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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순애'
 
작성일 : 02-06-14 21:26
순애 제2권 / 제10부 또 다른 전쟁
 글쓴이 : 장종권
조회 : 2,310  


 제10부 또 다른 전쟁


 1.
 "천섭이 색시감이 온다드만 그 말이 참말인겨?"
 밖에서 돌아온 성태가 마루에 몸을 걸치자 장지문을 연 명숙이 천섭의 집에 다녀온 줄을 알고 성태에게 물었다. 몸이 무거운 순애가 막 부엌에서 나오다가 이 소리를 들었다.
 성태가 얼핏 얼굴이 굳어지는 순애를 바라보았다. 금방 알게 될 이야기였지만, 차마 순애 앞에서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머뭇거리던 성태가 돌아앉은 채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런가벼요."
 "그려야지. 참말로 다행헌 일이여. 지 엄니가 며느리 타령한지가 언제 적 야그여? 요리 빠지고 조리 빠지고 도망다니드만. 결국은 지 엄니가 죽게 된다닝께, 맘을 바꿔 먹었고만."
 천섭이 결혼할 여자가 온다....... 순애는 코끝이 찡해졌다. 이제는 떠나와버린 사람이건만, 웬일로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린 듯 순식간에 가슴이 비어가는가. 언젠가는 그도 장가를 들리라 생각을 아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이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불쑥 찾아오다니....... 순애는 가슴이 콩콩거리며 뿌리째 흔들리는 자신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음을 고쳐먹으려 애를 썼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감상적 기분조차도 어쩌면 위선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알면 얼마나 얄밉기 짝이 없겠는가. 순애는 슬그머니 몸을 돌려 부엌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을 통하여 장독대로 걸어나갔다. 현기증이 일어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데, 눈물은 왜 이렇게 쏟아지는지 것일까.
 잠시 장독대에 서서 뒤안을 스쳐오는 시원한 바람을 쏘이다보니, 조금은 나아진 듯도 했다. 순애는 고개를 들어 뒷산의 소나무 숲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희미하게 들려오는 마루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색시감이 보기 드문 수재여요. 머시냐, 거 징게에 대단한 송씨 가문 있잖어요? 전주 살다가 이사온 분들 말여요. 그려서 그런지 몰라도, 말허는 것이나, 옷 차려 입는 것이나, 생각허는 것이나, 보통 처녀들허고는 다르더만요. 인물은 쪼메 빠지는 편이지만, 그려도 얼마나 예의범절이 좋은지....... 붓글씨 솜씨도 대단허대는 거 같여요. 지도 부러웠구만이라오."
 이어 명숙의 탄성과 걱정이 섞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려, 참말로 잘 혔구만. 그려....... 혼례식은 언지 헌디야? 지 엄니 돌아가시기 전이 혔으먼 좋을 턴디."
 "그야 알어서 허겄지요."
 "누가 중신헌겨?"
 순애는 본능적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학교 다니믄서도 알았던 처녀구만이라오."
 "오래 되얐구만......."
 "예, 천섭이 공부 땜시로 그 집엘 들른 적이 있었나벼요. 그 여자가 은근히 천섭이를 좋아혔었어요. 천섭이 내동 모르는 척 혔던 거랑게요. 잘 되얐지 뭐여요?"
 순애는 문득 그렇게 말하는 성태가 얄미워졌다. 가슴이 미어져 왔다. 원하는 남자를 얻었으니 그녀는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웠다. 성태는 열려진 부엌문을 통하여 부엌 너머 장독대에 말없이 서있는 순애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월촌 사람들은 주먹만한 혼불이 천섭의 집에서 솟아나와 지붕 너머로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제 천섭 어머니가 떠날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천섭이네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재산이 많으먼 멋헐 것여? 저런 일이 없어야 허는디......."
 그날 오후에 천섭은 자신의 혼례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고른 숨소리를 되찾고 있었다. 그녀는 천섭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천섭은 영채의 손을 어머니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엄니! 당신의 며느리될 사람이구만요. 손 한번 잡어시지라오. 얼마나 이쁜지 얼굴도 한번 쳐다보시지라오."
 천섭 어머니는 천천히 눈길을 영채에게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오랜만에 정상적인 사람의 눈빛이었다. 매마른 입가에 희미한 미소같은 게 서렸다. 그녀의 눈빛은 따스하게 변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영채의 손을 조금이라도 쥐어볼려고 애를 썼다. 영채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어머님! 지를 기억해 주셔요. 천섭 씨는 걱정 마시구요."
 그러다가 이내 목이 메였는지 입을 다물었다.
 천섭 어머니는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식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쳐서 부대끼는 답답한 호흡이 간간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여위어 더욱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한줄기 흘러 굴러내렸다. 천섭이 흐느끼며 말했다.
 "엄니! 편안히 가셔요. 지를 알아보시니 되얐구만요. 인자 가시먼 아부지도 안 잊어뿌리고 꼭 만나실 거여요."
 천주와 천영이 옆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느 아부지는?"
 놀랍게도 그녀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 나왔다. 천섭이 그녀의 귀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아부지는 먼저 가셨구만이라오. 엄니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구만요."
 천섭의 눈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의 눈이 조용히 내리감겼다.
 "엄니!"
 천섭이 그녀의 얼굴에 머리를 묻으며 절규했다. 천주와 천영도 동시에 그녀의 가슴으로 얼굴을 묻으며 부르짖었다. 말없이 지켜보던 천섭의 숙부가 방문을 열어젖히며 마루로 나갔다.
 "인자 가셨다. 다들 준비하그라."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서 있던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며 제 할 일들을 찾아 흩어졌다.
 천섭의 숙모가 평소 그녀가 자주 걸치던 저고리 한 벌을 찾아 들고 나왔다. 천섭의 숙부는 그 저고리를 받아들고 토담을 통하여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북쪽하늘을 향하여 저고리를 흔들어댔다.


 2.
 천섭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거의 같은 무렵에 순애는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삼용은 순애의 산통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부리나케 밖에서 돌아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있었다.
 명숙과 명자가 부지런히 부엌과 방을 오가고 있었다. 삼용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를 몰라 잠깐 갈등중이었다. 삼용은 태어나는 아이도 아이였지만, 내심 순애가 걱정이 되었다.
 "으앙!"
 그러나 아이의 건강한 울음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삼용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어쩔 수가 없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군이 될 고추님이로구먼."
 아이를 받은 명숙이 방안에서 반갑게 소리치자 삼용은 방문 앞으로 덤벼들었다. 차마 방문을 열어보지는 못하고 침을 꼴까닥 삼키며 물었다.
 "이모님! 참말로 아들인가라오?"
 "그려 이 사람아, 자네 큰 일꾼 하나 얻었구만 그랴. 얼른 금줄이나 맹글게나. 고추는 말캉의 시렁 위에 있구먼 그려."
 "예, 알았구만이라오."
