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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 '순애'
 
작성일 : 02-06-14 17:21
순애 제1권 / 제4부 아비를 문 꽃뱀 (1)~(4)
 글쓴이 : 장종권
조회 : 2,282  


 제4부 아비를 문 꽃뱀


 1.
 1944년 그 길고도 긴 여름의 한복판이었다. 칠월의 맹렬한 뙤약볕은 금방이라도 세상의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다. 하늘과 땅은 온통 하얀 빛으로 가득 메꿔져 있었다. 낮게 누워 있는 산자락의 푸른 숲이나 모가 한창 자라고 있는 들녘의 푸르름조차도 이 빛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활짝 열린 하늘에서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은 세상을 마치 백지의 세계처럼 깨끗하고 고요하게 잠재우고 있었다.
 언덕에 몇 그루 서 있는 미루나무에서 매엠거리는 매미소리마저도 졸린 듯 자꾸 사그러져 갔다. 눈꼽만큼도 흔들리지 않고 그림처럼 매달려 있는 미루나무 이파리를 쳐다보면 여지없이 누구나 숨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햇빛에 눌린 세상은 온통 죽은 듯이 정지하여 있었다.
 기모노 차림의 젊은 도오다 선생은 언덕 위의 미루나무 그늘에서 벌써 두어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마을로 향하는 좁은 황톳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곧게 내려진 그의 한쪽 손에는 긴 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그 검을 빼어들 듯한 긴장된 자세였다. 그의 어깨와 등허리는 솟아나는 땀으로 흠씬 젖어 있었다.
 드디어 바싹바싹 말라붙은 안뜸의 마을 안길에서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만 같은 상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그의 눈빛이 신기하게도 젖어들기 시작했다. 상여는 대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의 모퉁이를 천천히 돌아나와 그가 서 있는 언덕과는 반대쪽인 틈뚜럭의 논두렁길을 향하고 있었다. 우습게도 언덕 위의 그와 이 상여의 행렬만이 고요한 세계에 살아있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도오다 선생은 꼼짝하지 않고 그 상여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여의 맨 앞에는 비쩍 마른 한 사내가 연신 놋쇠 요령을 딸랑거렸다. 걷어부친 그의 시커먼 팔뚝이 아래 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가는 고개와 질끈 동여맨 허리가 마치 일개미의 허리처럼 잘룩해 보였다. 그는 지친 상여를 앞장 서 힘들게 끌고가면서, 그런 사람 특유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를 청승스러우면서도 애절하게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면 상여를 둘러멘 십여 명의 상두꾼들이 입을 모아 무더위에 별로 신명이 날 리 없는 후렴을 넣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둘러쳐진 상여 맨 위의 하얀 천막이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대나무에 길게 매달려 있는 만장 몇 개가 넘어질 듯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어기적어기적 그 뒤를 따라갔다.
 "아부지!"
 마을 앞까지 상여를 따라나온 어린 순애가 오열하며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시 상여를 따라가던 대열이 정지했다. 멀리서 지켜보는 도오다 선생의 눈길이 흔들리며 그런 순애에게 멈추어졌다.
 "순애 아부지!"
 그 뒤를 쫓아나온 명자도 순애의 어깨를 짚으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곧 명자는 순애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연거푸 목놓아 '순애 아부지'를 불렀다. 하지만 이미 목은 저 심장 끝까지 잠겨들어 마치 까마귀가 까악깍거리는 소리로만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거나 지금은 그녀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다만 묻혀 있었다.
 상여의 뒤를 따르던 순애보다 한두 살 위의 이종사촌 성태가 돌아와 순애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곧 그녀의 팔을 붙들어 일으켰다.
 "일어나. 일어나랑게. 어여 일어나서 들어가."
 그 사이 상여가 앞으로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성태의 어머니 명숙이 순애에게서 명자를 떼어내어 부축했다. 그러자 성태도 순애를 일으켜세워 그녀의 어깨를 부축하여 뒤로 돌려세웠다. 그녀는 문득 멀리 미루나무 아래 그림처럼 서 있는 도오다 선생의 모습을 발견하고 꿈 속에서처럼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도 문득 작은 불꽃이 피었다가 사라졌다.
