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호는 부단히 떠나고 있다 -아산호 가는 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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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호는 부단히 떠나고 있다
-아산호 가는 길 34
내가 빈 자리에 그가 들어왔다
그는 사랑스럽고 현란한 혓바닥을 가졌다
그는 넓은 가슴과 강한 다리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산호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가 들어왔다
그는 몸살하는 치마꼬리를 날랜 솜씨로 낚아채고는
발버둥치는 아산호의 다리를 순식간에 분질러 버렸다
무참하게 무너진 아산호는 내게서 떠나 버렸다
그러나 그에게 아산호는 더 새롭고 신비롭게 출렁이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감미로운 눈빛으로 어제보다 더 건강한 몸짓으로
아산호는 바다를 향해 하늘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내가 빈 자리에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조금도 비겁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보다 더 비겁했으므로 내가 그보다 더 소심했으므로
사랑은 줄기차게 타오르는 것임을 나는 잊고 있었다
사랑은 하루도 쉬지 않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몸을 푼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다
적어도 아산호의 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음을
그래서 누구라도 다가설 수 있는 밤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아산호는 정녕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남자의 그리움이었음을 이제야 안다
아산호는 언제나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기적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아산호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제 힘으로 일어나 충분히 걸을 수가 있었다
아, 아산호는 갇힌 것이 아니라 부단히 떠나고 있었다
--<1999. 5.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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