 그는 부리나케 마루로 올라가 시렁 위의 바구니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순애는 기진맥진한 몸을 추스리면서 땀에 젖은 얼굴로 명숙의 손에 들려있는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얼굴에서 무심코 잊혀진 얼굴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얼굴도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녀는 명자가 말없이 피에 젖은 애기포를 싸들고 밖으로 나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내 몸 속에 저렇게 큰 아기가 들어 있었다니. 방바닥에는 여기저기 지푸라기들이 널려 있었다.
 명숙이 물로 씻은 아기를 정성껏 닦아 강보에 감싸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아기를 그녀의 바로 옆에 누이더니 일어나 피묻은 짚푸라기들을 걷어내고 있었다.
 순애는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소금냄새를 느끼며 물기가 가득한 눈을 돌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거미줄이 얼기설기 들어붙은 시커먼 서까래 사이에 천섭의 얼굴이 걸려 있었다.
 천섭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돋았다. 모를 일이었다. 순애는 의아해 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시 붉은 완장 김동태의 얼굴이 빛 바랜 사진처럼 희미하게 다가섰다. 얼굴이 분명하게 잡히지를 않았다. 어느 사이 먼 옛날의 얼굴처럼 잊혀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명자가 순애의 옆에 앉으며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땀을 닦아주었다. 시원하였다. 금방이라도 기운을 차릴 것만 같았다.
 "쪼메 자그라. 인자는 다 끝난겨."
 고마우신 어머니....... 순애는 속으로 생각하며 수건을 쥔 명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엄니! 쪼메 웃으먼 안 되능겨?"
 순애의 손등으로 그녀의 눈물 한방울이 떨어졌다.
 "그려, 웃어야지. 니 새끼가 나왔는디 내가 안 웃어서야 되겄냐?"
 "장서방이...... 아들이먼, 이름을 성옥이라고 짓는다고 혔는디......."
 "그려......."
 "엄니......, 딴 디 가지 말고...... 여그 기양 있어......."
 명자의 손을 꼭 쥔 채로 순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결 속에서 순애는 마당에서 들려오는 명숙의 소리를 들었다.
 "그여 가셨구만. 쯧쯧......."
 그리고는 뒤이어 생각난 듯 삼용을 불렀다.
 "대문을 잠거야 혀. 자네도 이 집으서 움직이믄 안 되야. 성태는 오늘은 집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혀. 대문에도 금줄을 하나 더 치게나."
 삼용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예, 알았구만이라오."
 순애는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순애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어느날이었다. 성태가 순애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마침 아기의 기저귀를 매어주고 있었다.
 "동상, 나 우리 조카 쪼메 보믄 안 될랑가?"
 순애가 아기를 안은 채로 방문을 열어주며 밝게 웃었다.
 "글안혀도 나 기저귀 좀 빨어야 쓰겄어. 짬 있으믄 울 애기 볼텨?"
 성태가 기뻐하며 아기를 넘겨 받았다. 그는 받자마자 둥기둥기 아기를 얼러댔다. 순애가 그 모양을 저으기 바라보더니 불안한 듯 말했다.
 "조심혀야 혀. 애 보능 게 쉬운 일인지 알어?"
 "알었구만이라오. 애 엄니! 조심헐겨요."
 성태가 얄밉다는 듯 내뱉으며 아기를 안고 대문을 나섰다.
 "어딜 가는겨?"
 성태의 등 뒤에서 순애가 소리쳤다.
 "바람 조메 쏘이고, 얼른 올겨."
 "......?"
 그 길로 성태는 아기를 안고 천섭이네로 향했다. 천섭이 마루에 걸터앉아 성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 소원이랑게로...... 내가 인심 한번 쓰는 셈 치고, 데리고 온거여. 얼른 구경이나 혀."
 천섭이 일어나 성태의 품에 안겨있는 아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아기의 얼굴 어디엔가 순애의 모습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반드시 있을 것이었다.
 천섭은 성태의 손에서 아기를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다시 마루에 앉아 손가락으로 아기의 얼굴을 살짝 건드려보았다. 아기가 눈을 방긋하게 뜨고서 그러는 천섭을 쳐다보았다. 아기의 눈은 아직 촛점이 없었다. 천섭은 아기의 볼에 자신의 뺨을 비벼보았다. 성태가 옆에서 지켜보다가 딱한 듯 한마디했다.
 "되게 분위기 잡는구만. 애가 울면 안 되야. 나 순애헌티 야단 맞을거구만."
 "......."
 "알고 봉게로, 야네 아부지가 참말로 좋은 사람여."
 "......."
 "어색한 구석이 티끌 만큼도 없단 말여. 누가 봐도 그 사람 아들인겨."
 듣고 있던 천섭이 아기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순애헌티도 잘 허능가 모르겄네."
 "말도 말어. 자네 가슴 아픈 소리겄지만 어찌나 잘 허는지 몰라......."
 "...... 그려."
 "하지만 순애야 속이 편허겄냐? 시방 가 바늘방석에 앉아있능겨. 니가 여그 와 있응게로......."
 천섭은 아기를 마루에 누이더니, 아기를 감싼 얇은 강보를 살며시 제꼈다. 앙증맞은 두 발이 천섭의 눈 앞에서 천천히 바둥거리고 있었다. 천섭은 아기의 작은 발과, 그보다 더 작아 손가락에도 잘 잡히지 않는 발가락을 만져보았다.
 성태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근디 말여. 야가 누구를 닮은 거 같여?"
 "아직은 잘 모르지. 쪼메 더 기다려야 나타나겄지......."
 "그럴랑가? 차라리 즈 엄니만 닮았으먼 좋겄는디......."
 천섭은 아기의 기저귀를 들추고는 분명한 고추임을 확인이라도 해보는 듯했다. 그는 고사리 같은 아기의 손가락도 일일이 한번씩 만져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쉬운 듯 멈칫거리면서도 강보를 다시 싸매 성태에게 넘겨 주었다. 그의 눈에 안개가 서렸다. 성태가 천섭의 등을 한번 토닥여주고는 아기를 다시 품에 안았다.
 "이름이 성옥이라고 혔능가?"
 천섭이 물었다.
 "그려, 장성옥이래여."
 "이름 괜찮구먼......."
 "좋구 말구....... 나 갈란다."
 성태가 등을 돌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야가 울 엄니 돌아가신 날 나온겨?"
 "그려."
 "참말여?"
 "그렇대두......."
 그는 대문을 나서는 성태의 등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힘없이 마루에 앉은 천섭의 얼굴에 비통함이 가득했다. 그가 얼굴을 수그리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저녁을 마친 후에 순애는 기저귀를 모아 대야에 담은 다음 머리에 이고는 틈뚜럭으로 나섰다. 그녀는 기저귀를 가능한 한 우물가에서 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명숙 이모가 무어라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마시는 물 주변에 냄새가 고여 미안했던 것이다.
