 깨물면서 몇 번이고 불러보았다. 자신의 처참한 스무여 해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이 으깨어졌다.
 그녀는 한 번도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꽃이었다. 이제는 문드러진 쓸모없는 꽃이었다. 그녀는 이상해지기 시작한 자신의 아랫배를 느끼며 고통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들어서다니....... 청천의 벽력이었다.
 썰렁한 아랫목이 오늘따라 더 썰렁해 보였다. 순애는 육리댁의 손을 살며시 풀어놓고 이부자리 밑을 쓸어보다가 이내 일어섰다. 그러자 바람벽에 고정시킨 눈을 깜빡거리면서 육리댁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인자 봄인디 뭐……."
 순애가 군불이라도 지피러 나가는 줄 알고 하는 말이었다.
 "그래도 쉬 식으닝께……. 요지음도 자주 지펴야 하는구만……. 고모는 바쁘잖어."
 순애도 코먹은 소리로 응답하며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대문간에 사람의 그림자가 얼씬거렸다. 수월의 성태였다. 그가 오랜만에 대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애는 너무 반가워 울음이 나왔다. 죽동에서 헤어진 후로는 첫 만남인지라 목이 메일 정도로 반가웠다. 그는 다시 이리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성태는 순애의 손을 오랫동안 붙잡고는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가 너 땜시 살었구만. 니가 그렇게 안 도와줬으먼 내 견딜 수 있었겄냐? 이 공을 언지 갚는다냐."
 순애는 괜한 공치사 같아서 듣기가 거북했다.
 "그런 소릴랑 고만혀요, 다 울 엄니 덕이지라오. 지가 무슨 헌 일이 있다고 그려요."
 순애는 오랜만에 어른같은 소리를 해보았다. 이젠 자신도 다 자란 처녀임을 느끼며 그 부분에서만은 스스로 대견해졌다.
 "근디 니 정말 되게 이뻐져 뻔져서 어디 황송혀 말이라도 붙이겄냐?"
 순애는 기분이 좋아지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익살기가 서린 성태의 말을 고맙게 받아 들였다.
 "밥은 쬐끔씩만 먹지 그려, 처녀가 그렇게 몸이 두꺼워져서 어디다가 쓴디여?"
 순애의 몸매무새를 언뜻 훔쳐보던 성태가 핀잔을 주었다. 순애는 얼굴이 붉어지며 눈물이 솟아났다. 그녀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성태에게 물었다.
 "참, 먼일로 왔디야? 기양 왔다믄 분명 그짓갈일 거구, 나헌티 먼 볼 일이 있는 가벼?"
 "잘 봤구먼. 내가 받은 공 갚을라고 몇 달을 고민혔는디, 어디 마땅헌 좋은 선물이 있어야지. 니 오늘 나허구 읍내 좀 안 나갈래?"
 먼발치서 듣고 있던 육리댁이 끼어들었다.
 "사둔 총각, 도대체 먼 소리데여? 갸 낼모레믄 시집갈 애여. 어딜 싸돌아 다니겄어?"
 "예? 시집요?"
 깜짝 놀라 되묻는 성태에게서 순애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러믄......."
 너무 갑작스런 이야기인지라 성태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성태는 넋을 놓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순애를 쳐다보았다. 순애가 울음이 북받치는지 얼굴을 싸안고 흐느꼈다.
 "순애야! 먼 소린겨? 시집간다니?"
 "오빠! 기양 나가. 나가서 야그를 헐 것이고만."
 성태는 육리댁을 향하여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대문을 나섰다. 순애가 눈물을 닦고는 성태의 뒤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논두렁길을 걸어 틈뚜럭으로 올라섰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발끝만 바라보고 걷던 성태가 그제서야 말을 건넸다.
 "난 먼 소린지 모르겄고만....... 니가 어떻게 시집을 간다냐? 천섭은 어떡허라고......."
 순애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천섭의 소식을 물었다.
 "천섭 씨는 시방 어디 있는가라오?"
 성태가 잠시 멈칫거리다가 대답했다.
