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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남궁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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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5,087회 작성일 02-06-1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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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는 교직에 입문한 지 이제 겨우 반 년째이다. 그는 금년 2월 서울의 모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이곳 인천으로 오게 되었다. 그가 누구나 원하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인천을 택하게 된 데에는 물론 까닭이 있었다. 그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그동안 잃어버린 여유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시골에는 좀처럼 직장이 나서질 않았다. 겨우 나선 곳이 이 인천이었다. 허지만 그는 서울을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다행이라 여겼다.
성구는 본래 어린 시절을 전라도의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 곧 금만 평야에서 보냈다. 그는 일 많은 들녁의 야무진 소년으로 자라면서, 자연의 흙과 태양과 땀으로 온몸이 항상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그을음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어 온몸이 새까맣다. 새까만 얼굴에 두 눈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서울로 입성한 시기는 중학교를 마칠 즈음이었다. 그는 여차저차한 일로 아버님 하시는 일이 잘못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었다. 그것은 못내 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어쨌든 그 여파로 그가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뜰 때까지, 그는 물론 그의 가족 전체는 참담한 서울의 변두리 생활과 공단 주변의 천막가게 생활로 어두운 객지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에게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 것은 그가 그렁저렁 학업을 계속하여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었다. 인천의 모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젊은 교사를 초빙하기 위해 직접 대학을 방문한 것이다. 서울 생활에 기진맥진하여 뜨고 싶어도 뜰 재주가 없어 안달하던 성구는 이때가 기회라 싶어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인천행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 교감과의 인연도 시작이 되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이 교감 ,곧 윤 교감 역시도 S대 출신으로서 이왕이면 동문 후배를 모시고 싶어 모교를 찾았다고 한다.
교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성구은 우선 여러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학교의 제반 근무 상황에 관하여도 신임교사 연수를 통해 교육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이제부터는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과, 또 하나 순수한 학생들과 어울려 우리들의 미래와 꿈과 인간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윤 교감으로부터는 따로 교사로서의 소명의식과 학생들을 지도하는 요령에 대하여 지도를 받았는데, 이것은 순전히 윤 교감의 성구에 대한 따스한 배려 중의 하나였다.
성구가 드디어 설레이는 가슴으로 들어선 첫 교실에서의 첫 수업은 그러나 짖궂은 학생들의 질문 공세와 장난스런 수업 방해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허지만 오히려 성구은 그 가운데에서도 요즈음 학생들이 상당히 무기력하리라 추측했던 당초의 예상이 무너지면서 뜻밖의 신선한 충격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시 공부에 찌들리고 획일화된 권위주의적 교육정책에 휘말려 심신이 다소 병이 들어보이기는 하였으나,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학생들의 세계는 놀랄 만큼 여유가 있었고 가슴은 무한히 열려 있었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성구은 그의 학교 생활이 학생들과 어울리며 얻는 즐거움보다, 교육 행정이나 환경 또는 무사안일 속에서 안주하는 동료 교사들로부터 얻는 스트레스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신주의의 팽배감이 온 교무실을 짓누르고 있었다. 성구은 화가 났다. 미래 한국의 2세들을 위한 교육 현장이 호구지책을 위한 평생 직장으로 전락해가는 느낌마저 일었다.
어느 날 아침 대수롭지 않은 일로 인해 성구은 아주 곤혹스런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교실에 들어서서 학생들로부터 인사를 받기 위해 마악 교탁을 짚는 순간이었다. 교탁은 손을 대는가 싶기도 전에 거의 자동적으로 무너져 주저앉아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 아직도 수리가 안 되었나?"
반장 학생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일어섰다. 성구은 이미 두어 번이나 수리를 지시했기 때문에 반장 학생으로부터 대답을 듣고 싶었다.
"이야기는 해보았는데요, 소용이 없습니다. 목공실에선 대꾸도 안해요. 다른 일로 몹시 바쁘답니다."
성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교탁을 수리하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마친 후 성구은 곧바로 주임 교사를 찾았다.
"주임 선생님, 목공실 직원이 학생들에게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라고 불평이 많던데요, 교탁 수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사립 학교의 특수성을 성구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은 아니었다. 학교 내외의 제반 사항은 재단 측의 손에 달려 있으며, 서무과는 재단 측의 수족과 같은 존재이고 목공실은 그 서무과의 감독을 받고 있는 형편임으로, 목공실 문제는 아무래도 서무과에 가서 따져야 할 문제인데 어느 누가 감히 그런 뱃심을 갖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어쨌든 이쯤 되면 재단 측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는 자신들의 비겁한 자세가 문제라면 문제인 것이지, 교사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을 굳이 탓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주임 교사는 오히려 건방지다는 눈빛으로 성구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뻔한 걸 가지고 웬 시비냐 하는 투인 것이다.
"이봐요, 장 선생, 나한테 지금 따지자는 거요?"
"아니,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이래가지고는 정상적인 수업진행이 어렵지 않느냐라는 말입니다. 교탁뿐만이 아니라 책걸상도 대부분 낡아서 삐그덕거리는데 어느 세월에 고칠 겁니까?"
성구는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주임 선생은 분명 말투나 태도로 보아 엉뚱한 트집을 잡으려 애를 쓰는 기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 선생, 이젠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겁니까? 도대체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 난리예요? 당신 문제 교사 아녜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주임 교사는 목공실 문제는 젖혀두고 성구의 당돌한 행동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임 선생님, 제가 문제 교사라구요? 하늘이 알 겁니다. 제발 정신들 차리세요."
성구는 치밀어오르는 울화를 달랠 길이 없어 교무실을 나와버렸다. 그때 저만치 복도 끝에서 윤 교감이 그를 손짓하여 불렀다. 다가간 성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윤 교감이 말했다.
"장 선생, 선생의 날카로운 성격을 어려웠던 청소년기의 환경 탓이라고 측은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중하세요. 여기에선 학생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료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더욱 중요한 일이예요.도태되진 말아야지요."
성구는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교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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