 "아부지이!"
 쉰 목소리로 순애가 또 아버지를 부르며 휘청거렸다. 다시 주저앉을 기세였다. 성태의 힘으로는 순애를 지탱하지 못할 듯 보이자, 이모부 화영이 잽싼 걸음으로 돌아와 성태와 함께 순애의 어깨를 감쌌다. 며칠 사이 말라붙어 버렸을 법도 한 눈물이건만 그녀의 눈에서는 아직도 쉬지 않고 줄줄 흘러 나왔다.
 "고모부! 울 아부지 어딜 가는겨요?"
 순애가 그녀를 감싼 화영의 허리께에 고개를 묻으며 오열했다. 성태의 눈에도 언뜻 눈물이 맺혔다. 옷소매로 훌쩍거리는 코를 대충 훔쳐냈다.
 사람은 슬픔을 아는 동물이다.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날 때에 가장 큰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에 그 슬픔은 곧 피와 살을 도려내는 커다란 아픔으로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사람은 사랑할 줄을 앎으로 해서, 그리고 도무지 그를 잊을 줄을 모름으로 해서, 슬픔이라는 독이 스민 꽃을 피운다. 그리하여 사람은 그 슬픔이라는 화려한 꽃으로 스스로를 얼마든지 파괴시킬 줄 아는 가슴 아픈 존재이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독이 가득한 꽃으로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참으로 신비한 존재이다.
 동네 아이들 몇이 빙 둘러서서 신기한 표정으로 소복을 입은 순애의 얼굴과 눈물을 훔쳐보았다. 그들에게는 순애에게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아버지가 저희들을 놓아두고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자신들이 다 자라 죽는 날까지도 영원히 살아서 끝까지 아버지로 남아 있을 것만 같은 거대한 존재였다. 순애의 아버지는 비록 죽었지만 저희들의 아버지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구름 한점 없이 작열하는 태양은 무섭도록 세상을 달구었다. 유월 내내 긴 한낮으로 달구어진 세상은 칠월에 이르러 비로소 타오르기 시작한다. 짓푸른 모로 가득한 논바닥에서야 지열이 없어 참을 만하지만, 말라붙은 황톳길을 오래 걷다 보면 그 자리에 서 있어도 그저 숨이 콱 막혀오는 것이다.
 밀짚모자를 가볍게 눌러쓰고 논배미에 엎드려 부지런히 일하던 사람들이 잠시 허리를 펴고 논두렁에 나와 상여를 지켜보았다. 그들 중의 몇은 밀짚모자를 벗어들었다. 수건으로 머리칼을 붙들어맨 아낙들도 마지막 김을 매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일어나 떠나는 상여를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에도 언뜻 때아닌 안개가 서렸다. 누군가가 상여를 향하여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이-! 덕호 이 사람아, 잘 가게!"
 그리고 나서 그는 그대로 논두렁에 서서 주머니에서 봉초담배를 꺼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러코롬 살아있다고 다 산 건가? 모다 죽어 있능겨. 차라리 죽는만 못헌겨. 자네는 다행인지도 몰라."
 그는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담배를 말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아낙도 힘없이 중얼거렸다.
 "덕호 양반은 순애가 쥑였지 머. 그 가시나 팔자가 쎄디야. 생전에 사람 몇 잡을 팔자라던디, 기 중에 지 애비도 하나였나벼......."
 남자가 혀를 차면서 말을 막았다.
 "아서....... 그런 소리 허면 못 쓰는 겨. 아이야 먼 죄가 있겄어......."
 다른 아낙이 흙묻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말을 받았다.
 "그나저나 육리댁네는 큰일여. 워떠케 먹고 산디야. 저러코롬 아낙들만 쪼르르 삼대가 남어 뿌렸으니......."
 "그러게 말여....... 영감은 도대체 어디서 뭘 헌디여......? 지 새끼 죽어나가는 것도 모를 거 아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길게 빨고는 중얼거렸다.
 "죽일 놈들....... 하늘은 눈 감고 자능가벼......."
 평생을 함께 어울리며 살았던 사람들을 논두렁에 남겨두고 상여는 귀먹은 시늉으로 앞으로만 나아갔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북망산길이었다.