 "솜리에 안 있능가? 가가 충격을 너무 많이 안 먹었능가? 가가 여그 있으먼 또 일이 귀찮어지고......, 그래 거그서 가는 니만 믿고 있는디......, 니는 시집을 간다고?"
 "천섭 씨 아부지 야그는 들었고만, 엄니 야그도 듣긴 들었는디. 머라고 위로도 못혀 주고....... 천섭 씨는 그려도 어떻게 살랑가 모르겄어?"
 순애는 문득 가슴이 미어지며 눈물이 솟았다.
 "창만이 그놈아가 죽일놈여. 천세비도 없는 집이를 수월까지 찾어와 갖고는 칼부림은 먼 칼부림여. 시상이 바뀌면 미운 사람 다 잡어다가 쥑여도 되는 것이간디. 그 통에 천세비 엄니가 간이 떨어져버려 갖고 실성을 혀버렸응게 천세비 아부지도 이미 살맛이 없었겄지."
 "다 죽을 뻔 혔다믄서? 괜히 집에는 서둘러갔던겨."
 "그려, 누가 그러코롬 될 줄 알았간디. 천세비도 나도 간신히 살았구만. 천섭 아부지가 대신 돌아가신 것 같어서 내 속도 보통 아픈 게 아녀."
 "어쩔 수 있었겄어? 천섭씨 엄니는 시방 어떠신겨?"
 "그렁저렁 살어는 기셔. 근디 말이 아니지."
 순애가 코를 훌쩍거리며 자신의 치마 끝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다.
 "근디, 천섭헌티는 머라고 전헌다냐? 나 미치겄구만. 가 너 땀시 요 참에 참말로 팍 죽어뿌리는 거 아녀?"
 "오빠!"
 순애가 발을 멈추고 틈뚜럭의 풀밭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 때의 천섭처럼 풀잎을 꺾어 분질러보았다.
 "바로 여그였어. 천섭 씨가 약속혔었구만. 난중에 데려가겄다구......."
 순애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녀는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파묻고는 드디어 엉엉 울어버렸다.
 "기다리믄 될 거 아녀? 머땀시 그려?"
 성태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었음을 직감했다. 작년 죽동에서의 일이사 이미 어쩔 수 없는 일로 넘어간 일이었다. 천섭도 전혀 개의치 않은 일이었으며, 천섭은 반드시 순애와 혼인을 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성태가 순애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다독거렸다. 순애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절규하듯 내뱉았다.
 "나...... 아이 가졌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성태는 눈을 감아버렸다. 어쩐지 옛날보다 많이 수척한 듯 하면서도 볼록했던 순애의 허리를 그제서야 성태는 이해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다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어이 일은 그렇게 터져버렸구나. 기어이 일은 가장 나쁜 방향으로 그렇게 터져버렸구나. 성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아올라 이글거리는 주먹으로 풀밭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아이는 살려야 되잖어. 아이가 먼 죄가 있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겨? 결혼할 사람......."
 "그 사람...... 김촌에 사는디. 두 번 째 결혼이래. 아이를 자기 아이로 받아준디야."
 말을 마치고 난 순애가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았다.
 "오빠! 천섭 씨헌티 말혀. 나헌티는 오로지 천섭 씨 하나 뿐이라고....... 천섭 씨를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헌다고....... 죽어서라도 나를 잊지는 말라고 혀. 나 죽으먼 꼭 천섭 씨를 찾어갈 거라고......."
 바람은 아직도 겨울 냄새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여 순애의 몸 구석구석을 칼질하듯 아프게 후비고 지나갔다. 신작로를 걸어가는 성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순애는 다시 울컥 설움이 솟았다.
 천섭이 수월을 떠난 지 반 년이 지났음에도 그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인민군들이 물러간 뒤에 풍비박산이 되어버린 집안 때문에 그는 아직도 제 정신을 찾지 못한 것일까. 실성한 어머니를 더 두고 볼 수 없어서일까. 그에게서 소식이 온들 순애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애는 그래도 천섭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 새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순애는 예전의 순애도 아니었고, 이미 산 목숨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섭 역시 예전의 순애가 사랑하던 그 남자로서만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운명이란 것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추호도 천섭 외의 다른 남자를 생각해 본 적이 없건만, 그녀의 운명은 야속하게도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천섭을 떠나야 한다니....... 온 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도 모르게 미쳐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하곤 했다.


