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리 백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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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 아침 금강리 고집불통 백부님 댁을 들어서면
찌그러진 양철대문을 밀치자마자 앵두나무가 서 있었다
사납게 짖어대는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었고
시끄러운 어미거위 새끼오리가 반갑다고 뒤뚱거렸다
어서 오너라 백부님 칼칼하신 목소리 들으며
개금발로 토방에 오르고 마루 끝을 통해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서서 윗목 구석에 쪼그려 앉으면
이미 새벽부터 제사상은 성대하게 차려져 있었다
제사상 위편 한켠에는 언제나 한 백년쯤 되어 보이는
백마를 탄 기사의 그림이 십자가처럼 걸려 있었다
나는 하릴없이 늘상 그 그림이나 바라보면서
저 당당한 기사는 아마도 천사의 대장이리라
저 빛나는 백마는 아마도 날랜 천마이리라
저 기사의 손에 들린 검은 분명 전설의 명검일 테고
저 기사는 언젠가 그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겠지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그 그림에 빠져 있었고
그것은 변함없이 내 반평생을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
팔순을 넘어 사신 백부님께서 운명하셨다
나는 내가 늘상 쪼그려 앉아있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아
문득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그림 대신 근엄하신 백부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 나는 그제야 알았다
백부님은 평생 자기가 타고 갈 백마를
자신의 안방에 그렇게 준비하고 계셨구나
그리하여 오늘 그 백마의 기사처럼 하늘나라의
공주를 찾아 결국 떠나셨구나
김제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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