 "얼른 다녀와여 혀. 그려야 논에 나갈 거 아녀."
 상두꾼 중의 하나가 서둘렀다. 천천히 틈뚜럭으로 올라서는 상여를 보내고 나서 논두렁에 서 있던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일을 시작했다.
 상두꾼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후렴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갔다. 햇볕에 그슬린 놋쇠 요령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뒤를 따라가던 아이들도 더 이상 따라가는 것을 멈추고 서성거리다가 틈뚜럭 위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틈뚜럭 너머 수로로 뛰어들어가 멱을 감기 시작했다.
 틈뚜럭에 서 있는 작은 미루나무들이 벌거벗은 아이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상여가 사라진 자리에 다시 매미소리가 몰려와 빈 공간을 메웠다. 상여는 눈깜빡할 사이에 햇빛에 타올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제서야 비로소 도오다 선생도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서며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 땅을 차지하여 이 나라 백성들의 피와 살을 훔치고 있는 일본은 지금 생사를 건 커다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정복자인 그들의 전쟁으로 인하여 극도로 어수선해져 있었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가고 있었으므로, 정복당한 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긴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 땅에는 매일매일 북망산으로 떠나는 상여가 끊이지 않았다. 도오다 선생의 등 뒤로 산같은 매미소리가 덮쳐들어갔다.

 2.
 푸른 볏모가 바다처럼 넘실거리는 금만평야의 심장 김제읍, 거기에서 죽산으로 빠지는 신작로를 따라 한 십리 쯤 내려가다가, 왼편으로 멀리 아슴하게 바라보이는 산자락을 향하여 신작로를 빠져나가면, 그리고 두 가닥의 달구지 바퀴자리가 선명하게 안내하는 황톳길을 또 한 오리쯤 걸어들어 가면, 그러면 야트막한 야산을 두르고 있는 내촌마을이 거기 있었다.
 내촌마을은 입구의 언덕길에서 다시 세 가닥길로 나누어 들어가야 했다. 가운데 길이 안뜸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북쪽의 길은 윗멀로 가는 길이며, 맨 앞쪽 길이 재너머말로 통하는 길이었다.
 안뜸은 언덕 아래로 동쪽을 바라보고 서른 가구 정도의 초가집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윗멀은 낮은 산자락을 북으로 두르고 또 역시 서른댓 호 정도의 초가집이 잘 정돈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 윗멀과 안뜸의 사이에는 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줄인 논배미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맨 앞으로 좀더 걸어나가 낡은 교회가 서있는 낮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재너머말이 스무 호 정도의 초가지붕을 맞대고 남쪽을 향해 앉아 있었으며 그 앞으로 끝없는 들이 다시 펼쳐졌다.
 머리를 들어 아득한 논배미의 끝을 바라보면 커다란 틈뚜럭이 마치 잠자는 용처럼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이 틈뚜럭은 벽골제를 지나와 멀리 바닷가의 광활평야로 쉬지 않고 달려가는 농업용 수로였다. 그 수로는 북쪽 방향으로 달려 이 마을을 벗어나면 곧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바다까지 냅다 달려가고 있었다. 이 수로를 이곳 사람들은 보통 댓똘이라고 불렀고, 그 둑길을 틈뚜럭이나 툼이라고 불렀다.
 그 틈뚜럭을 건너면 수월 마을이 앉아 있었다. 거기서 울창한 화초산 밑 숲을 뚫고 오리길을 훨씬 넘어 들어가면 또 다른 신작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길은 태인 쪽에서 김제읍으로 들어가는 신작로였다. 그 입구에는 수천 년의 신비를 안고 있는 고인돌을 품에 안고 입석마을이 고고하게 서 있었다. 여기서부터 김제읍까지는 다시 오리길이었다. 내촌사람들은 이 길을 이용하여 김제장에 나섰다.
 순애는 이 내촌마을의 안뜸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 때에도 증조할아버지 때에도 순애네는 여기서 살았다. 순애네는 버젓한 족보가 있는 양반댁 핏줄은 결코 아니었으며, 대대로 근근이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운 그런 미천한 집안에 불과하였다. 그렇지만 순애의 아버지 덕호는 부친의 역마살만 제외한다면 그런대로 아내 명자와 함께 칠순의 노파인 어머니 육리댁을 모시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손도손 탈없이 살아왔었다.