 5.
 순애의 혼사문제로 중매장이를 앞세워 김촌에 갔던 화영과 경옥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벌써 결정은 된 거였지만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다. 중매장이는 육리댁의 앞집에 사는 젊은 아낙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김촌에서 이곳으로 시집을 왔던 것인데, 그녀가 소개한 김촌의 신랑감은 그녀의 친 삼촌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지금 그녀는 자신의 작은 어머니를 중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육리댁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 육리댁은 가슴을 치며 순애의 임신 사실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녀도 그녀 삼촌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여 주며 서로가 이해만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혼사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성태를 배웅하고 난 순애는 천천히 교회가 서있는 고개로 걸어 올라가 쌍궁 쪽을 바라보았다. 쌍궁에는 나루가 있었다. 틈뚜럭을 흘러나와 들녘을 기름지게 적신 물은 서해바다로 합류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는 신평천이 되어 쌍궁 앞으로 지나간다. 김촌으로 질러가기 위해선 이 쌍궁나루를 건너야 했다.
 이 나루에는 천씨 영감이 오래 전에 집을 나간 아내를 기다리며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이 나루에 왼종일 앉아 있다가 이따금 나타나는 길손을 위해 배를 띄웠다.
 이 나룻배에는 노가 없다. 이 물줄기는 빠져나가는 기세가 하도 급하여 아무도 노를 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강이라고 하기엔 좁은 폭이지만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서 저어도 배는 물살에 따라 한없이 흘러가 버렸다.
 그래서 강 양편에 말뚝을 박아두고 거기에 튼튼한 밧줄을 걸쳐 맨 뒤에, 그 밧줄을 따라 나룻배를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천씨 영감은 배 안에서 이 밧줄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모두가 일손을 놓을라치면 그제서야 천씨 영감은 강 안팎의 마을을 돌며 뱃삯을 거두어들였다. 대개는 개개 마을의 유지인 한두 사람이 모든 사람의 뱃삯을 대신하여 쌀을 건네 주었는데, 그것은 이 지방의 풍요롭고 너그러운 인심의 징표였다.
 강 건너 멀리로 아슴하게 김촌마을이 보였다. 분명 여느 처녀 같으면 가슴이 설레여야 마땅한 일이었건만 순애의 가슴에는 뜨거운 모래바람만 불어제꼈다. 이제 얼마 후 저 강을 건너면 순애는 들판 건너에 고즈넉하게 앉아있는 김촌 사람의 아내가 되리라. 일 년에 몇 번쯤이나 이 강을 건너 할머니와 고모를 보러올 수가 있을까. 죽동의 어머니는 몇 번이나 만날 수가 있을까. 아, 천섭씨는 결국 죽는 날까지 보지 못하게 될 것인가.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길 수가 없는 꿈처럼 행복한 일이었다.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드디어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여자들만의 특별한 권리인 것이다. 세상 모든 남자들은 결국 어머니의 아들이요,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남자들의 어머니는 더욱 위대한 것이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이 권리는 신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것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신조차도 어머니의 앞에서는 언제나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여자의 행복도 순애에게는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울컥 눈물이 솟았다. 멀리 저물어가는 논두렁길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저 그림자가 고모부와 고모의 그림자라면 이 나루까지 이르는데 거의 한두 시간쯤은 걸릴 것이었다. 순애는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내촌을 떠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화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순애는 웃목에 고개를 빠뜨리고 앉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사내는 잘 생겼드만요......."
 꼬리를 흐리는 화영의 말을 순애는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신랑감뿐만 아니라 그 집 사람들도 모다 괜찮아는 보입디다."
 육리댁이 불안한 얼굴로 화영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직 듣고싶은 말이 나오질 않은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육리댁의 얼굴이었다.
 "방법을 찾어보았는디요. 그 쪽에서도 뜻밖에 긍정적이더구만요. 아예 날짜를 받아 왔구만이라오."
