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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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우물안 개구리
우물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른다
우물안 개구리에게는 하늘이 동그랗다
꼭 동전만 하다 사실 동전은 개구리의
언어가 아니라서 우물안 개구리는
동전을 알 리가 없다 개구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물안에 개구리를 누가 넣었냐
새벽이 오기 전에 우물안 개구리는 죽는다
글쎄 죽게 될까 그렇게 될까
죽기 전에 우물안 개구리는 사랑을 할까
사랑을 하면 비명도 지를까
개구리의 언어에는 사랑이 없는 건 아닐까
우물안에는 꽃이 필까 필까
우물 속에는 동전만한 하늘,그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맛이 있다 이 물맛은
우물안 개구리 밖에는 모른다
개구리는 온몸으로 느낀다 아니 느끼지 못해도
그런 개구리를 누가 아느냐
우물 밖에서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를 본다 볼 수 없다
보면 알까 보아도 모른다 쉬운 건 아주 어려운 것이다
물푸던 기집애 우물안 개구리를 바라보고
오줌을 찔끔 흘리며 먹은 거 다 토해내고
그전에 먹은 개구리 오줌까지 다 토해내고
달아난다 그 기집애는 드디어 보았다 우물안 개구리
그 음울한 우주였던가 물이었던가 흙이었던가
우물안에는 개구리가 없다 개구리는 그냥 개구리이다
오뉴월 파리
아직 파리를 한마리도 구경하지 못했다
방안에도 창밖에도 오뉴월
개구리소리처럼 날개소리 요란한데
이놈의 파리들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보인다 해도 파리 잡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니다
파리는 나를 모른다
그저 휘두르는 파리채만 피해 다닌다
그래서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쉽게 잡히질 않는다
파리를 한두마리 혹은 열마리라도
잡은들 무엇하냐
또다시 그놈의 파리는 죽지도 않고
철이 다 가도록 시끄럽게 떠들어대는데
오늘은 보이기만 하면
보이는 대로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모조리 파리채로 휘두르고싶은데
아직 그놈의 파리는 보이질 않는다
오뉴월 개구리 소리보다 더
그놈들 고함소리 요란한데
그러나 별일 아니다
파리는 꼭 파리채로 잡아야 하나
파리를 잡는 족족 메뚜기처럼
먹으면 안 되나
비가 내린다
해는 낮에 뜨고 달은 밤에 뜬다
남자는 바지를 입고 여자는 치마를 입는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이른다
내가 십 분 동안 호흡을 정지하여도
바람은 산에서 불어왔다가 다시 떠난다
마루타가 내 형제였을까
사돈의 팔촌은 아니였을까
살아있는 것은 모두가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없는 것은 다 죽었다는 것이냐
생명은 느낌일까 무게일까 깊이일까
그저 없는 것일까
공포는 지식일까 비극은 이성일까
사랑은 아,사랑은 욕망일까 생명일까
아니면 죽음일까
꽃을 바라보면 구역질이 날 때가 있다
그 꽃은 짐승의 주검 옆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신은 존재한다 안한다가 아니고
우리는 나무다 풀꽃이다 바람이다 흙이다
아무것도 아닌 무엇이다
이곳은 여기 그곳은 거기 그저 있다
의미란 무엇인가 생명일까
순간일까 느낌일까 공포일까
사랑일까 아,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몸도 마음도 촉촉해져서 가끔은 감기가 걸려서
비가 내리는 날이 된다 며칠이고 비가 내린다
반 역
동아줄 같은 무게로 너는 나를 옭아매었다는
그녀의 태몽이 아니드래도 반역은
달빛이 바람을 먹듯이 애미의 쓰디쓴
칼독을 용하게도 받아먹고 자랐다
세상은 전생과 다를 것이 없지 않느냐
죽음을 애끼듯이 태몽을 애끼던 그녀는
아,썩은 탯줄을 꺼내보이던 날
죽음의 문을 활짝 열고 계셨다
아픈 곳도 없이 약을 먹는다
소화작용은 굳바이,배설작용도 굳바이
없는 이 짓이기며 탯줄 씹으며
당신의 자궁을 뒤흔들던 악다구니
돌멩이 꿀꺽 삼키고는 제까짓게 기껏 돌이지
그래도 언제나처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반역은 삼족까지 씨를 말린다는데
시 간
당신은 웬일로 무덤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무슨 일로 한밤에 온다는 것입니까
총 한 방 타앙 쏘고 싶어서
누구를 기가 질리게 노려보는 것입니까
당신을 차단하려는 숱한 음모가
늘상 수포로 돌아간 뒤에
뒹구는 모가지 하나 당신이 원하는 것입니까
찬 바람 드나드는 피구멍 두어 개
당신이 보고싶은 것입니까
그림자도 없는 당신의 질주를 모른 척 한다손
우리들 생활 속에서는 다시금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있겠습니까
당신과의 복수에 미친 전쟁은 가능하겠습니까
내사 번득이는 단검을 어떻게 포옹한다지요
썰렁한 총구멍을 어떻게 당해낸다지요
지옥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당신은 언제부터 자꾸 다가오는 것입니까
정말 다가오는 것입니까
동 행
얼굴 없는 무기수
어제는 당신과 함께
아침 식사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사오
물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긴급 지명 수배된
