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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애견시대(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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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930회 작성일 02-06-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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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시대


욕조 안의 미순에게 빗질을 하다 말고 두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날씨도 상큼한 이 가을 아침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손가락에 잡히는 미순의 아랫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두옥은 이상하게도 팽팽하게 불어나 있는 미순의 아랫배를 연신 더듬어 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오늘의 변화가 아니었던 것도 같다. 두옥은 가능한 한 녀석에게 밥을 충분히 주는 것을 피해 왔다. 제 때 밥을 줄 경우 주는 대로 받아먹은 녀석은 덩치만 커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애완견으로서의 가치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온 집안에 잦은 배설물을 쏟아놓고 다닐 것이 뻔한 이치였기 때문이다.
두옥은 가슴이 섬뜩해진다. 십중팔구 새끼를 가진 것이 틀림없다. ‘이 미친 년 조심하라니까 결국 당하고 말았네.’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흥분이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문득 얼굴이 붉어지면서 알 수 없는 수치심이 치솟기 시작한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알몸을 훔쳐보기라도 한 것만 같다. 아니 순식간에 자신의 순결을 빼앗아가 버린 것만 같다. ‘아무래도 그놈 히라소니 짓일 거야.’
‘그런데 그 거대한 놈이 설마⋯⋯.’ 비실비실해 보이긴 해도 놈은 역시 거물이었다. 두옥은 온몸을 부르르 떤다. 견딜 수 없는 혐오감과 징그러움이 몰려온다. 이건 분명 모독이고 폭력이고 용서할 수 없는 학대이다. 도저히 이럴 수가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돼, 이 주정뱅이 같은 경우 없는 인간. 단단히 따질 거야.’
두옥은 올해 서른 하고도, 아마 손가락 몇 개는 더 꼽아야 할 나이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서른 중반의 나이로 보아주지는 않는다. 차라리 마흔의 중반이라고 한다면 믿을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톰한 풍채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산전수전 다 겪어 착 가라앉은 듯한 여유 있는 인상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녀는 왠지 홀몸이라서 가련하다기보다는, 누가 곁에서 거들어 주는 것이 오히려 지나치다 할 정도의 넉넉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두옥은 그녀의 이름이다. 말두 자에 구슬옥 자를 쓰고, 성은 송 씨이다. 두옥, 듣기만 해도 촌스러운 이름이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이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대신 청명이라는 아호를 사용한다. 그녀는 몇 년 전 누가 보아도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예학원을 다녔다. 남은 시간을 활용하고 정신수양을 해보겠다는 것이 그녀의 드러나 있는 변이었지만, 그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믿고 있다. ‘어쩌다 만난 서예학원의 젊은 원장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일 거야. 아마 총각이라잖아?’
청명은 그때 얻은 호이다. 그녀가 서예를 배운 또 다른 이유를 굳이 찾아본다면, 아마도 그것은 바로 이 아호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예학원에 다니는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아호를 갖고 있었으며, 그녀는 평소 이 점에 관해 상당히 부러워한 적이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정확하게 말하면 아호를 받은 후로부터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 흔한 ‘김 사장’이라는 호칭도 여지없이 거절했다. 그저 ‘청명 씨’라고 불러주기만 하면 싱글벙글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은 어김없이 그녀의 단골손님이 될 수가 있었으며, 얼마든지 미음 먹은 대로 외상거래도 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작지만 꽤 쓸 만한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스물을 갓 넘어섰을 때부터 열심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돈이라도 충분히 모아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의 품위는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호프집 같은 전문적인 술장사는 차리질 못하고 좀 폼이 나 보이는 레스토랑을 차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오늘까지도 그녀는 홀로이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식구 하나를 늘리기로 마음을 먹었고, 동창생을 통해 어렵사리 들여온 것이 바로 미순이 이 녀석이었다. 두옥은 이 미순이 하나를 믿고 혼자인 외로움과 여자인 서러움을 가까스로 달래가며 그렁저렁 살아가고 있다. 아니 그 녀석 덕분에 이제는 오히려 너무너무 마음 편하고 홀가분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선 미선이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녀를 반길 줄도 알았다. 관심을 보일 존재가 있으니 그도 좋았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이었다. 갑자기 온 동네 잡놈들이 모여들어서는 레스토랑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두옥은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쳤다. ‘이 녀석들이 무슨 데모라도 하는 것인가?’ 고작 스스로 생각에도 우스운 이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다. 그녀는 놈들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쏘아부쳤다.
