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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자장암의 금개구리 2(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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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674회 작성일 08-04-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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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의 금개구리 1

나는 그것이 나의 손금에 담긴 내 운명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들이 말로 뱉어낼 수가 없었던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죠. 얼마나 좋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들은 나와 함께 손금을 내미는 다른 사람들의 손금에 대해서는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곤 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나는 서서히 네 운명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 운명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거나 아니면 운명론 자체를 무시해 버리는 방향으로 돌아섰던 지도 모르죠.
사실 나는 요즘 들어 새로운 고민거리를 풀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걸어왔던 시의 길은 결국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던가. 나는 시에 내 소중한 십여 년의 세월을 투자하며 다부지게 부딪쳐 왔지만, 시는 나에게 아직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독자나 평자들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어서도 시는 아직 아무런 의미도 던져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만 같았습니다. 구역질나는 시단의 풍토는 학연과 지연과 기타 무수한 인연들로 분명하게 줄을 서고 있는 것만 같았죠. 그러나 똥개의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그런 일부 시단의 풍토가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기실 나 자신이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지요. 나는 분명 똥개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교직 사회는 어떤가요? 혹시 가장 전근대적인 교육 자세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말아먹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리 개혁을 시도해 보라 이겁니다. 교육계는 꿈쩍도 하지 않을 자세입니다. 그들의 생각이 무언지 아십니까? 교육자들이 나라의 경제를 이 꼴로 만들었나요? 교사들에게 건네는 촌지가 나라를 망치는 뇌물이었나요? 교사의 사기를 떨어트리면 교육개혁이 되는 겁니까? 일선 교사들이 참교육을 부르짖을 때에는 그들을 교단에서 몰아내고 감옥에 처박아 넣었으면서 당신들이 참교육을 부르짖으면 따라갈 교사들이 있으리라고 믿었나요? 교사들이 학생입니까? 어린애입니까?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익힌 방식대로 그냥 살아가겠다 이겁니다. 나라가 이 꼴이 된 책임은 책임질 인사들에게 당당하게 물어라 이겁니다. 그러니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가고 있었어요.
개혁은 밑으로부터 충분히 모가지가 잡혀 있는 셈이죠. 당연한 일입니다. 교사의 창의적인 능력과 발전적인 자세가 빨갱이나 운동권으로 비쳐지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였으니까요. 국어나 영어, 수학 등의 주지 과목이 아니면 학생들조차 열과 성이 떨어지고 마는 세상입니다. 세칭 기타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의 입장을 들어 보셨나요? 그들에게는 더 이상 교단에 서 있어야 할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다만 먹고살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 그 순간부터 그는 이미 민족 앞에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나라의 형편이 이상해지더니 급기야 공무원들의 봉급이 삭감이 되고 정년이 단축이 되고 나이가 들수록 봉급을 줄인다느니 말도 많습니다. 나이가 들면 나가라는 소리이니 더 붙잡고 아옹다옹해 봐야 스스로 비참할 뿐인 냉혹한 현실이 바로 오늘이 아닙니까? 나는 하루라도 빨리 교단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부모님과 형제들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형제가 많다 보면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기엔 너무 벅찼지요. 내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고, 부모님께서도 아직은 그리 연세가 많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집을 줄여서라도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집을 구입할 때 얻었던 대출금의 이자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죠.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 약간의 고통을 감수하자는 이런 내 의견에 그러나 형제들은 모조리 반기를 들었습니다. 부모님에 한해서는 그것도 예외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부모님께 충격을 주거나 고생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말이야 옳은 말이고 효성도 지극했죠. 어떻게 늙으신 부모님께 자식이 당분간일지라도 고통을 감내해 달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래서 나도 이제는 무언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된 것입니다. 정말이지 내가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직장을 미련 없이 때려치우고 그 새로운 세계에 얼마든지 도전해 보고 싶었지요. 교직 생활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침내 소설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무 자르듯이 승부가 확실하게 나는 것인가요?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보다도 말입니다.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떻게든지 그녀를 내 곁에 묶어두는 것입니다. 그녀가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나는 그녀에게 최선의 배려와 충성을 아끼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머지않은 날에 그녀와의 결혼에 골인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송 화백에게 물었지요.
“그렇다면 말입니다. 인간은 너무도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대운이 기다리고 있어서 펑펑 놀아도 기회가 오게 되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대운이 없어 기회를 잡지 못하고 비실대며 살다 가야 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송 화백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돈이나 명성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습니까? 성공이라고 하는 것도 물론 그렇지요. 보통 사람으로 살다가 평범하게 가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다시 물었습니다.
“어쨌든 사주가 좋지 않은 사람이 대운을 잡는 경우는 없다는 말인가요?”
“글쎄요, 아마 그렇다고 보아야지요.”
“하지만 어딘가 빠져나갈 구멍은 있지 않을까요? 무슨 문제든 처방이란 반드시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방법이 있기는 있지요.”
나는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생일을 다시 받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사주를 다시 받는 것이니 대운을 잡을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사주는 반드시 신이 내린 사람으로부터 받아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곧 죽어도 살아날 방법은 있다 하지 않았는가. 내 사주가 아무리 나쁘다 할지라도 이제 그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신이 내린 사람이야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듣고 있던 강 선배가 말했습니다.
