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에 관하여1

2003.07.28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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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 벼+골(마을)+제(둑,제방) , 사적 제 111호 크기 : 전성기 길이:3.3킬로미터 수문:5개 혜택면적 : 1만헥타아르(김제,정읍,부안,신태인) 현위치 :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수원 : 원평천 모악산과 구성산- 봉남 정읍감곡-월촌 -부량 두월천 모악산-금산-김제-월촌동부(신월제월)-부량 건축방법 : 제방, 적송을 뼈대로 하여 둘레에 자갈과 진흙을 쌓음 수문기둥 : 석주 무게 약 8톤정도. 높이 5.5미터. 기둥간거리 4.2미터. 수문 석주기둥의 안쪽에 20센티미터 폭에 깊이 12센티미터의 홈을 만들고 느티나무 판목을 상하로 이동하였음. 수문 바닥은 돌을 깔고 돌 사이에는 쇳물로 메움. 수문기둥 : 장생거,경장거 내용 : 삼한시대 우리나라 최고(最古)수리시설. 삼국사기에는 서기 330이라고 하나 부정확한 기록으로 삼한시대로 본다. 신라시대 원성왕(元聖王) 6년(790)에 이르러 증축. 고려시대 현종(顯宗) 때와 인종(仁宗) 21년(1143)에도 수축(修築)되었으며, 조선시대 태종(太宗) 15년(1415)에 다시 수리(修理)되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서 폐기 일제시대 1925년에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의 하나로 동진농지 개량조합(東津農地改良組合)에서 농지관개용의 간선수로로 이용하기 위한 공사를 한다는 명분아래 폭이 종단(縱斷)되어 두개로 갈라졌으며, 양분(兩分)된 제방의 중앙을 수로로 만들어 원형이 몹시 손상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1975년 수문의 복원공사를 위한 부분적인 발굴 조사를 마치고 1998년 벽골제 수리 민속유물전시관을 건립 개관하였음. 관련전설 : 신털미산-보수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짚신에 묻은 흙을 털거나 짚신을 버린 곳으로 산이 되었다 되배미-인부들을 세기 위해서 정해진 논에 지게를 진 채로 인부를 채워넣어서 채워지면 500명으로 셌다 (논둑 제외하면 500평,지게진 사람은 1평 정도) 쌍룡놀이-벽골제 근처에 선한 백룡과 악한 청룡의 다툼이 있엇고 이를 백성과 백룡이 워 청룡을 물리쳤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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