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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결혼행진곡이 울리기 전에/장생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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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795회 작성일 02-06-1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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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결혼식 날이었다. 미자는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일어나서 오늘 결혼식에 앞서 해야할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아침식사를 하려면 아직도 두어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밥상을 준비해 온다 하더라도 그 밥이 넘어갈 리는 없을 터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어젯저녁부터 벌써 가슴이 콩닥거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좋은 날에 밥은 웬 밥이란 말이냐. 한두 끼 정도야 굶어도 좋았다. 밤새 잠깐이라도 눈을 부쳐보려 무진 애를 썼었지만 끝내 그녀는 온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콩닥거리는 가슴이 전혀 가라앉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어쩄든 아침식사가 끝나면 그녀는 사우나에 들렀다가 바로 미장원으로 달려가야 하고, 그 다음에 식장으로 달려가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우선은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으니 얼굴에 화장발이 설지 걱정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내 남자가 되었는데, 무어 다급해 할 거 있어. 그녀는 그제서야 조금 안정이 되어갔다.
세상에 내가 그 남자를 차지하다니....... 생각할수록 기쁘고 감격적이었다. 미자는 하마터면 그를 놓칠 뻔했던 아슬아슬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말했었다.
"미자 씨! 난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남자야. 그래도 좋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내가 아는 철수 씨만으로도 가진 게 너무너무 많은데, 더 무얼 바라겠어?"
그가 말했다.
"나하고 결혼하면 사글셋방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그래도 좋아?"
미자가 대답했다.
"응, 사글셋방이면 어때? 철수 씨가 옆에 있는데......."
그가 또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엄마는 어떻게 모시고 살려고 그래? 그래도 좋아?"
그녀는 굽히지 않고 대답했다.
"응, 부모 없이 태어나는 자식 보았어? 그야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남들처럼 폼나는 목걸이나 반지도 못해 줄 텐데....... 그래도 좋아?"
미자가 대답했다.
"응, 그런 게 무슨 필요가 있어?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는 또 말했다.
"신혼여행을 갈 만큼 내가 한가하지가 못한데, 그래도 좋아?"
미자가 대답했다.
"응, 그래도 좋아."
그제서야 그가 말했다.
"그럼 결혼하지 뭐. 나중에 딴 소리 하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절대로 난 딴 소리 안 할거니까, 빨리 날짜나 잡아. 식장도 예약을 해야잖아?"
그때 그녀가 만약 한 번이라도 고개를 저었거나, 뾰루퉁하기만 했어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남자였다. 미자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분명 자신이 더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에겐 그 남자가 아니면 세상에 남자는 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완전히 홀딱 반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화장실 가기 전의 다급한 마음이었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젠 상황이 다른 거 같았다. 오늘까지도 그에게 굽신거리고 황송해 하며 절절 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까짖게 어쩔 것이냐. 이미 식은 진행이 되고 있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물리기라도 할 수가 있는 일이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녀는 너무 많은 손해를 본 것 같았다. 자신이 무조건 저자세이다 보니, 그녀의 가족들까지도 그에게 저자세가 되어버렸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래도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위세도 당당한 그의 가족들이었다.
손가락에 두어 돈짜리 금반지 하나 해주면서도 그의 어머니는 마치 대단한 선심을 쓰는 듯 거들먹거렸다. 마치 자기의 아들이 대단히 똑똑한 남자라서 그를 차지한 여자는 누구든 복을 거저 줍는 일인 줄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찍 소리 하지 말고 시집에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미리감치의 선전포고를 서슴없이 해대고 있었다.
미자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생각할수록 약이 올랐다. 이걸 어떻게 한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내어야 했다. 미자는 사우나에 가서도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미장원에 가서도 꾸벅꾸벅 졸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러나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하지 뭐....... 그녀는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하고 시간에 맞춰 식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화장을 마무리한 뒤에 그야말로 황홀하기 짝이 없는 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서서히 꿈같은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오들오들 떨려왔다. 이거 왜 이러는 거지?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으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 사이 턱시도를 멋지게 차려입은 그가 신부대기실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김미자, 비유티풀 남버 원이네!"
그녀는 그러는 그를 곱게 흘겨보았다.
"미자, 너 평생 이렇게 예쁠 자신이 있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미자는 부아가 끓어올랐다. 예전 같으면 그녀는 분명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었다.
"응, 자기만 옆에 있어준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미자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야, 박철수! 너 이리 좀 와 봐!"
그가 어이가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신부대기실로 들어왔다. 너 아침 무어 잘못 먹은 거니? 하는 기색이었다. 미자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박철수! 너 그 말 다시 한 번만 더해 봐!"
그가 멈칫거렸다. 밖에는 벌써 하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가 돌연 등을 돌려 달아날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미자의 고함소리가 다시 터져나왔다.
"박철수! 내 말 안 들리는 것이여?"
그가 나가려던 발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약간 기가 죽어 말을 더듬거렸다.
"미자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무슨 짓은? 어디 한 번 물어볼까? 만약 대답이 시원찮으면, 나 오늘 여기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일 테니까 알아서 하시지."
"뭔데?"
"박철수, 다시 한 번 말해 봐. 뭐? 바빠서 신혼여행을 못 간다고? 어디 여기서 다시 한 번 말해 보라고......."
그가 황급히 대답했다.
"아냐, 갈 거야. 다 준비되어 있어."
"어딘데?"
"하와이......."
"그려? 그럼 이 반지나 목걸이는 언제 바꿔줄 거야? 이런 싸구려를 어떻게 예물로 주냐? 자기가 싸구려인 거야? 아니면 내가 싸구려인 거야? 말해 봐!"
그가 말했다.
"잘못했어. 내 금방 바꾸어 줄게. 다니어몬드건, 비취건, 뭐든지 해줄게."
그녀는 계속 그를 추궁했다.
"신혼부부가 사글셋방이 무어냐? 철수 씨는 그렇게 능력이 없어? 아니면 마마보이야?"
그러는 사이 시어머니가 신부대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뒤바뀌어져버린 두 사람의 행동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미자는 기왕에 그녀를 무시하기로 했다.
"철수 씨! 빨리 대답해. 대답하지 않으면 나 여기서 안 움직인다고......."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미적거리자 다급한 시어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아가, 이 좋은 날에 왜 그러니? 네 시아버지가 다 준비하고 있단다. 내가 아무렴 내 아들을 오랫동안 사글세 신세지게 하겠니?"
미자는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아들만요? 저는 사글세 오래 살아도 되는가요?"
"이 애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바늘 가면 실 가는 거지......."
"좋아요."
그녀는 다시 철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과해! 이제까지 내 애간장을 얼마나 태웠어?"
그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다신 속 안 태울게."
"한 가지 더....... 앞으로는 날 하녀 취급하면 안 돼. 날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아도 안 돼. 내가 부탁하는 건 뭐든지 일 순위야. 회사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들어와야 돼. 어머니한테 나보다 더 잘하면 안 돼. 다른 주머니 차면 안 돼. 결혼기념일에는 무조건 해외로 여행가야 해. 아이가 생기면 마음가짐을 똑바로 해야 해. 내가 늙어 쭈그렁 할머니가 되어도 내 곁을 떠나면 안 돼......."
그것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무조건 응,응 거리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신부대기실을 나섰다. 신나는 결혼행진곡이 퍼지고 있었다.

--<장생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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