“내가 몇 년 전 아주 어려운 처지에 빠졌었지요. 평생 모아 두었던 재산이 한꺼번에 모조리 사라져 버렸어요. 어리석게도 사람을 믿은 탓이었지요. 견딜 수가 없었어요. 불쌍한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어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면목도 없었지요. 그래서 집을 떠나 전국을 헤맸어요.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가. 평생 남에게 죄다운 죄 한번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주어졌는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집에 돌아갈 수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어요. 어딘가에 분명 문제가 있었으므로 이런 결과가 벌어졌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내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려야 하는가.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말인가. 그러다가 나는 우연히 신이 내렸다는 한 영험한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 분이 나를 보더니 단번에 그러더군요.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담벼락이 당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고요. 나는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바가 있어 순간 다급하게 외쳤지요. 할머니, 정말입니까?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보인단 말입니까?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더군요. 그 담벼락 때문에 당신의 고통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야. 아직 멀었어, 라고 말입니다. 나는 할머니 앞에 무작정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애원했지요. 할머니, 제발 그 담벼락을 풀어 주세요. 그걸 알려고 제가 여태껏 헤매고 다녔습니다. 신이 절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할머니를 만났으니 전 이제 살아날 길도 있다고 믿습니다. 할머니가 재차 그러더군요. 당신의 운세는 끝났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일어설 수가 없어.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결국 할머니는 내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것은 일종의 방생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의 말대로 어느 해 저물녘에 한강 고수부지로 나갔지요. 여러 가지 제수와 미꾸라지 수 십 마리를 들고 말입니다. 적당한 자리에 제사상을 차리고 아홉 번 절을 하고 미꾸라지를 강물에 집어넣은 다음 나는 그분이 시킨 대로 만년 후에 만납시다 하고 외쳤지요. 그리고 나서 막 돌아서려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갑자기 강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어요. 그 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요. 그러자 수십 미터에 이르는 강물이 둔치를 향해 출렁이고 있었어요. 바람도 없었지요. 둔치 밑은 물이 쏟아져 나올 만한 하수구도 보이지 않았구요. 콘크리트로 잘 다듬어져 있었으므로 그곳에 무슨 다른 것이 설치되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하며 탄성을 질렀어요. 참으로 영험한 할머니셨구나. 드디어 나를 둘러싼 담벼락이 허물어지고 있구나. 그리고는 말입니다. 그 뒤부터는 하는 일마다 만사형통이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강 선배님은 자신의 운세를 방생으로 바꾸어 놓으셨군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고 보아야지요. 중요한 것은 사람은 자신의 운세를 관리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살 수는 없는 거지요. 그것은 인체의 바이오리듬과도 비슷한 것인데, 적절히 대응하며 물러서기도 하고 나아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운이 물러가고 있는 시점에 무리하게 큰일을 시도하면 당연히 손해를 입거나 몸을 상하게 되지요. 또한 운이 다가서는 시점에 잠자코 앉아서 낮잠이나 잔다면 그 운은 그냥 왔다가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겁니다. 나는 그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결국 나는 매일매일 나의 운세를 알아보기 위해 아예 사주 보는 법을 배우기로 했어요. 매번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역학을 잘 아는 선생님을 찾게 되었고, 그 분한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송 화백님마저도 제 실력을 인정해 주는 형편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신이 내린 사람하고는 다릅니다. 다만 나의 운세를 관리하기 위해 역학을 배웠을 뿐입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이거 역사가 뒤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힘으로는 인생이나 자연이나 우주의 신비를 푸는 데에는 역부족일 것 같군요. 이러다가는 아예 신화의 시대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요?”
강 선배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우스운 이야기지만 요즘은 바야흐로 그 신화의 시대로 진입하는 듯한 인상이 짙습니다. 신들이 추앙 받는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송 화백의 작품도 제목에 신(神) 자가 들어가는 것은 모조리 뜨고 있단 말입니다.”
송 화백이 응수했습니다.
“그래요. 그게 참 이상하데요. 알고 보니까 문제는 신에 있었어요. 적어도 나한테만은 말입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살기가 어려워지고 비전이 사라지다 보니까 그런 현상이 오는 게 아닐까요? 인간은 본래 왜소한 존재잖아요? 자신의 왜소함을 느낄수록 전능한 존재의 힘은 더욱 커지는 것이 아닐까요?”
송 화백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강 선배에게 부탁했지요.
“오늘 밤 제 운세를 보아주시겠습니까?”
나는 강 선배에 대해 서서히 두려운 마음조차 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내 자신이 더욱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그 동안 내 능력보다는 막무가내의 오기와 치기로 내 주변을 점령하고 군림해왔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았죠. 그런 나를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군요.
강 선배는 절대로 섣부른 인물이 아니었어요. 그는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안으로는 무서운 치열성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송 화백이 말했지요.
