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떨어져도 꼭 거미줄에 앉는다-아산호 가는 길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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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에서 뽑아내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덫이었으니
먹이는 영락없이 제 발로 들어서게 되어있는 것이다
굳이 위장하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누구도 그녀의 향기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먹이들에게 거미줄은 슬픈 잔칫상이다
꽃은 떨어져도 꼭 거미줄에 앉는다
거미줄에 앉아도 꽃은 꽃이다
그녀는 사방에 첨병을 숨겨두고 여유 있게 침을 흘린다
컥 소리를 내며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문득 눈을 뜨면
거기 거대한 거미 한 마리가 지순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결박당한 포로를 조롱하며 그의 희망이었던 발톱 사이
미처 감추지 못한 그녀의 옷고름이 그곳에 물려 있다
꽃은 떨어져도 꼭 거미줄에 앉는다 아름답게 흐느끼며
대개 그들은 의연하게 알몸이 되어 죽기를 원한다
아산호는 그녀의 옷고름을 매만지며 치마를 들썩이며
그 무시무시한 발톱을 베일 속에 감추고 있다
꽃은 떨어져도 꼭 거미줄에 앉는다 아름답게 흐느끼며
1995 <솟대문학>, <내항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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