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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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있을 때 모은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능력이 있을 때 받은 대접은 잘못이라고 한다
힘이 능력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바뀌다보니 그것도 이제 죄가 되었다
알고 보면 비로소 제 이름을 찾은 것이다
세상이 바뀔 수도 있기는 있는 것인가보다
그렇다면 세상은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 또한 어딘가에서 죽음처럼 쉬고 있다가
또다시 죽순처럼 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힘이라곤 지푸라기 하나 잡을똥말똥한
우리네 가슴은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살아서 모진 꽃은 시들어도 독이 있나니
우리 너무 무섭게 칼을 뽑지는 말자
혁명은 반드시 소리 없는 혁명이어야 할 것이다
칼 들지 않고 총 들지 않고 돌팔매질 없이
눈빛으로부터 가슴으로까지 번져가는
따뜻한 혁명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스스로를 값싸게 팔지 않고
그리하여 다시는 남의 피를 마시지 않고
그리하여 다시는 내 아들딸이 쉽사리 체념하지 않는
그런 혁명이어야 할 것이다
별을 달아 빛나는 사회 되어야 하고
힘이 있어 너그러운 사회 되어야 하고
주어서 남기는 사회 되어야 하고
들풀처럼 언제라도 일어서는 사회 되어야 할 것이다
대낮에도 그대는 무시로 칼을 내밀었으니
그대를 의심할 때는 캄캄한 어둠이었으나
밝은 아침에도 우리 의심하는 마음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솟아오르던 깊은 분노조차도
오늘 모두 우리들의 소중한 것이 되었으니
이제는 죽어도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몇백 번 고쳐 죽어도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1993. 5. 1. 인천문단 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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