“그러나 자신의 운세를 관리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열 여덟 나이에 만화가의 길로 뛰어 들었지요. 그리고 짧지 않은 세월을 그 길에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주목해 주지 않았어요. 스승님 역시 다른 문하생들보다 발전이 더딘 나를 처음에는 주목하지 않았어요. 내 그림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거든요. 내가 보기에도 전혀 세련되어 보이지 않았으며, 어딘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그림에 비해 부족한 구석이 많아 보였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까 개선할 부분이 어디인지도 잘 알 수가 없었을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절망했어요.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도 했지요. 이제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꿀 만한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그렸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후배들마저 유망주로 떠올라 보란 듯이 내 앞을 질주해 나갔어요. 참으로 참기 어려운 시기였어요. 정말 그림을 때려치우고 막노동판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던 때도 있었지요. 보세요. 내 덩치는 막노동판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덩치가 아닙니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남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 간에 나는 내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을 계속했어요. 그러다가 나는 내가 그림보다는 콘티가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닙니다. 하다보니까 스스로 터득하고 발견한 사실이지요. 그래서 그 뒤부터는 한 장짜리 그림을 열심히 연습하는 일은 제쳐두고, 여러 개의 그림을 그리며 연출을 시도하곤 했지요. 어느 날 선생님이 이런 나의 그림을 발견하셨어요. 나는 스승님의 눈이 그렇게 커지는 것을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나를 콘티 쪽으로 돌려 세웠지요. 그 날부터 나의 대운이 터지기 시작한 겁니다. 이건 자화자찬일지는 모르겠지만 대운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필요한 것은 또 있는 겁니다. 그 대운을 붙잡으려면 천재적인 능력과 성실한 노력, 그리고 창의적인 자세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여된다면 결국 그 대운을 붙잡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강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일에나 분명 천재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천재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대운을 만나면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일인자가 될 수가 있는 겁니다.”
내가 말했죠.
“일인자가 되는 데에 천재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그 일도 일 나름일 것이라는 생각도 버리지는 못 하겠네요. 아직 미개척 분야라면 천재성이 없더라도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구요. 어느 분야에서건 일인자가 반드시 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천재는 비극적인 면도 많이 갖고 있지 않습니까?”
송 화백이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성공은 건강과 명예와 부를 동시에 얻는 것이라고 보아야겠죠.”
우리는 다시 카오스 지하의 단란주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 웨이터가 들어왔고 송 화백이 발렌타인을 주문했지요. 웨이터가 약간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알아보겠다며 나갔습니다. 아마도 그 발렌타인이 지금은 없을 수도 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가 나가자 송 화백의 새로운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하생들과 카오스 직원들 간의 축구 경기를 매주 벌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연거푸 완승을 하다가 지난주에는 이상하게 커다란 점수 차로 패했다는 것입니다. 실력은 월등하게 나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연패한 상대편의 우두머리가 패인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유니폼 때문이라고 결론을 지었다나요.”
우리는 모두 너털웃음을 웃었습니다. 결국 문하생들이 유니폼을 새로 만들어 입은 그들에게 패하고 말았다니 요절복통할 일이 아닙니까?
웨이터가 발렌타인을 구해들고 들어오자 송 화백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축구 잘합니까?”
그가 이상한 얼굴로 송 화백을 바라보며 마지못해 대답하더군요.
“예, 그렇습니다만…….”
우리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강 선배가 말했습니다.
“다음에는 아예 축구 선수를 초빙해 오겠군요.”
송 화백이 말했습니다.
“우리 문하생들 말예요. 공 아주 잘 찹니다. 매일 새벽운동에 거의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있어요. 웬 줄 아세요? 출석률이 좋은 사람들에게 내가 푸짐한 상품을 약속했거든요. 그리고 게임에 이기기만 하면 또 다른 상품이 있구요. 작년에는 이 약속을 지키느라고 지출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설마 상품 타려고 부득불 새벽운동에 빠지지 않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요. 기껏해야 한두 명이나 상품을 타갈 줄 알았는데, 웬 걸요. 거의 전원에게 상품을 안겨주어야 했으니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 동안 그녀는 말없이 그저 듣기만 하고 있었죠. 다른 사람들이 말을 끝낼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는 표시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고 있는 것을 애타게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먼저 일어서자고 말할 상황은 아니었지요. 오늘은 우리가 손님이고 송 화백은 주인입니다. 주인이 정성껏 손님을 대접하고 있는 마당에 손님이 자리를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주량이 적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전혀 마시지를 못하고 있었죠. 몸의 컨디션이 최악의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강 선배가 역시 그녀의 표정을 읽었는지 연신 그녀의 손을 주무르며 혈액 순환을 돕고 있었죠.
송 화백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얼추 반시간이 지났으리라 여겨 자리에서 일어설까 하고 망설이는데 송 화백이 내 어깨를 잡았습니다.
“모처럼 부산에까지 내려왔는데, 마음 놓고 술을 마셔야지요. 내일은 오전에 좀 쉬셔도 되지 않나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기색을 살폈습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지요.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온 강 선배와 나는 그녀를 옆방에 밀어 넣은 후에 간단히 몸을 씻고는 머리를 맞대었습니다. 그녀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나와 단둘이서 바닷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어 했지만, 나는 강 선배로부터 사주를 풀어 보는 일이 더 급했습니다.
강 선배는 가방 안에서 작은 역학서적 한 권과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바야흐로 내게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죠. 그가 생년월일을 물었습니다. 서른둘의 나이에 양띠며 음력 모월 초하룻날 모시. 나는 그에게 이 사주를 대면서 스스로 머리가 쭈삣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동안 내가 몇 시에 태어났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 못 했었지요. 다만 당시 시골 부잣집 저녁 개밥 줄 때쯤이라고 다소 낭만적인 방식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하지만 부잣집 개밥 주는 시간이 도대체 몇 시라는 말입니까? 그런데 며칠 전 나는 어머님께 우연히 이 출생 시에 대해 분명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시골에서는 농사일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개밥을 주는 거야.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던 강 선배가 말했습니다.
“어머님이 두 분이셨군요?”
