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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으로 사라진 남자(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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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136회 작성일 02-06-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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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으로 사라진 남자


나는 지금 어둠 속에 숨어 있다. 어둠은 마치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처럼 안전하게 나를 지켜주고 있다. 적어도 당장 이 시간만은 나는 마음을 놓는다. 저들은 결코 나를 이 어둠 속에서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어둠만이 아니다. 어둠 속에 산개한 수풀과 나무와 그리고 고요한 골짜기와 산조차도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다. 간간이 바람에 흔들리며 이파리를 떠는 나무들이 느껴진다. 내려다보는 골짜기는 어둠 속에 완벽하게 숨어 있다. 건너편의 산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린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함이다.
나는 풀밭에 드러누운 채로 손을 들어 주위를 더듬어 본다. 돌비가 손끝에 와 닿는다.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낮 동안 햇볕에 달구어진 탓이리라. 곧 격렬한 통증이 엄습한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눈을 부릅뜬다. 어두운 하늘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섰다가 다시 물러선다. 여기는 어디인가. 고개를 돌리니 어슴푸레 작은 돌비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희끄무레한 모습으로 여기저기 봉분들이 드러난다. 공동묘지다. 문득 실소가 흘러나온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방문을 여는 아버지를 무섭게 노려보며 할머니는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내가 죽으먼 말여. 절대로 화장터에서 끄실르먼 안 되야. 공동묘지에 묻어야 혀. 꼭 공동묘지에 묻어야 혀.’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을 받았다. ‘그려, 이 웬수 같은 양반아. 어서 죽기나 혀. 소원대로 공동묘지에다 버젓허게 모셔드릴터닝께 어서 죽기나 혀.’ 하루 종일 빈방을 지키던 할머니는 잘 가누지 못하는 몸을 이끌고 방문 쪽으로 몸을 옮기다가 끝내 포기하고는 기어이 마른 울음을 터뜨렸다. ‘내 말 조께 들어봐. 할 말이 있단 말여.’ 아버지는 막 방문을 닫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꺼이꺼이, 소리도 없고 눈물도 보이지 않는 처참한 할머니의 울음. 그것은 마치 내 어린 시절 내내 우물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던 한 밤중 귀신의 울음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였다. 나는 소름이 끼치는 할머니의 얼굴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할머니! 하필이면 왜 공동묘지로 가겠다는 거야?’ 할머니는 그 퀭한 눈을 나에게로 돌리더니 한참 동안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아가, 너도 그리로 오그라. 할미가 먼저 가서 기다릴 거여.’ 할머니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렸으나 나에게 그것은 다만 입을 비죽거리는 시늉으로만 보였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더 이상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실성한 할머니의 그 해골 같은 눈동자 속에는 기가 막히게도 오늘의 내가 보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귀여워했다는 할머니는 내가 철이 들면서는 노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내게는 참으로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거북한 할머니였다. 간간이 정상적인 정신으로 돌아오기도 하였으나 아버지는 늘상 할머니를 칙칙한 골방에 가두어 두고는 육중한 열쇠를 철커덕 잠궈버리곤 했다.
나는 그 방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할머니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일 년 열두 달 그 방에서 끊이지 않고 풍겨 나오던 지독한 냄새를 기억한다. 그것은 도대체 무슨 냄새였을까. 할머니가 온방에 퍼질러 놓은 인분 냄새였을까. 아니,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무언가가 썩어간다고 밖에 믿을 수가 없는 참혹한 냄새였다. 그렇다. 그렇게 죽어 가는 할머니를 지켜보며 나는 바로 그 옆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정말 어디쯤일까. 분명하게 짚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쳐온 길을 잘 더듬어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하는 일은 가능할 것도 같다. 대충 경기도의 남부 지역이거나 충청도에 막 넘어선 어디쯤일 것이다. 나는 광명시의 어느 호젓한 여관 앞에 세워져 있는 택시를 훔쳐 타고 시속 150킬로 이상으로 거의 한 시간 이상을 달렸다.
나는 골목길을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다가 택시 기사가 한 여자와 함께 여관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별 어려움 없이 그 택시를 빼내온 것이다. 그가 이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는 최소한 두어 시간 이상은 소요될 것이다. 그 시간이면 아마도 내가 그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가 결국 차량 도난신고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경찰에 알려져 수배가 되는 것은 이후 다시 한두 시간 이상은 소요될 것이 뻔하다.
