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호는 포로이다 -아산호 가는 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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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호는 포로이다
--아산호 가는 길 29
가엾게도 아산호는 마침내 포로가 되었다
백일하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본래는 물빛이었으나 본래는 별빛이었으나
본래는 이승의 바람의 보이지 않는 빛깔이었으나
이제 눈도 코도 입술도 없는 아, 결코 그리운 그대가 아닌
치마가 벌렁 뒤집어진 싸구려 매춘부의 볼품없는 몰골이었다.
먹성 좋은 거미는 끝내 아산호를 점령하고 말았다.
그의 꿈은 아산호의 가슴을 열어보는 일이었다
그의 손은 처음에는 어린아이처럼 간지러웠으나
나중에는 이처럼 강력한 마법이 되어 아산호를 잠재웠다
순식간에 아산호는 부석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보라 그 균열 속에 갇혀 사라지는 꿈같은 얼굴을
봉긋하게 솟아올랐던 희망을 신비롭게 출렁이던 몸살을
부서져 내리며 절망조차 하지 못하는 메마른 그리움을
아산호 가는 길에 나는 사라진 아산호를 생각한다
거미줄은 사방으로 팔방으로 그녀의 주검 너머로도
멈추어 설 기미도 없이 줄기차게 뻗어나가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신비로움으로 나의 눈을 현혹시킨다
사로잡힌 아산호는 거미줄에 갇혀 있다
그녀의 풀어진 옷고름이 온밤을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다
--<99 김동호 교수 정년기념 사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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