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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가 곤란한 여자(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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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681회 작성일 02-06-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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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가 곤란한 여자


나는 지금 한 여자와 살고 있다. 이 여자와의 동거는 거의 십오륙여 년쯤에 이르고 있으며, 이런 여자를 두고 사람들은 보통 아내라고 말한다. 나는 행복하게도 이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도 물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 보아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는 또 있다. 내가 집 앞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녀의 얼굴이 언제나 먼저 밖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야 어느 누구의 아내도 마찬가지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어김없이 그녀의 심장이 통통 튀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발걸음은 충만한 감동으로 거의 날기라도 할 듯이 가볍게 사뿐거린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그녀에게 아직은 넘치는 기쁨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 또한 아직은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서는 맛볼 수 없는 기쁨인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포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녀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아니, 그녀가 감시하지 않아도 나는 언제나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참말은 아내라는 자체가 이미 감시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포로이다. 포로는 포로임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디를 가든 그녀의 포승줄에 끌려 돌아오기 마련이고, 돌아와서는 매일같이 방바닥에 드러누워 천장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문득 그녀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아니, 왜냐하면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은 자꾸 자라서 이제는 없애 버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니까 반대로 내가 그녀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나,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와는 절대로 무관하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쩌면 고의적으로 이 점과 철저하게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게서 풀려나고 싶다. 나는 그녀 말고도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그녀 또한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해도 좋다. 아니, 오히려 언제든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가 있어야 한다. 사실 부부관계에 있어서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중대한 문제점이 지금 우리 부부들 사이에서 나로 인하여 서서히 발생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불행하게도 나는 그것이 나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시작이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지만, 나는 맹세코 아내를 사랑한다. 동시에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결코 아내 하나만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는 가능한 한 아내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실제로 아내를 향한 나의 사랑은 절대로 수그러들지는 않는다는 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반면에 다른 여자를 향한 나의 관심도 완벽하게 접어둘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점에 감사하지만, 아내에게 오로지 나만을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말 이기적이고 어쩌면 야비하기조차 한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아내는 나의 우주이고, 나의 세계이고, 그러므로 나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나는 그녀의 우주이고, 그녀의 세계이고, 그러므로 그녀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의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살아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른 새로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또 그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만이 한 번 사는 이 세상을 가치 있게 보낼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세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우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얄팍한 지식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보편적인 철학에서 빚어진 생각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결코 어렵게 바라보지도 않으며, 또한 어렵게 살고 싶지도 않다.
사람들은 인생을 달걀 위를 걷듯이 조심스럽게 걷는 것이 바르게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눈을 들면 팔방이 거미줄이요, 발을 내딛으면 천지가 지뢰밭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인생은 아슬아슬한 것이어서 함부로 설쳤다가는 신세를 망치기 십상이라는 뜻이 분명하다. 그들은 인생은 육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정신도 아름답게 가꾸어야 참다운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인생관은 아마도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하는 말들일 것이다. 인간은 마음이 몸을 지배하고 정신이 육체를 끌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사람들이 인생의 너무 어려운 부분만을 강조한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면 인생의 쉬운 부분은 대부분 무시하기 십상이다. 산수를 예를 들어 말한다면 숫자는 그 끝이 없지만, 우리는 1에서 9까지의 숫자만 알면 대충은 살아갈 수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1에서 9까지의 단순한 숫자, 나는 여기에 인생의 근본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 그것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모든 숫자는 이 1에서부터 9까지의 숫자로만 만들어진다. 고대 중국인들 역시 이 1에서부터 9까지의 숫자만 만들었다. 그것이면 모든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모두 이 간단하고 상식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감히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뿌리이고 인생의 강령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점에 매달려도 커다란 오류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것 역시 내 안에서 자생한 신념 같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러나 세상이 나에게 가져다 준 때 묻지 않은 철학일 수는 있다.
아내는 나의 이런 생각을 결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끝내 알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시로 내 머리 속과 가슴속을 엿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엿본 만큼 나를 읽는다고 믿는다. 그 정도로도 나를 읽을 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자신만만해 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지만 나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고 용서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것조차도 서로의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나를 읽히면서도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적어도 아내는 그녀가 훔쳐본 나의 머리와 가슴속을 한 번도 드러내놓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쩌면 그녀는 내 머리 속과 가슴속을 전혀 읽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믿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는 적어도 집에 들어와 마음 턱 놓고 편안하게 쉴 수가 있는 것이다. 아무렴, 누가 감히 내 가슴속을 열어젖히거나, 내 머리 속을 분해하여 바라볼 수가 있다는 말이냐. 그게 도대체 가능하기라도 하다는 말이냐.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일은 앞으로도 결코 없게 될 것이다.