나는 한국 경찰의 능력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범죄자이고 탈옥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말로만 경찰이지 요모조모를 뜯어보면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그들에게 과학적인 수사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알량한 삼류의 권력을 휘두르며 해묵은 감이나 쫓아다니는 이조시대의 포졸들이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의 그런 능력에 대해 경멸과 조소를 금치 못해 왔다.
내친 김에 한 마디를 더하자. 한때 그들이 부르짖던 ‘민중의 지팡이’는 가증스럽게도 한때는 ‘민중을 향한 몽둥이’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지만 그들은 전혀 도와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누구도 그들을 찾아가 도움을 부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쳐다보기도 싫은 곳,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어쩐지 위축이 되고 불안한 곳, 그곳이 바로 한국의 경찰서였다.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애당초부터 경찰이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그들의 강력한 곤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한국의 경찰은 그들의 적을 위협하는 데나 필요한 그런 볼 성 사나운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왕에 더 적절한 표현을 해버린다면 그들이야말로 무법자들이다. 법이라는 칼을 사정없이 휘두르며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들이며, 그 칼을 이용해 자신들의 자존심을 채우는 형편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안심해도 좋을 것이다. 저들은 오늘밤에는 절대로 나의 흔적을 포착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한적한 국도를 벗어나 다시 야산으로 통하는 신작로를 이미 한 시간 이상이나 들어왔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르는 오솔길로 들어서기 전에 나는 차를 저수지의 깊은 물속으로 밀어 넣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 나로 인해 비상이 걸린 서울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고, 이 정도면 저들이 나를 순식간에 따라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다시 통증이 시작된다. 어디쯤에서 오는 통증일까. 나는 몸을 정지시킨 채로 생각해 본다. 아마도 부러진 왼쪽 팔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저들의 곤봉이 정통으로 팔목 윗부분을 내리쳤었고, 응급조치는 했다해도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이제 걷잡을 수 없이 거세게 밀려오고 있을 것이다. 아니, 옆구리를 뚫고 지나간 총상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허리춤으로 가져간 오른손을 살며시 눌러 본다. 아, 역시 지독한 통증은 그곳에서도 오고 있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내일이면 이 고통도 사라지리라.
나는 이를 악물면서 그녀를 생각한다. 그녀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나는 가끔 그녀를 의심했고 그로 인해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일 뿐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우에 나는 여자를 믿는다. 여자들은 배신을 해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버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다급한 경우라도 시간을 벌어줄 줄을 안다. 그것은 갑자기 넋을 잃고 바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니 그것은 결코 배신이 아니다.
사실 나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그녀가 아니라 역시 거미줄 같은 검문이었다. 특히나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받는 불심검문은 나를 가장 무섭게 만들었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고 비디오나 보고 있으라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어둠이 막 내려앉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삐까뻔적한 엔터프라이즈 승용차를 몰고 있으니 누구도 함부로 검문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번호판은 이미 바꾸어져 있었으며, 적절하게 변장도 하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설령 검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리 두려울 것은 없었다. 나는 그런 식의 검문을 이미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긴장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침착해져 있었다. 저들은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저들은 위조한 내 운전면허증을 간단하게 훑어보기만 하였으며, 충분히 자란 나의 턱수염을 오히려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조차 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저들이 자주 검문하는 장소를 손바닥처럼 상세하게 파악해 두고 있었다. 검문소를 스스로 찾아가는 수배자는 아마도 장님이거나, 아니면 더 이상의 도망자 생활이 고통스러워 잠재적으로 자수 의사를 갖고 있는 녀석일 것이다. 최소한의 확률이 있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곳을 우회했다.
그런데 웬걸 바로 그녀의 집 앞에서, 엔터프라이즈를 100미터도 전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 멍청한 바보들에게 검문을 당한 것이다. 바로 코앞에서 순찰차의 경광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코팅이 된 차창 밖으로 젊은 경관의 얼굴이 다가왔다. 안경을 낀 나머지 한 녀석은 엉뚱한 곳을 향해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의 눈 끝에 짧은 미니스커트 아가씨의 허벅지가 묻어 있었다. 차창을 내리자 더운 공기가 일시에 밀려 들어왔다. 그가 면허증을 요구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눈을 흘낏 훔쳐보고는 그대로 정면을 응시한 채 잠자코 면허증을 내밀었다.