기절초풍할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항이 사주에 담겨져 있다는 말입니까?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초혼에 실패한 적이 있었지요. 그 큰어머니는 시집온 지 일 년 만에 몹쓸 병을 얻어 운명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해마다 그 큰어머니의 제사상을 차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모를 리가 없지요.
“맞습니다.”
내가 대답하자마자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님이 두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외할아버지도 두 분이셨습니다. 나는 내 과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만하면 그의 솜씨는 충분히 믿을 만한 것이었으니까요.
강 선배는 나의 운명에 대해 비교적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교적 희망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겸손한 말입니까? 나는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감격했지요. 나에게도 작지만 희망이란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대운이 나에게도 있었으며, 게다가 그것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라니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나의 운세가 나이가 들수록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나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란 참 묘한 존재더군요. 운세가 좋은 것이 아니리란 지레짐작 상태에서는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던 사주팔자가 그런 대로 괜찮다니 너무나 믿고 싶은 겁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의 노년기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습니다. 명성과 부가 넘치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이렇게 다가오는 대운일지라도 관리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을 들은 나로서는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나의 불찰에 의해 다가서던 대운이 방향을 바꾸어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이 무슨 낭패입니까? 그래서 나는 강 선배에게 물었지요.
“분명히 조심해야할 사항이 있겠지요.”
그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운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지요.”
그는 나에게 이 운 관리에 대해 차근차근 말해 주기 시작했지요.
“내후년에는 잠시 외국을 다녀와야 합니다. 액땜을 하자는 겁니다. 아무 데라도 잠시 나갔다가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다음 해에는 대단히 큰 손재수가 있어요. 이 재물을 잃으면 다시 일어서기 어려우니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선은 그 두 가지만 조심하시면 큰 탈은 없을 것 같네요.”
그는 내게 필요한 것은 화(火)의 기운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목(木)으로서 숲처럼 성하게 서 있는 상황이니 불을 만나야 활활 타오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그 불이 마치 깔짝대듯이 조금씩 다가왔다가 곧 물러가곤 했기 때문에 내가 활활 타오르질 못하고 어려운 지경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내가 가능한 한 화(火)의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고 말했죠. 그들로부터는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내가 옷을 입어도 아주 붉은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이름자도 바꾸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현재의 이름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왕이면 화의 성질을 지닌 발음의 글자로 고쳐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당장 그의 말대로 따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내가 누구의 무슨 말을 따르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비로소 사람들이 왜 역술에 빠져드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친 김에 그에게 내가 언제쯤이나 장가를 들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다시 무엇인가를 끄적대더니 대답했지요.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군요.”
답답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드시 좋은 여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가능한 한두 살이나 세 살 정도의 나이 차가 있어야겠군요.”
나는 다시 기분이 나아졌지요. 왜냐하면 그녀와 나는 두 살 차이였거든요. 그녀는 어쩌면 다소간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끝내는 내게 굴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가 중얼거리듯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예요. 주변에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지요? 쫙 깔렸어요. 토(土)가 여자거든요.”
내가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큰일이네요. 여자가 많으면 고생문이 훤한 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 여자들이 모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충분히 견뎌낼 능력도 있구요.”
나는 씩 웃으며 말했죠.
“그거 다행이군요.”
실로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나 자신의 생각만 믿고 살아왔던 내가 이렇게 갑자기 사주에 빠지다니요. 정말입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이 이치에 맞도록 되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물론 나는 논리보다는 비논리를 숭배해 오기는 했지만, 그 비논리도 일반적인 우주의 원리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였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는 한 번도 사주를 믿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약간 장난기 섞인 비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점집에도 가본 적이 없으며 역학에는 관심도 없었단 말입니다. 모든 것은 내 할 탓이라고 생각해 왔지요. 노력하면 그 만큼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고, 능력을 키우면 또 그 만큼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요즘에 와서 나는 그런 믿음이 문제가 있기는 있다는 것을 서서히 느껴가기는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능력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더라 이겁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더라 이겁니다. 세상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고,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우연찮게 이루어지는 신비한 구석도 있더라 이겁니다. 그러니 내 힘만 믿고 있다가는 큰코다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라는 두려움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내가 약화된 탓일 겁니다. 그것 말고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나는 신조차도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신비한 부분에는 영락없이 신의 존재를 가져다 부치는 것이라고 믿었죠.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스스로의 나약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나는 신에게조차도 얼마든지 대항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다가 안 되면 무릎을 꿇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비굴하게 처음부터 굴복할 필요야 있겠느냐고 생각했지요. 죽을 때 죽더라도 나를 믿고, 내 힘으로 살다가, 스스로 무너지자. 무너질 때에도 누구를 원망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그 모든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도 가라앉지 않는 설렘으로 이튿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강 선배는 일어나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접니다. 지금 부산 송도인데요. 예, 일행이 있습니다. 오늘 오후에 올라갈 겁니다. 예, 지금 부산이라구요? 잘되었네요. 저희가 그곳으로 가지요, 스님.”
우리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그는 어떤 스님과 약속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일어나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지요. 그녀는 이미 일어나 세수를 끝내고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친 뒤였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다행스럽게도 병색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강 선배가 웬 스님을 만날 것 같은데…….”
나는 우리가 그와 동행할 것인지를 은연중에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별안간 빛나기 시작했죠.
“그래요? 어떤 스님인데요?”
“나도 잘은 모르고…….”
나는 우리가 강 선배와 분리되어 우리끼리의 여행을 했으면 싶었죠. 부산에 왔으니 태종대도 가보면 좋겠고, 영도다리도 가보았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나가다가 경주에도 들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강 선배가 끼면 거북했지요. 그는 비행기를 이용해서 서울에 올라가기로 애당초 이야기가 되었었으니까요. 내가 말했습니다.
