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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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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806회 작성일 02-05-20 21:42

본문


제1부

소 리



바다에서 강물 소리가 납니다
강물 소리가 모여
바다의 소리를 이룹니다
바다의 소리가 수 천 개 씩
다시 강물 소리가 되어
강물 소리는 이내
땅의 소리를 냅니다

땅도 강도 바다도
침묵을 지켰으므로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에게서 아픈
소리가 납니다
그대의 아픈 소리가 모여
우리들의
소리를 이룹니다
우리들의 소리 몇 올 씩
더욱 아픈 소리가 되어
내게로 옵니다

나도 그대도 끝내 침묵을 지키지마는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땅의 소리는 강물의 소리
강물의 소리는 바다의 소리
바다의 소리는 땅의 소리





다대포



다대포 갈밭 물웅덩이 속에는
또하나의 갈밭이 살아 있었네
모화가 예서 죽어 갈이 되었지
세상은 그 속에 누워 있었네

사랑은 밤마다
달덩이처럼 가라앉았지
그런 날 갈은 흔들려
어두운 바다를 깨웠네
바다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지

바다는 그의 가슴보다
더 큰 이름으로 덮혀 있었네
투명한 죄가 가끔
불투명한 이성이 가끔
부서져도 몰라





몸 짓



불쌍한 너는 속으로 흐느낀다
그 흐름이사 내 어머니
내 할머니 때에도 깊숙히
개여 흐르던 것
나는 내 아버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너를 불쌍해하는 그 뿐인데
모래알 같은 거 별같은 거
아무렇게나 이름하자는 것을
너는 거부한다

너의 거부하는 몸짓으로 나는
내 아버지의 아들임을 포기하고
너의 거부하는 몸짓으로 나의 피는
기름이 되어
내 아버지 할아버지가 또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네 앞에서
네 앞에 선 나까지도
잃을 수 밖에 없다

너는 나의
이런 숨소리를
지순한 말씀으로
듣고 있다





모년 모월 모일에



나는 이 도도하고 고집센 여자를 하룻밤 사랑해볼 요량을 하고 저녁을 든든히 먹 다음 소내장 국에다가 딱 한 잔까지 걸치고는 거리를 배회하며 부엉이의 눈깔 없는 시대를 기다리었다.과식한 땅은 어기적거리며 제 구토물을 다시 집어삼키고 허기진 하늘은 잘못짚은 아사달의 누런 가을을 실눈 뜨고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거리의 나는 쓰레기도 되고 쭉쟁이도 되면서 간혹 만나는 가로등 불빛에 마냥 흔들리는 셈이다.이런 내가 타락한다고 해서 타락한 아무도 나를 못 말린다 못 말려.논리는 녹이 슬었으며 비논리는 아사하였다.약속은 믿어도 좋았다.그것은 매장시킬 필요가 없는 찌꺼기들의 공유물이며 영원한 향유물이었다.그들은 언젠가는 한자리에서 만나야 한다는 분명한 약속을 갖고 있었으므로 우리들의 한 치 간격은 무한이었다.마음먹기에 따라서 없어졌다가도 금새 천리 만리로 불어나는 미지의 수치였다.그니의 얼굴은 줄곧 참고 있었으며 그것은 눈물이 아니라 냉소였다.여자는 마치 가시 많은 장미와 같아서 꽃 중의 꽃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열망으로 가득하였다.나는 그니의 얼굴에 지네 한 마리를 올려 놓았다.거기에 또 친근했다.그니는 기어코 웃었으므로 지네도 따라서 꿈틀거리었다.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으나 오로지 사랑해야 했다.너를 너가 아니라 여자겠지요 여자를 나는 여자가 아닌데요 그래 너는 지네다.여자는 오랫만에 참말을 이야기했다.여자는 드디어 깔깔대며 웃었다.누구와의 대화에서도 동문서답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오직 침묵만이 진실일 수 있었다.투우사와 소가 싸우고 있었다.강자는 단순함으로 오히려 약했다.여자는 스스로의 눈물에 의미를 더 주었다.그런 사람들에게 남의 눈물은 가치가 매겨지지 않았다.여자의 기피가 말하는 바로 인해 나는 결코 고통을 받아서는 안되었다.모순이었다.눈물의 이유는 근원부터 흔들리었으며 감격한 슬픔이 제멋대로 발산되었다.빛은 차단되어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정녕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식물이었다.아무도 서로에게 가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곳에 없었다.서로의 것은 항상 등 뒤에 있었으며 버린다는 것은 슬펐고 어쩐지 죽음같았다.구원은 오지 않았다.상실을 두려워하는 자로부터 구원은 달아났다.나는 그니에게 내 손바닥 가득한 공허를 쥐어 주었다.그니는 나의 지불을 그니의 수첩에 적어넣으며 소리내어 웃었다.모년 모월 모일에 햄릿같은 그대의 눈물을 보다.