 그녀는 틈뚜럭에 올라 다리 난간에 대야를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수로에는 예상대로 물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저편을 바라보니 그녀가 자랐던 내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괜시리 눈물이 고여왔다. 어둠이 내려앉으며 연기가 피어오르던 내촌마을의 모습도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아!"
 그녀는 녹아내리는 가슴을 어쩔 수가 없었다. 천섭의 얼굴이 자꾸만 그녀의 눈앞에 어른거렸던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순애는 혼자 머리를 내저어 보았다. 그러나 한번 가슴에 박혀 버린 그의 얼굴을 어떻게 지운단 말인가.
 그녀가 마지막 빨래감을 손에 쥐고 물 속에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멀리 틈뚜럭의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순애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바쁘게 빨래를 마무리하고는 대야를 머리에 이었다. 다가서는 그림자가 아무래도 이상하였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순애!"
 천섭이었다.
 "......!"
 천섭이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선 그녀가 몸을 돌려 발을 떼었다.
 "순애!"
 천섭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이상하게도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아 버렸다. 순애의 바로 뒤에 이른 그가 다리에 난간에 앉으며 말했다.
 "잠깐만 앉어. 길게 붙잡지는 않을 거구만......."
 순애가 힘을 내어 다부지게 말했다. 그러나 가슴은 자꾸 무너져 내렸다.
 "지는 헐 말이 없구만이라오."
 "아녀, 난 꼭 혀야 허는 말이 있어....... 쪼메만 앉어봐."
 "애기가 기다리는구만요."
 순애는 스스로가 말을 뱉아놓고도 가슴이 찢어졌다. 천섭이 일어나 그녀의 머리에서 대야를 내려놓았다. 순애는 등을 돌린 채로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미안허구만....... 다 내 잘못이여......."
 "아니구만요. 다 내 팔자여요."
 "그렁게 아녀. 내가 수월만 떠나지 않았어도......."
 "......."
 "난 설마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혔구만......."
 순애가 대야를 집어올리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그녀의 손이 대야를 붙들자 그의 손이 다급하게 그녀의 손을 덮쳤다. 순애는 숨이 콱 막혀 왔다.
 "왜 이려요?"
 "그러닝께 잠깐만 앉어."
 그녀는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 가슴이 흐물거리며 온몸이 나른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섭이 그녀의 손을 당겨 그녀를 그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마지못해 끌려가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 내 팔장게로 천섭 씨를 원망허지는 않을 것이구만요."
 "......."
 "난 못 배웠응게로 첨부터 천섭 씨허고는 안 맞었던 겨요."
 "......."
 "인자 배운 여자 얻었응게 잘 된 거 아녀요?"
 "배웅 게 머 중한 거라고......."
 천섭이 그녀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견디지 못하고 천섭의 어깨로 쓰러졌다. 천섭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그냥 그를 끌어안고 이대로 죽어도 좋았다. 그년는 천섭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소리쳤다.
 "천섭 씨! 차라리 날 죽여줘요. 나 천섭 씨 없으먼 못살겄구만......."
 천섭은 그녀를 안은 채로 눈을 돌렸다. 수로에 가득 흐르는 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풀잎들이 두둥실 떠내려가고 있었다. 거기에 또한 변함없이 하늘은 가라앉아 서서히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뿌려놓고 있었다.


 3.
 이듬해 순애는 돌이 막 지난 성옥을 등에 업고 드디어 쌍궁나루를 건너 김촌으로 들어왔다. 애시당초 수월에 머무르는 것은 일이 년으로 기약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였지만, 모친의 탈상이 끝나는대로 곧 천섭의 혼례식이 있다고 하니, 순애는 더 이상 수월에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순애는 발길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이제 영 천섭과는 이별일 것만 같았다. 만나지는 못하여도 그래도 한동네에서 그와 같이 살 수 있어 그동안은 견딜 수가 있었다.
 아침마다 뒷문을 열어놓고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은 불어왔고, 그 바람 속에는 어김없이 천섭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저물어가는 고샅에 시끄러운 발자욱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오면, 그 속에서도 순애는 천섭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찾아낼 수가 있었다.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수월을 떠나면 이제 그녀는 영락없는 혼자가 될 것이었다. 수월을 떠나면 그의 냄새도, 그의 발자욱 소리도, 이제는 영 이별일 것이었다.

 삼용과 순애가 김촌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고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촌의 일용은 그동안 적지 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소문만을 듣고 찾아왔던 헌병들이 분명하게 사실을 확인한 다음부터는 김촌을뻔질나게 들라거렸다. 그래서 일용은 한동안은 삼용이 그냥 수월에 머물러 있거나, 차라리 내촌으로 거처를 옮겼으면 하는 마음을 갖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다소 늦었다 하더라도 귀대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육리댁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더욱이 혼인까지 하여 처자식을 거느리고 있는 지금에 다시 전쟁터에 뛰어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무모한 일것이었다. 삼용조차도 백번 수긍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수월이나 내촌에 있는다 해도 결국 일은 마찬가지일 수도 있었다. 머지않아 그들은 그곳의 삼용을 찾아갈 것이 분명한 것이었다. 또한 그렇다면 삼용의 문제는 결국 자신이 안고서 해결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이었던 것이다.
 일용은 삼용의 살림방을 부엌방으로 잡아 주었다. 그곳이 그래도 이 집에서는 가장 안쪽에 있는 안전한 방이기 때문이었다.
 짐을 푼 삼용은 일용으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듣고 실의에 빠졌다. 설마 일이 이런 상황으로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거의 두 해만에 다시 돌아온 김촌마을은 이제 삼용에게 절대로 안전하거나 편안한 고향마을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제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 새로운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은 서서히 끝나가는데, 불행하게도 삼용만은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며 거꾸로 헛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계획하며 꿈에 부풀어가는 시간에, 그만은 그 전쟁이 남긴 흔적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욱 고통스러워질 참이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헌병들의 눈을 벗어나기 위해, 일용은 울 안 텃밭의 짚단 속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그 안에 방을 만들어 삼용은 낮 동안은 어쩔 수 없이 그 안에 외롭게 갇혀 있어야 했다.
 헌병들의 눈만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동네마다 부역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반공주의자들의 무서운 눈이 밤이나 낮이나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리 국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하여도 귀대하지 않은 자는 억지로 끌어다 붙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빨갱이의 부류로 손가락질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일용은 백방으로 손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동네의 살기등등한 임출곤부터 이해을 시켜야 했다. 그는 왜정시대에는 조선인들을 발발 떨게한 잘 나가는 고등계 형사였다. 저들이 패전으로 물러가자 그는 잠시 옷을 벗고 동네에 머물러 은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민공화국이 들어섰으니 도리없이 다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그들이 물러가자마자 다시 그가 몰고오는 찬바람이 온 동네에 무섭게 불어닥친 것이었다.
 "빨갱이들은 다 잡어 쥑여야 혀. 그 놈들허고 죽이 맞었던 놈들은 모다 빨갱이인겨."
