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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순애'
 
작성일 : 02-06-15 09:57
순애 제2권 / 제14부 드러나는 비밀
 글쓴이 : 장종권
조회 : 3,603  


제14부 드러나는 비밀


1
명수 일행이 허탈한 심정으로 천섭의 교외 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간은 이미 오후 아홉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기다리다가 지친 영채가 어두운 얼굴로 대문을 따주었다. 영채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하였으나 깊은 슬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냉정하고 차분한 자세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천섭의 길고긴 투병생활은 그녀로 하여금 미리미리 슬픔을 맛보게 하여, 정작 그가 떠날 때에는 흘릴 눈물조차도 메말라 버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영채는 순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낙심하여 말했다.
"결국 못 오시는군......."
미선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쉽지는 않은 일이죠. 모셔오지 못해 죄송해요."
"아녜요......."
그들이 잔디가 곱게 깔린 뜰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서자, 벌써 집 안에서는 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일 것이었다. 거실에는 밝은 형광등 불빛이 켜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동안 천섭을 간병해온 듯한 나이든 여자가 얼굴을 내밀더니 무심한 눈빛으로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뿐 집 안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명수가 언젠가 한 번 들렀던 기억을 되살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천섭은 이층의 베란다와 이어진 방에 있을 것이었다.
이층으로 오르는 명수의 발걸음은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었다. 천섭은 그녀를 이제껏 받아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수는 그것이 외할아버지의 자신에 대한 미안함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동안 크게 마음 상해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함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미선이 영채를 바라보며 말하자 그녀가 소파에서 일어나 미선을 이층 계단으로 안내했다. 경도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채와 미선이 계단을 다 올라가 곧바로 계단과 마주하여 열려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누워 있는 천섭의 초췌한 옆얼굴이 보였다. 잘 빗겨져 있는 머리는 이미 호호백발이었다. 명수는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아 천섭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먼지가 끼어 있는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그 휠체어마저도 탈 수 없이 된 때가 오래 된 듯 보였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천섭의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교수님! 저...... 김미선이에요......! 알아보시겠어요?"
천장을 향해 열려 있는 천섭의 눈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았다. 영채가 그에게로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명수 할머니는 못 오셨어요."
그 말에 그의 안면이 두어 번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한 번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천천히 감겨 버렸다. 그 대신 그의 야윈 손은 명수의 손을 살며시 쥐고 있었다. 미선이 의자를 당겨 그의 머리맡에 앉았다.
영채는 베란다로 통하는 미닫이 쪽에 등을 돌리고는 어둠이 깔린 창 밖을 응시하고 서 있었다. 미선이 천섭의 얼굴에 바짝 입을 대고 다시 말했다.
"절 알아보시겠어요?"
영채가 등을 돌리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알아듣고 계셔요."
"교수님! 저 김미선이 다시 왔어요."
그녀는 다시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었다. 천섭이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알아듣긴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힘없는 눈동자는 지극히 불안하여서 언제라도 일시에 풀려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멍한 눈으로 미선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입술이 가볍게 움직였다. 미선이 황급히 그녀의 귀를 그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
어떤 소리도 미선에게 들리지는 않았다. 미선이 명수의 손을 쥐고 있던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천섭이 한 번 꿈틀하고 움직였다.
"교수님! 하실 말씀이 계시면 지금 하세요."
그녀는 일상적인 목소리보다는 조금은 더 큰소리로 말했다. 혹시 잘 들리지 않을까 해서였다. 천섭은 분명 아직은 의식이 있어 보였다. 영채의 말처럼 사람은 알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말은 어떨지 자신이 없었다. 명수는 무슨 말인지를 몰라 미선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김...... 동...... 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천섭의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온 것이다. 미선은 긴장하며 천섭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아버지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영채가 천섭의 곁으로 다가왔다.
"맞습니다. 제 아버님 성함이 김자 동자 태자셔요."
천섭이 눈을 천천히 내리감았다.
"말씀하세요. 저 무슨 이야길 들어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미선은 다급해져 있었다. 명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그녀는 미선이 자신의 부모에 관련된 일로 자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미선에게는 아무래도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니면 그녀의 아버지도 역시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명수는 고개를 저었다.
미선이 점차 더욱 단호한 어조로 윤 교수를 다그치고 있었다.
"교수님은 평생 절 기다리지 않으셨습니까? 전 그때로부터 다시 이십 년을 더 기다렸습니다. 이제 말씀해 주세요."
"......."
"그날 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죠?"
영채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명수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뜻밖에도 미선의 입에서는 전혀 엉뚱한 질문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영채가 그녀의 말을 막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미선이 황급하고 차가워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럴 일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전 꼭 교수님으로부터 들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천섭이 손가락을 가만히 움직였다. 영채가 그 손가락을 잡아주었다.
"그날 그곳에는 제 아버님의 자전거가 버려져 있었어요. 제 아버님은 결코 소리없이 사라질 분이 아니라고 제 어머님은 평생 동안 말씀하셨어요. 무슨 사고가 생긴 거라구요. 그분은 지리산으로 달아난 것도 아니고, 북으로 올라간 것도 아니라, 이 땅 어디에 묻혀 있을 거라구요. 전 그 말을 믿었어요. 그래서 오늘까지 교수님을 기다린 거예요. 성옥 씨가 죽은 후로부터 전 그 심증을 더욱 굳혔던 거죠."
놀랍게도 천섭의 눈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미선이 다시 말했다.
"교수님! 말씀해 주세요. 전......."
미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악한 명수와 영채가 미선과 천섭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순......애......."
천섭이 힘들게 입술을 움직이자 미선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분은 못 오시겠대요."
"순애......."
그 사이 도착한 천주와 천영의 내외가 긴장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섰다. 그들은 침대 곁에 서서 천섭과 미선의 어려운 대화를 지켜보았다. 천섭의 눈이 영채 쪽을 향해 조금씩 움직였다.
"수...... 월......."
미선이 답답한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간병하던 여자가 모습을 나타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향으로 가서 눈을 감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교수님 뜻을 따라 주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건 오늘 갑자기 생각하신 게 아니에요."
임종을 앞둔 환자를 시골까지 모셔야 한다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이 가당한 일인지 아닌지를 몰라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천주와 천영의 눈이 동시에 영채의 눈으로 향했다. 영채의 생각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영채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천주가 간병하던 여자에게 물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겠습니까? 의사 선생님을 먼저 모셔오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그녀가 말했다.
"전 잘 모르겠네요. 가족들께서 판단하실 일이에요.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미 다녀가셨어요."