“이놈들아, 하필이면 왜 여기서 웅성거리는 거야? 어서 가지 못해? 손님들이 올 시간이야. 어서 가라구.”
어라, 그런데 이 녀석들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아예 엉덩이를 땅바닥에 척 붙이고 주저앉는 놈도 있었다. ‘뭐 이런 것들이 있어.’ 두옥은 기어이 화가 났다.
“점백이, 네놈부터 사라져! 말 안 들으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히라소니, 넌 밥이나 좀 처먹고 다녀라. 그 덩치에 발발 떨면서 무슨 개망신이야?”
그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점백이는 꼬리를 살랑거리고, 히라소니는 고개를 푸욱 땅바닥에 쳐 박았다. 그녀가 가만히 놈들의 숫자를 헤아려보니 자그마치 일곱 놈이나 되었다. 처음에 놈들은 두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거의 상관하지 말라는 듯한 이상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 두옥은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녀가 툭툭 발길질을 하면서 애써 강압적인 자세로 나오자, 놈들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척 버티고 서서는 오히려 두옥의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것이었다. 이건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녀는 가슴이 섬뜩해졌다.
어이가 없어진 그녀는 우선 발길질을 멈추고 놈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얼굴에 시커먼 점이 돋보이는 놈은 바로 점백이였다. 녀석은 놈들 중에서 가장 고집스러워 보이는 놈이다. 두옥은 이 녀석을 가장 싫어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의 주인이 바로 맞은 편 카페의 이유 없이 밉살스런 김 마담 혜선이렸다. 혜선은 애당초부터 일 잘하는 미쓰 리한테 가게를 맡겨 놓아 버렸다. 그리고는 허구한 날 기가 막힌 옷으로 쏙 빼어 입고는,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엉덩이를, 그보다 더욱 기가 막히게 흔들며, 가끔씩 사내들의 중형 승용차에 얹혀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일에 빠져 있었다. 이 말은 그녀는 소형차를 모는 남자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펑퍼짐한 두옥은 그것이 너무너무도 배가 아팠다. 남자들이란 이상한 존재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짱하여 웬만큼은 세상과 여자를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 보이는 데에도 불구하고, 알고 보면 모두가 헛것만 쫓아다니는 철부지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떤 것보다 더 혜선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먹자골목의 끝머리에 있는 해물탕집 주인 총각인 무경 때문이다. 이 무경이 혜선에게만은 터놓고 지낸다는 사실이 그녀로 하여금 견딜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가 혹시라도 골목을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혜선은 득달같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그를 꼬드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혜선은 카운터에 앉아 바깥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놓치는 예가 별로 없다.
“무경 씨, 오늘 저녁 시간 있어? 있으면 놀러와, 응? 돈 벌어서 뭐 해? 인생은 즐기는 거 아니겠어? 무경 씨이⋯⋯.”
그러면 이 무경이라는 인간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발을 멈추고 입이 헤 벌어져 가지고는 맞장구를 친다.
“김 마담, 오케이야. 조-ㅎ지, 암 좋고말고. 내 시간이야 김 마담에게는 언제든 공짜 아니겠어? 그래, 저녁에 내 들르지. 기다리라구.”
혜선의 꼬락서니는 더욱 가관이다. 벌어진 입은 말할 것도 없고 허리까지 배배 꼬아대면서 코 먹은 소리를 낸다.
“무경 씨이⋯⋯. 술은 무얼로 할까? 맥주? 아니므-은⋯⋯ 저-기 말이야, 내가 멋진 양주 한 병을 준비했걸랑?”
“역시 김 마담이야. 오우케이, 최고라구⋯⋯.”
