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장과 관련된 시-아산호 가는 길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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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꽁꽁 언 손 반갑게 흔들며 겨울이 오고 있네
다시는 속지 말아라 긴장도 해보지만
군불 치땐 구들장은 따땃하기도 했었지
세월이 흐르고 사람은 늙고 세상도 변해서
식어빠진 구들장만 오돌오돌 떨고 있구나
올 겨울도 어찌하면 쓸쓸하지 않을까
아궁이 곁에 짚단 가득 쌓아두고 되레
눈 내리고 바람 불 날만 학수고대하여라
둘
폭싹 가라앉은 구들장에 주저앉아
꼽추처럼 엉뎅이 뎁힌 적도 있었네
윗목에 얼어붙은 숭늉 사발에서는
얼음장 갈라지는 쇳소리 난무하고
봉두난발 문풍지 소리 소름 끼치는
그 겨울밤에 구들장은 깨어 있었을까
지푸라기 몇 올 태우다만 새벽 눈 부릅뜨고
셋
밥 먹다 말고 그대 무얼 하나 이 아침
건져 올리는 숟갈 속엔 퀭한 눈알만 둘
식어빠진 구들장 위로 때 묻은 방석 당기며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대의 겨울을 생각한다
뜨거운 태양도 시간이 지나야 달아오르나니
지금은 오직 남의 밥상에 떡이로다 슬프다
등줄기에 화살 같은 빛살 하나 어서 꽂히라
돌아앉는 구들장만 맥없이 착하구나
문예운동 200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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