천주가 서둘러 말했다.
"준비해 주시죠. 제가 앰뷸런스를 부를게요."
그리고는 방을 빠져나가 바삐 계단을 내려갔다. 미선도 방을 벗어나며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서며 아래층 소파에 앉아 있는 경도에게 물었다.
"경도 씨, 다시 내려갈 수 있겠어요? 이번에는 내가 교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내려가시는 겁니까?"
"이번에는 윤 교수님께서 내려가신답니다."
"이 밤에요?"
"한시가 급하니 서둘러야죠."
그녀의 말을 들으며 경도가 어쩔 수 없잖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심각하게 돌아가는 집 안 분위기가 내심 불안하기도 하였으나 여기서 발을 빼는 것도 명수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도의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일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윤 교수는 그의 생각에도 그리 많이 버티지는 못할 성싶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미선은 소파에 주저앉으며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었다. 피곤이 밀려왔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워졌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급한 것이다. 이제 그가 눈을 감아 버리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머리를 저으며 다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람은 숨을 거두기 전에는 진실해진다고 했다. 자신이 저질렀던 죄과에 대해 용서를 빌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비밀이 있다면 그것을 누구에겐가라도 펼쳐 놓고 간다고 했다. 윤 교수는 절대로 그냥 숨을 거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녀는 그렇게 믿고싶었다. 더구나 윤 교수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다. 미선은 그것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만약 수월로 돌아가면, 그리고 그때까지 숨을 거두지만 않는다면, 그는 결국 입을 열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일행은 수월에 도착했다. 이미 천주로부터 연락을 받은 성태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연락을 받자마자 천섭의 사촌을 도와 우선 급한대로 천섭이 잠시 머무를 방을 치워두었다. 그 방은 천섭이 수월에 살았을 때 내내 사용하던 방이었다.
천섭이 살았던 이 시골집은 그가 서울로 떠난 뒤로는 거진 십오륙 년을 천주가 맡아 살림을 꾸려왔었다. 그러다가 그마저 서울로 올라가자 그 이후로는 그의 사촌이 머물고 있었다. 오래 전의 깔끔하던 건물의 풍채는 사라지고 이제는 다 부서지고 허물어져가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정정한 성태가 충혈된 눈으로 천섭을 맞이했다.
"심을 내소! 아적 죽을라먼 멀었구만....... 그간 고상이 많었네....... 내가 옆에 있을 것잉게...... 맘을 푹 노소."
성태는 검버섯이 가득한 손으로 천섭의 손을 거머쥐었다. 노인들은 웬만해서는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감각적으로 둔화된 탓도 있겠지만, 진정한 슬픔이란 이 땅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당연히 찾아오는 손님에 불과한 것이었다. 먼저 간다고 슬퍼할 것도 없었고, 나중에 간다고 기뻐할 일도 없었다. 사람은 늙게 되면 늘상 하루 세 끼 밥상을 기다리는 거나 마찬가지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천섭이 성태를 바라보며 무언가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그의 눈짓만으로도 성태는 그의 마음을 알아채릴 수 있었다. 들것에 들려 우선 안방으로 들어서는 천섭의 뒤를 따라 성태가 맨먼저 들어섰다. 들것이 다시 밖으로 나오자 성태가 어흠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장지문을 닫았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앰뷸런스가 거친 엔진소리를 내며 수월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시 집 안 전체에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에야 성태는 재차 기침소리를 내며 장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마당과 마루에 흩어져 있는 어둠 속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적은 괜찮을겨. 편안히들 쉬어도 되는구만....... 아무데나 들어가서 눈들 좀 붙여......."
마당으로 내려선 성태는 마루에 앉아 있는 천주를 가까이로 불러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천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안방 쪽을 한번 바라보더니 손바닥을 툭툭 털고는 대문을 나섰다. 성태가 그 뒤를 쫓아갔다. 천주의 차에 시동이 걸리는 듯 부릉거리는 소리가 토담 너머로 들려왔다. 고요가 일시에 깨어지며 여기저기서 멎었던 개 짖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미선은 그들이 김촌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윤 교수는 끝내 포기하지 않고 순애를 찾는 것일 터였다. 인간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였다. 평생을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할 수가 있는 존재들이 바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는 그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묻히기를 원하는 존재들이 바로 사람이었다.
그들이 떠남과 동시에 영채와 천영,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안방으로 들어섰고, 미선과 명수는 안방 바로 앞의 마루에 걸터앉았다.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경도는 토방 끝에 서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명수가 내내 궁금하였던 문제를 미선에게 물었다.
"고모,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별장에서 고모가 하신 말씀 말예요."
미선이 착잡한 듯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럴 거야. 허지만 내게는 내 나름대로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야."
"고모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하셨는데,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바로 그날이지. 그날밖에는 성립이 안 돼."
"그게 가능한 얘기예요? 추측만 갖고 말씀하시면 듣는 분들은 충격이 크실 거 아녜요?"
"아냐, 추측만이 아냐. 당시 한두 사람은 그런 엄청난 사실에 대하여 짐작을 하고는 있었어. 허지만 세상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아무도 한 빨갱이의 죽음에 대하여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거야."
"증거나 증인이 있어야 되잖아요?"
"윤 교수님은 어쨌든 알고 계실 가능성이 많아. 다른 증인들도 있을 수는 있지만, 윤 교수님이 그냥 입을 다물고 돌아가시면, 그분들도 절대로 입을 열지는 않을 거야. 그게 답답한 거야."
"저희 할머니께서도 알고 계신가요?"
"그야 모르는 일이지....... 아마 모르신다는 게 옳을 거야. 아신다면 나를 만나기가 힘이 드셨을 테니까......."
명수는 가슴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 투성이였다.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기도 했다. 이게 꿈이라면 이제 더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싶어 하지 않으리라 다짐도 해보았다.

천영이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들어가고 곧 부엌에 밝은 불빛이 켜졌다. 아마도 그녀는 간단한 요기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이 집에 거처하던 사촌의 아낙도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마당 한켠에 모깃불을 피웠다. 그 모깃불의 연기가 안방으로 흐르지 않도록 그는 모깃불의 위치를 불이 붙은 채로 여기저기 옮겨보고 있었다. 갑자기 더위가 몰려왔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긴장한 탓에 못 느낀 더위였다.
