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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랑이의 칼(시평 200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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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878회 작성일 09-05-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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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들이 많이 사는 땅이 있었다. 땅덩어리도 호랑이 형상이었다. 토끼도 있었고, 사슴도 있었고, 강아지 돼지도 더불어 살았다. 호랑이들 어릴 적엔 고양이만도 못하긴 했으나 새끼호랑이는 청년호랑이로 무럭무럭 자라곤 했다. 호랑이들은 저마다 사이가 좋을 때도 있었다.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곶감도 힘을 합쳐 물리쳤다. 토끼, 사슴, 강아지, 돼지도 사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가난할 때에는 그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호랑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서부터이다. 아니면 세상이 변해 먹을 것이 많아지면서부터이다. 고양이 만할 때에는 곡류를 먹어도 잡풀을 먹어도 생선을 먹어도 되었다. 새끼호랑이로 자랐을 때에도 별 차이는 없었다. 이때에는 토끼, 사슴, 강아지, 돼지도 살 만하였다. 그런데 청년호랑이가 많아지면서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호랑이들 사이에 육류 섭취는 불

법이 된지 오래였다. 육류 섭취는 너무 강력한 호랑이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호랑이가 착하고 자연스러운 호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고기를 먹지 않고서 하루를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청년호랑이들은 아무도 몰래 육류를 즐겼다는 것이 토끼, 사슴, 강아지, 돼지들의 개체 수 감소로 알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호랑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하를 호령하던 청년호랑이가 늙은 호랑이가 되었다. 이빨도 빠지고 발톱도 빠지고 목청도 죽어버렸다. 왕년에 빚이 남았던 젊은 호랑이들이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고기를 먹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호랑이들이 한데 뭉쳐 늙은 호랑이를 다그쳤다. 고기를 먹다니, 호랑이가 고기를 먹다니, 젊은 호랑이들의 판결은 늙은 호랑이의 가죽을 벗겨 마을 앞에 걸어놓자는 것이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늙은 호랑이가 마침내 숨겨둔 칼을 빼어들었다. 어떤 호랑이든 깊숙이 갖고 있는 칼이었으나 쉽게 빼들지는 못했었다. 늙은 호랑이 칼을 빼어들어 허공을 찔렀다. 마구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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