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산호도 떠나지 않는다 -아산호 가는 길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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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산호도 떠나지 않는다
--아산호 가는 길 54
가끔은 진실을 위해 꽃다운 위선도 필요한 법이다
사랑하기 위해선 적절하게 증오도 해야 하는 법이니
증오보다 위선은 아직은 안타까움이 덜한 사랑법이다
그러나 위선이 필요한 만큼 드러나도록 해야할 때에는
몇 날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여러 번 절망하기도 하다가
마침내는 이도 저도 아닌 체념으로 큰 일을 내고야 만다
그런 면에서는 신비로운 아산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 또한 진실이 위선으로 바뀌는 순간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위선임을 적절하게 노출시킬 줄을 알고 있다
나는 이제 사라지노니 그대는 옷고름이나 만지고 있으라
부질없는 바람은 불고 의미 없는 물결은 홀로 출렁인다
그녀의 사랑법은 강력하여서 떠나는 힘도 강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누구도 쉽사리 사람을 떠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는 일은 사람의 탈을 벗어야 가능하다
또한 그가 떠나고서야 비로소 나도 떠날 수 있는 것이니
떠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언제나 그인 것이며 그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듯이 떠나는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나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
떠나지 않는 아산호를 위하여 나 오늘 떠나는 일을 포기한다
--<시인정신 2000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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