“우리끼리 돌아다니면 안 될까? 내가 많이 불편하고, 자기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잖아?”
그러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먼저 헤어지자고는 말 못해요. 좀 기다려봐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나 그녀는 강 선배와 헤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얼굴과 대답에서 그것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가 있었지요. 특히 스님을 만난다는 이야기는 결정적으로 그녀를 붙잡아 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중요할 때에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소한 일에는 잘도 듣는데 정작 들어야할 일에 있어서는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손해를 보기도 했지요. 그것은 대개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임에도 고집스럽게 일을 진행하다가 당하는 이미 예측된 손실입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나는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그녀가 근본적으로 나를 신뢰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서서히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생각은 곧 나를 가슴 아프게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언젠가 우리가 만약 어떤 결정적인 위험에 빠졌다고 가정했을 때, 그녀는 어쩌면 내가 선택하는 길을 따르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대단히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죠.
우리가 먼저 출발하여 스님을 기다린 곳은 부산극장 앞이었습니다. 잠시 후 나타난 스님은 우리를 근처의 한적한 다방으로 안내를 하더군요. 우리는 간단하게 인사를 끝냈습니다. 별로 알려진 것도 없는 이름인지라 나는 이름을 소개하기가 항상 어쭙잖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나는 대충대충 지나가게 됩니다. 이름을 다시 묻는 사람도 별로 본 적이 없었지요. 그냥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만 알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었습니다.
스님은 십대의 미소년처럼 무척 천진해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도를 닦고 참선을 하다 보면 그러려니 생각했지요. 실제로 스님뿐만이 아니라 예술을 하는 사람 중에서도 나는 그처럼 나이가 들어도 천진성을 잃지 않는 분을 여럿이나 보아 왔거든요. 나는 그 점에 대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등의 말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일종의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자세의 하나라고 생각해 왔죠. 자기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그런 모습과 그런 얼굴에서 오히려 더 강한 그들 내면의 기운을 느끼곤 했으니까요.
스님의 세속 나이를 어림으로 짐작해 보니 아무리 많이 잡아 주어도 마흔 초반을 크게 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아무리 세속을 떠나 부처님 세계에서 도를 닦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이 들어 늙어 가는 것을 완벽하게 감출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나는 법랍은 감히 묻지를 못했죠. 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습니다. 묻지도 않은 자신의 집안 내력부터 쏟아 내기 시작하더군요. 세속 형제들 중의 하나는 공무원이고,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고, 하나는 농사를 짓고 있으며, 하나는 중인데,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말하며 껄껄 웃었습니다.
무슨 스님이 이런가 싶었지요. 너무 세속적이었거든요. 오히려 스님은 그 세속적인 분위기를 애써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점을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그의 배려로 받아들였습니다. 강 선배가 다시 스님에 대해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공부를 아주 많이 하신 스님이시죠. 현재 주지도 마다하시고, 상좌도 거부하시고, 오로지 공부만 하시겠다고 버티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 얼마든지 큰스님이 되시고도 남음이 있으신 분입니다.”
나는 강 선배의 그 말에 약간의 부러움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비슷한 사람이지요. 조금씩이야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사람이라는 본질에서는 떠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불도를 닦았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이미 불도를 닦을 자격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오히려 사람다운 사람을 더 존경합니다. 유치하지만 않다면 농담을 잘해도 존경스럽고, 치사하지만 않다면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존경을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어도 천박하지 않은 사람을 존경합니다. 돈이 없어도 비굴하지 않으면 나는 그 사람을 존경합니다. 그러니 딱히 내가 스님이 수도를 많이 하신 스님이라고 해서 남들보다 더 존경하리란 생각은 아예 갖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스님을 존경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스님을 만나면 합장을 하고 허리를 굽힙니다. 단지 스님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 점에 있어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떠들던 스님이 불쑥 제안을 했습니다.
“통도사에 가면 말입니다. 아주 끝내 주는 계곡이 있습니다. 스님들은 그 계곡에서 재미있게 놀지요. 이왕 부산까지 오셨으니 한 번 가보시지요?”
강 선배가 그녀와 나를 향해 눈을 돌렸습니다. 의향을 묻는 것이었죠. 내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들렀다가 나가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두세 시간이면 충분하지요. 기왕이면 차도 드시고, 절밥도 좀 드시고…… 하면 좋지요.”
나는 절간에는 별로 친숙하지 못했던지라 선뜻 나설 수는 없었으나 가보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요. 그녀는 스님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밝은 웃음을 이제까지 본 일이 없었습니다. 나의 기분은 점점 묘하게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차라리 거절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지요. 우리들의 여행계획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마지막으로 던진 스님의 말이 내 마음을 다시 돌려놓고 말았습니다.
“금개구리를 구경해야 좋은 일이 생기죠.”
그랬습니다.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는 그 자장암의 금개구리가 나를 붙들어 버렸던 것이죠. 비록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 금개구리를 오늘 내가 꼭 볼 수도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왜냐하면 오늘은 나의 운수가 열린 날입니다. 나의 새롭고 희망적인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러니 이 좋은 날에 내가 금개구리마저 구경하고 운수 대통하게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그녀와 단둘이 여행을 하려던 나의 계획은 순식간에 통도사의 자장암 가는 걸로 바뀌어 버렸던 것입니다.