 순애는 또랑또랑 굴러가는 듯한 큰 눈을 가진 소녀였다. 그녀의 목이 긴 얼굴은 큰 눈과는 반대로 아주 작고 갸름하여서 마치 잘 익은 앵두알과 같았다. 얼핏 보면 반짝반짝하고 빛나는 두 개의 눈이 얼굴 전체를 몽땅 차지한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상대적으로 키가 크고 조숙한 편이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이미 성숙한 처녀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농촌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이 그녀 역시도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검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집 안에 들어박혀 몸을 사리거나 햇볕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다니다 보면, 어느 사이 시집 갈 때쯤에는 이 검은 피부도 어느 정도는 하얗게 변하게 될 것이었다.
 순애의 길게 두 가닥으로 땋아내린 검은 댕기머리는 그보다 긴 허리를 날렵하게 타고내려와 한 뼘도 채 못되는 그녀의 허리께에서 대롱거렸다. 자주 빨아 입는 하얀 저고리와 검은 치마는 그녀의 큰 키에서 흘러 나오는 맵시로 인하여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린 그녀가 고샅으로 나가면 동네 청년들은 얼이 빠져서 침을 삼키며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쬐끄만 것이 잘도 빠젔네! 저 나긋나긋한 허릴 좀 봐, 인잔 다 컸잖여. 저걸 도대체 누가 채간디야?'
 '아따! 쬐끔 기다리믄 될 거 아녀? 세월이 좀먹는 겨?'

 도오다 선생은 순애의 학교에 와 있는 일본인 교사였다. 이 학교에 일본인은 교장 선생 이외에 도오다 선생 하나였다. 어느날 그는 우연히 음악시간에 순애네 교실의 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날 순애의 노래부르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는 풍금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었다. 그는 순애가 혼자 노래를 다 부를 때까지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수업이 끝난 후 그는 특별히 순애를 교무실로 불러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넌 노래를 참 잘 부르는구나."
 "......."
 순애는 감격하여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순애는 어쩐지 도오다 선생이 좋아졌다. 그는 하얗고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그 얼굴은 언제나 무표정하였으며, 깊이 들어가 있는 두 눈에는 신비한 힘이 배어 있어 아무도 그에게 쉽게 말을 건네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날카로운 모습과는 달리 일상적인 학교생활중에는 전혀 매섭지가 않았으며, 일본인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가끔 오래된 책이나 골동품 같은 것을 사들이기 위하여 내촌마을에도 들렀던 적이 있어, 덕호를 포함한 내촌사람들에게도 이미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는 수업을 하다가도 가끔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아픔에 공감하기도 하였다. 당분간 일본을 믿고 의지하면서 협조하다 보면 좋은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을 잃지 않도록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동시에 참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밝은 세상도 만날 수 있으리라 말해 주곤 하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그를 겁 먹은 얼굴로 바라보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조선인들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끊임없이 흘러들어, 아이들도 차츰 반일 감정을 갖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소문으로 들여오는 만주 벌판의 신나는 독립군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 차츰 전설적인 이야기처럼 퍼져가고 있었다. 만약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일본이 패한다면 우리에게는 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소문도 점점 그 무게를 더하여 가고 있었다.

 3.
 순애가 육학년이던 늦은 봄의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 남아 놀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은 대개 집으로 일찍 돌아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십중팔구 그 지겨운 일거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운동장이나 돌아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신나게 놀다가 배가 고파지는 해저물녘에야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학교를 당장 때려치우라'는 고함소리를 듣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일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차라리 나았던 것이다.
 그런 순애를 교무실의 도오다 선생이 불러들였다.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하급생 아이가 도오다 선생이 찾는다는 말을 전해 주더니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 아이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땀에 가득 젖은 등허리에 책보를 둘러메고 쭈삣거리며 교무실로 들어서는 기다란 순애를 그는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오랜 동안 교무실의 창가에 서서 운동장의 순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
 궁금함이 가득한 기색으로 눈망울을 굴리며 들어서는 순애의 머리를 그는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순애는 평소에 도오다 선생을 편안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그가 자신을 불러들인 일을 그녀는 크게 이상하게 여기진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쨌튼 무서운 선생님이었으며 더 무서운 일본인이었다.