 김촌 사람들은 그를 상전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한때는 일본의 앞잡이였던 그였다. 당연히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묘하게도 그에게 다시 무소불위의 힘을 안겨 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들이 이 땅에 들어왔을때에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사람들은 다만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숱한 사람들이 부역자로 몰렸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을 협조자로 몰아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빨갱이의 때가 묻은 사람이 많을수록 그의 힘은 더 빛이 났다.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불안한 김촌 사람들은 혹시나 하여 임출곤네 집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들의 손에는 살아남기 위한 확실한 방법으로 주로 논문서들이 들려 있었다.
 일용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아무래도 오랜동안 한 동네에서 살아왔고, 딱이 빨갱이라 오해를 살 만한 행적이 없던 일용이네였지만, 눈감아 달라는 일용의 부탁을 쉽사리 들어주지 않았다.
 "자네도 알잖는가? 울 엄니가 가 총맞고 돌아온 뒤부터 어쨌능가? 자네 동생이라고 생각허고 쪼메 도와주게나."
 "암요, 가능허믄 그려야죠. 즈이도 성님 덕분이 이 동리서 발 붙이고 살어 왔는디, 모른 척 헐 수야 없능 거 아녀요? 허지만 지가 눈을 감는다고 일이 잘될란지 모르겠네요?"
 말만 번지르르했지 영락없는 거절이었다. 일용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려도 자네만이라도 눈을 감어 주먼 좋겄구만....... 부탁허네 이 사람아. 사람 하나 살리는 셈치고 조메 도와주게나."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일용은 속으로 분노가 끓어 올랐다. 화가 치밀고 창피스러워 눈물이 맺혔다.
 일용의 눈물을 알아챈 그가 조금 누그러졌다. 일용이 들고온 논문서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는 마지못한 척 논문서를 받아들었다. 입으로는 그랬다.
 "성님, 우리 사이에 이런 거 오고가믄 안 되잖어요?"
 "아녀, 내 마음잉게 받어줘. 그려야 나도 발 뻗고 자능겨."
 그는 결국 일용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일용은 그의 집을 나서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비록 몇 마지기의 논이 그의 손에 넘어갔지만, 일단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후부터 삼용의 행동반경은 전보다 많이 나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잠깐이라도 짚더미 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삼용이 혼인을 하여 처가쯤에서 살다가 애까지 나아 돌아왔다는 소문은 온 동네 사람이 다 알 터였다. 동네 사람 중 누구 하나만이라도 헌병들에게 협조를 한  다면 삼용은 달아날 길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한동안 삼용은 견딜만한 상태로 호전이 되었다. 낮에는 낯선 사람이 노출되지 않고 쉽사리 동네로 들어서기는 어려웠다. 특히 헌병들은 복장이나 타고 오는 지프로 인해 더욱 그랬다. 여기는 사방이 확 트인 들녁이었다. 누군가가 동네로 다가서면 이미 최소한 십여 분쯤 전의 거리에서부터 노출이 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라면 들일 중의 누군가가 신호만 제때에 보내 준다든가, 아니면 삼용이 직접 나무 위나 짚단 위에 올라가 마을로 들어서는 길을 잘 지켜보기만 하면, 그는 충분히 짚단 속이나 동네의 어디엔가에 숨을 만한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어둠이 밀려드는 초저녁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들과 고샅은 텅 비어 버리기 마련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마을 주변과 입구를 지켜본다 해도, 어둠은 방문자의 그림자를 쉽게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삼용이 식사를 하고나서 마음 놓고 부엌방의 방바닥에 들어누운 어느 초저녁이었다. 회암댁이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다가 잠궈논 대문 틈새로 누군가가 얼씬거리는 것을 보았다. 푸른 제복이었다. 순간 회암댁은 소리쳤다.
 "막둥아! 왔다. 도망쳐!"
 삼용은 벌떡 일어나 속옷바람으로 들창문을 뛰쳐나갔다. 들창문이 덜커덩 열렸다가 닫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기가 놀라 깨어 울음을 터뜨렸다.
 삼용이 맨발로 장독대를 돌아 팽나무 옆의 토담을 마악 넘으려 하는데, 어느 사이 부엌을 지나 장독대로 따라나선 그들의 재빠른 손이 삼용의 두 발을 붙잡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침입자를 몸으로 막아보려다 밀쳐져서 나동그라진 회암댁이 끙끙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순애는 마침 장독대에 장을 꺼내려고 나섰다가 이 요란한 광경을 만났다. 순애로서는 처음 만나는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었다. 들고 있던 바가지가 땅에 떨어지며 담았던 간장이 엎어졌다. 가슴이 떨렸다.
 삼용은 영낙없이 붙잡혀 수갑이 채워진 채로 개 끌리듯 끌려나갔다. 안방에서 뛰쳐나온 일용이 옷을 갈아입더니 부랴부랴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새벽녘에야 삼용은 일용의 손에 이끌려 터벅터벅 돌아왔다. 삼용이 내려앉은 어깨를 어쩌지 못하고 풀이 죽은 모양으로 부엌방으로 들어가자 일용은 혼자 안방으로 들어갔다.
 마루에 앉아 밤새 기다린 회암댁과 주촌댁은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이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보이지도 않는 하늘만 바라보았다. 순애는 방 한 구석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일용은 안방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잠그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는 일용의 눈가에 눈물이 얼핏 맺혔다. 일용은 일어나 다락문을 열고 서류를 뒤적거렸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논문서였다. 그 중에 하나를 들고 일용은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는 일용의 등 뒤에 대고 아내 주촌댁이 한마디 내뱉었다.
 "언지꺼정 이럴 거여! 언지꺼정 이럴 거여!"
 차라리 지금이라도 귀대하거나 붙잡혀 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절규였다. 순애는 참다 못하여 고개를 수그린 채로 아기를 안고 일어나 부엌방으로 들어갔다. 삼용이 어두운 방의 웃목에 앉아 씩씩거리고 있었다.
 "개같은 노므 시끼들!"
 순애는 그런 삼용을 상관하지 않고 아랫목에 아기를 누이고는 그녀 자신도 아기 곁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불 속에서 곧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삼용이 씩씩거림을 멈추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순애에게 말했다.
 "미안혀. 내가 장가를 안 들고 군댈 가버렸어야 하는 건디, 다 죽었다가 살아나오고 봉게로 다시 갈 수가 있어야지. 가먼 죽을 거 같은디, 워떠케 가겄어."
 순애는 대답이 없었다. 이제사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가 찾아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순애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숙이 있으니 어떻게든 일은 해결이 될 성싶었다. 순애는 그제서야 잠이 들었다.


 4.