경도가 우물가로 성큼성큼 걸어가 두레박을 집어들었다. 머리를 숙여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우물 속에는 짙은 어둠이 앉아 있었다. 몇 길이나 되는지 알 수가 없는 우물이었다. 섬뜩한 공포가 엄습하였으나 경도는 천천히 두레박을 우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두레박 끈의 끝부분이 손바닥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깊은 곳에서 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두레박을 몇 번 흔들어 물이 담긴 것을 확인하고야 두레박을 잡아올렸다. 다 올라온 두레박에 시원한 물이 찰랑거렸다. 그가 두레박을 들고 명수쪽을 바라보았다. 곧 명수가 우물가로 다가와 한 모금의 물을 마시고 그가 따라주는 물을 손바닥에 받아 얼굴을 적셨다.
경도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물맛이 어때?"
"조금 짜....... 그래도 마실만 해."
경도가 두레박을 입가로 가져갔다. 몇 모금 마신 후에 입술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가? 많이 짜네."
명수가 두레박을 넘겨받았다.
"세수해."
"응."
천섭의 사촌아낙이 부엌에서 나와 문간의 사랑방문을 열고 있었다. 그녀는 방 안을 들여다보며 사람들이 누워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 있는지 확인을 하는 듯했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모기향에 불을 붙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미선이 기다렸다는 듯 방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명수는 우물가를 벗어나며 궁금한 얼굴로 안방 쪽을 바라보았다. 건넌방에 켜놓은 전등불빛이 희미하게 안방 쪽으로 새어나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무시나봐."
경도가 말을 받았다.
"많이 피곤하실 거야."
그녀는 경도의 팔짱을 끼고는 사랑방으로 들어섰다. 미선이 바람벽에 등을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고모, 편하게 누워요."
미선이 눈을 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계실 거야. 지금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지."
명수가 벽장을 열고 얇은 이불과 베개 몇 개를 꺼내어 그 중 하나를 미선에게 내밀었다. 미선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난 잠을 잘 수가 없어. 기다려야 돼."
"고모......."
"명수는 좀 쉬어야지....... 참, 함군이 피곤할 거야."
명수는 윗목에 이부자리를 깔고 베개를 놓아 주고는 경도를 향해 눈짓을 했다. 경도는 피곤하였던지라 사양하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와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명수도 사이를 두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순식간에 눈꺼풀이 덮여왔다.
모든 소리들이 정지한 듯한 세상의 고요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 시골의 밤이란 이렇게 고요한 것이구나. 이런 밤을 지새고 나서 사람들은 또 그렇게 열심히 움직여 일을 하는구나. 그러나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낭만적 생각이었다. 그녀는 다시 외할아버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밤은 견디시겠지.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명수는 그녀의 어깨를 흔드는 미선에 의해 눈을 떴다. 충분히 잔 것은 아니었지만 명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엉겁결에 미선의 눈을 바라보니 밤새 한잠도 자지 않은 듯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오셨어. 어서 일어나."
명수가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되물었다.
"할머니가요?"
"그래, 오실 줄 알았지."
새벽닭이 여기저기서 울어대고 있었다. 대문간과 마당에서는 사람들의 부산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명수는 몸을 일으키며 머리를 습관적으로 두어 번 쓸어올린 다음 밖으로 나섰다. 할머니가 막 안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성태 할아버지가 그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토방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상기되고 다소 불안한 모습들이었다.

성태가 방문을 닫자 방 안에는 삽시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순애는 천섭의 몸에서 이미 죽음의 냄새가 진동함을 알았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간의 온갖 미움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성태를 따라나서면서 그녀는 천섭을 만나면 죽든말든 모든 것을 다부지게 따져 묻고 싶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성태가 천섭의 손을 잡으며 그의 얼굴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어이! 순애 동상이 왔구먼....... 눈 좀 떠봐!"
놀랍게도 천섭이 눈을 떴다. 그의 눈이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순애를 바라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성태가 순애의 몸을 아래로 밀어 주었다.
"동상, 바라보기 편하게 앉어 줘. 동상 보고 죽을라고 여태껏 버텼디야. 불쌍허지도 안혀?"
"오라버이도 참말로 딱허시네. 인자 봐서 뭣헐 것여? 난 저승에 가드라도 다신 안 볼 것이구만......."
성태가 혀를 차며 그녀의 손을 천섭의 손에 올려 놓았다.
"난 나갈겨."
"......."

명수도 미선과 함께 마루로 다가갔다. 잠시 후 성태가 장짓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는 장지문을 닫고 겹문까지 닫은 후에야 마루를 내려와 우물가로 갔다. 그는 노인네답지 않은 익숙한 솜씨로 두레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두레박에 퍼올린 물로 얼굴을 적시고는 천영이 건네 주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경도가 누워 있는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그는 천주를 불러들였다.
"천주 동상!"
천주가 급히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준비는 다 되았겄지?"
"얼추 다 되었는가벼요."
"그려....... 욕봤네. 자네 담배 하나 있능가?"
"예."
천주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내밀었다. 그는 성태가 담배를 받아 입에 물자 곧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주었다. 성태가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한숨처럼 일시에 뱉어냈다.
긴긴 기다림이었다. 천섭이 연거푸 쓰러져 몸을 못 쓰게 된 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었다. 코끝이 찡해온 성태가 들창문을 통하여 밝아오는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자 와서 탓만 허믄 뭐허겄냐만......, 그놈의 전쟁인지 뭔지만 없었어도....... 참말로 속터지는 일이고만....... 허지만 어쩔 것여....... 다 운명인 게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여......."
듣고 있던 천주가 고개를 수그렸다.
"불러야 헐 사람이 있능가 잘 생각혀 봐. 조만간에 떠날 거 같여......."
"그럴 것 같아요."
"순애 동상이 왔으닝게, 자네 성도 더 기다릴 게 없을 것이고만......."
말하는 성태의 가슴도 듣는 천주의 가슴도 미어져 왔다.
길고 긴 투병생활로 천섭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그가 떠난다는 것은 이제 와서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성태가 담배를 연거푸 빨아대다가 말했다.
"자네도 알어야 허는 일이 있네."
"예?"
"자네 나가서 저그......, 김미선이라는 젊은 여자분 와 있잖은가? 조메 데리고 들어오게."
"허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려. 나도 잘은 모르겄네만, 자네 성이 부탁을 허니 낸들 별수가 있겄나? 나도 시방 기가 막히고......, 입도 안 열리고......, 여그가 몽땅 바늘방석이구만 그려......."
천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밖으로 나가 곧 미선을 불러왔다. 성태가 긴장된 얼굴로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미선이 눈을 다소곳이 내리깔고 문가에 앉았다. 그녀의 신경은 오로지 안방으로만 향해 있었다. 성태가 재떨이에 담뱃불을 눌러 끄며 미선에게 물었다.
