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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호는 떠나도 역시 아산호이다
--아산호 가는 길 35


나는 아산호가 지순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아산호가 차라리 바보이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산호는 오히려 빈손인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더 바보임을 알고 가슴을 쳤다
나는 내가 그리워하는 아산호를 실제로는 떠나 있었다
아산호를 떠나 있으면서 아산호를 안으려 애를 썼다
그때부터 아산호는 차츰 나의 얼굴을 잊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만심이 불러온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었다
아, 아산호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아산호는 결코 나의 아산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산호는 곁에서도 떠나서도 변함없이 아산호이다
그러므로 아산호는 더욱 갈등 한 번 하는 일없이
간단하게 너무도 간단하게 떠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산호를 보내며 안타깝게 아산호를 그리워한다
아산호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역시 아산호이다

--<1999. 5. 현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