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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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내게 한번도 생리대를 들킨 적이 없었다
장롱 구석 깊은 곳에 꿈처럼 숨겨진 어머니의
자줏빛 기다란 옥양목 생리대를 끌어내리며 풀풀
나는 어머니의 몸 어딘가에서 피는 꽃인 줄만 알았다
어머니 조금만 떨어져도 헛것이 보이던 유년의 우주에서
그녀보다 더 위대한 신은 도무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유혹하는 숱한 신들은 모두 어머니의 딸이었다
그 어머니의 딸들 다독이며 나는 오늘 역설의 꿈을 꾼다
이별하지 않고도 제 얼굴 전설처럼 볼 수 있다면
이별한 뒤에는 무엇이 될까 두려울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옥양목 생리대는 아직도 시골집 장롱 위에
마른 꽃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몸짓으로 앉아있는데
나는 그녀의 피로 뼈로 살점으로 이 땅을 기어다니며
피고 지는 꽃밭 사이나 헤집는 꽃뱀이거니 물뱀이거니
진홍으로 함께 물들며 숨이 막혔던 기억에 전율하면서
아직도 저물지 않는 하루해를 몸살하는 핏덩이거니
시와정신 200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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