"선친의 함자가 동자 태자라고 허셨능가라오?"
"예."
"내가 그 어른을 알고 있지라오."
미선의 얼굴이 상기되고 있었다.
"......."
"김 여사가 머땀시 그러코롬 뛰어댕기는지도 벌써부텀 알고는 있었지라오. 그려도 설마 하고 내버려 두었구만이라오. 혀줄 수 있는 말도 아니었고......."
"......."
"내가 시방 야그를 혀드리지요."
"아저씨께서도 알고 계셨군요.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그러믄요, 그 냥반은 붉은 완장을 맸었구만. 아마도 근방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여......."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야그를 허자믄 밤을 새워도 부족헐 것인디....... 내가 천섭을 대신혀서 말씀드리도록 허지요......."
"예."
미선의 가슴이 순식간에 요동을 치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동요가 일고 있었다. 이십여 년 만에 그녀의 의혹이 풀리려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성태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김 여사께서는 명수를 어찌 알고 있는가라오?"
"조카라고 알고 있어요. 명수의 할머니로부터 자세하게 들었습니다. 순애 할머니요......."
성태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치며 탄식이 터져나왔다.
"험! 그려요. 일이 그러코롬 되어 뿌렸단 말인가요?"
"예."
성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애 동상이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미선의 눈이 반짝거렸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순애 동상도,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말여요."
미선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의 눈이 성태의 입에 머물러 있었다. 성태가 돌아앉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2.
그날 천섭은 정신을 잃은 순애를 들쳐업고 천천히 굴로 돌아왔다. 화영과 성태가 깜짝 놀라면서 천섭의 등에 업혀진 순애를 감싸안아 내렸다.
"얘가 웬일인겨?"
천섭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그대로 둔 채로 고개를 떨구면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화영이 묻는 소리가 굴 속을 찌렁찌렁하게 울렸다.
"내 말 안 들리능겨?"
그제서야 천섭이 고개를 들었다.
"쪼메 전에 밖으서......, 먼 소리가 들려 나가봤지라오....... 순애가 무덤 뒤에 기절혀 갖고...... 자빠져 있는디요."
"그런디?"
화영이 답답하다는 듯 다그치자 천섭이 다시 고개를 수그리며 힘없이 말꼬리를 내렸다.
"여그로 오다가 넘어졌는가비라오....... 지도 잘은 모르겄구먼이라오....... 어띠케 알겄소......."
화영은 곁에 있던 담요를 드러누운 순애의 몸에 덮어 주며 그녀의 이마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수그려 순애의 콧 등에 자신의 귀를 대어보고는 순애의 뺨을 살짝 두드려보았다.
"순애야! 순애야! 정신 차려, 이것아."
순애는 대답이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화영은 이미 순애에게 커다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순애의 몸은 지금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화영의 입이 분노로 이그러졌다.
"근디 말여요."
천섭이 분노와 두려움이 함께 가득한 얼굴로 화영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꺼내고 싶어했다. 화영이 그런 천섭을 돌아보았다.
"실은 일이 터져 버렸구만이라오. 인자는 죽는가벼요."
한 손으로 순애의 얼굴을 닦아 주던 화영이 동작을 멈추고 아예 천섭을 향하여 돌아앉았다.
"그 부위원장이란 놈 말여요."
"응, 그려. 제내 사는 김동태라는 놈이라드구만. 그런디?"
화영에게 불길한 예감이 스쳐갔다.
"지가 죽였능가벼요."
화영과 성태의 눈이 동시에 동그랗게 떠졌다.
"실은 말여요....... 그놈아 새끼가 순애를...... 저러콤 맹글었구만이라오."
"뭣여?"
다음 순간 화영이 벌떡 일어나 천섭의 손을 끌고 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성태도 그 뒤를 허둥지둥 따라나갔다. 습기를 가득 실은 비바람이 굴 안으로 휘익 하고 들이쳤다.
"어디여?"
화영이 굴 밖으로 나가 폐가의 마당 쪽으로 돌아나가면서 천섭에게 다그쳤다. 그러면서도 발은 벌써 마당을 벗어나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천둥번개는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둑한 세상은 금방이라도 폭우에 몽땅 쓸려가 버릴 것만 같았다. 금세 빗물에 젖은 얼굴들에서 물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미 속옷까지 잔뜩 젖어 있는 천섭이 어깨를 오므리며 몸을 한번 부르르 떨었다.
"저그......, 묘똥 있는 덴디요......."
그 말을 귓전으로 들으면서 화영이 성큼성큼 비탈을 올라갔다. 화영은 마저 올라서다말고 돌아서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는 천섭에게 손짓을 했다.
"얼른 얼른 오소!"
성태가 천섭의 어깨를 끼고 철벅거리는 비탈을 올랐다. 몇 발작 앞에서 화영의 땅이 꺼지는 듯한 탄성이 들렸다.
"아......!."
화영은 그 자리에 망연히 서 버렸다. 성태와 천섭도 다가와 화영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덤 옆을 약간 비켜서 소나무숲으로 들어서기 바로 전쯤에 누군가가 엎어져 있었던 것이다. 화영이 먼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살아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가 반드시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앞만 보고 걷는데 곡괭이자루가 발끝에 걸렸다. 화영은 그 곡괭이 자루를 집어들고 무심히 들여다보았다. 한 번만 휘두르면 그대로 끝장이 나 버릴 것 같은 탄탄한 나무 손잡이와 그 끝에 매달린 무거운 쇳덩어리에 화영은 문득 소름이 끼쳤다.
"이봐요! 이봐요!"
화영이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굽히며 불러보았다. 전혀 응답하는 느낌이 없었다. 화영은 그의 머리에 손을 대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뒤통수가 완전히 함몰이 되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화영은 그의 어깨와 허리 부분에 손을 집어넣어 몸을 한번 굴려 바로 눕혀보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숨소리를 느껴보았다. 다시 귀를 가슴에 바짝 대어보지만 기척이 전혀 없었다. 화영이 포기하지 않고 그의 한쪽 팔을 들어 손목의 맥박을 짚었다. 그래도 전혀 기척이 없었다. 그 사이 성태와 천섭이 다가와 그를 들여다보았다. 천섭이 기척 없는 그를 확인하더니 공포에 질려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죽었구만. 이거 일났네."