사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기껏 세웠던 계획을 어떤 특별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순간에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돌발적인 상황이라면 나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나는 오래 전 가까운 벗들과 함께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간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도중에 돌연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일행들이 바쁘게 움직이지를 않고 편한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련만 심술이 난 나는 텐트 속에 들어가 드러눕고 말았지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를 무시한 채로 햇볕 좋은 강변에서 하루 종일 공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다시는 이래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후회를 했었지요. 그러나 언제나 도로아미타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마침내 그 한계를 극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이 특별한 상황이냐 아니냐는 잘 알 수가 없는 것이었고, 어쩔 수 없는 돌발적인 상황이냐 아니냐도 분간하기가 참으로 애매하긴 했습니다.
나는 통도사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랐습니다. 강 선배가 그녀를 뒷좌석에 밀어 넣으며 말했습니다.
“스님의 기를 좀 받아 보세요. 건강이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는 스님을 그녀의 옆자리로 모셨습니다. 자신은 앞자리에 오르더군요. 나는 사실 남자로서는 소심한 편에 속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자리 배정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늘만은 동행들이 있어서 참아오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스님의 그녀를 대하는 눈치와 그녀의 스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이는 너무 친숙한 겁니다. 그러니 더욱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요.
차가 속도를 내자 스님은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며 듬성듬성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미러를 통해 본 그녀는 그저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지요. 아무리 도를 닦은 스님이라 하지만, 나는 점점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분으로 치달리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남자이긴 마찬가지라 이겁니다. 그것도 한창 나이의 스님이 그녀의 손을 막무가내로 쓰다듬고 있으니, 그녀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참아내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나는 참는 김에 아주 꾹 참기로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래도 스님이니 그녀를 이성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보기로 했지요.
스님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업을 하신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기가 약해서 어떻게 사업을 합니까?”
그녀가 부끄럽게 웃으며 대답하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큰일이에요. 몸이 말을 잘 듣지 않거든요.”
“도대체 왜 이럴까요?”
“글쎄요. 특별한 까닭이 없거든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몸을 너무 혹사하시는 겁니다. 쉬어가면서 일을 하셔야죠.”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스님 말씀이 백 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사장님께서는 일을 너무 많이 하신단 말입니다. 밤을 새워가면서 작업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하니 몸이 배겨나겠느냐 이겁니다. 게다가 술은 보통 드십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마셔대니 그 몸이 정상이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요.”
그녀가 뾰루퉁한 입술로 내게 쏘아부쳤습니다.
“선생님은 별 이상한 이야기만 골라가면서 하시네요. 제가 언제 술을 그렇게 마신다고 그러세요?”
말은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보다 더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주량은 아마도 소주 서너 병은 넘을 겁니다. 웬만한 남자들은 그녀의 술 상대가 되지 못하거든요.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그런 식으로 술을 마셔 왔습니다. 이미 습관이 되어선지 크게 취하거나 주정을 부리는 일도 없습니다. 다만 다음날 아침에 찾아오는 거의 실신해 버릴 정도의 고통만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술은 적당히 드셔야죠. 너무 많이 마시면 몸이 망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이젠 그렇게 마시지 않아요. 옛날과 같을 수는 없지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럼요. 마셔도 적당히만 마시세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술을 아주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라구요. 제게는 오히려 술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술기운이 몸의 기운을 도와준대요. 그래서 전 맥주나 소주보다는 양주 한두 잔씩을 즐기는 편이죠. 그러고 나면 정말로 몸에 기운이 생기거든요. 살 것 같아요.”
“그거 재미있군요.”
그녀가 다시 말했습니다.
“저도 한때는 스님이 되고 싶어 한 적이 있었어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제가 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벌써 머리를 깎았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전 스님이 존경스러워요. 저희 집안은 모두 불교 신앙을 갖고 있죠. 저희 스님은 그래서 저희 집안의 어른이에요. 저희는 모든 것을 스님하고 상의해요. 전 거의 매주 스님하고 전화 통화를 하지요. 일이 생기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경우도 있어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거든요. 그리고 정말로 일이 잘 풀려가기도 하구요.”
스님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죠.
“보살님은 우선 건강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절에 머무르실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더 이상 일을 하시는 건 무리에요.”
그녀가 울상이 되어 말했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걸요.”
“건강을 찾아야 다른 일도 하실 수가 있지요. 건강이 무너지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잖습니까?”
“몇 년 전에도 두어 달을 절에서 요양한 적이 있었어요.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몸이 아파서 병원 대신에 찾아 갔었죠. 병원에선 이유를 모른다고만 하니까요. 무조건 입원해서 장기간 지켜보아야 한다니 얼마나 답답해요? 조금 기운을 차리자 바로 다시 내려왔죠.”
“보살님은 중이 되는 게 싫으신가 보죠?”
“싫다기보다는 아직은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거든요.”
스님이 말했습니다.
“하고 싶으신 일은 하셔야지요.”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나면 언젠가는 산으로 올라갈 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하시는 일은 열심히 하시지요.”
그녀가 눈길을 창밖으로 돌리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참으로 편안하고 좋은 곳입니다. 마음이 울적하시면 언제든 쉬러 오세요. 쉴 곳은 어디에나 있거든요. 보살님에겐 휴식이 필요합니다. 기가 너무 쇠해지셨어요. 제 생각에는 이번에 내려오신 김에 한동안이나마 여기에서 쉬었다 가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나는 그 말을 듣자 황당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녀도 더 이상 말하지 않더군요. 스님은 쉬지 않고 그녀의 손과 팔과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강 선배가 말했지요.