두옥은 속이 탄다. 주방으로 달려가 냉수 한 사발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서도 가슴이 가라앉지를 앉는다. 그가 지나가는 것을 알고 그녀도 간혹 레스토랑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기는 한다. 그러나 그는 혹시라도 한 번쯤 바라보아 줄 법도 하건만 영 눈길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어쩌다 두옥의 레스토랑에 들릴라치면 번갯불처럼 전화벨이 울린다.
“무경 씨 좀 바꾸어 줄래?”
여우같은 혜선이다. 두옥은 전화통을 부시고 싶어진다.
“없어. 여기 안 왔어.”
“무슨 말이야? 금방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예 실 끝을 달아매셨군.”
“뭐야?”
김 마담의 올라가는 눈꼬리를 상상하며 두옥은 수화기를 내린다.
“무경 씨! 전화 받아요. 양귀비 같은 김 마담이 찾으시네요.”
무경은 슬슬 일어나 전화통으로 다가서며 두옥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거 기분이 참말로 묘해지네. 칭찬 같기도 하고, 비꼬는 거 같기도 하고⋯⋯.”
“알면 됐네요.”
“그러믄 쓰나? 같은 마담끼리 그러믄 안 되지.”
그의 같은 마담이라는 말에 두옥은 극도로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그 앞에서 더 이상의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는 못한다. 가까스로 참으며 전화를 넘겨준 두옥은 아예 레스토랑을 빠져나가 버린다. 속에서 불이 나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한동안 밖에서 서성거려 보아도 배배 꼬인 속은 풀리지가 않는다.
두옥은 도무지 그의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진다. 알쏭달쏭하기 짝이 없다. 어떤 때는 알맹이가 들어 있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말야, 눈을 감고 사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단 말야. 자존심? 그게 밥을 주나? 술을 주나? 때를 기다리는 거야. 다 오게 되어 있어.’ 마치 달관이라도 한 듯한 그의 중얼거림을 듣다보면 웬일인지 강한 신뢰감과 함께 온몸이 짜릿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말이야 누가 못하랴.
그녀는 곧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술잔을 들고 손님 자리에 합석한다. 아직도 무경은 전화통 앞에 앉아 무엇이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그녀는 난생 처음 보는 손님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세상은 참 웃겨요. 말짱한 사람들이 눈이 멀면 금방 바보가 된다니까요. 자신이 바보인 줄도 모르니 딱한 일이 아녜요? 그렇지 않으세요?”
마주 앉은 남자가 영문도 모른 채 듣고 있다가 궁금한 듯 묻는다.
“청명 씨가 왜 이럴까? 오늘은 날씨가 청명치 못 하구만 그려. 도대체 뭐가 불만이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사람다운 품위를 지켜야 하지 않아요?”
“그야 당연하지. 누가 짐승이라도 되었나?”
“글쎄요.”
그녀는 출구쯤에 서 있는 무경을 흘낏 바라본다. 그는 통화를 끝내고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다. 김이 빠진 두옥이 일어나 카운터로 향하며 무경에게 묻는다.
“오늘밤은 어디로 드라이브를 가실 건가요?”
그는 눈길을 주지도 않으며 중얼거린다.
“장사 팽개치고 가긴 어딜 가? 그리고, 어디로 가건 말건, 청명 씨가 웬 참견여?”
혜선 역시도 두옥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어쩌면 경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혜선은 두옥을 ‘청맹 씨’라고 부른다. 이건 순전히 비아냥 섞인 호칭이다. 그것이 혜선이 두옥을 경멸한다는 첫 번째 증거인 셈이다.
‘아, 청맹 씨. 인생이 뭐 별거야? 그런 눈빛으로 날 볼 거 없어, 우리가 천 년 만 년 사는 것도 아닌데, 왜 맹추처럼 살아, 청맹 씨? 그렇다고 우리한테 평생 기대고 살 남자가 있어? 아니면 믿을 만한 새끼가 있어? 안 그래? 청맹 씨.’