화영이 덜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람을 죽였으니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만약 이 판에 누가 이 사실을 알았다가는 천섭 혼자만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죽은 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뒤집어진 세상의 붉은완장이었다. 아마도 천섭의 식구뿐만이 아니라 같이 있었던 자신이나 성태, 그리고 자신들을 숨겨 주고 있는 영도네까지 화가 미칠 것이 분명하였다. 화영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천섭이 그제서야 눈물인지 콧물인지 빗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을 훌쩍였다.
"인자는 워쩐대요? 지도 죽일 생각은 없었구만이라오....... 손에 잽히는대로 잡어서 머리통을 갈겼는디요, 하필이믄...... 거그에 먼놈의 곡괭이 자루가 있어가지고......."
화영이 앉은 채로 천섭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본 사람 하나도 없었겄지?"
"없을 거시로구만요. 모르긴 혀도."
화영은 일어서서 산자락 황톳길을 바라보았다. 가깝긴 하지만 무덤과 약간의 소나무들에 가려 누가 지나갔다 하여도 쉽사리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에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천섭이 순애를 업고 굴로 돌아온 사이에 벌써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것이다. 화영은 우선 시신의 머리 쪽으로 가서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끼어 안았다.
"얼른 움직여서 다리 하나씩을 잡어봐."
성태와 천섭이 화영이 시키는대로 시신의 다리 한쪽씩을 붙들었다. 그의 다리를 붙들자 금방이라도 그가 숨을 쉬면서 다리를 꿈틀거릴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번갯불이 쉬지 않고 세 사람의 얼굴에 번쩍거렸다. 번갯불에 뒤이어 어김없이 우르릉 쾅 하는 천둥소리가 세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얼른 숨겨야 허겄어. 난중 일은 난중에 볼 것이고."
사방에서 터지는 천둥소리와 함께 비바람은 더욱 세차게 몰아쳤다. 빗물이 흘러내려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시신을 들고 헐떡거리며 몇 걸음 소나무숲으로 들어갔다.
화영은 발끝에 걸리적거렸던 곡괭이자루를 찾아 들고와 풀섶이 끝나는 부분의 드러난 황토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천섭과 성태는 시신의 옆에 주저앉아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모래와 황토흙이 섞인 땅은 쉽게 파여져 금새 웬만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성태가 화영으로부터 곡괭이를 넘겨받아 사람 하나가 드러누울 만한 넓이로 마무리를 했다. 구덩이 속에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천섭이 위쪽의 훍을 모아 빗물의 흐름을 임시로 돌려놓았다. 구덩이가 대충 완성되자 화영과 성태가 시신을 옮겨 구덩이에 반듯하게 눕혔다. 화영이 시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고는 잠시 무릎을 꿇고 앉아 시신을 굽어보았다.
"미안허이. 허지만 어지런 시상이닝께, 너머 설워는 말게. 울도 앞으로 어찌 될랑가는 잘 모르겄네만, 언진가는 죄값을 받겄지......."
죄값이라는 말에 천섭이 무릎을 꿇으면서 더욱 흐느꼈다. 성태가 파올렸던 젖은 흙을 다시 구덩이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흙은 빗물에 몽땅 젖어서 곡괭이에 자꾸 들러붙었다. 화영이 손과 발로 나머지의 흙을 밀어넣었다. 바닥이 어느 정도 평평해지자 화영은 부근에서 몇 덩어리의 잔디를 파왔다. 성태와 천섭은 숲속에 널브러져 있는 소나무 가지들을 한움큼 주워다가 흩어 놓았다. 화영은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 빗물의 흐름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이젠 빗물에 파여나갈 염려도 여간해선 없을 것 같았다. 대충 그럴 듯하게 여겨졌다. 다행히 비가 쏟아짐으로 파였던 땅은 흔적조차도 찾기가 쉽지 않게 가려질 것이었다. 화영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가 남기고간 무엇이라도 흘리게 되면 나중에 혹 발각이 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굴로 돌아온 화영은 먼저 담요에 쌓인 순애를 들여다보았다. 순애는 마치 편안한 잠을 자는 듯 쌔근거렸다. 화영은 성태와 천섭을 앉혀 놓고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인자부터 우리는 모다 죽은 목숨이여. 만약에 말여, 누구라도 입 벙긋만 허면 우린 죄다 끝장일 거구만."
"......."
"오늘 일은 암만 생각혀도 먼가 귀신헌티 홀린 거 같여."
성태와 천섭이 고개를 수그렸다. 그들의 머리에서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추워서인지 두려워인지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오늘 일을 입 밖에 내면 한 사람만 죽능게 아녀. 내 말을 명심혀야 혀. 순애의 일도 죽는 날까지 입을 열어선 안 되야. 순애가 정신이 들면 내가 형편을 봐갖고 조처를 허겄지만서도......, 그리고 또, 오늘 저녁으로 다들 집으로 돌아가야 허는구만. 다행헌 일인지도 모르지만 저들이 밀려가는 것 같여. 여그 있으먼 먼 일이 생길지 몰러."


3.
이야기를 마친 성태가 다시 담배를 찾았다. 천주가 아예 담배와 라이터를 성태 앞으로 밀어 놓았다. 미선의 충혈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갔다.
"어떤 상황이었던지는 암도 몰라요. 분명헌 것은 선친께서 순애 동상을 겁탈허셨고, 그것을 우연히 발견헌 윤 교수가 분을 참지 못하고 곡괭이 자루를 휘둘러 숨지게 맹글었다는 그것뿐여요."
미선이 고개를 수그린 채로 물었다.
"윤교수 님이 저희 부친을 살해하시는 장면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려요. 허지만 그 날 돌아가신 것만은 분명헌 사실이구만요."
"......."
"선친께서 묻힌 자리는 내가 알고 있구만이라오. 해가 뜨는 대로 안내를 허지요."
미선이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아버지!"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떡한단 말인가. 평생을 쫓으며 알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생사가 이제 명백한 죽음으로 드러나 버렸다. 설마 하던 마음도 없지는 않았는데, 그녀의 짐작은 여지없이 적중해 버렸던 것이다.
"어머니!"
어디에 화를 낼 것인가. 윤 교수는 끝내 입을 다물고 있다가 죽음에 다다러서야 겨우 성태를 통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미선이 눈물이 가득한 얼굴을 들면서 물었다.
"일찍 알려주실 수는 없었는가요?"
성태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없었지라오. 그건 바로 충격이었고, 비극이었으닝게...... 그리고 글자 그대로 공포였으닝게....... 나도 맘이 편안헐 수는 없었구만이라오. 그려서 기양 이 시골 고향에서 묻혀 살었고만......."