그가 공허한 눈망울을 굴리며 차창에서 얼굴을 들더니 차의 정면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그는 곧 무전기를 열고 무언가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아마도 주민등록번호이거나 차량번호일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운전석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탈옥수 때문이에요.’ 검문이 심해서 미안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가 문득 싱글거리며 물었다. ‘혹시 탈옥수를 보셨습니까?’
꽤나 수준 높은 농담이었다. 나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으나 다만 슬며시 웃어 주었다. 그의 눈이 나의 얼굴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드디어 등허리에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른침이 꿀꺽 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 소리를 감추려고 무진 애를 썼다. 적어도 긴장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서는 안 되었다. 순식간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몇 방울 흘러 내렸다. 그 사이 무전기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가 말했다. ‘손님, 잠깐 내리셔야겠는데요.’ 나는 그 순간 온몸에서 불꽃처럼 일어나는 전율을 느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차량번호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건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가 다시 차량의 앞쪽으로 걸어갔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본능적으로 백미러를 통해 뒤쪽을 바라보았으나 골목 안이라서 후진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섰다.
‘왜 그래?’ 한눈을 팔던 다른 녀석도 다가왔다. 그가 말했다. ‘손님, 술 마셨지요?’ 나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나는 아침나절부터 무료함을 견딜 수 없어 소주 한 병을 까마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한 잠 푹 자두었던 후인지라 아직까지 술냄새가 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애써 다독인 후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여섯 시간 전에 술 한 잔을 했습니다. 허지만 지금까지 냄새가 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녀석이 안경 너머로 눈빛을 반짝이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길가는 사람들은 뜸한 편이었다. 나는 짐짓 애원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서다가 지갑을 꺼내는 척 도어를 열고는 가까이 서있던 그를 느닷없이 운전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턱에 둔탁한 주먹이 날라 들어갔다. ‘탈옥수다!’ 차 안으로 밀려들어가며 일격을 당한 그의 입에서 마치 비명처럼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다른 녀석은 기겁을 한 듯 일순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의 면상에도 강한 주먹을 날렸다. 엌 소리와 함께 나뒹구는 그의 얼굴에서 안경이 벗겨지며 코피가 비쳤다. 다음 순간 날렵하게 달아날 자세를 취하던 내 허리 쪽으로 도어의 귀퉁이가 부딪쳐 왔다. 차 안에 밀려들어갔던 그가 도어를 힘차게 밀어제꼈던 것이다. 나 역시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그러자 어느 사이 넘어졌던 녀석의 주먹이 정확하게 나의 안면을 강타했다. 보통 맵시가 아니었다. 내 입에서도 짤막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그와 엉겨 붙어서 땅바닥을 두어 번 굴렀다. 지금쯤 나를 겨냥하고 있을 총구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발길이 나를 거세게 떼밀며 틈이 생기자마자 고막을 찢는 총성이 울렸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는가보다.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나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사살되어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영혼만이라도 끝까지 들고 달아나야 했다.
나는 짐승처럼 소리치며 일어섬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쏘아라! 쏘아! 죽어도 나는 잡히지 않는다.’ 차에서 빠져 나온 경관의 곤봉이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머리 쪽으로 날라 왔다. 강한 충격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곤봉 공격은 곧 어깨와 팔과 가슴으로 무차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곤봉 세례를 뚫으며 그에게로 돌격했다. 이 순간은 둘 중 어느 누구에게든 접근해 있어야 다음 총알을 피할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나의 나이프가 예리하게 춤을 추다가 녀석의 어깨를 스친 다음 아랫배에 꽂혔다. 금방 붉은 핏물이 배어 나왔다. 뒤이어 나는 제비처럼 날렵한 돌려차기로 녀석의 턱을 날렸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더니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계속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겨냥하고 있는 다른 녀석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나의 몸은 이미 그를 덮치고 있었다. 세 번째의 총성이 울렸으나 순식간에 나는 그의 총을 뺏어들고 그를 골목 안으로 몰아넣었다. 나의 손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총성에 놀란 사람들이 몰려들다가 삽시간에 물러섰다. 고요가 밀려왔다.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입을 씰룩이고 있었으나 그것이 소리나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그의 멱살을 잡은 내가 짐승처럼 포효하자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의 눈은 이미 질려 있었다. 나는 소리쳤다.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봐라! 내가 어째서 그렇게 죽일 놈이냐? 나도 한 번 방아쇠를 당겨볼까?’ 그는 넋 나간 눈빛으로 멀건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살려 주겠다. 대신 오늘만은 나를 더 이상 쫓지 마라.’ 