기가 막힌 두옥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귀조차도 막아 버리고 싶지만, 어디 그럴 방법이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녀는 언젠가는 한번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점백이 옆에 앉아 있는 놈은 날렵한 풍채와는 달리 삐쩍 말라서 다리가 후들후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히라소니이다. 녀석은 이름이 히라소니이지 생긴 게 워낙 변변치를 못해서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녀석의 안광만은 끝내준다. 그 녀석이 한번 눈을 치켜뜨고 돌아보기만 하면 어떤 녀석도 감히 범접할 수가 없다. 생긴 거하고는 분명 다른 셈이다. 이 녀석의 주인이 바로 무경이다. 아, 참. 그는 천성적으로 경우 없는 놈이라 이름도 무경이란다. 무경은 그것이 자랑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절대로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덕분에 그는 누구도 쉽게 기억한다. 그러니 이 골목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이름 하나는 끝내 주지.’ 두옥은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술 잘하는 무경은 사실은 이름보다도, 생김새보다도 끝내주는 게 또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노래솜씨이다. 술 한 잔 걸치고 기타를 둘러메고 거기다가 전문가답게 하모니카까지 목에 걸치면 그는 영락없는 대단한 가수이다. 웬만한 가수 뺨치는 것이다. 늦은 밤 손님들하고 어울려 노래를 부르면 온 거리는 그 텁텁하고 넉넉한 노래 소리로 가득 차 출렁거린다. 손님들은 그의 노래 소리를 듣고 싶어 안달이다. 식사가 끝나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사장, 한 곡 더 불러 줘. 사람 사는 맛 좀 느껴보자구.”
가끔 무경을 만나면 두옥은 진심으로 말하곤 한다.
“제발 술 좀 그만 하시고 히라소니 좀 돌봐 주세요. 제 명까지 살지도 못 하겠더라구요.”
그러면 무경은 여전히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위아래로 지긋이 훑어보면서 말한다.
“두옥 씨가 뭐 내 부인이라도 되는 거여? 남이야 술을 마시든 말든, 정신을 차리든 말든, 웬 신경야?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고 그 잘난 얼굴로 시집이나 가시지.”
두옥도 지지 않고 쏘아부친다.
“누가 무경 씨 걱정한댔어요? 애비를 잘못 만난 히라소니가 불쌍하댔지.”
애비야 끝내주지. 끝내주는 바보지. 두옥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 옆으로 눈을 돌린다. 로빈도 와 있다. 이 녀석은 레스토랑 건너 건너의 노래방 정 사장이 주인이다. 온몸에 귀티가 줄줄 흘러서 별명이 귀공자이다. 두옥은 이 로빈 만큼은 가끔 레스토랑의 출입을 허락한다. 히라소니도 가끔 모습을 나타내어 어슬렁거리곤 하지만, 두옥은 단호하게 출입을 막아버린다. 무경 때문이다. ‘애비가 담벼락인데, 자식은 뭐여?’ 그녀는 중얼거리곤 한다. 로빈에 대한 배려는 오로지 너무 심심해하는 미순이를 위해서이지만, 그러나 이 녀석도 그녀의 철저한 감시 하에서만 미순이를 만날 수 있다. 어쨌든 평소 미순이의 곁을 특별히 내주었던 이 녀석마저도 오늘은 다른 놈들과 한 통속이 되어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두옥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사정없이 로빈에게 귀쌈을 날린다.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너도 저 병신 같은 놈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거야? 아서라, 아서. 내가 잘못 봐도 한참이나 잘못 보았지.”
갑작스런 일격을 받고 로빈은 혼비백산하여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 버린다. 그러나 웬 걸, 그녀가 눈을 돌리자마자 녀석은 다시 슬금슬금 돌아서서 다가서고 있다. 두옥은 다른 녀석들의 면면도 쭉 훑어본다. 한두 녀석을 제외하고 대개는 알만한, 근처에 사는 놈들이다.
“네 놈은 이름이 뭐야?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
두옥은 낯이 익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그 중 나아보이는 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다. 녀석은 무슨 신바람이 났는지 싱글벙글이다. 갑자기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두옥의 품으로 파고든다. 두옥은 갑자기 그 녀석의 머리통을 쥐어박아 버린다.
“바보 같은 놈. 우리 집에 너 줄 고기는 없다.”
더는 쫓을 수 없을 것 같다. 녀석들을 한켠으로 밀어제끼면서 그녀는 일어선다.