나도 아내의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나는 한 번도 그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노력한 적도 없다. 그녀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든, 그리고 어떤 세상이 전개되어 있든 간에 나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부부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일심동체일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하나이다. 그러나 결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지극히 불행한 손실이다. 산술적으로 보더라도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명백한 추락이다. 하나이기 보다는 차라리 둘로 남는 것이 보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에 속할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되면 그 힘이 커지는 수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므로 하나가 되어 완벽하게 실패를 하는 것보다는, 둘이 되어 서로를 보완하여 실패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생각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고, 내 머릿속에는 당연히 내 생각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매일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내게 아내는 참고 견디다가 한 번씩 묻곤 한다.
“어딜 다녀오세요? 이렇게 늦게…….”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습관적으로 호주머니 속의 것을 모조리 책상 위에 뒤집어 까놓는다. 그저 하는 말이지만 그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아내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자, 보아라. 나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정직하다.’
그런 다음 나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그녀의 물음은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묻는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거야? 좀 나가서 바람이라도 쏘이지 않고…….’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어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가 일부러 말해줄 필요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에 속하는 것이다. 그녀는 두 번 묻지 않는다. 어차피 답은 기다리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두 번째 이 질문을 던지게 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예전에는 분명 그러곤 했다. ‘일일이 다 말해야 해? 나 피곤해.’
그런데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내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아마도 한 쪽 귀 정도는 거의 불량 상태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가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한 열 번은 불러야 겨우 한 번 정도의 대답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내가 불러대는 이유에 대해 다시 물은 적은 없다. 이유를 듣지 않았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적도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조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컴퓨터를 켜면 곧 담배를 찾을 것이고, 내가 책상 앞에 앉으면 곧 신문을 찾을 것이다. 내가 소파에 비스듬히 드러누우면 영락없이 티브이의 리모컨을 찾을 것이고, 한참 동안 말이 없으면 이제 곧 커피를 찾을 시간이다. 그러니 그녀는 내가 부르는 것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귀는 갈수록 퇴화해 갈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나를 냄새로도 충분히 인식한다. 아마도 가장 분명한 나의 냄새는 담배 냄새일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로 다가서면 그녀는 십중팔구 보지 않고도 몸을 돌린다. 그런데 그런 동작은 아이들이 다가서면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나의 호흡에서 생기는 냄새인지, 목소리에서 생기는 냄새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걸기만 하면 그녀는 다짜고짜로 ‘응, 당신야?’를 내뱉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잠시 후에 다시 건다. 그래도 아내는 화를 내지 않는다. ‘어서 와요. 맛있는 거 준비해 놀게요.’ 그 다음은 발자국 소리에서 풍기는 냄새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내가 현관에 도착하면 아내는 벌써 문고리를 따고 있다.
어쩌면 아내는 나를 남편으로 선택하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신을 원했던 더 나았을 지도 모르는 다른 남자를 외면하고 굳이 나를 따라나선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내를 훔쳤다. 고백하건대 아내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훔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한다. 처음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최근에는 가끔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자 그 이유는 금방 알 것 같으면서도 다시 묘연하게 사라지곤 했다. 그녀가 예뻤던 것인가, 아니면 내 눈이 잘못 되었던 것인가.