그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과 고요가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감추어두고 있다. 희미한 산등성이를 바라보자 모든 무덤과 비석들은 금세 사라지고, 나도 칠흑 같은 그 어둠 속으로 묻혀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고 있다. 지금 이 시간만은 나는 시시각각 조여오는 저들로 인해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 오늘밤만은 저들은 절대로 나의 흔적을 찾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이 한밤에 이 공동묘지를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나는 거의 기다시피 움직여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웬만한 나뭇가지를 꺾었다. 그리고 나이프를 이용해 대충 잔가지를 쳐냈다. 피가 묻은 손잡이가 끈적거렸다. 만일의 경우에 필요하리라 싶어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다시 집어든 나이프였다. 허리춤을 제치고 이미 피에 젖은 속옷을 잡아제꼈다. 한동안 누워있다 보니 통증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현기증이 몰려오고 있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정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나는 속옷을 아직은 사용이 가능한 오른손과 이빨을 이용해 적당한 길이의 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끈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왼쪽 팔에 붙들어 매려고 시도했다. 어쨌든 조금은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으니까.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해서 버티지 않으면 안 된다. 한쪽 끝을 입에 물고 왼쪽 팔에 걸친 헝겊을 오른손으로 감아 돌렸다. 비교적 손쉽게 부러진 팔을 고정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돌비에 등을 기대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물이 핑그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입소신고를 마친 나는 교도관들에게 이끌려 지하실의 한 어두컴컴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순간 나는 가능한 한 당당하게 보이려 했던 나의 오버액션을 즉각 후회했다. 자포자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포감이 몰려왔다. 이것들이 나를 오늘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입소 첫날의 기가 막힌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으며, 그 손목은 다시 온몸을 두른 포승줄에 꽁꽁 묶여있는 상태였다. 어두컴컴한 방안에는 네 명의 교도관이 더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건장한 체구였으며 손에는 저마다 곤봉이 들려 있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내가 그들 중 누군가의 발에 채여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자마자 여지없이 곤봉세례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공격은 애당초 목표지점이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분명 맞아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막무가내의 공격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굴러다니던 나는 그날 정확하게 세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차라리 죽여라.’ 급기야 나는 독설을 내뱉었다.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다. 세상은 나로 하여금 복수심만을 키우게 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살려달라는 말조차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소리 없는 곤봉세례, 그것은 감정이 없는 로봇들의 기계적인 공격이었다. 정신이 든 나는 잠시 독방으로 집어넣어졌다. 그리고는 정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끌려 나갔다. 이번에는 주먹세례가 이어졌다. 부릅뜬 내 눈동자에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분명하게 각인되며 지나갔다. ‘이 놈들, 반드시 되돌려 주겠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복수의 칼을 날리기 전에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란 도무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러기 전에 저들의 손에 먼저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문득 하늘이 밝아지며 별들이 나타난다. 보일 듯 말 듯한 구름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눈물이 다시 주르르 귓가로 흘러내린다. 어머니! 어머니의 야윈 얼굴이 가물거린다. 아버지! 아버지의 수염이 까칠한 초췌한 얼굴이 스쳐간다. 이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나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나는 아버지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인생을 마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술과 노름에만 빠져있던 아버지는 병약한 어머니를 너무도 처참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문고리에 빨랫줄을 묶어 자살을 기도했던 어머니는 그러나 다행히도 모처럼 일찍 귀가한 아버지에게 발견되어 살아났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 분노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일 듯이 두드려 팼고, 어머니는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곱씹어야 했다. 나는 겁에 질려있는 순이를 끌어안고 그런 아버지를 그저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어머니는 밤새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다. 그런 어머니의 손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그날의 수입을 모조리 가로챘다. 수입이 시원치 않다고 여겨질 때에는 여지없이 폭력이 뒤따랐다. 이런 식으로 근근히 목숨을 연명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던 어머니는 그 두어 해 뒤에 피를 토하며 통곡을 하다가 마침내 집을 나갔다.