 "너하고 얘기 좀 하고 싶어서 불렀다."
 "......."
 도오다 선생은 손톱을 만지작거리는 순애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 끝의 손톱에는 붉은 봉숭아꽃물이 앙징스럽게 물들여져 있었다.
 순애는 잠들기 전에 습관적으로 뒤안의 꽃밭에서 따온 봉숭아 꽃을 곱게 짓이겨 손톱 끝에 붙이고는 호박잎으로 둘러맨 후에야 자리에 드러눕곤 했다. 힘들고 거친 농삿일을 돕다보면 그것은 금세 지워져 버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손톱마저도 상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손톱에 봉숭아꽃물을 들였다. 그녀의 손톱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금방 그녀의 손톱과 손가락과 팔목에서 오는 부드러운 조화로 인해 묘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손톱이 참 예쁘구나."
"......."
 순애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사용해야 하는데 순애는 아직 말하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우리말을 쓰다가 발각이 되면 혼줄이 나게 될 것이었다.
 도오다 선생이 팔을 뻗어 순애의 손을 붙잡아 그녀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점이 많구나. 다른 아이들보다는 훨씬 더 어른스럽단 말야."
 "......."
 순애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무작정 기분이 좋아졌다. 두려움은 이미 어느 정도 사라져 있었다. 수줍은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순애의 어깨를 감싼 도오다 선생은 그런 자세로 순애를 자신의 자리까지 데려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등에 콱 붙들어 매어진 책보를 손수 풀어 주었다. 그녀의 헐렁해진 책보에서 찌그러진 필통이 떨어져나왔다. 도오다 선생은 떨어진 필통을 주워 책보 속에 다시 밀어넣으며 말했다.
 "집에 별일은 없는 거니? 부모님께서는 다 편안하시고?"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순애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며시 끄덕였다. 순애가 긴장되어 있다고 느낀 그는 옆 자리에 놓여 있던 다른 의자를 자신의 옆으로 가까이 당겨 주며 말했다.
 "여기 앉을래? 두려워하지 말고."
 모두가 퇴근한 뒤인 텅 빈 교무실에는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간혹 열려진 유리창을 통해 불어온 바람이 도오다 선생의 책상 위에 놓여진 두어 장의 서류종이를 들썩거리게 했다.
 운동장에서 같이 놀던 아이들도 순애를 홀로 남겨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지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그저 고요하였다. 텅 빈 운동장에는 뜨거운 햇볕에 눌린 모래먼지만이 드러누워 있을 것이었다. 순애는 자신의 숨소리조차도 커다랗게 들리는 이 고요가 못 견딜 정도로 힘이 들었다. 순애는 마지못해 그가 지시하는대로 의자에 엉거주춤 앉았다.
 "느이 집이 내촌이지?"
 그는 순애의 얼굴을 넌지시 바라보며 그녀가 편안히 앉을 수 있도록 양손으로 순애의 어깨를 등받이까지 밀어 주었다. 그리고는 곧 그녀의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 있는 땀에 젖은 두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예......."
 순애는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도오다 선생이 고맙고 감사하여 몸둘 바를 몰라했다. 그저 붉어진 얼굴을 감추는데 급급해 하며, 눈꼬리를 아예 그녀 자신의 발 끝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말이 없었다.
 도오다 선생은 잠시 순애를 바라보며 침묵하다가 책상 서랍을 열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책상 위에 펼쳤다. 엉성하게 그려진 태극기였다. 순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순애는 아버지 덕호가 그녀에게 이 태극기를 간단히 그려 주었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 도오다 선생은 아까보다는 더 작아진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혹시...... 이거 본 적 있니?"
 순애는 멈칫거리며 놀란 눈빛으로 도오다 선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두려움이 솟구쳤다. 그의 얼굴 너머로 교무실 가운데에 걸려 있는 일장기가 순식간에 그녀의 눈 속으로 들어왔다. 순애의 얼굴에 검은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꼬옥 쥐고 있던 순애의 두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그녀의 땀과 흙먼지에 젖은 두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어루만지도록 하고는 다시 그녀의 무릎 위에 갖다 놓았다.