 1953년 7월 드디어 전쟁은 끝이 나고, 놀란 미군은 이 땅에 주저앉았다. 순애는 마당에 앉아 멀리 김제읍 쪽의 황산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았다.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허리에 그 구불구불한 곡선을 따라 별들을 줄줄이 매달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 불빛은 온 밤을 밝히고 서 있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전쟁 중에 새로이 생겨난 이 이상한 불빛에 대해 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을 했다. 누구는 미군의 미사일기지라고 했고, 누구는 레이다기지라고 했다. 다른 누구는 미군들의 헬기장이라고도 말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절대로 한국사람은 그곳에 접근할 수가 없다는 말이 더욱 그 불빛에 대한 신비감을 부추겼다.
 얼마 전 근처에 사는 누군가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부대에 접근하다가 미군이 발사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고 했다. 밤하늘의 귀퉁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불빛의 세계치고는 소름이 끼치는 엄청나게 무서운 곳이었다.
 얼굴이 새까만 흑인병사를 보았다는 사람이 늘어갔다. 밀가루처럼 하얀 고 손발에 털이 많이 나 있는 백인병사도 보았다고 했다. 당연히그들과 붙어 다니는 양공주가 이곳에도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손가락질했다.
 "시상으나 워찌케 깜둥이들허고 산디야?"
 국민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그들이 제공하는 우유를 타갖고와 자랑스럽게 식구들과 나누어 먹고는 했다. '유 아 몽키'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앉은 가마니 옆에는 눈이 매울 정도의 모깃불이 타들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바로 옆에는 이제 집나이 세 살이 되어가는 성옥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다 찢어져 종이를 덕지덕지 바른 부채를 들고 아기에게 접근하는 모깃불을 다른 곳으로 흩어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과 손톱을 바라보았다. 여름 내내 모심기에 혹사당한 손톱은 이미 닳고 닳아 삼분지 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쉬지 않고 오로지 일만 해온 그녀였다. 손위 동서인 주촌댁은 이 집의 주인마님답게 당차고 거세어서 순애가 잠시라도 쉴만한 짬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삼용은 동네의 사랑방에 나가 있었다. 조금은 불안이 사라져 마실을 다녔다. 차라리 집안에 있는 것보다 다른 집에 있는 것이 더 안전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헌병들이 들이닥쳐도 동네의 사랑방까지는 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점차 일용에게 익숙해져서 대개는 사전예고를 하고 찾아오기도 했다. 필요한 게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용은 두말없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했다.
 마루에 주촌댁과 함께 앉아있던 회암댁이 순애에게 말을 건넸다.
 "내일 놉은 다 얻은겨? 다리건너 신두리댁네가 몸이 아프다던디?"
 "예, 그렇고만이라오. 그려도 일은 나온다고 허드만요. 고지를 먹었는디 안 나오겄어요? 못나오믄 지가 쪼메 더 할겨요."
 듣고 있던 주촌댁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 댁네 맨날 아프다고 허는디요 머. 일 시켜먹기 참말로 어려운 댁네구만요. 내년에는 그 댁네헌티는 고지를 주지 말어야겄어요."
 "그려도 아프다는 사람 데리고 일헐 수는 없쟎어?"
 "......."
 "근디 말여. 그 댁네 시아재는 일이 해결이 잘 되었다믄서?"
 신두리댁네의 시아재도 삼용과 비슷한 처지였다. 그는 아예 입대를 하지 않아 쫒겨다니고 있었다. 주촌댁이 그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거그는 그려도 높은 디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구만요. 아예 제대했다는 서류를 맹글어 버렸다능 거 같여요."
 "그렇구만......?"
 회암댁이 부러운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다가 순애를 바라보았다.
 "야, 막둥아! 애기 모고 뜯길라. 방에다가 뉘먼 안 되겄냐?"
 회암댁은 순애를 자신의 막둥이 아들 부르듯이 불렀다. 순애는 아기를 품에 안으면서 일어섰다.
 "알았구만이라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는 순애의 등에 대고 회암댁이 말을 덧붙였다.
 "너도 고만 자그라. 낼 일 헐려믄 쪼메 쉬야지."
 순애는 방으로 돌아와 모기장을 들치고는 성옥을 모기장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모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열려진 뒷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그녀는 금방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잠결에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고 생각했다. 눈을 떠보니 삼용이 언제 돌아왔는지 알몸이 되어 그녀를 더듬고 있었다.
 "지는 피곤헌디요......."
 삼용은 그 말을 듣는지 마는지 그녀의 품속으로 더욱 파고 들었다. 삼용의 손은 다급하게 그녀의 치마를 벗겨내고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순애는 그의 입에서 진저리가 나는 막걸리 냄새를 맡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로 다가서자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5.
 한 해가 다시 가고 난 이듬해의 가을이었다. 삼용은 마당 한켠에서 짚단을 풀어놓고 이엉을 엮고 있었다. 어머니 회암댁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들일을 나간 얼마 후였다.
 아직도 삼용은 가능한 한 들일에 나가지 않았다. 형수인 주촌댁은 삼용의 이런 상황이 아주 못마땅하고 불편했다. 삼용이 때문에 땅이 줄어드는 것만 해도 참기 어려운 일인데, 일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영 못마땅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삼용은 혼자서 지붕을 새로 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왕에 일이 빨리 진척이 되면 울타리를 할 이엉도 만들고, 토담의 용마름까지 만들면, 큰형 일용이 그나마라도 흡족하게 웃을런지 모르는 일이었다.
 삼용이 돌아오자 일용은 그동안 사랑방에 머물게 했던 상머슴을 내보냈다. 삼용이 그가 하던 일을 모두 해야만 했다. 그러나 농삿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지붕 이는 일만 해도 용마름을 트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맡기기 위해 일용은 쌀을 십여 섬이나 안겨주며 상머슴을 들였던 것이다.
 삼용이 마당 한켠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서 한참 이엉을 엮고 있는데, 누군가가 대문 밖에 자전거를 세우고 삐그덩거리는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들을 바라본 순간 삼용은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며 움찔했다. 아기를 등에 업고 돌돌 말린 이엉이 거꾸로 세워져 있는 마름 사이를 슬슬 거닐던 회암댁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으며 요란한 북처럼 둥둥거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누렁이가 그들을 향해 결사적으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세상이 갑자기 아수라장으로 급전직하하는 듯했다. 회암댁의 등에 업혀 있던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면소재지의 지서에서 나온 두 명의 사복군인이었다. 그들은 회암댁을 바라보더니 형식적으로 인사를 던졌다.
 "진지 잡수셨느나라오? 요지음 무척 바쁘시겄죠? 지붕 이나 봐요?"
 진지를 드셨느냐가 모든 사람들의 인삿말이었다. 그들은 회암댁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벌써 여러번 부딧혀 아는 얼굴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고는 마당 한 켠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삼용에게로 다가가 다짜고짜로 삼용을 양쪽에서 밀어붙였다.