나는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어머니, 가지 말아요.’ 어머니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내가 뼈빠지게 모은 돈을 느이 아부지가 몽땅 뺏어갔단 말여.’ 어머니는 매일매일 약간씩의 돈을 빼돌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름다운 꿈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살아야 한다는 본능은 남아 있었다. 그것이 벌써 두 해였다. 그런데 그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어디에 감추어 두었었는데요?’ ‘천장이었어.’ ‘천장에요?’ ‘그려, 천장 귀퉁이에 돈이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단 말여. 거기에 난 매일 돈을 집어넣었던 것여. 어디다가 돈을 숨겨야 할는지 며칠을 고민하고 난 뒤였지. 그런데 말여, 어저께 내가 그 돈을 꺼내려고 천장을 열어 보았더니…….’ ‘그런데요?’ ‘한 푼도 없더라. 어떻게 알아챘는지는 몰라도 느이 아부지가 넣는 족족 곧바로 빼내간 거여. 나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다. 훗날 너를 데리러 오마.’ 그러나 어머니는 소식을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이미 이승의 존재가 아닌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먹지 못해 가죽만 남은 그 앙상한 몸으로 어디 가서 돈을 벌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이승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머니는 여기와 같은 어느 공동묘지에 묻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만 어머니는 바로 이 부근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머니와 나란히 드러누워 있는 셈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어머니! 대답 좀 해보세요. 지금 나를 보고 있는가요? 이제 살아날 구멍은 다 사라지고 오직 죽는 길밖에 없는 이 불쌍한 자식을 바라보고 있는가요?
나는 본드를 상습적으로 들이마신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손에 끌려 소년원으로 향했다.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여요. 내 손으로 법의 심판을 요청허는구먼요. 다시 풀려나먼은 새 사람이 될 것이라 확신허는구먼요.’ 아버지의 이 말은 결국 나를 웃기고야 말았다. ‘아버지, 제발 웃기지 좀 마세요.’ 그러자 아버지의 거센 손바닥이 나의 뺨을 갈겼다. ‘본드 때문이 아니지요? 순이를 팔아 넘기려는 거지요? 난 다 알고 있어요.’ 자신의 딸을 팔아 넘기려는 파렴치한 인간, 그는 그때부터 내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친구들을 만났다. ‘짜아식, 의리는 있게 생겼군. 넌 금방 나가게 될 거야. 우리 나가서 잘 지내보자.’ 그러나 나간들 무엇하겠는가. 순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이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임마. 그렇게 비관만 할 필요는 없어. 인생의 가치란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라구. 우리 스스로가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너도 조만간에 어쩔 수 없이 이 법을 깨닫게 될 거야.’
그랬다. 나는 출소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은 훔치는 일이었다. 나는 그 방면에 있어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내 나름대로의 법칙과 독특한 비법을 개발했다. 그것은 고도의 몸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것은 무서운 인내심이었다. 설사 들통이 나 붙잡히는 한이 있어도 이전의 죄과에 대해서는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되었다. 어떤 회유와 협박과 고문이 가해져도 참아내는 정신력과 몸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압구정동의 거대한 빌라촌을 내 집 드나들 듯 들락거리던 나는 그 미친놈의 흉악한 몰골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베란다까지 숨어드는데 성공한 내가 조심스럽게 안방을 살피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폭력을 휘두르는 듯 들릴 듯 말 듯한 비명 소리가 유리벽을 헤치고 새어나왔다. 빈집인 줄 알았던 나는 일단 내 빗나간 판단력에 냉철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희미한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살그머니 안을 들여다보던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웬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이미 알몸이 되어 역시 알몸인 채인 여자를 거칠게 폭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사적으로 반항하면서 침대와 방안의 여기저기로 도망 다니고 있었다. 나는 분명한 상황을 알기 위해 거실로 통하는 베란다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비명 소리와 애원하는 소리가 한결 똑똑하게 들려왔다. ‘사장님, 살려 주세요. 전 약혼자가 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일 없다. 이리 와.’ 나는 베란다의 문을 충분히 연 후에 거실로 들어섰다. 문틈으로 그들의 말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 다시 남자의 폭력이 있는 듯 여자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고 방안으로 들어서고야 말았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되었다. 절도의 대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내가 이만한 일에 흥분하고 쓸데없이 뛰어들다니. 하지만 이제 후회를 해봐야 소용이 없는 일이다. 홧김에 간단하게 한 대 내지른 내 주먹은 정확하게 남자의 코뼈에 꽂아들고 말았다. 다음 주먹이 더 문제였다. 그곳은 그 남자의 명치였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순간에 네게 순이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일까.
