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에 부는 바람-아산호 가는 길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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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난 그녀는 계단 꼭대기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침이 왔다 햇빛은 그녀의 껍데기에서 반짝였다
그녀의 알몸은 상상만으로 족하다 일종의 용서다
어둠은 짙은 어둠일수록 더 두렵고 신비스럽다
변산반도의 끝머리에 부는 실낱같은 바람은
기가 막히게 부드러운 파도 소리로 애간장을 녹인다
꼭 그만큼의 빠르기와 꼭 그만큼의 애틋함과
꼭 그만큼의 간절함과 꼭 그만큼의 서운함으로
황홀한 일몰을 쫓아 구불구불 해변길을 달리다가
봉우리 사이로 끝내 놓쳐버린 서운함이
저무는 바닷가에 그녀를 벗겨놓는다
그 진했을 일몰의 장엄함도
그녀 하나의 알몸을 당해내지 못한다
죽는 날까지 가슴 설레며
살 수 있는 이유이다
세기문학. 2000.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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