“저러고 나면 아마도 몸과 마음이 개운해질 겁니다.”
그러나 나는 뒷덜미에 자꾸만 화기가 치솟아 올라 왔습니다. 백미러를 통해 스님의 얼굴을 훔쳐보았지요. 스님의 얼굴에 묘한 화색이 돋고 있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내가 시비라도 걸듯이 물었습니다.
“스님도 여자를 예뻐하십니까?”
“그럼요. 예쁘지요.”
“혹시 세속적인 말로 탐하는 건 아니겠죠?”
“그냥 좋아서일 뿐입니다.”
“스님의 눈은 보통 사람들의 눈과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요?”
“마음이 즐거우면 다 즐겁지요.”
“혹시 여자라서 더 예쁘고 더 좋은 것은 아닌가요?”
“물론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죠.”
“여자를 예뻐하는 것은 제가 보기엔 세속적인 욕망 같은데요?”
“세속적이지 않으면 되지요.”
“세속적인지 아닌지를 저희들은 알 수가 없겠군요?”
“글쎄요.”
나는 내가 너무 당돌하게 말을 꺼냈다 싶어 후회스러웠으나 도중에 그만두는 것도 무엇해서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기로 했습니다.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님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났는지를 알 수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인간의 모습을 완벽하게 벗은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은 그저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대단히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옆자리의 강 선배는 못 들은 척 앞만 쳐다보고 있더군요.
나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불교 역시도 기독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요. 다른 것이 있다면 스님은 세속의 모든 것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고행의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스님이 인간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가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나는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노력하는 것뿐이죠. 모든 것을 버려가면서 노력하는 것뿐이죠.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는 요원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스님이 세속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다음 순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욕망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철저하게 인간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보다 더 깊은 자유라고 믿어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부처님의 존재도 바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곧 양심이죠. 양심이 바로 하나님이고 부처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것이죠.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거든요. 인간은 당연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 사랑하는 존재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아니고 바로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신은 인간의 번영을 위해 사랑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선물했거든요. 그걸 어떻게 떨치고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통도사 입구에 이르자 먹거리와 산나물 등 여러 가지 토속적인 물건들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죽 일렬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들 중 유독 한 아주머니가 ‘묵 사려’를 연신 외쳐대고 있었지요. 그녀를 바라보던 스님이 문득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저 아주머니 입에서 묵 소리가 안 나오도록 해볼까요?”
그녀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스님은 차창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더니 갑자기 그 아주머니를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묵!”
그런데 그 순간이 아주 절묘했습니다. 그녀가 막 ‘묵’ 소리를 하려던 찰나였거든요. 기가 막힌 그녀가 스님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더니 ‘사려’ 소리를 하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하고야 말았습니다. 스님이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거 봐요, 성공했지요?”
강 선배와 그녀는 배꼽을 쥐고 웃었습니다.
우리는 사찰 내로 들어서서 곧장 자장암으로 향했습니다. 강 선배가 스님은 이 절의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스님도 계급이 있느냐라고 물었지요. 그는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계급이란 공부로 인해 매겨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생각했지요. 공부로이건 무엇으로이건 계급이 왜 필요하단 말입니까? 그것조차도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욕망일 것처럼만 여겨졌습니다.
꼬불꼬불한 계곡 옆의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 자장암에 이르자 나이든 보살님이 반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암자 마당의 시원한 약수물을 떠 마시고 그 분의 안내를 받아 암자의 뒤꼍으로 돌아 나갔습니다. 그러자 곧장 암자와는 삼사 미터의 사이를 두고 거의 직각인 방향으로 또한 거의 직각으로 서 있는 암벽이 내 앞을 막아서더군요. 암벽 밑에는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디딤돌이 한 개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사람의 키가 닿을락말락한 곳에 작은 구멍 한 개가 뚫려 있는 것도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암벽 밑으로도 왼편에는 약수터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위에는 투박하게 다듬어진 커다란 돌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지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또한 많이 알려져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가 이미 충분히 이루어져 있음을 말해주는 풍경이었습니다.
암벽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은 자장 율사가 손가락으로 만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지팡이를 내질러 만들었다고도 하더군요. 자장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도 그로 인해 금방 짐작할 수가 있었죠. 그런데 그 구멍 속에 바로 이 암자를 지켜주고 있으며, 보는 사람에게 대운을 가져다준다는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가끔은 신기하게도 모습을 바꾸어 조화를 부리기도 하는 그 금개구리는 불심이 강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이것도 공연한 말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자꾸 그 전설을 믿고만 싶었습니다. 전혀 나답지 않은 일이었지요. 나는 오늘 철저하게 나의 생각이 바뀌는 중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순간이더란 말입니다.
“정말 아무나 볼 수 없는 개구리입니까?”
누군가가 스님에게 물었지요. 나는 얼른 스님의 기색을 살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은 그 금개구리를 보셨는가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지요.
“나야 보았지요.”
그리고는 돌아서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그렇게 물으면 보았다고 해야지, 내가 뭐라고 대답한담.’