나중에 내 얼굴을 알아본 그녀는 결국 나의 검거와 판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야 말았다. 나는 참 재수가 옴 붙은 놈이다. 하필이면 그놈이 한 시대를 주름잡는 대단한 재계 인사일 줄이야. 놈은 제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를 쓰고 나를 잡으려 혈안이 되었다. 아무도 놈의 기세를 꺾어놓을 수는 없었다. 나를 잡지 못하면 그들도 끝이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었다. 같잖은 놈이 어쭙잖게 정의를 외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다니.
강도상해에 어느 사이 강간폭행까지 겹쳐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들고 나온 것이 없는데, 그 놈은 잃어버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묵사발이 될 것은 뻔한 이치였다. 나는 놈을 절대로 그냥 둘 수가 없다. 증인석에 불려나온 그녀는 울먹였다. 그러나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누구를 원망하랴. 모든 것을 포기한 나는 내가 저지른 죄과를 자백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주장한 것이 있었다. ‘적어도 절도에 있어서만은 말입니다. 아시잖아요? 그들이 숨겨 두었던 물건들은 어차피 처음부터 장물에 불과했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다시 훔쳤다고 해서 어찌 내게만 죄가 된다는 말입니까?’ 나는 알고 있었다. 드디어 세상은 놀라고 이제 얼굴을 가린 악마의 전령들은 사방에서 나를 공격하여 굶주린 이리떼처럼 내 살을 찢어먹게 될 것이었다.
탈옥한 후에 그녀를 만났다. 아니 분명하게 말하면 피신처를 찾던 나에게 그녀는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사방에 던져두었던 것이고, 나는 그 미끼를 어쩔 수 없이 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그녀를 의심했으나 나는 그녀를 이해했다. ‘이미 버린 몸입니다. 갈 데가 없어요.’ 그녀는 밤의 꽃으로 아까운 청춘을 죽이고 있었다. 밤은 그녀의 생활이고 현재이고 미래였다. 밤과 술이 아니면 그녀는 결코 목숨을 이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미 담배도 술도 보통이 넘어서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해요. 같이 죽겠어요.’ 기가 막혔지만 나는 그녀를 받아들였다.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총상을 입은 허리쯤에서 격렬한 통증이 몰려온다. 별 것 아닐 것으로 여겼던 상처인데 그게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간헐적으로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고통이 잠시 멈추어지면 현기증이 찾아온다. 이러다가는 정말 정신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몰려온다. 상처는 아마도 곧 썩어들어 가리라. 그럴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지리라. 그녀는 지금 잠들어 있을까. 아니, 그녀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박쥐처럼 숨어살던 그 일 년 동안 그녀는 이제 완벽한 나의 분신이 되었다. 그녀는 일터에 나가 나를 위해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해 왔다. 집에 들어올 때는 두어 개의 일간지도 들고 왔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나는 조금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자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욱 조심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쳐서는 안 되었다. 장물은 어쩔 수 없이 헐값으로 넘겨야 했다. 나는 결국 붙잡히게 될 상황을 예상해야 했으며, 그래서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를 남겨 주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그것만을 따지고 본다면 아직도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생의 참으로 아름다운 목표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불안 속이었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게 자라는 행복이었다.
나는 탈옥했다. 내가 탈옥을 하게 된 이유는 무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우선은 그들의 폭행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끝없이 대들었고 기회만 있으면 시비를 걸었다. 나는 그들에게 귀여운 존재가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밉보인 주된 이유였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죽는 날까지는 이 교도소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나는 이 엄청난 구속에 대해 끝없이 절망했다. 그 절망은 결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차라리 죽음 같은 공포였다. 나는 밤새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그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 다가서는 어머니와 순이의 그림자를 어쩌지 못하고 울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법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스스로 충분히 반성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반성의 결과로 내가 이 교도소 안에서 긴긴 시간을 묶여 있는다 하더라도 필요한 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평생 동안이라는 대가는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검찰이 기소한 죄목 일체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날만은 나는 남의 집에 침입한 죄, 그리고 웃기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그들이 믿지 않는 이야기지만, 정의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교도소에서 마냥 썩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더욱이 나는 나에게 그 엄청난 죄목을 뒤집어씌운 저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복수를 해야 한다. 그 복수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곳을 기가 막히게 나가는 일이다.