소래 포구



세상 사람들은 다 밥을 먹고 산다
밥을 먹고 살면서도 마치 아닌 것처럼
살짝 몸짓으로 시늉한다
소래 철교 끄트머리에 앉아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한눈으로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소래 포구에 사는 사람들은
우습다,우습다
저 사람들 죽은 갯펄에 무시로 와서
엉성한 철교를 건너다가
먹은 밥 불시에 토해낼지도
모르는 일, 구경합시다

갯펄에 고추선 닻의 잔해들은
마치 아메리카 남북전쟁
치열한 공방전의 끝을 보는 듯 한데
하루 두세 번 오가는 협궤 열차도
엉금엉금 흔들리며 노래한다
이름이 포구지
이제는 호구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말을 듣지 않거든
여기 모시고 와 무조건 건너보시라
단 한 번만,그래도 듣지 않거든
이제는 포기하실 일,소래 포구는 믿고 있다

소래 포구엔 화장실이 따로 없으니
아무 데나 누워도 좋으리





레스토랑 알프스



억새풀이 어둠 속에 피어 있었다
어둑한 문학산 기슭을 오르며
주인 정여사는 들꽃을 꺾다가
아예 문학산을 송두리째
이 지하실에 옮겨다 놓았다
그런다고 이곳이 문학산이 되지는 않지만
그녀는 한 밤 잠이든 문학산을
아무도 몰래 옮겨다 놓았으니
누가 뭐래도 여기는 캄캄한 문학산이고
그녀는 들꽃과 더불어
자신을 들꽃이라 말하고 있었다

새벽이면 으례 가난한 노래꾼들
꾸역꾸역 들새처럼 찾아드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옮겨다 놓은 문학산에
속아 있었다 꺾어다 놓은
들꽃에 취해 있었다
이 들꽃에 취할 수 있어야
감히 한 밤 문학산을 오를 수 있다고
누군가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있었다





들풀 한 잎이

-들풀1



제맘대로 피는 들꽃 한 송이
시든다 누구 안쓰러워 하리
제 맘대로 크는 들풀 한 잎이
눕는다 누구 아파하리
애비 없는 하늘이 무서워
애미없는 세월도 무서워
떠나는 누구 하나
영 불러주지 않는 이름
날 적부터 얹히어도
되게 얹힌 가슴이야





그대 무덤에서는

-들풀2



그대 무덤에서는
연기가 핀다
다 못 탄 불씨가
아직껏 탄다
낮도깨비 밤귀신 되어
허공을 떠돈다
죽어서도 덜 아픈
그대 두드린다





어둠 속에서는

-들풀3



어둠 속에서는
용기가 생긴다
어둠 속에서는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너를 너라고 말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우리
언제라도
얼굴 없는 용기로
만날 수 있다





기도하노니

-들풀4



기도하노니 다시는
말씀이 없으소서
기도하노니 다시는
웃지도 마오소서
기도하노니 다시는
눈물도 없으소서
기도하노니 다시는 이 말씀
듣지도 마오소서





이 땅 어디에

-들풀5



이 땅 어디에 그런 살이 배여서
산은 모두 구릿빛일레
이 땅 어디에 그런 피가 흘러서
강은 모두 장밋빛일레
그대 타들어가는 눈으로
무엇을 보았길레
그 속에 맺히는 나는
한 덩어리 불꽃일레





그 것

-들풀6




입이 없고 귀가 없고
눈이 없는 것 하나
팔이 없고 다리가 없고
그것도 없는 것 하나
가슴이 없고 미래가 없고
그림자도 없는 것 하나
넋이 육신을 떠나떠나
갈 데가 없는
곳으로 간다






묻고싶은 말

-들풀7



나는 느낌표
너는 마침표
합치면 물음표
만나 우리
어디에 설 것인가

가끔 가끔
묻고 싶은 말이다





엽 서

-들풀8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떠나는 당신이 흔드는
풀빛 손수건

그러나 내 하늘 내 땅
나의 벽도 없는 어디에서
당신은 엽서를
띄우십니까






나 모르게 웃다가

-들풀9




나 모르게 웃다가
나를 만나는 함박웃음
그대 모르게 웃다가
그대를 만나는 함박웃음
무덤가에 가득 피인
고모 할매
눈물 꽃물






우리 여기서부터

-들풀10




우리 여기서부터 흐르는
물이 되어 다시 만나자
너는 두만강 깊은 물이 되어
지심으로 흐르고
나는 압록강 너른 물이 되어
밤낮으로 달려서
우리 동해와 서해를 서로
눈물로 흐르다가
서름 많은 다도해
옷고름 풀고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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