 "언진디?"
 "이달 말이 날자가 좋다 그렸지요. 혼례식을 얼른 끝내야 허니 안 그러요?"
 "그렁게 문젠가? 제금은 얼로 낸다능겨?"
 "아, 일이 모다 잘 되었당게요. 먼 걱정을 그러콤 혀요. 그 쪽에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제가 있다는 말여요."
 "그려서?"
 육리댁이 쉬지 않고 물어댔다.
 "내촌도 그렇고, 김촌도 그렇고......, 당분간만 다른 동네서 살어야 헌다는 것만 합의를 보았구만이라오."
 "그려, 그려, 그러믄 됐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가만히 듣기만 하던 순애는 부시시 일어나 제 방으로 건너왔다. 아랫목에 앉아 가만히 자신의 배를 만져보았다. 그리고는 아이를 향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가야, 인자 세상은 니것인 겨. 순애는 벌씨 죽어뻔졌다.'
 안방 화영의 말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순애의 방까지 건너왔다.
 "말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서 친정으로 돌려보냈다는구만요. 혼례식 올린지는 반 년도 안 되었다는가벼요. 오는 길에 지가 알고 지내던 몇 사람헌티 물어는 봤지라우. 흠은 있다 혀도 좋은 혼처래요. 자식도 다행히 없다는구만요."
 그 소리를 들은 순애가 제 방에서 안방을 향해 한마디했다.
 "어찌튼 갈 것이구만요. 지 년 팔자가 어디 고급 팔잔가요?
 모두가 말을 멈추고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육리댁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순애의 목소리가 한마디 더 들려왔다.
 "아무리 못혀도 개팔자보다는 낫겄지요."


 6.
 며칠 후 순애는 모처럼 화장을 하고 읍내로 나섰다. 오늘은 김제장이 서는 날이었다. 그리고 성태와 만나기로 약조가 되어있는 날이기도 했다. 아침부터 동네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장터로 향했다. 사람들은 대개 시오리 정도의 신작로길을 그냥 걸어서 간다. 그러나 가끔은 동네에서 나가기 마련인 소달구지에 몸을 싣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소달구지에 올라앉아 한가롭게 주변 풍경을 즐기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러는 사이에 달구지는 어느 사이 장터에 도착하는 것이다.
 내촌을 출발한 달구지가 화초산 밑을 지나 입석에 이르자 목이 빠져라 순애를 기다리고 있던 성태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수월에서 먼저 자전거를 타고 나와 입석에서 이제나저제나 순애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태는 달구지 위의 순애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좁은 신작로는 장터에 가는 사람들과 달구지가 띄엄띄엄 끝없이 이어졌다. 소달구지가 성태가 서 있는 곳에 이르자 순애는 달구지에서 내렸다. 성태가 다가와 달구지에서 내리는 순애의 손을 잡아주었다.
 "방뎅이가 아퍼서 죽는 줄 알았고만."
 "내가 내촌까정 갈 걸 그렸나벼?"
 성태가 길 가에 세워둔 자전거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순애는 곧 성태의 자전거 뒤에 올라 앉았다. 성태가 힘들게 자전거를 앞으로 끌면서 웃었다.
 "너 되게 무겁구나."
 "나 혼자가 아니잖어?"
 순애가 무심히 내뱉었다. 성태는 못들은 척하고 자전거에 올랐다. 괜히 아픈 부분을 건드렸구나 싶었다. 성태는 힘을 주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적당한 속도가 날 때까지는 페달을 힘있게 밟아주어야 했다. 순애는 자전거의 뒤에 앉아 두 손으로 성태의 허리를 꼭 붙잡았다. 자전거가 가끔 털털거리며 비틀거렸다.
 "내려서 걸어가지 그려?"
 "아녀, 질이 쪼메 나쁘고만. 걸어서 언지 간디여?"
 "남들이 숭볼까 그러는겨. 다 큰 처녀가 볼성사납게 사내의 저전거에 얹혀 간다고......."
 "숭 볼라믄 보라지. 오래비가 누이를 태우고 가는디도 숭본디여? 그 사람들 되게 헐 일도 없는 사람들이구만."