내 목에는 오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걸렸다. 내 사진은 거리의 곳곳에 붙어 있다. 마치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는 듯하다. 어쩌다 그런 내 사진과 만나면 나는 묘하게도 쾌감이 생길 때가 있다. 절대로 너희는 나를 잡지 못한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설령 한두 사람이 나를 알아본다 해도 그들은 나를 용서했다. 그들 중의 누구는 내 손에 먹을 것과 돈을 쥐어 주기도 했다. 그들 중의 누구는 나의 변장을 돕기 위해 선글라스도 넘겨주었으며, 운동화를 건네주기도 했다. 물론 그들 중의 일부는 곧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들은 그러나 현상금만을 노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범법자이고 탈옥수인 나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를 미워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들은 내가 지은 죄보다도 오히려 세상의 죄를 더욱 미워하고 있을 테니까.
친구들은 이미 나로 인해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당하고 있으리라. 저들은 평생의 감옥생활에 지옥 같은 수감생활을 보너스로 제시하며 그들을 협박하리라. 실제로 어쩌면 그들 중의 한둘은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 숱한 폭행을 당하고 추궁을 당하며 몇 년을 더 살다가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적당한 시점에서 그들은 항복을 할 것이고, 그 사이에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야 한다. 우리들 사이의 의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을 저주한다. 우리는 그들을 적으로 삼는 데 우리의 인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 차이는 보통 사람들보다 우리가 보다 분명하게 안다. 적어도 우리는 그들 앞에 서 보았고, 그들의 감추어진 내면을 속속들이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우리는 우리끼리의 성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우리끼리의 행복을 누리고 지켜야만 했다.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긴 하지만 저들의 설득과 협박을 견뎌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는 결국 나를 두 번째 배신하게 되리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유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유다를 죽도록 미워하고 경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니까. 어쨌든 만약 내일 아침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그래서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나를 위해 달려오리라. 그녀는 나를 사랑하므로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리라. 그녀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기절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내게로 달려올 것이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최신형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뒤를 쫓던 저들은 사뭇 감동하며 그녀의 뒤를 쫓아오게 될 것이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면 울다가 웃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광을 하리라. 나를 부둥켜안고 목을 놓아 울리라.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달래야 할 것이다. 곧 저들이 몰려들 것이고 나는 급기야 가슴에 품었던 칼을 빼어들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총구들뿐이고 달아날 길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저들은 나에게 분명 마음에도 없는 항복을 권유할 것이다. 그러나 삽시간에 덤벼들지는 아니하고 기회만 엿볼 것이다. 나는 의연하게 그녀를 물리치고 저들 앞에 서리라. 그리고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는 절대로 잡히지 않는다.’ 그녀는 몸부림을 칠 것이고 나는 그 모습을 그리 오랫동안 바라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달아나라고 절규할 것이다. 잘못했노라고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그러나 사로잡힌다 해도 나는 더 이상 살아있는 목숨은 아닌 것이다. 잘해야 죽는 날까지 교도소에 갇혀서 이전보다 더 혹독한 멸시와 폭행과 고통 속에서 어서 빨리 죽게 되기를 빌고 또 빌게 될 것이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사로잡힌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참지 못한 저들이 끝내 공포를 쏘아대리라. 저들은 내가 다시 달아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전에 몇 번이나 그랬듯이 홍길동처럼 빠삐용처럼 달아나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달아날 틈이 없으리라.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젠 마지막이다. 뒤를 보이진 않겠다.’ 그리고 나는 가능한 한 용감하게 칼을 빼어들어야 한다. 그리고 저들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그리고 내 칼이 저들 중 누군가의 가슴에 닿기도 전에 이미 내 몸에는 수십 발의 탄알이 박혀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몸은 마치 내 어머니가 평생 입고 살았던 누더기처럼 변해 버릴 것이다. 내가 만약 내일 아침까지 살아있기만 하다면.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일어나 다시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와 나이프를 이용하여 무덤의 뒤쪽을 파들어 가기 시작한다. 아직도 새벽은 멀리에 있다. 어서 드러누워 쉬고 싶다. 내일 아침 세상에 빛나는 태양이 떠오를 때에 나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편안하게 잠들어 있으리라. 이것이 나의 유일한 마지막 자유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차라리 행복하다. 내일 아침에는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아예 영원히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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