"아저씨는 제 심정을 이해하실는지 모르겠어요. 전 지금 윤 교수님이 너무 가증스러워요. 이건 복수심 때문이 아니에요. 전 그분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용서하기도 겁이 나요. 적어도 이십 년 전에는 실토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윤 교수님은 결국 제 부친을 두 번이나 죽이신 거예요."
성태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건 또 먼 소리레여?"
"그분은 사람이 아니란 말예요......."
미선은 무언가를 확신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여름날의 새벽은 저녁과 가까이 이어져 있다. 어느새 먼동이 터오고 서서히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모든 신경을 안방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마당 귀퉁이의 모깃불에서는 아직도 조금씩 연기가 피어나오고 있었다. 두어 시간은 족히 될 것이었다. 안방은 고요하게 멈추어 있었다. 안에서는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 중에는 혹 두 사람이 위험한 생각을 하지나 않았을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십 년이 훨씬 넘어서야 만나는 두 사람이었다. 방 안의 두 사람보다도 바깥의 사람들이 오히려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서로 마주앉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끝없는 적막이 안방을 감싸고 있었다.
영채가 참다 못하여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사촌의 아낙은 부시시한 머리칼을 손으로 매만지며 아침식사를 짓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부엌으로 끌고 가는 슬리퍼 소리가 고요를 흔들며 사람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순애는 물끄러미 천섭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극도로 야위긴 하였으나 그런 가운데에도 옛날 그녀가 사랑했던 젊은 천섭의 얼굴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남자였다. 평생을 한 번도 잊어버리지 않고 가슴 한 구석에 숨겨 두었던 그런 남자였다. 그녀의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의 죽음으로 끝도 없는 원한으로 바뀌어 버렸지만,그래도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그녀의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던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순애는 떨리는 손으로 살며시 천섭의 손을 쥐어보았다. 그의 손도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가웠던 그의 손에 온기가 생기고 있었다. 순애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손이 이게 머레여? 가죽만 남어 뿌렸네."
순애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아 버렸다. 온몸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녕 꽃처럼 별처럼 빛나기만 했던 그였다. 눈을 감아도 항상 그는 보였고, 귀를 막아도 항상 그의 목소리는 들려왔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그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청춘과 인생은 이처럼 순간이었다는 말인가. 순애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는 앙상한 그의 손등을 가죽만 남은 그녀의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한때 그녀를 향한 그의 눈은 오로지 이 손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어디에서든 이 손바닥 하나로 그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손은 불이었다. 그녀는 그 불 속에 자신을 던져 두었었다. 그런 그가 불꺼진 재가 되어 드러누워 있다. 그 불같이 뜨겁고 감미로웠던 손이 이제는 뼈만 남긴 채 앙상하게 말라붙어 있는 것이다.
"자식 모다 잃어뻔지고 이게 먼 꼴이레여? 이러코롬 자빠져 있을 거믄서 머땀시 가들 결혼은 반대혀 갖고......."
그가 힘들게 입술을 움직였다.
"순...... 애......!"
"그려요. 나여요. 죽을랑게나 날 부르는 거여요? 기양 죽어도 나 하나도 서운허지 않을 것이고만요......."
천섭의 손이 그녀의 손을 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녀가 그의 손을 대신 쥐어 주었다. 호롱불에 비친 그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입이라고 달렸응게로 먼 말이든 헐말이 있겄지요. 혀봐요."
그가 힘들게 말했다.
"용서......."
그러나 잘 들리지 않았다.
"먼 소리여요?"
"용...... 서......."
순애가 씁쓸하게 웃었다.
"다 용서혔구만이라오. 인자 걱정 마시고 편안허게 눈을 감어도 되겄구만요."
천섭은 힘이 들었던지 더 이상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순애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순애는 그가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을 가라앉힌 그의 입에서 몇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순애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붉은 해가 손에 잡힐 듯한 커다란 얼굴로 동편의 토담을 넘어 두어 뼘이나 떠올랐을 때에야 비로소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눈이 안방문을 향해 집중되었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면서 바짝 더 늙어 버린 순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하얗게 센 머리가 먼저 나타났던 것이다.
마루로 나서는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녀는 안방에 머물렀던 잠시 동안 한 십 년의 세월은 보내버린 듯 보였다.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마루 끝에 잠시 쪼그려 앉았다가 발을 내려 신발을 찾고 있었다.
"할머니!"
명수가 달려가 그녀의 신발을 찾아 발 밑에 놓아 주고는 힘들게 내려서는 그녀를 부축하였다. 그녀는 지친 몸을 명수에게 기댄 채로 비틀비틀 토방을 내려가 마당으로 걸어나갔다. 성태가 그런 순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안쓰러움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상! 기운을 내야 혀. 그려도 살 사람은 살어야 허능겨......."
순애가 거의 넋이 나간 얼굴로 성태의 어깨를 붙잡았다.
"오라버이......."
늙은 순애가 늙은 성태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성태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되물었다.
"왜 그랴?"
"시상에....... 어찌케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데요? 어찌케......."
기어코 순애가 그의 발 아래에 주저앉고 말았다. 천주와 천영이 불안스럽게 그녀를 지켜보다가 부리나케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울 수조차 없는 듯 허탈한 모습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태가 더욱 불안한 얼굴로 순애 앞에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동상! 정신차려. 정신차려야 혀......."
순애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라버이! 저 인간은 사람이 아니고만요. 오늘이라도 당장 귀신이 저 인간을 잡어가지 않으먼......, 내가 그놈의 귀신들을 다 잡어죽일라네요......."
"......."
성태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순애의 어깨만 토닥이고 있었다. 궁금하기는 하였으나 그녀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튀어나올지 몰라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었다. 미선이 다가와 순애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어머님, 고정하시고 그만 일어나시죠."
순애가 물끄러미 미선을 바라보았다.
"이를 도대체 워떡헌디야......."
미선이 일어서며 얼굴을 돌렸다. 성태도 몸을 일으키며 명수에게 말했다.
"어여 김촌으로 모시그라. 젊은이가 차가 있는 모냥이니 잘 되았구나."
명수와 미선이 순애를 일으켰다.
"시상으나....... 시상으나......."
순애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연신 쯧쯧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혈색이 빠져나가 버린 초췌한 얼굴이 원망스럽게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그들은 대문 밖에 세워진 승용차 안으로 순애를 밀어넣은 다음 경도가 운전석에 올라가 시동을 걸었다. 명수가 뒤따라 차에 오르자 미선도 앞자리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잔뜩 움크리고 앉은 순애가 눈도 깜짝 아니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년이 죽일년여......."