 "그걸 누가 알어? 보는 사람은 숭 보는 걸로 그만인 거 아녀?"
 "조심이나 혀! 잘못허믄 떨어지겄어."
 신작로는 바닥만 울퉁불퉁한 것이 아니라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붐벼서, 자전거가 재빨리 나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땀시 이러콤 다 나간다냐? 장에 안가믄 어디 동티라도 나능겨?"
 성태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순애가 비꼬듯이 받았다.
 "사돈 남말 하고 자빠졌네. 참말로 우리가 헐일 없이 장에 가는 거 같은디......."
 "그렁가?"
 성태가 피식 웃었다.
 장터에 도착하자 순애는 자전거에서 내렸다. 성태도 더 이상은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를 끌고가야만 한다. 장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있었다.
 성태가 자전거를 끌고 앞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순애도 잽싼 걸음으로 자전거의 뒤를 따라 걸었다. 시골장이라 어디 앉아 쉴 만한 곳도 없었다. 사람들의 눈이 많은지라 아무리 이종사촌이라 하더라도 섣불리 남녀가 조용하거나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이미 순애는 밥 먹을 시간이 지나 밥생각이 간절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국밥집 안으로 들어서니 겨우 한두 자리가 남아 있었다. 성태가 의자를 댕겨주며 순애가 쉽게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신도 자리에 앉으며 큰소리로 밥을 주문했다.
 "여그 두 그릇요!"
 "예, 알았구만이라오."
 비로소 성태는 잠시 숨을 돌렸다.
 "요지음 공부 잘 안되는가벼?"
 침묵이 무료했던지 순애가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러콤 뵈냐? 하기사 나도 지겹다. 지겨워."
 "그려도 이모가 기대허능 게 얼만디......."
 성태가 말을 돌렸다.
 "죽동은 가끔 가는겨?"
 "......."
 그녀는 사건이 있은 후에는 한 번도 죽동에 들르지 않았었다.
 "이모랑 이모부는 별고 없으시고?"
 "그려, 먼 별 일이 있겄어."
 성태는 한숨을 쉬듯 대답하는 순애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순애는 성태가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분명 천섭에 관한 말일 것이었다. 성태가 탁자 위의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너 말여, 천섭이는 어떡헐 거여?"
 말을 하고 나서 성태가 순애의 눈치를 살폈다.
 "참말로 답답헌 사람들여."
 순애가 식사 중인 옆자리의 다른 사람을 힐끗 둘러보며 쏘아부쳤다.
 "나 아적 말 못혔구만....... 니가 니 입으로 허능 게 좋컸어. 이러코롬 되어뿌린 상황을 가헌티는 야그를 혀 줘야 허는 거 아녀?"
 "참말로 야그를 안 혔단 말여?"
 순애가 딱하다는 듯이 성태를 바라보았다.
 "천섭이가 말여....... 이걸 워쩐다냐......?"
 성태는 말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 나는 잘 모르겄고만......."
 그러는 사이 국밥이 올라왔다. 순애는 입맛이 사라져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숟가락을 들다 말고 국밥만 넌지시 바라보았다.
 "솜리는 폭격으로 다 부서져뿌렸담시로 워디서 산디야?"
 "거그는 역전 쪽만 그렁가벼......."
 성태가 얼버무리며 대답을 했다.
 "천섭 씨도 엄니 땜이 큰일이구먼......."
 "밥이나 묵고 야그 허까? 어여 먹어."
 순애는 겨우 국밥을 한 숟갈 떠보았다. 문득 천섭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녀의 눈 속에 꾸욱 눌러 참았던 눈물이 괴었다. 그녀는 슬쩍 눈물을 훔쳤다.
 "나 학도병으로 지원할겨."
 순애가 눈을 번쩍 치껴뜨며 정색을 했다.
 "머땀시? 죽을라고?"
 "다 나가서 싸우는디 우리 같은 배운 사람이 살라고 피혀만 있으먼 되겄냐?"
 우리라는 성태의 표현에 순애는 더욱 긴장했다.
 "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