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꽃-아산호 가는 길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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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춘향골에 도착하면
그 한 귀퉁이 오륙도집에 다 시들고도 꽃인 양하는
이른 바 싸가지꽃이 싸가지 없이 피어있다
판소리의 구수하고 기가 막힌 전라도 사투리는
사투리가 아니라 남원의 본딧말이라는데 고나 헤이―
아무렴 판소리로 말하면 그 중에도 춘향가 같은 동편제는
남원이 바로 성지라는 싸가지 중의 싸가지렸다
서방 잃고 새서방 찾지 않으니 모두가 믿더라
싸가지 같은 싸가지 같은 아, 그놈의 싸가지 같은
피 터지는 목소리에 오금이 절절,
남산만한 젖가슴에 가슴이 철렁,
내지르는 싸가지에 아랫배는 와르르 와르르
싸가지 없는 놈 모두 가고 놀부나 와라 변강쇠나 와라
고나 헤이―
눈동자만 요리조리 굴리는 놈은 싸가지 없는 놈
느닷없이 일어나 화장실 가는 놈도 싸가지 없는 놈
한 가락 떨어지고 못 받아주는 놈도 싸가지 없는 놈
언제 소리가 이다지도 존경스러웠는지 알 턱은 없지만
고나 헤이― 싸가지 없는 놈들끼리 어울리는
저승의 문턱은 기가 막히게 가깝기도 하여라
닭이 서울 간다고 비둘기가 되냐
싸가지 없는 놈은 싸가지 없는 동네에서
싸가지나 만지며 평생 없는 싸가지 달덩어리 만들어라
먹기 위해 술을 팔고 술 팔다보면 절로 나오는 소리
그것이 싸가지라면 팔자 중에도 신명 나는 팔자다
그것이 싸가지꽃이라면 꽃 중에도 아름다운 꽃이다
2002 문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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