  순애의 가슴은 거세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 쿵쾅거림은 그대로 그녀의 손에서 그의 얼굴로 전달이 될 것만 같았다. 그녀의 손을 떠난 그의 손이 순애의 어깨에 가만히 얹어졌다.
 "봤다고 해도 괜찮아. 내가 괜찮다 하면 괜찮은 거야."
 순애의 어깨에 놓여 있던 그의 손이 그녀의 길게 땋아진 댕기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댕기 밑으로 들어가 축축하게 땀에 젖은 그녀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순애는 순간 몸이 움찔하였다. 그러나 곧 그의 손이 마치 아버지의 손처럼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려고 애를 썼다.
 순애는 잠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도오다 선생의 깊은 눈이 바로 코 앞에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란 순애는 재빨리 눈을 다시 아래로 깔아내리고 말았다. 금방이라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그의 깊은 눈빛을 되짚어 상상하며 순애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눈을 꼬옥 감아 버렸다. 갑자기 세상이 노래졌다.
 그의 따뜻한 손이 곧 그녀의 목덜미에서 빠져나와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순애의 포개진 두 손을 살짝 제끼면서 그녀의 무릎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는 애정이 가득 담긴 듯한 손으로 천천히 순애의 무릎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순애는 그의 손과의 접촉이 두려워 두 손을 자신의 무릎 옆으로 내려 버렸다.
 "그래? 좀 이상하구나. 날 믿고 솔직하게 대답하면 안 되겠니? 난 널 특별히 좋아한단 말이다."
 도오다 선생은 계속하여 순애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순애는 가끔씩 마주치는 그의 눈에 이상한 기운이 서리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운동장쪽을 훔쳐보았지만 책장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렬한 햇빛만이 유리창을 뚫고 교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좋아.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볼까? 너희 아버지는 대단히 점잖으시고, 용기가 있는 분이시지. 나도 네 아버지를 존경한단다. 며칠 전 너희 집에 혹시 손님이 오신 적이 있지 않니? 그분은 나도 아는 사이거든."
 도오다 선생이 삼촌을 알고 있다니 조금은 의아스러웠지만 순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밤 외삼촌 명석이 다녀간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어루만지는 도오다 선생의 손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의 손은 간간이 떨리기도 하면서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들리지 않던 그의 가는 숨소리가 언제부터인지 순애의 귀에까지 커다랗게 들려오고 있었다. 도오다 선생이 자신의 호흡을 애써 조절하면서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니?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더냐?"
 순애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지 삼촌인디요......."
 "아, 저 중국에 있다는?"
 "......예."
 순애는 고개를 수그린 채로 가끔 그의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로부터 그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은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적막감이 마음 놓고 흐르면서 순애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녀의 몸은 거의 석고상처럼 굳어 있었다. 순애는 속으로 도오다 선생이 왜 삼촌이 집에 다녀간 것을 묻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도오다 선생의 뜨거워진 손이 조심스럽게 순애의 허벅지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그녀의 다리가 조금 벌어지며 틈을 만들자 그가 손가락을 더욱 깊이 집어넣었다. 순간 순애가 몸을 일으켰다.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무릎으로부터 가슴으로 그녀의 몸을 치고 올라왔다. 동시에 묘한 느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마치 온몸의 피가 거꾸로 서는 듯하여 그녀는 몸을 떨었다. 도저히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하여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순애가 의자에서 일어나 한 발 옆으로 비켜서며 그에게 말했다.
 "선상님......! 인잔 가도 되능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순애는 틈뚜럭에 앉아 댓똘에 가득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여 굳어 있었던 몸이 풀리자 다시 기운이 빠져나가 걷기가 힘이 들었다. 등허리에 땀이 자꾸만 흘러 내렸다. 그녀는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땀이 징그럽게 느껴져 가끔씩 몸을 움직여 그 등허리의 기분 나쁜 감촉을 지워내곤 했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저물어 가고 있었다. 지는 해의 붉은빛이 황홀하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다. 산도 들도 물도 풀도 모두가 붉은빛으로 변하여 있었다. 순애는 자신의 손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손등조차도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물이 났다. 까닭 모르는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이제 도오다 선생을 다시는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그는 그녀에게 공포스러운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순애는 그런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녀가 물끄러미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틈뚜럭을 내려간 뱀 한 마리가 막 물 위로 내려서고 있었다. 순애는 온몸을 떨었다. 오싹 하는 두려움으로 머리칼이 쭈삣하게 세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뱀은 그녀로부터 몇 발짝이나 떨어져 있었다.
