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빠져 죽은 아산호 -아산호 가는 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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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빠져 죽은 아산호
--아산호 가는 길 12
8월 24일은 그녀가 아산호에 빠져죽은 날이다
중령으로 전역했다는 돈 많고 잘 생긴 남자와
둘이서 술을 먹다가 밤 10시쯤 그녀는
드디어 아산호를 발견하였던 모양이다
그녀에겐 사랑하진 않지만 15년 된 남편이 있었고
중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도 있었고
그녀를 닮은 초등학교생 딸도 있었다
잠수부가 세 시간이나 헤매다가 건져놓은 그녀는
시신의 일부에 타박상이 있었다 그러나
면목없는 가족들은 시체 해부를 거부하였다
그래도 먼저 못 죽은 남편은 찾아와
함께 죽은 남자의 위패를 치워버리고는
자살일거야 혼자는 힘이 들어 죽어 버렸을 거야
반갑다지 않는 시선들을 피해 한켠에서 울었다
한 5년쯤 된 별거와 반년쯤 된 이혼으로도
떨칠 수 없는 미련이 마지막까지
내 사랑이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찾아온 사람들은 말했다
동반자살일 거야 아니 불량배들 소행일 거야
아니 그 남자를 거부하다 그랬는지도 몰라
그래도 죽어서 어떡허나 그러나 아까운 목숨이라는
그런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삼촌은 속도 모르고 혼자 말했다
처녀 적엔 고생도 많이 했는데
살다보면 부부간에 티격태격도 있으련만
자식들 눈에 박혀서 어떻게 숨이 넘어갔을까
애원하는 남편을 버리고 그녀가 집을 나서던 날
그날부터 남편은 그녀의 뒤를 쫓았다
아, 그녀가 심장까지 간까지 아무에게나 빼주던 날에도
남편은 그녀의 집 근처에서 밤을 새웠나니
그래도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지가 나 없으면 어찌 사나
한 줌 재가 된 유골을 얻어 뿌리는 아산호의 8월 24일은
그녀가 남편 아닌 남자와 술을 먹다가 빠져죽은 날이다
--<문학세계 199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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