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시와상상 200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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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나믄 개의 아이디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비밀번호도 모두 여나믄 개인 셈이다. 내가 기억해야할 숫자의 조합도 그 이상이다. 그만큼 비밀번호도 따로 매달려있는 셈이다. 비밀번호는 나의 밥이고, 옷이고, 집이다. 비밀번호가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못한다. 컴퓨터도 열지 못한다. 돈도 꺼내지 못한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녀를 만나지도 못한다. 그녀를 찾아가는 통로에도 어김없이 비밀번호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숫자가 그녀의 얼굴을 만든다. 숫자가 그녀의 목소리를 만든다. 숫자가 그녀의 향기를 내보낸다. 해서 비밀번호는 나의 목숨이고, 나의 미래이고 나의 그리움이다. 나는 비밀번호에 붙들린 셈이다. 나는 숫자들의 조합에 꼼짝 없이 갇혀버렸다. 하다보니 거꾸로 나 역시 그녀의 그리움 속에 하나의 비밀번호이거나, 하나의 숫자에 지나지는 않는지 궁금해져 버렸다.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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