 꽃뱀이었다. 갖가지 색으로 알록달록한 작은 꽃뱀이 징그럽게 몸을 비틀어대며 바야흐로 물을 건너고 있었다. 붉게 물든 물 위를 헤엄쳐 가는 꽃뱀을 바라보며 어느 사이 순애는 그 꽃뱀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4.
 그날 저녁 늦게 덕호네에는 험악한 얼굴을 한 일단의 순사들이 허리에 찬 긴 칼을 덜거덕거리며 들이닥쳤다. 순애는 학교에서 돌아와 열병에라도 걸린 듯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있었고, 덕호는 그때 간단한 옷차림으로 마루 끝에 이어진 대청에 앉아서 비료 푸대를 찢어 만든 연습장에 한자를 끄적거리고 있었다.
 순사들이 서슬푸르게 대문을 밀어제끼고 들이닥치자 일순 덕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들은 다짜고짜 신발을 신은 채로 대청에 올라 덕호에게 다가섰다. 최근들어 그들의 기세는 날로 포악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부엌일을 하다가 뛰쳐나온 명자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대청으로 올라섰다. 순애도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서며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겁에 질린 명자가 그들에게 물었다.
 "머땀시 이런데요? 울집 냥반이 먼 죄를 지었능가요?"
 그 말에는 대꾸도 않고 앞장선 조선인 순사가 덕호를 향하여 대뜸 소리를 쳤다.
 "오덕호! 조사할 게 있으닝께 우선 주재소로 가자."
 덕호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며 물었다.
 "먼 일이디여? 난 잘못헌 게 없능 거 같은디."
 그러자 곁에 있던 일본인 순사 한 명이 들고 있던 길다란 총의 개머리판으로 덕호의 복부를 후려쳤다.
 "억!"
 덕호의 비명소리가 대청 안을 울렸다. 방에서 튀어나와 명자의 허리를 붙잡고 숨을 죽이며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순애는 순간 소름이 끼쳐 눈을 감아 버렸다. 순애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오덕호! 일어섯!"
 순간적인 일격에 엎어져 기절한 듯했던 덕호가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순사들의 당찬 기세가 너무 무서워 목소리도, 눈물도 나오지를 않았다. 순애는 그 자리에 망연히 서서 아버지 덕호가 배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명자가 대문 밖까지 쫓아나가다가 당황한 얼굴로 돌아왔다. 어느 사이 동네사람들이 대문 밖에 모여들어 덕호네 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명자를 부축하며 물었다.
 "먼 일이데여? 이거 일난 거 아녀?"
 명자가 숨을 몰아쉬며 목을 켁켁거렸다.
 "워쩐디여? 나도 먼 일인지 모르겄네."
 명자는 가슴이 탔다. 저들의 서슬로 보아서 분명 중대한 문제가 터지고 있었다. 끌려간 덕호가 편안하게 조사를 받을 것 같지가 않았다. 명자는 끌려간 남편 덕호도 덕호지만, 또한 오라비 명석의 안위도 걱정이 되었다.
 명석은 오래 전부터 집을 떠나 중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녀가 시집오기 전부터 어쩌다 가끔씩 은밀하게 집에 들르곤 하였다. 대부분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다녀가기 때문에, 친정식구들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긴장하여 까닭모를 두려움에 떨었었다. 까놓고 묻지는 못하고 냉가슴만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오라비 명석이 얼마 전 한밤중에 내촌에 몰래 들어왔다가 잠시 덕호를 만나고 갔던 것이다. 두 사람은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밤새 이야기에 열중하였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도 거나하게 돌았었지만, 동이 터오는 새벽녘 명석은 아침이 밝기도 전에 내촌을 떠났었다.