 삼용은 놀라는 얼굴이었지만 대항하거나 달아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삼용의 두 팔을 나누어 붙들고 곧 그의 손을 등 뒤로 모아 손목에 수갑을 채워 그대로 대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힘센 두 사람에게 마치 들리듯 끌려가는 삼용은 낭패한 모습으로 허둥거리며 회암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회암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렁이가 계속 그들의 등 뒤를 따라가며 짖어댔다.
 잠시 후 대문 밖에서 자전거의 받침대를 제끼는 철컥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다시 온 세상이 조용해졌다. 누렁이도 제풀에 지쳤는지 다시 돌아와 토방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삼용이 그들에게 끌려간 한참 후까지도 회암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망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등에 업힌 아기는 다시 회암댁의 등에 얼굴을 깊이 묻었다. 문득 회암댁의 온몸이 자지러지듯 떨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등허리 축축하게 식은땀이 배어났다. 그러나 그뿐 그녀는 더 이상 아무런 변화도, 별다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기를 등에 업은 채로 회암댁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일용이 점심식사를 위해 돌아올 시간이었다. 회암댁은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한 번 열어보았다. 솥 안에는 약간의 물이 담겨져 있었지만, 그녀는 찬장 밑에 묻혀둔 항아리 속에서 한 바가지의 물을 퍼올려 솥 안에 더 부어넣었다.
 그리고 부엌 구석에 쌓인 짚단 더미에서 한 줌의 짚을 집어다가 불을 붙였다. 일용이 돌아오면 그녀는 찬장 안의 식은 보리밥을 꺼내 솥 안의 끓는 물 속에 집어넣을 것이다.
 주촌댁과 순애는 이웃집의 타작논에 품앗이를 갔기 때문에 점심을 집에서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일용은 당신의 논바닥에 베어 말리고 있는 벼를 한 번 뒤집어 주기 위해 나간 것이다. 그러니 돌아올 것이었다.
 그러면 회암댁은 한 그릇의 밥으로 두 그릇의 밥을 만들어 일용과 나누어 먹게 될 것이었다. 회암댁이 적당히 불을 지피고 나서 아궁이 입구의 지푸라기들을 치운 뒤에 부엌문을 나서자, 마침 일용이 들어서고 있었다.
 삼베 잠뱅이를 정강이까지 겉어부치고 새끼줄로 날을 칭칭 동여맨 낫 한 자루를 들고서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일용을 맨 먼저 맞이하는 것은 역시 누렁이였다. 누렁이는 일용을 가장 좋아했다. 놈은 그를 보면 우선 앞발을 가지런하게 모으고 허리를 깊숙이 구부린 자세를 취했다.
 그것이 놈의 인사법이었다. 일용이 한 발짝도 제대로 뗄 수 없을 정도로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회암댁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서 쯧쯧 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
 "그만혀, 이놈아."
 일용의 호통소리가 터지고 나서야 그놈은 슬슬 꽁지를 사리고 물러가 주저앉았다. 일용은 들고 온 낫을 헛간 벽에 걸어놓고 곧장 쌀겨통으로 다가섰다. 약간의 쌀겨를 챙겨 헛간 옆의 거위 집에 부어 주고는, 돌아나오며 한켠에 비참한 자세로 앉아 있는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손을 누렁이의 목 아래로 집어넣어 한참을 만져 주었다. 비로소 누렁이는 용기를 회복하고 꼬리를 들어 살며시 흔들었다.
 "아범, 왕골은 언지 자를 거여? 지붕 일 시작헐라믄 싻군도 알아봐야잖어?"
 회암댁이 물끄러미 일용을 바라보며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일용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염려 마셔요. 다 잘 되어가는구만이라오. 우선은 일들이 모다 끝나야 허닝게요."
 그리고 어쩌다 가끔만 보여주는 너털웃음을 그의 어머니에게 보내주었다.
 "그려 그려, 다 알아서 허것지."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회암댁이 준비한 밥상이 마루에 오르자 일용이 밥상 앞에 올라 앉았다. 마주앉은 회암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범, 막동이가 또 끌려갔구먼......."
 일용은 벌써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 말보다도 먼저 회암댁의 기색에서 벌써 일용은 사태를 짐작했던 것이고, 이엉을 엮고 있어야할 삼용이 보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때가 되었잖어요?"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물에 끓인 밥을 그릇 채 훌훌 마시고 일용은 다시 대문을 나섰다.
 "왕골밭이나 보고 올라네요."
 왕골밭은 대문을 나서서 토담벽을 돌기만 하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너머가 둠벙이었다. 그러니까 일용네는 둠벙가에 왕골밭을 끼고 자리잡고 있는 셈이었다. 가슴이 떨리는 회암댁은 아이를 등에 업고 토방 위를 서성거렸다.
 일용이 다시 대문으로 들어섰다. 함석 대문짝이 삐그덩거리는 소리에 아기가 놀라 잠을 깼다. 누렁이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토방에 그대로 서서 아기를 업은 채로 일용을 바라보는 회암댁에게 일용이 말했다.
 "며칠 있다가 베어 버릴라네요."
 일용은 헛간 문을 열고 지게를 꺼내 작대기를 받쳐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헛간으로 들어가 끙끙거리며 쌀가마를 짊어지고 나와 지게에 얹어 놓았다. 지게가 한 번 기우뚱거렸다.
 "막동이 돌아오믄 집에 기양 있으라고 허셔요."
 그리고 일용은 손바닥에 침을 탁 뱉은 후에 두어 번 비비고는 지게에서 작대기를 풀어내고 그것을 걸머졌다.
 "오늘은 확답을 받아 갖고 올 것이구만요."
 "인잔 더 줄 것도 없다고 해보지 그려?"
 회암댁이 대문을 나서는 일용의 등을 보고 말했다. 되지도 않을 일이었지만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하는 말이었다.


 6.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갈 무렵 회암댁은 아기를 등에 업은 채로 둠벙으로 나갔다. 왕골밭을 끼고 흘러가는 둠벙에는 몇 개의 커다란 돌멩이로 받쳐진 나무 판자와 기다란 시멘트 침목이 다리 역할을 하여 건너 둠벙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저녁이면 여기는 으레 빨래터로 변하여 분주하게 될 것이었다.
 서해 쪽으로 간척지가 형성되는 바람에 바다가 한참이나 뒤로 밀려가 버렸지만 아직도 고샅길을 겉다보면 게들이 밟혔다. 여름철 비가 쏟아지면 마을은 금방 물 속에 잠겼다. 바다가 불시에 다시 쳐들어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바닷물이 역류하는 것은 아니었다. 둠벙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맨 먼저 물에 잠기고, 그 다음 고샅길이 잠기고, 나중에는 마당에까지 물이 차올랐다.
 회암댁은 둠벙 한가운데에 지천으로 솟아있는 연잎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의 물 위를 가득 덮고 있는 마름풀들을 바라보았다. 회암댁의 눈이 차츰 따뜻하게 변해 갔다. 그녀는 여기 이 둠벙가에서 청춘을 모조리 흘려보냈다. 그리고 남은 인생도 여기서 흘려보낼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둠벙가로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크고 작은 대나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금방 고샅의 시궁창에서 캐낸 지렁이 몇 마리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낚시질을 할 것이었다. 둠벙에 가득한 물고기를 낚을 것이었다.