“대신 가만히 있어야 된다. 떠들거나 걸리적거리면 용서 안 할 거야.”
그녀는 홀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을 닦고 있던 홍군이 머리를 숙이며 그녀를 맞이한다.
“지영이는 아직 안 나오고?”
“그 가시나 요즘 정신이 없잖아요? 완전히 혼이 나가 버렸단 말입니다. 옆에서 더 보다가는 아주 돌아 버리겠어요.”
“그래도 고맙잖니? 요즘 애들 누가 한 남자를 그렇게 다부지게 사랑하겠어.”
“그 쪽 사정도 봐가면서 좋아도 해야지요. 싫다는데 무슨 청승인지 모르겠어요.”
두옥은 가슴이 찔끔한다.
“홍군이 지영이한테 관심이 있는 거 아냐?”
홍군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두옥도 너무 심했는가 싶어 말을 돌린다.
“문 밖에 저놈들 어떻게 안 되겠어?”
홍군이 출구를 향해 눈을 돌리자 밖으로부터 걸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이놈들아. 장가 가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냐? 여기서 이렇게 거지처럼 웅성거리기만 하면 뭘 해? 그러지 말고 저기 밖으로 나가서 한판 하고들 와라. 한 놈만 오라구.”
노래방의 정 사장이다. 그는 너털웃음을 요란하게 흐트리면서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선다. 그리고는 두옥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청명 씨, 어쩌면 우리 사돈지간 되는 거 아닌감?”
두옥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쏘아부친다.
“웬 정신 나간 소리람. 비싼 밥 먹고 할 일 없으면 김 마담 싣고 나가 휭하니 바람이나 쏘일 일이지. 여긴 웬 행차셔?”
“그러지 맘세. 내가 김 마담이 맘에 들어서 그런감. 하도 꼬리를 치니까 아, 앞뒷집에 살면서 그 정도야 해줄 수 있다는 것이지. 안 그런감? 이웃 좋다는 게 뭐야? 그 정도는 예쁘게 봐 주어야지. 청명 씨도 운동 좀 하라구. 제발 그 할머니 같은 인상 좀 버리구, 맵씨도 좀 내야지. 손님들 생각도 좀 해야 할 것 아닌감.”
정 사장은 두옥이 말을 받건 말건 상관없이 또 말을 내뱉는다.
“온 동네 사내놈들 다 모였어. 이놈들 후각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야 뭐 이놈들 냄새는 천리를 간대니까, 한두 놈은 다른 동네에서 온 것 같지?”
그제서야 두옥은 정신이 번쩍 든다.
“정 사장님, 무슨 소리래요? 우리 미순인 말짱합니다. 신소리 그만 하시고 당신 자식놈이나 빨리 치워 가시지요.”
“암, 그래야지. 내가 청명 씨하고 사돈지간 될 수 있남. 언감생심이지. 나 그런 생각 없어요. 정말이라구. 그리구 말이야,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사돈보다야 님이 좋지 않겠어? 무경은 포기하라구, 그놈은 술하고 노래에 미친 놈이야.”
“시퍼런 마누라 놓아두고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무경 씨 흉은 왜 보는 거예요?”
“나야 김 마담이 심심풀이 땅콩일 수도 있는데, 무경이는 아무래도 심상찮단 말야⋯⋯.”
“남자들 다 똑 같은 거 아녜요?”
두옥은 돌아서며 미순이를 꼬옥 껴안는다.
“홍군아, 문단속 잘 해라. 저 녀석들 들여보내면 안 된다구.”
“예, 알았습니다.”
대답은 하면서도 홍군은 다른 일에 바쁘다. 거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가 문득 생각이 난 듯 한 마디 던진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장님, 미순이 고 년 참 앙큼스럽단 말입니다. 단도리 잘 하셔야 될 거예요. 고 년 분명 요즘 바람이 났단 말예요. 저 녀석들이 그냥 저기서 웅성거리는 게 아니라구요. 다 미순이 저것 때문이에요.”
속이 터지는 두옥은 애꿎은 홍군만 나무란다.