 주재소까지 나갔다가 돌아온 옆집 창근이 늦게서야 육리댁네를 찾아왔다. 모두가 호롱불만 밝혀 놓고 저녁식사도 거른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판이었다.
 "아줌니, 힘들겄는디요. 알어보지도 못혔구만이라오. 도무지 말도 못 붙이게 헝게로....... 다른 디서 알어봉게로요, 며칠 전에 여글 댕겨간 사람을 헌병들이 쫓고 있다는구만이라오. 그 사람이 울 동네를 댕겨간 흔적이 있다는디요. 머땜신지는 몰러도 어떤 놈이 주재소에 밀고를 한 거 같여요."
 그러면서 창근은 명자와 순애를 힐끔 바라보았다. 육리댁은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명자가 잔뜩 겁을 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니, 어떻게라도 손을 좀 쓸 수가 없능가라오? 그 냥반 큰일 나능 거 아닝가라오?"
 육리댁은 말없이 곰방대에 담배를 밀어넣고 있었다. 불을 붙이는 곰방대 끝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육리댁도 가슴이 떨려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순애는 계속 훌쩍거리며 윗목에 쪼그려앉아 있다가 어느 사이 잠이 들었다. 그런 순애를 육리댁이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영감......."

 며칠 뒤에 덕호를 데려가라는 주재소의 연락이 있었다. 맨발로 달려간 육리댁과 명자 앞에 덕호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초죽음이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덕호를 끌고 갔던 조선인 순사가 눈을 무섭게 치뜨고는 내뱉었다.
 "정말 모른다니까 우선은 믿고 보내는 거여. 그러나 끝난 것은 아닝게 앞으로도 조심허고 행동거지를 똑바로 혀야 할 것여."
 육리댁과 명자는 그를 향해 부지런히 머리를 조아렸다. 주재소까지 따라왔던 창근이 금방 어디선가 소달구지를 끌고 왔다.
 "후딱 태우랑게. 시간 끌다가는 일 안 나겠능가라오."
 덜컹거리는 소달구지 위에 드러누운 덕호의 머리에, 얼굴에 덕지덕지 피딱지가 엉겨붙어 있었다. 온몸이 피멍이 든 듯 차마 옷깃을 들추어보기가 겁이 났다. 명자가 재빨리 치맛자락을 들어 미처 마르지 못한 피를 닦아주며 반 우는 소리로 덕호를 불렀다.
 "순애 아부지! 순애 아부지!"
 "끄응!-"
 덕호가 힘들게 뱉어내는 긴 신음소리로 아직은 살아있음을 일러 주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정신을 잃은 듯 조용해졌다. 덕호의 눈가에 핏물인 듯한 붉은 눈물이 두어 줄기 흘러내렸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덕호는 아무것도 입에 들지 않고 두어 달을 더 버티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동안 덕호는 잠이 들었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손을 내저으며 비명을 질러대곤 했다. 그의 부릅뜬 눈 속에는 이미 아내 명자나 순애, 그리고 육리댁의 얼굴은 도무지 들어가지를 아니했다. 그 눈 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공포에 질린 덕호는 몇 번이나 혼자 까물어치곤 했던 것이다.
 결국 덕호는 두어 달을 더 버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몇 달 혹은 몇 년을 더 앞당겨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덕호의 두 눈은 아무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아니었으며, 벙긋거리는 입으로는 말도 제대로 전달이 되어지지 아니하였다. 다만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꼭 쥐고 있는 명자나 육리댁의 손에 힘이랄 것도 없는 힘을 실어 주거나 하여 최소한의 의사소통만 하였을 뿐이었다.
 명자는 흐느끼며 보채곤 했다.
 "먼 말이라도 혀봐요. 기양 죽으먼 안 되능구만이라오."
 육리댁은 그런 덕호와 명자를 지켜보며 담배만 빨아댔다.
 순애는 숨이 멎은 덕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웬일인지 두려웠다. 자신을 노려보며 잔뜩 원망하는 슬프디 슬픈 얼굴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숨을 거둔 덕호의 얼굴은 오히려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덕호의 얼굴은 숨이 끊어지면서 평온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순애는 아버지의 식어가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