그리운 얼굴
당신과 동행 중이지만
어디로 가오
물을 수 없습니다
문득 살아 관 속에 누운 당신
내일은 그대와 밤을 숨더라도
무엇을 생각하오
묻지 않으리다
팔십년대
돌아가신 할아버지
허리병이 도진 팔십년대
살아계신 아버지는
누울 자리가 없으시다
살이랑 뼈랑 선혈이랑
들고 가는 죄스러움
눈을 감아도 부끄럽다
밤이면 미친 바다는 일어서고
달지면 다시금 가라앉는 바람
한 목숨이 모든 생명으로 꽃이 되어도
살아있는 것은 송두리째
목이 꿰어지는 그믐
죽은 나는 안전하여라
빛나는 무덤의
새벽은 아름다워라
귀 환
나의 손을 모두에게서 거두어들였을 때
나는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풋과일 같은 여인들의 손
보이지 않는 그대 흡사한 얼굴에 묻혀
아,자라지 못한 원천이여
메마른 계곡의 검푸른 돌이끼와
갈증에 허덕이는 작은 웅덩이의
시한부 생명들과 어울려 나는
내 포기한 목소리를 신뢰했습니다
나는 너무나 그대보다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모습을 잃지 않고
내 허구의 두께 만큼 멀리에 있어 주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걸어왔습니까
구태의연한 태양은 몰래 다른 숨을 쉬고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
참으로 너는 오기와 애증으로만 불타 있구나
내가 무엇을 본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의 지친 손을 붙들었습니다
나의 눈을 거두어 들였을 때
나는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속으로만 가만히
가끔은 당신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듣지 못하도록 속으로만 가만히
당신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못 들었지요
당신께선 내게 올 수가 없습니다
내가 걸어가는 들길 옆에 당신은 서 계셨습니다
길섶에서만 길섶에서만 내가 가는 곳마다
당신은 기다리고 서서
당신의 잊혀진 얼굴을 보도록 하였습니다
나는 가급적 손을 흔들며 내 길만 갔지요
빛은 당신의 때묻지 않은
옷을 통과했습니다
비오는 날에 당신께선 어느 산장에 머무시고
어두운 날에 당신께선
어느 동굴같은 처마 밑에 주무시어
그때도 나를 생각하였지요
빗속을 걸어가는 나를
그러나 당신께선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은 당신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당신이 듣지 못하도록 속으로만 가만히
마지막 그녀
그가 만든 그물에
그녀의 목이 걸립니다
그가 놓은 덫에
그녀가 발을 꺾습니다
그가 내지른 비수에
그녀의 선혈이 쏟아집니다
그가 발사한 탄알이
열 발씩 스무 발씩
그녀를 통과합니다
그녀는 다시금 살면서
또한 끊임없이 죽습니다
그는 잊지않고 명료하게
그녀의 앞을 막아서지만
그러나 그는 절대로
마지막 그녀를
볼 수는 없습니다
단 상
酚타이 공장에서
나를 만나는
꿈을 꾼다
정신 병동에서
그대를 만나는
꿈을 꾼다
살아있는 나는
오랏줄에 묶이고
아이들의 훗날이
한숨만큼 무겁다
제발 지순하라
신이여
믿어다오
겁많은 나여
풀뿌리
도대체가 존재하는 것은
불만투성이의 아들을 낳고 있다
죽어서 다시 나는 독한 풀뿌리
눈감으면 하늘이라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항에는 에누리없이
합리화가 필요했다
이치에 맞는 말은 올가미였다
신은 신사적으로 목을 요구한다
승리는 가시를 매단 꽃
의미 이상의 축복은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돌아오리라
죽어서 넋이 된 것들이
살아서 가시가 되어
빛깔이 되어
다시 죽어 죽은 목숨으로
돌아오리라
파 리
짓물린 도시의
껍데기를 핥으며
너는 거꾸로
좌선 중이다
가시 철망과 엽총으로
제 몸을 찢으며
너는 뒷발로만
합장을 한다
너의 염불이
시간을 태우는 지하실
거대한 죽음이 돌아누워
돈벌러간 귀신을
기다리고 있다
약 속
하나님은 나의 친구입니다
내게 있어 그는 하늘군
으로 통하고도
한 뼘이나 남습니다
나는 그의
간이 큰 친구입니다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그의 집이 불확실한 날에
활활 타오르거든
우리 동네 나즈막한 십자가 밑에서
꼬옥 만나자
그러나 그의 집에 불이 붙어서
머언 내집까지 불길이 스미고
그의 십자가 잿더미로
변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이제는 압니다
그는 거기에 다만
있을 겁니다
어머니의 집
어머니의 집은 항구처럼 어지러웠다
저무는 바다에 기인 아버지의 모습은
구시대의 상놈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시대에 없이 출몰하는 태양은 일찌기 없었다
어머니의 손이 아름답지 못한
한송이 장미를 꺾으시는데 놀라워라
어느 여자의 무딘 비수일까
바다 꼭대기서 보아라 실명의 천사여
진실로 그대 잠속을 오락가락하며
녹쓴 문고리를 이때껏 피로 물들이는
그 여자의 무심한 옹고집
고집스런 흙냄새,진흙의 냄새
기억에도 없는 꿈의 짐승이여,칠흙같이
어두운 눈이여, 밤이여, 꽃이여
아카시아
바람의 자식들이
울고 있다
조개피에 개똥
담아놓고
깡통 속에 오줌
부어놓고
바람의 자식들 줄줄이
엎드려 통곡한다
-피를 쏟으란 말야,피
-살점을 뜯어 내라고
아무도 그렇게는
못 울 것같은
울음이 독이 오른 바람의
자식들 땅을 치며
통곡하더니
만세,만만세
순식간에 흩어져
아카시아
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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