 회암댁은 그들에게 다가가 아기를 내보였다. 아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회암댁의 남모르는 고충은 결코 아이들의 현실이 아니었다. 그들의 현실은 이 가을날의 마냥 향기로운 햇빛과 바람과 자유뿐이었다. 회암댁은 혼잣말이듯 내뱉었다.
 "많이 컸잖어?"
 회암댁은 아기가 자신의 피를 한나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벌써 까마득 잊고 있었다. 회암댁은 아이들을 떠나 보다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따라 둠벙 물이 무척이나 맑았다. 손을 집어넣으면 시리다 못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김장철이 다가오면 새 물이 벽골제의 수로를 타고 흘러내려 왔다. 그 수백, 수십 리를 달려온 물이 결국 이곳에 이르러 잠시 머물렀다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여기는 물이 바다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휴식처였다. 물은 그렇게 흘러서 제 갈길을 간다. 회암댁은 아기를 업은 채로 둠벙가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검버섯 가득 핀 팔뚝을 걷어부치고 물속에 팔목을 집어넣었다. 차가웠다. 몸서리를 치는 회암댁의 가슴이 파도를 치며 출렁였다.
 "인자는 겨울이여."
 그녀는 혼자서 속삭였다.
 "올해도 춥겄지."
 그녀는 다시 속삭였다.
 "내년에도 이러코롬 맑을랑가?"
 회암댁은 흐르는 물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엄니!"
 문득 등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회암댁의 머리가 한 번 들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그녀는 물 속에서 팔을 쉬이 거두지 않았다.
"엄니, 그만혀요. 이렁게 남들이 노망끼가 있다고 허잖어요?"
 그제서야 회암댁은 팔을 거두고 힘겹게 일어섰다. 그녀는 일어나 등에 업힌 아기를 한번 추스렸다.
 "막동이구먼?"
 "예."
 항상 그랬듯이 삼용이 끌려갔다가 돌아오면 회암댁은 매번 감동했다. 그러면서도 일단은 그 감동을 숨겼다. 그렇잖아도 사람들이 막동이를 향한 지나친 사랑에 혀를 차는 참이었던 것이다.
 "성님이 먼저 가라시대요. 남은 일 마저 끝내고 오신다는구만요."
 "그 사람들이 도지서로 끌고 갔었구먼......"
 "예"
 그녀가 앞장을 서자 삼용은 그 뒤를 따르다가 회암댁의 등에서 아기를 떼어 안을려고 했다. 그러나 아기는 회암댁의 등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삼용이 손을 멈추었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어느 사이 주촌댁과 순애가 돌아와 있었다. 몸빼 바지에는 볏짚에서 묻어난 터럭들이 가득했고, 머리에 뒤집어쓴 수건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아 있었다. 토방 위에는 두 사람이 거두어 온 홀태 두 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죄송허구만요."
 마루 한구석에 겨우 엉덩이를 대며 순애가 힘들게 말했다. 주촌댁은 별 말이 없었다.
 "둠벙에 나가 씻고들 들어오잖고 뭘 허능겨?."
 회암댁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아직도 아기는 회암댁의 등에 업혀 있었다.
 둠벙에 나가 씻고 들어온 순애가 마련한 저녁상이 아직도 마루에 오르질 않았다. 순애는 부엌에 홀로 앉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주촌댁은 텃밭에 나가 무언가를 뜯고 있었다. 저녁상에 오를 만한 무엇이 있을 것이었다.
 삼용은 대추나무 밑에 놓여진 운동기구를 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담벼락 밑에 놓여진 오줌통이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뒷간으로 옮겼다.
 회암댁은 아이를 업은 채로 부엌을 지나 장독대로 나갔다. 뒤안의 거대한 팽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식구들 모두는 일용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더 이상 오늘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무시로 반복되는 월례 행사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자 일용이 돌아왔다. 그의 뒤에는 언제나처럼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었다. 면소재지의 지서에 근무하는 순경이었다.
 일용이 그들과 함께 대문을 들어서더니 순애를 찾았다.
 "계수씨!"
 순애가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걸어나왔다.
 "계수씨, 이 사람들허고 지서에 쪼메 댕겨와야 쓰겄어요."
 순애가 깜짝 놀라 일용의 얼굴과 순경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가선 삼용도 볼멘소리를 했다.
 "이 사람이 머땀시오?"
 일용이 마루에 걸터앉으며 삼용에게 말했다.
 "지서에서 계수씨 외삼춘에 관혀서 알고 싶은 게 있디야. 별 일은 아니라고 헝게로 안심허고 다녀와. 그리고 그 사람들은 갔구만."
 순애는 제 방으로 들어가 간단한 외출준비을 했다. 그리고 불안한 가슴을 애써 누르며 그들을 따라 지서로 갔다.


 7.
 순애가 지서 안으로 들어서자 동행한 순경이 그녀를 주임 앞으로 데리고 갔다. 늦은 저녁이라 지서 안은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주임은 맨 안쪽의 책상 너머에 눕다시피 앉아 있었는데, 그의 구두를 신은 두 발만이 책상 위로 올라와 있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져먹어도 순애는 점점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여진 수갑이 불빛에 반짝거렸다. 순애가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비로소 발을 내리며 앉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삼용이 처인가라오?"
 "예, 그렇구만이라오."
 "쪼메 앉지 그려."
 그는 마흔이 갓 넘어 보였는데, 순애에게 다짜고짜로 반말투였다. 그는 우선 그녀를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참말로 이쁘구만. 말로만 들었는디......."
 "......."
 순애를 데려온 순경들이 그에게 목례를 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수갑을 들어서 한두 번 흔들어보더니, 윗쪽으로 밀어놓고는 서류를 뒤적이며 순애에게 물었다.
 "강명석이라고......, 알고 있능가라오?"
 수갑이 덜렁거렸을 때부터 순애의 가슴은 이미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었다.
 "즈이 외삼춘이고만요."
 "그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순애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어머니 명자로부터 익히 들어온 외삼촌이 도대체 왜 여기서 불거져나오는 것일까.
 "근디 삼용이는 머땀시 군엘 안 간겨?"
 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항을 괜히 물어보고 있었다.
 "지는 잘 모르겄구만이라오."
 "응, 그렇겄고만. 그 때는 시집오기 전일 터닝께 말여."
 "쪼메 봐 주시지라오."
 순애가 삼용의 일을 부탁하자 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신이 허기 나름 아녀? 우리 일도 아니지만 말여."
 "......."
 "낮에 그 사람들허고 일용 씨가 다녀가긴 혔는디, 그것도 쪼메 야그혀  보고, 강명석에 관한 것도 알어보고 싶고 혀서 부른겨."
 "예......."