“홍군, 말조심해. 뭘 안다고 떠드는 거야?”
듣고 있던 정 사장이 신이 나서 홍군을 거든다.
“저 녀석들 말야, 잘 관찰해 보라구. 맨 앞에 앉아 있는 세 놈 있잖아. 히라소니하고 우리 로빈하고 점백이 말이야. 나머지 놈들은 이미 틀렸어. 조금 있으면 다 포기하고 돌아갈 거라구. 남은 세 놈이 문제인데, 아마 그것도 몇 시간 안에 결정이 나겠지. 지금은 전초전인 것 같아. 거, 신경전이라는 거 있잖아. 지금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달라질 거라구. 아마 히라소니가 가장 센 놈이겠지?”
두옥은 유리창 너머 문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가만히 보니까 그의 말대로 히라소니, 귀공자, 점백이 세 놈이 맨 앞에 떡 버티고 앉아 있다. 그리고 나머지 놈들은 감히 앞으로 나서진 못하고 그저 앉았다 일어섰다 안절부절하고 있다. 두옥은 히라소니의 얼굴을 한번 바라본다. 문득 슬픈 생각이 들어 코끝이 찡해온다.
그날 오후 두옥은 이상하게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잠시 미순이를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바람이 날대로 난 미순이 년이 두옥의 눈을 피해 살짝 문 밖으로 달아났다가 돌아온 사실조차도 그녀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 못된 놈 같으니, 분명 히라소니일 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두옥은 미순이를 안고 급기야 해물탕집으로 쳐들어간다. 무경이 갓 들여온 해물들을 대형 냉장고 안에 집어넣다 말고 두옥을 바라본다.
“무경 씨! 이럴 수 있어요? 말이 히라소니지, 저 녀석이 무슨 대단한 놈이라고 우리 미순이를 건드려요?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무경 씨, 어떡하실 거예요? 이 지경이 되었으니 어떡할 거냐구요?”
무경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한다.
“온 동네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범인은 우리 히라소니가 아니라 점백이란 말이시. 그날 오전까지 남아 버틴 놈은 분명 우리 히라소니하고 점백이하고 로빈이었지만, 오후에는 히라소니하고 점백이하고 둘만 남았었대. 그놈들 둘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기죽이기를 했다는구만. 결국 우리 히라소니가 물러섰대나. 아무렴 우리 히라소니가 미순이하고 놀겠나? 큰일 날 뻔했어. 본 사람들이 많다구, 범인은 점백이라니까, 점백이가 차지했디야. 그 날 이후로 고 점백이 놈이 이 동네 왕초라데. 온 골목 다 휩쓸고 다닌디야. 내 참 기가 막혀서.”
급기야 무경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제 새끼가 구실도 못하고 망신을 당했다는데 웃음이 나와요?”
“상대 나름이지.”
“상대가 어때서요? 우리 미순이가 어디가 어때서요?”
두옥의 분위기가 차츰 험악해지자 무경은 금방 실수했음을 알아차린다.
“그건 잘못된 얘기이고⋯⋯. 우리 히라소니가 아무래도 점백이의 상대가 되기는 어렵지. 본래 출신 성분이 다르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요? 사내인 건 마찬가지 아녜요?”
“아따, 그만 두자고⋯⋯. 어쨌든 우리 히라소니는 아냐.”
“분명한 얘기지요? 무경 씨, 그 말 분명 책일 질 수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 보았다는데 뭘 그래? 내가 책임을 지든 못 지든 사실은 사실이걸랑.”
두옥은 더욱 분이 난다. 고 생쥐 같은 김 마담의 새끼가 감히 우리 미순이를 건드리다니,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씩씩거리며 해물탕집을 나와 혜선의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두옥은 그녀의 멱살부터 잡는다.
“너, 우리 미순이 어떡할래?”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혜선이 묻는다.
“뭘 어떡해?”
두옥이 거의 울상이 되어 소리친다.
“우리 미순이 임신했다구!”
혜선이 다소 긴장이 풀어지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래? 근데 왜 이래? 그리고 즈이들 좋아서 그런 건데 나더러 무슨 책임을 지라는 거야? 수선 떨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
두옥은 더욱 화가 난다.