어떤 사람은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내가 처가댁의 덕을 노렸다고도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녀의 집안은 아무래도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지금 나는 충분히 처가댁의 여유를 훔치거나 아니면 빌려서라도 떵떵거리고 살아야 옳다. 하지만 나의 형편과 처가댁의 형편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예전에는 처가댁이 시골인지라 반찬거리도 올려다 먹고 햅쌀도 적당히 실어다 먹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마음의 빚을 갚는데 너무 열중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장인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로는 그런 일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내를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다. 기묘한 인연이지만 사실은 나는 아내의 언니를 먼저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의 처형은 나의 첫 여자 친구이고 첫 애인이었던 셈이다. 나는 처형과 하룻밤을 함께 지낸 적도 있다. 밤새 한 잠도 자지 않고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밤이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답고 즐거웠던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건넌방의 집주인은 우리가 조심성 없이 나누는 우스갯소리에 잠을 설쳤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고등학생인 주제에, 다시 말하면 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버젓이 둘이서 밤을 지새우고 있으니 신경이 곤두섰을 것은 뻔한 이치였다. 이튿날 그는 처형의 학교로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일러바쳤다. 그러지 않으면 이 아이들이 어떤 사고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교무실로 불려간 처형은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도 안 되는 항변을 했고, 나는 담임으로부터 은근히 실웃음이 배인, 그리고 잔뜩 비틀린 미소를 선물 받았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맨 처음 편지를 교환한 것도 처형이었다. 같은 도시의 같은 동네에서 이삼 일에 한 번 씩 오고가는 그 편지는 그러나 사실은 연애편지는 결코 아니었다. 나는 처형을 끝까지 누나라고 불렀으며 처형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동생으로 대했다. 우리는 어쩌다가 학교가 끝나고 나서 교외로 나가기도 했다. 가끔 한참 떨어진 포도밭으로 놀러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톡톡히 봉변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시골 교외에 함부로 나타난 남녀 고등학생을 그냥 예쁘게 보아줄 시골아이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느 날 그녀의 동생을 소개했다. 2학년 때였다. 나는 참말이지 미칠 뻔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예쁜 계집애들을 두루 보았지만 그녀처럼 고운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그녀의 가지런하고 아름다운 치아는 내 혼을 모조리 빼앗아가 버렸다. 그녀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한번 웃기만 하면 내 오장육부는 미친 듯이 흔들리다가 급기야는 거세게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이미 아내는 내게 두려운 이미지를 심어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녀 역시 시골뜨기였으면서도 시골뜨기인 나를 마음 놓고 주물렀는데, 언제나 한 걸음씩을 여유 있게 물러서서 성미가 급한 나를 괴롭히곤 했다.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고양이 앞의 생쥐꼴이 되곤 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성질 급한 나 자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불같이 강한 그녀 때문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그녀를 내 외딴 방으로 유인하는데 성공했으며, 내가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 처형은 인사불성이 되어 내 방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잠시 후 방문을 연 나는 그녀로부터 여지없이 뺨을 두들겨 맞았으며, 그것으로 그녀와 나는, 또한 그녀의 동생과 나는, 영영 이별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나의 아내이다. 신기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처형은 변함없는 누이로 남아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나는 아내를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그러나 또한 강조하지만 아내만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아내보다도 더욱 사랑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여자들을 얼마든지 많이 알고 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실제로 몇 번이나 아내를 배신한 적이 있다. 정말 배신이었다. 내가 아내를 그렇게 쉽게 배신할 수 있었던 근거는 오직 하나이다. 어쨌든 간에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아내를 지키고 그녀를 바라보게 될 것임으로 이런 배신 정도는 충분히 양해되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데 어쩌면 말이다. 정말 깊이 생각을 해 본다면, 나는 지금 아내를 더 이상은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믿는 것은 내 나름대로의 주장이고 고집일지도 모른다. 이미 꺼져버린 애정을 인정하지 못하고 불쌍하게도 끝까지 그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어설픈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아, 이것은 정말 중요한 생각이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내가 기어코 하고야 말다니. 이젠 정말로 아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나는 아내에게 자유를 주고자 노력해 왔다. 그래서 아내는 일주일 중 절반 정도는 낮에 집에 있지 않는다. 그녀의 말로는 그 중의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려 볼링장에 나가는 날이고, 나가는 김에 그들하고 어울려 노래방까지 가는 날이라고 한다. 또 하루는 여성복지회관인가 어딘가에 나가는 날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아내는 도배 기술도 배우고, 바둑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운다고 한다. 