 밖에서 구두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아까의 두 순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는 막걸리가 들어있는 듯 술냄새가 풍기는 주전자가 들려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의 손에는 삶은 닭이 올려있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인자 지들은 가볼랍니다."
 "응, 그려. 오늘밤은 내가 있을 것이고만."
 그가 막걸리와 삶은 닭을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돌아섰다.
 "문이나 닫어!"
 "알았구만이라오."
 그들이 지서를 나서며 이때까지 열려 있던 입구의 문을 닫아주었다. 순애가 고개를 들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늘밤 집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온몸에 알 수 없는 진땀이 흘러내렸다.
 "막걸리나 마시믄서 야그 좀 혀볼까?"
 그가 순애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
 "한 잔 따라주지 그려! 당신 아쉰 사람 아녀?"
 그가 책상 위에 놓여있던 막거리잔을 한 손으로 들며 순애에게 한 잔 따라줄 것을 청했다. 순애는 거절할 수가 없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책상 위의 주전자를 들고는 그의 잔에 막걸리를 따랐다.
 그의 정복 왼쪽 가슴에는 박인구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그의 눈이 떨리는 순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술을 다 따르자 그는 순식간에 벌컥벌컥 마시더니 다시 잔을 내밀었다.
 "한 잔 더 부탁허까?"
 순애는 놓았던 주전자를 다시 집어들었다.
 "이왕이믄 가까이 와서 같이 한 잔 허지 그려?"
 "지는 술을 못하는구만이라오."
 그가 기분을 잡쳤다는 듯 순애를 흘겨보았다.
 "당신이 워떡허냐에 달린 거여. 삼용이 내일 바로 도민증을 받을 수도 있거든. 삼용인 도민증 못 만들잖아? 들통날까 겁나서...."
 그는 노골적으로 말을 뱉아냈다.
 "당신 외삼춘도 잘 두었드만. 그 친구 북에서는 꽤 한가락 허는 모양이든디."
 "먼 말씀인지 잘 모르겄네요?"
 "알먼 괴롭지. 그 정도만 알어도 될 거여."
 순애가 다시 고개를 수그리고는 그의 술잔에 막걸리를 채워주었다. 그는 이제 노골적으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순애가 눈길을 막걸리 잔으로 돌려버리자 그는 순애의 윤기가 흐르는 목덜미에 시선을 멈추었다. 순애는 그의 시선을 느끼며 자꾸 몸이 얼어붙었다. 어디 시선을 둘 데가 없어져 버렸다. 막걸리를 따르고난 손을 도대체 어디에 두어야할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새벽까지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는 이번에는 천천히 들이킨 술잔을 그녀에게로 내밀었다.
 "자, 한 잔 받지 그려. 어채피 낼 아침이 되야 갈 겅게로, 서두를 필요는 없구만......."
 순애는 아찔해졌다. 그는 자신의 의자를 순애쪽으로 끌고나오며 거듭 술잔을 내밀었다. 그의 무릎이 순애의 무릎에 맞닿자 순애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앉았다.
 "받으랑게로......."
 순애는 마지못해 잔을 받았다. 그는 미소를 띄우며 그녀의 술잔에 가득 술을 채웠다. 그녀가 잡은 술잔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는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인자 마셔봐. 기분이 좋아질겨."
 순애가 그저 술잔을 들고만 있자 그가 더욱 다가와 순애의 술잔을 쥔 손을 그녀의 입으로 밀어제꼈다.
 "상부서...... 강명식이의 친척을 조사하란 지시가 떨어졌단 말여. 나도 참말로 내키지가 않는다고....... 그런 철저한 빨갱이의 친척이 여그에도 있었다니......."
 순애는 소름이 끼쳤다. 도무지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빨갱이를 연발하는 걸 보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닌 듯했다.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막걸리 한 잔을 힘들게 마셨다. 그녀의 술 마시는 것을 쳐다보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잘 마시네. 근디 머땀시 못 마신다고 그런겨? 내가 두 잔 했으니 거그도 두 잔은 혀야지."
 "지는 술을 못하는 구만이라오."
 "잘 마시는디 그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겨. 자 받어봐."
 그는 다시 그녀의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순애는 못마시는 술을 한꺼번에 들이킨지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절대로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녀를 강하게 짓눌러왔다.
 순애가 그가 따라주는 술잔을 들고 다시 머뭇거리자 그는 아까처럼 그녀의 손을 잡아 술잔을 그녀의 입 쪽으로 밀어댔다.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 술을 입 안으로 집어넣으니 막걸리가 목으로 흘러내리며 그녀의 가슴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가 그것을 지켜보더니 그의 손수건을 꺼네 그녀의 목을 닦아주려는 듯 다가섰다. 순애가 뒤로 물러났다.
 "시방도 잘 이해를 못허는 것 같은디, 당신은 아쉰 사람이고, 나는 당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여. 잘 생각혀봐."
 순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술기운이 금방 얼굴에 퍼지더니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술을 따라 홀짝거렸다. 그의 눈은 줄기차게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와 가슴에 머물러 있었다.
 "낼 말여. 삼용이는 도민증을 만들도록 내가 도와줄겨. 도민증만 있으면 도망 안 다녀도 되는거 아녀?"
 그는 삼용의 도민증을 거듭 강조하여 말했다. 순애는 어지러운 머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고맙구만이라오. 참말로 고맙구만이라오."
 "그런디 당신은 멀로 나헌티 보답헐겨? 그게 중요헌겨. 난 공짜로 남을 도와주진 않는구만."
 "지가 헐 수 있는 일은 머든지 할 거구만이라오. 평생 이 공을 잊지 않을 것이구만요."
 "말로만? 말로는 누가 못헌디여?"
 "아녀요. 참말이구만요."
 "그려? 그러믄 이 술잔을 받어봐."
 그는 그가 마신 술잔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 순애에게 건네주었다. 순애는 이를 악물면서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로 그에게 물었다.
 "참말로 낼은 즈 애아빠가 도민증을 받을 수 있는가라오?"
 그녀의 눈은 이미 반쯤이 감겨져 있었다. 그녀의 머리는 이제 바짝 쳐들래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술잔을 받아드는 그녀의 손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버렸다.
 그가 순애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으로 술잔을 그녀의 입에 기울여 주었다. 그녀가 고개를 힘들게 쳐들고 막걸리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사이 그가 그녀의 어깨를 감쌌지만 순애는 잘 느끼지 못했다.
 "내 말은 확실한 거여. 그러니 오늘밤은 기분좋게 즐기자고......."
 "......."
 순애는 즐기자는 그의 말이 몹씨도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는 갈수록 사고력과 인내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문득문득 자신이 정신을 잃고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녀는 어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 뿐이지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의 술잔에 막걸리를 따라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순애는 언뜻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삶은 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희미해져가는 정신 속에도 자신이 마치 그 삶은 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잔 더 하지? 어뗘? 세상 고민 다 사라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