“너, 새끼 간수 그렇게 밖에 못 하겠니? 똥만 안 먹는다고 똥개가 아닌 거야?”
혜선도 덩달아 열을 받는다.
“느이 딸년이나 간수를 잘 하라구. 내 새낀 걱정 안 해도 돼.”
“너 말 다했어? 그 따위로 내놓고 기르더니 이게 뭐야?”
“그리고, 공짜로 얻은 새낀데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당연한 거 아냐? 돈을 억만 금을 주고 사정해도 나 내 새끼 그렇게는 안 줘.”
말이 끝나자마자 두옥은 폭발하는 울화를 견디지 못하고 김 마담의 머리끄뎅이를 붙잡는다.
“그래, 네 새끼 팔아서 돈 많이 벌어라. 하지만 우리 미순이는 책임져!”
졸지에 머리채를 잡힌 김 마담은 얼굴이 사색이 된다.
“아이고, 이 년이 사람 잡네! 이거 놓지 못해!”
“내가 언젠가는 네 년의 엉덩이를 짓밟아 줄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참이다. 너 오늘 잘 걸렸다. 어디 계속 주둥이를 나불거려 봐라.”
김 마담은 두옥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우선 몸집부터가 거의 두 배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 마담은 ‘이거 놓지 못해’만을 연발할 뿐이다. 그러나 두옥은 결코 머리채를 놓을 기세가 아니다. 오히려 붙잡은 머리채에 힘을 더욱 가할 뿐이다. 그럴수록 김 마담의 안면은 민망할 정도로 이그러진다. 벌써 양볼에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보다 못한 미쓰 리가 두옥의 팔을 붙잡으며 말린다. 그래도 억센 두옥의 팔은 요지부동이다. 미쓰 리가 골목을 향해 소리친다.
“무경이 아저씨! 어디 있어요! 이거 좀 말려 주세요!”
그러나 무경은 아는지 모르는지 감감 무소식이다. 아무렴 가게에서 영업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이 소리가 들릴 턱이 없다. 참다못한 김 마담이 비명을 지르다가 소리친다.
“알았어. 알았다구⋯⋯. 내가 잘못했단 말야. 다신 무경 씨하고 술 안 마실 거니까 제발 머리 좀 놓아줘.”
“미친 년⋯⋯.”
두옥은 한 마디 내뱉고는 그제야 김 마담의 머리채를 놓는다. 그녀의 손에 한 움큼의 머리칼이 잡혀 있다. 김 마담이 머리를 감싼 채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뜨리자 두옥은 그때까지 안고 있던 미순이를 혜선 앞으로 내던져 버린다.
“그래, 좋겠다. 이제 네 새끼니까 네가 잘 걷어 먹여라. 너는 공짜로 며느리 하나 생겨 참 좋겠구나.”
두옥이 문을 박차고 나서자마자 마침 카페로 들어서는 점백이를 만난다.
“너 이놈 새끼 잘 만났다. 이놈의 버르장머리 없는 강아지 새끼. 너 네 에미를 닮았지? 세상에 내가 어떻게 키운 미순인데 네깢 놈이 감히 손을 대⋯⋯. 어이구 기가 막혀라.”
그녀는 힘차게 점백이의 허리께를 걷어차 버린다. 점백이는 걷어 채인 고통과 두옥의 서슬에 너무 놀라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납작 엎드리어 다만 깨갱거릴 뿐이다. 이 모양을 김 마담은 아직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분이 덜 풀린 그녀가 골목에 서서 계속 씩씩거리자 주변 가게에서 이 모양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사람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한 마디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김 마담 언젠가는 청명 씨한테 된통 당한다 했다니까.”
그녀가 막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히라소니가 입구에서 꼬리를 흔들며 그녀를 반긴다. 그녀의 눈꼬리가 다시 올라간다. ‘병신 같은 놈. 사내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놈에게 내가 무얼 바랬는지 몰라.’ 중얼거리는 두옥의 가슴 한 켠이 콱 막혀온다. 아직도 분이 덜 풀린 전신이 부르르 떨린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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