나는 피식 웃으며 오늘 금개구리를 보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벌건 대낮에 무슨 금개구리며 무슨 도깨비란 말입니까? 이건 분명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치한 발상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헌데 도대체 이 만큼 수도를 하고 속세를 떠나서까지 불심을 닦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같은 일을 벌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스님들이 아이들인 것도 아니고, 엄청난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암자가 허황스러운 것도 아닐 텐데, 그들은 왜 마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놀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비스러운 전설 같은 것을 키우고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나중에 더 심각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당장은 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내가 만약 오늘 그 금개구리를 보기라도 한다면 믿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였죠. 그러고 보면 나도 참으로 간사한 인간입니다.
나뿐만이 아닐 겁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기묘한 존재입니다. 이런 일이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곧 자신에게서 그 같은 전설이나 신비한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는 것이죠. 그 금개구리를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쩌면 나만은 볼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발길을 붙잡는 거예요. 이러고 보면 나는 출가를 한다 해도 성불하기는 애당초 틀린 인물이 분명합니다. 나만이라도 보겠다니요? 모두가 보게 되면 어떻다는 말인가요?
어쨌든 우리는 암자 모퉁이에 줄을 섰습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서 있었으므로 차례를 기다려야 했지요. 먼저 그녀가 암벽으로 다가가 구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녀는 그 작은 구멍에 눈을 아예 가져다 붙이고 들여다보았지만 그러는 양으로 보아 금개구리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금방이라도 울 듯한 인상을 지어 보이며 다리를 동동거리다가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강 선배가 다음으로 암벽에 다가섰죠. 그는 요령껏 구멍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얼굴을 약간 구멍에서 뗀 채로 위아래, 또는 좌우로 움직이면서 성의를 다하여 바라보았으나 그도 허사였습니다. 다음에는 내 차례였죠.
나는 마음을 비우고 경건한 자세로 암벽에 다가섰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만이라도 모든 욕망을 버려야만 혹 그 같은 기적이 있지나 않을까 해서였죠. 불심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정도의 생각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했지요. 내 앞에 섰던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그 금개구리를 보지 못했으므로 나 역시 보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그 금개구리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인 것입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구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금개구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어떤 조짐도, 금빛으로 반짝이는 어떤 느낌도 나타나지 않았지요. 구멍 속에는 아무 것도 분별할 수가 없는 어둠만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 작은 구멍의 입구쯤에는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더군요. 그것으로 미루어 개구리들이 충분히 들락거릴 만한 흔적으로 간주되어지기는 했습니다. 조금 더 안으로 시선을 집중하면 하얀 빛깔의 기다란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같았으나 그것도 금개구리는 아니었습니다.
그 금개구리가 설령 상상 속의 존재라 할지라도 마음이 지극하면 보이는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본 사람이 있으니 소문이 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왜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까? 안타깝더군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나는 그냥 물러서고야 말았습니다. 다시 모퉁이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으나 아무도 금개구리를 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괜스레 먼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처럼 밝은 대낮에 저렇게 푸른 하늘을 놓아두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한편으로는 미친놈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는 금개구리가 보이지 않자 법당 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을 바라보면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지요. 그녀의 정성은 얼굴과 몸가짐에서부터 가득 나타납니다. 마음을 비우고 간절히 기도하면 금개구리는 나타날 지도 모르지요. 그래서인지 강 선배도 덩달아 법당 안으로 들어서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법당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서너 명만 남은 암벽 앞은 금방 고요해졌습니다. 법당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스님이 나에게도 예불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법당의 예절을 모릅니다. 부처님께 절을 할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법당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구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사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아무렴 그렇지, 어떻게 금개구리가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적어도 그 금개구리를 누군가가 보았다면 그것은 이미 전설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의도적인 상술인지도 모릅니다. 꼭 상술이 아니다 하더라도 우매하고 착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귀여운 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약수물을 떠 마시고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암벽 앞을 어슬렁거리면서 또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지요. 갑자기 누군가가 탄성을 지르더군요. 그 쪽을 향해 눈을 돌린 나도 다음 순간 어쩔 수 없이 탄성을 지르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암자의 뒷벽 밑 깨끗하게 다듬어진 작은 홈이었습니다. 거기에 개구리 한 마리가 눈을 끔뻑이며 점잖게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나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지요. 마침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부산스럽게 그 개구리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황송하여 함부로 바짝 다가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연신 두근거렸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더군요. 그 개구리는 물론 보통의 개구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것이 어떻게 저렇게 점잖고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혀를 내두르는 데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개구리는 놀랍게도 나를 전설 속의 인물로 만들어 가고 있었지요.
법당을 나서던 나이든 보살이 쯪쯪거리며 말했습니다.
“오매, 여기 나와 계시네. 그러니까 구멍 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없지요. 오매, 어쩐대야? 이런 일이 어쩌다가 있기는 했지만, 오매.”
내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저 큰 개구리가 어떻게 구멍 속으로 들어갑니까?”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신기한 일이지요. 하지만 분명히 들락날락합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쉬지 않고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나는 아직도 법당 안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그녀를 다급한 손짓으로 불러냈습니다. 마침 스님도 법당 뒤쪽으로 돌아 나왔으므로 나는 번개같이 물었지요.
“스님 저 개구리가 금개구리인가요?”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지금 이곳에 개구리가 웬 말입니까? 어림없는 말씀이지요.”
부정도 긍정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개구리는 무엇입니까?”
스님이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개구리지요.”
나는 왔다갔다 하는 스님의 대답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나를 붙들고 선문답이라도 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는 어쨌거나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서 재빨리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후레쉬가 여러 번이나 터지는 데도 개구리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큰 눈을 말똥말똥 굴리면서 숨을 내쉴 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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