명수가 순애의 손을 쥐었다. 차갑기 짝이 없는 손이었다. 명수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
대답이 없는 순애의 몸이 파르르 떨었다. 차가 수월을 벗어나자 명수는 미선에게 핸드폰을 부탁했다.
"작은아빠 좀 불러주시겠어요?"
미선이 핸드폰 번호를 누른 다음 신호가 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명수에게 넘겨 주었다. 성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작은아빠, 저예요. 명수요."
"그래, 지금 어디니?"
"지금은 수월인데요, 김촌으로 가고 있어요. 할머니랑 함께요."
"알았다. 별일은 없는 거지?"
"아녜요, 작은아빠....... 할머니가 이상해요."
"무슨 소리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서울 외할아버지가 어젯밤 수월로 내려오셨거든요. 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만나셨어요."
"그런데?"
"그 후부터 할머니가 안 좋아요."
"그래? 우선 읍내의 병원으로 모시거라."
"좀더 보구요. 다시 전화드릴게요."
"그래."
명수가 통화를 끝내자 순애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괜한 짓여. 난 괜찮다. 가가 온다고 달라질 거 있겄냐? 다 부질없는 짓이고만....... 바쁜 사람인디 머땀시 전화는 허능겨?"
명수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생기신 거예요?"
"느 외할아버지 말여? 느 외할아버지......?"
순애는 외할아버지라는 단어를 비웃듯 반복하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녀가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선은 길을 모르는 경도에게 길을 안내하느라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잡초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시골길이 끝없이 다가서고 있었다.
"성지사......."
순애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예?"
"성지사로 가보라드라."
명수가 미선을 바라보았다. 미선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절인가요?"
"그런가벼....... 수안보 근처 어디라든디......꼭 보내라드라......."
미선이 다시 물었다.
"누구 말씀이신가요?"
"누구긴 누구여? 자네허고 명수겄지."
퉁명스럽게 말을 뱉어낸 순애는 뒷좌석에 머리를 기대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이 타는 듯 두어 번씩 가슴을 치기도 하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듯 켁켁거리며 마른 기침을 하기도 했다. 명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순애의 야윈 어깨를 주물렀다.

김촌에 도착하자 순애는 소리없이 방으로 들어가 뒷문을 활짝 열고는 뒤안의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낭패한 얼굴로 깊은 생각에 빠져 들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던 명수는 그녀의 등이 너무도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삼베적삼에 땀이 흥건하게 배여 있었다. 어디서 저 땀이 모두 쏟아져나왔을까. 명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애는 부채를 들긴 하였으나 그저 손에 들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명수가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에서 살그머니 부채를 빼내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부채질을 해주어야만 했다. 미선이 건넌방 어디에선가 선풍기를 들고 나왔다.
명수는 부채를 든 채로 건넛방으로 건너가 방바닥을 정돈했다. 간단하게 누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마루로 통한 방문을 활짝 열고 경도를 손짓해 불렀다.
"좀 자지 그래."
장거리 운전과 밤 사이의 선잠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경도는 앞으로의 운전을 생각하여 마다 않고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들창문을 위로 젖히고 막대기를 받쳐 놓은 명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그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고는 살며시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자신의 손을 올려 놓았다. 경도가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살며시 쥐며 눈을 한 번 떴다가 다시 내리감았다. 명수가 속삭였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경도의 입이 살짝 웃고 있었다. 명수는 그의 옷매무새를 살펴 주고는 안방으로 건너왔다. 순애의 등 뒤에 앉아 있던 미선은 그녀대로 머리 속에 뱅뱅 돌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단 자신이 갖고 있던 의문은 어느 정도 풀린 셈이었다. 나중에 성태 아저씨를 만나면 아버지의 유골이 묻힌 곳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 다음 오빠와 상의하여 적당한 날짜를 잡아 이장을 서두르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명수의 부모에 관한 문제는 아직 아무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들에 관해서는 모두가 까마득히 잊고 있는 듯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미선은 분명 오늘 새벽 윤 교수와 명수의 할머니가 만났을 때에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음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명수의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낙심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그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미선은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에 그녀의 상상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만약에 그렇다면....... 미선은 명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미선에게 성옥이 그려 놓은 용의 그림이 선뜻선뜻 다가서고 있었다.
'성지사라.......'
빨리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교수는 분명 무언가를 거기에 남겨두었을 것이었다. 명수도 같이 다녀오기를 바란다는 말은 결국 명수 부모에 관한 의문도 거기에서 풀릴 것만 같았다. 혹시나 명수의 할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지만, 그녀는 영 입을 열 것 같지가 않았다.
순애가 넋을 잃고 앉아 있었으므로 명수가 부엌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익숙하지 않은 부엌의 이곳저곳을 뒤져 요기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간단하게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미선은 혼자 다시 수월로 건너갔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성준 내외가 부리나케 들어섰다. 평산도 함께였다. 성준은 물끄러미 앉아 있는 순애의 모습을 보고는 적이 안심이 되는 듯했다. 순애가 힘없이 말했다.
"머땀시 호들갑을 떠는겨? 회사는 어찌케 허고?"
성준이 순애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하루 쉰다고 무슨 일이 있겄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몸이 문제가 아니고만....... 참말로 일 나뿌렸다."
"......?"
성준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인자 내가 죽을 때가 되었능가벼....... 더 살믄 뭐허겄냐?"
"무슨 험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어찌튼 잘 왔다. 기왕에 왔응게로. 자들 데리고 어디 조메 댕겨오그라."
"어디를요?"
"저그 충청도 어디쯤이라던디....... 먼 길이여......."
"그러죠 뭐. 어머님은 괜찮으세요?"
순애가 대답 대신 단호하게 말했다.
"방문 조매 닫그라."
성준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보죠?"
그가 방문을 닫자 순애가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너 내 말 잘 듣거라. 인자부텀은 명수 자를 니 곁에서 놓치먼 안 되야 난중에 자세히 알게 되겄지만, 우선 자를 데리고 거그를 댕겨오그라. 미선이는 시방 수월에 갔어. 죽동에 들렀다가 금방 올겨. 함께 댕겨오그라."
"어머니!"
"암 말도 말고 일단은 댕겨오그라. 가먼 알게 될겨"
"예."
"자를 느 성처럼 죽게 혀서는 안 되능겨."
성준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있었다.
"평산이를 데리고 가그라. 먼 일이 생길지 모릉게......."

미선은 성태와 함께 죽동으로 가 부친의 유골이 묻힌 곳을 확인하고 있었다. 성태가 말했다.
