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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산호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산호 가는 길 13


시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난 그녀는 아산호를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미 시인이었던 그녀는 시가 두려워 아산호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그녀의 시를 경멸했을 때 그녀는 아산호가 그립다고 말했다
아산호만 보고 나면 모든 울타리 허물어지리라 눈처럼 녹으리라
아산호에만 가고 나면 그리하여 뜨겁게 살아있는 시 만나리라
나는 그녀에게 아산호를 보여줄 수도 가르쳐줄 수도
말해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산호를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비겁해졌을 때 나의 아산호는 나를 묻으리라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게도 아산호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참말이지 아산호는 거기에 있었지만 기실 아산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산호는 희망이었지만 그러나 아산호는 결코 목적도 답도 아니었다
언젠가 아산호가 그녀의 울타리를 열어줄 수 있을런 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산호가 그녀의 시에 생명을 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산호를 그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는 아산호를 눈앞에 두고도 볼 수 없었다
시속 160킬로의 드라이브에 몸을 오싹오싹 할 때에도
그녀는 분명히 아산호를 만나고 있었다
하루쯤은 인사불성으로 취하고싶어 마시는 술 속에서도
그녀는 분명히 아산호를 만나고 있었다
혼자 있는 밤에 누군가에게 두근반세근반 전화를 걸 때에도
그녀는 분명히 아산호를 만나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의 아산호를 알아보지 못해 몸살을 하고
나는 슬프게도 나의 아산호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

--<문학세계 199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