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산호의 전설이다 -아산호 가는 길 55
페이지 정보

본문
우리는 아산호의 전설이다
--아산호 가는 길 55
아산호의 전설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목숨이다
우리들의 선대는 피 흘리는 복종만으로도
너그러운 전설의 향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또다시 어김없이 만들어가고 있는
소중하면서도 기가 막히도록 어려운 전설이다
비가 올 때에는 방안에 있어도 끝내 외롭다
비가 올 때에 어둠을 헤치고 빗속으로 걸어 나가면
도처에서 젖은 아산호는 신비로운 자태로 걸어나온다
그 아산호의 뜨거운 숨소리는 차라리 단말마이다
그리고 그 너머에 숨어 있는 무서운 눈빛들
혹여 누구 칼을 품고 슬픈 희생자를 찾지는 아니 하는가
빗속에 숨어있는 그림자는 전설의 집행관은 아닌가
아니면 우리 자신들의 겁에 질린 눈빛은 아니던가
위장된 얼굴 몇 겹 너머로 빛나는 이빨은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 누구도 칼을 쓰지 못하는 비겁장이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전설은 무시로 일어나 뭍을 향해 걸어간다
바다를 향해 태고를 향해 꿈처럼 날면서도 위태로웠던
선대의 전설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며 몸을 달군다
그러므로 아산호의 전설은 백년 뒤에도 천년 뒤에도
다시 살아있는 목숨으로 이 땅에 버티고 있을 것이다
--<시인정신 2000 가을>
- 이전글어머니는 독해야 어머니를 한다 -아산호 가는 길 56 01.12.24
- 다음글나도 아산호도 떠나지 않는다 -아산호 가는 길 54 01.12.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