"머라고 헐말이 있겄소. 인자는 거진 반백 년이나 흘러가 버린 과거지산디....... 윤 교수는 순애 동상을 많이 사랑혔었고만. 그치만 아비 없이 그간 살어온 김 여사는 또 그 고통이 얼마였겄어....... 이런 인생은 참말로 다시 보기 힘들겨. 미안허구만......."
성태는 옛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훨씬 더 야트막해진 무덤을 지나 몇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근처를 가리켰다.
"여기구만. 날을 잡어오시먼 내 함께 올 거닝께 그때 이장을 허도록 혀요."
그가 말을 멈추고 먼 들판을 바라 보았다. 끔찍했던 옛날이 바로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선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얼굴도 모르는 생소한 아버지를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잡히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그날 여기서 숨을 거두셨다. 아리따운 한 여자를 탐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신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어쩌면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닐지 몰랐다. 그녀가 처음 아버지의 생사에 관하여 의혹을 갖고 추적해 들어갔을 때에는, 아버지는 비록 공산주의자였다 하여도 그녀에게는 당당한 아버지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스스로의 독서를 통하여 지식을 늘린 존경할만한 지식인 중의 하나였었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그동안 아버지를 신뢰하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비록 순간적이었다 할지라도 야수의 심성을 갖고 있었다. 죽음을 불러온 그 순간적인 아버지의 수심에 미선은 허탈함을 느꼈다.
그녀는 눈물도 흐르지 않는 이 허망한 현실 앞에 망연히 서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그 허깨비 같은 아버지를 찾아 어쩌자고 이 많은 시간을 소모시켜 왔던가. 어쩌자고 일을 시작하여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돌아보아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이 성지사를 향해 출발한 것은 막 정오가 지난 뒤였다. 그 사이 경도는 충분하진 않지만 한동안 수면을 취할 수가 있었다.
떠날 때가 되자 평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차에 오르기 전에 먼저 경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평산이구만요."
경도는 처음 보는 얼굴인지지라 약간 멋쩍은 얼굴을 하며 평산의 손을 잡았다.
"함경도입니다."
"예?"
평산이 되묻자 경도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가득했다.
"함 경 도 라구요."
"하하.......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말씀은 많이 들었구만이라오."
경도가 어리둥절해 하자 명수가 말했다.
"경도 씨, 나하고 함께 자란 동갑내기 친구야."
경도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석에 올랐다. 혼자 남는 순애가 불안하여 발을 떼지 못하던 성준이 마지막으로 차에 올랐다. 순애가 어두운 얼굴로 멀건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가라앉아 버릴 것 같은 불안한 모습이었다.


4.
일행은 대부분 긴장되어 있었다. 그들 중 성준이 가장 심하였다. 그는 눈을 감고 자는 듯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으나 순애의 말을 벌써 몇 번이나 되뇌이며 상황을 읽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평산은 지도를 펼쳐 놓고 앞으로 지나가야할 길을 체크하고 있었다. 도로지도에는 성지사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차는 호남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경부고속도로를 타는가 싶더니 곧장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휴게소에서 내려 경도와 핸들을 바꿔잡은 평산이 물었다.
"음성에서 빠져나가는 건가?"
명수가 지도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명수에게 묻는 말이었다. 명수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거기서 빠져나가면 충주 쪽으로 곧장 나가야해."
"알았구만......."
고속도로를 빠져나간 차는 거의 한 시간여를 더 달리다가 길가에 세워져 있는 '성지사'라는 간판과 만났다. 거기서부터는 일방통행에 가까운 좁은 산길이었다.
성지사는 작은 절이었다. 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암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었다. 대웅전은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나머지의 건물들은 모두가 여염집의 구조이거나 조립식 구조물이었다.
그들은 입구를 지나 조용한 절마당으로 들어섰다. 따사로운 햇빛이 대웅전 앞마당을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미선이 법당 안을 기웃거리다가 막 안으로 들어서려는 어린 동자승에게 물었다.
"스님!"
동자승이 가슴으로 손을 모으며 목례를 했다.
"혹시 이 절 안에 윤천섭 교수님을 아시는 스님이 계실까요?"
동자승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성준이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해 주었다.
"성함이 윤천섭이십니다."
동자승은 손을 들어 대웅전 측면의 낡은 조립식 구조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셔서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미선이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수그린 다음 동자승이 가르쳐 준 조립식 구조물로 향했다. 그곳은 사무실로 쓰이는 듯한 작은 방이었다. 안에는 늙은 스님 한 분과 신도인 듯한 중년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까부터 일행을 이상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은 여행객이 올만한 절도 아니었다. 찾아올 사람은 이 절의 신도들 뿐이었다. 미선이 방 안을 향해 물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이 절에 혹시 윤천섭 교수님을 아시는 스님이 계신지요?"
중년의 여자가 앉은 채로 되물었다.
"그분이 누구신데요?"
"예, 이 절의 신도가 아니신가 생각이 듭니다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여기서 스님을 만나라 하셨는데요......."
그때까지 앉아 있기만 하던 늙은 스님이 몸을 일으켰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들어오시지요"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스님이 다시 물었다.
"보살님은 누구신지요?"
"전 김미선이라고 합니다."
"김미선 보살님이시라........"
늙은 스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물었다.
"누군가를 찾고 계시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요?"
"김...... 동...... 태...... 거든요."
늙은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윤 교수님은 운명하셨습니까?"
"지금 가족들이 수월 고향으로 모셔 임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절 따라오시지요."
늙은 스님은 천천히 방 안에서 나와 건물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누추한 건물이 서 있었다. 그 앞에서 발을 멈춘 늙은 스님이 건물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으로부터 독한 향내음이 물씬 풍겨나왔다. 촛불이 가득 밝혀져 있는 방 안에는 줄잡아 칠팔여 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미선이 위패들을 둘러 보다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였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위패가 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선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늙은 스님이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미선이 스님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서자 성준과 명수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경도와 평산은 밖의 작은 마루에 올라앉았다. 방 안은 후덥지근했지만 그런대로 참을만은 하였다. 아무래도 산이므로 들녘보다는 덜 더웠다. 스님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그분은 말씀하셨지요. 인간에겐 결코 영원히 묻힐 비밀이란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도 영원히 묻힐 비밀을 만들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그것은 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는 것이었죠. 그분은 여기에 오래 전에 오셨고, 나중에는 불편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다른 분을 대신 보내셨어요. 그 분이 말씀을 전하셨지요. 누군가가 찾아올 거라구요. 그분에게 전하라는 물건이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