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에 밤은 없다 -아산호 가는 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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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 밤은 없다
--아산호 가는 길 52
바람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길뿐이었는가
손바닥만한 땅에 질기게도 자라는 손바닥선인장이
살 속으로 파고든다는 가시털을 곧추세우고 있었네
손톱을 칼삼아 가까스로 껍질을 벗겨내자
아, 피같이 붉은 그녀의 속살이 불거지고 있었네
꿈틀대는 용암은 바다로 쏟아지다가 숨을 멈추고
들개처럼 자빠져 헐떡이고 있었네
억새만이 쑥대밭이 되어 봉두난발한 섬 마라도
기적처럼 나무도 한두 그루 자라고 개들은 뛰어놀지만
둘러봐야 바람 따라 몰려오고 몰려가는 물귀신뿐
그 귀신에 붸겨 마라도 지킴이들 하나둘 뭍으로 떠나고
우습게도 낮과 밤이 없는 바람만 홀로 남아
하루종일 부질 없는 수음 중이었네
--<창조문학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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