정말 할 일이 없으니까 하는 짓인 줄 그녀나 나나 잘 알고 있다. 나머지 하루는 가까운 대학에서 하고 있는 주부대학에 나가는 날이다. 그날도 아내는 하루 종일 강의를 듣고 들어온다. 가끔은 술냄새를 풍기기도 하는데, 나는 절대로 그 강의가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명강의는 어디에서든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나는 아내에게 물은 적은 없다. 모두 그녀가 알아서 스스로 해준 말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만이 내가 아내에게 주고 싶은 자유의 전부는 아니다. 다른 것도 있기는 한데 그녀는 그것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르쳐 주면 안 되는 것이다. 아내는 결코 어린애도 아니고, 돌대가리도 아니다. 아내는 분명 여자이고 뜨거울 줄도 아는 인간이다. 대신 나는 아내가 천박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만약 아내에게서 그런 천박성이 노출된다면 나는 곧 이런 생각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지금까지 나의 바람대로 천박해지지는 않고 있다. 나는 그것이 무척 대견스럽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내는 절대로 쉽사리 천박해지지는 않을 여자임을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도록 심정적으로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부부라고 해도 서로의 뱃속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아내가 나에게 그것을 바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처럼 월권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내를 완벽하게 믿는다는 것은 지극히 불가능하다. 나는 가끔씩 그녀를 의심한다. 의심해야 할 것 같아서 의심한다. 그러나 그 의심이 그녀에게 기분 나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내가 아내에게 주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기쁨을 반감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 여자라고 해서 평생 한 남자만 데리고 살라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비록 어쩔 수 없이 한 남자만 데리고 산다고 하더라도 한 남자만 사랑하라는 법은 또 어디에 있는가. 여자는 어머니이기 전에 여자이고, 아내이기 전에 여자이고, 주부이기 전에 또한 여자이다. 그것은 내가 어디를 가든 남자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다. 절대로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이고, 절대로 두 번 가질 수 없는 젊음이다. 그 소중한 젊음과 인생을 어떻게 한 남자만을 위해서 소모시켜야 한단 말인가. 이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굴레이고 형벌이다. 적어도 나는 그녀가 그런 굴레 속에서 살도록 강요하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내에게 묻곤 한다.
“당신 선 여러 번 보았지? 어떤 남자들이었어? 그 남자들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도 만나는 사람은 혹시 없어?”
그러면 아내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는 눈빛으로 대꾸한다.
“아니, 고등학교 때 훔쳐간 양반이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릴 한대요?”
나도 기가 막혀서 얼굴을 돌려버린다. 하긴 아내는 다른 남자를 겪을 틈이 없기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억지로 그럴 만한 틈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기 한 일 년 전쯤이나 될 것이다. 그녀는 나로 인해 무척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처가댁에서는 여차하면 그녀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적어도 한두 번은 선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 내 추측은 분명히 옳았다. 나는 아내에게서 그에 대한 고백을 끌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있었어요. 어디 지방 방송국 PD라던가 했지요.”
“몇 번 만났는데?”
“세 번요.”
‘그래? 혹시 손을 잡지는 않았어? 혹시 키스는 하지 않았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만남인데? 세 번이면 그건 결혼할 의사도 얼마든지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 내 스타일은 완전히 구겨지게 될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이런 식으로 대답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요. 첫 번째는 그냥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차 마셨구요. 두 번째는 팔짱 끼고 극장에 가서 영화 봤구요. 세 번 째는 그 사람 승용차 타고 멀리 나가서 바다를 구경했어요. 물론 일박 이일루요.’
그래서 나는 아내가 제발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제발 그녀를 훔쳐가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는 특별히 같은 점이 있고, 또 특별히 다른 점도 있다. 같은 점은 우리는 서로가 각 방 쓰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집에 살고는 있으나 언제나 별거 중인 상태다. 물론 서로가 그리워지면 그리워지는 쪽에서 먼저 유혹을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변함없이 서로를 유혹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 유혹을 얼마든지 거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각 방을 쓰는 이유는 다른 곳에도 있다. 그것은 우리 부부가 특별히 다른 점에 해당하기도 하는 사항이다. 우리는 체질상으로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아내는 더운 곳을 싫어한다. 물론 그것은 차가운 곳을 더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내의 방은 한 겨울에도 온기를 집어넣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그러니 내가 시베리아 벌판과 같은 아내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나는 내 방을 따로 정해놓고 그 방에는 주야장창 불을 집어넣는다. 조금만 온기가 사라져도 나는 감기에 걸린다. 게다가 우리는 체형상으로도 다른 부분이 있다. 아내는 방바닥에는 드러눕지 못한다. 방바닥에 드러누워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침대를 애용하는데, 나는 침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맨 바닥에 간단한 요 하나 깔고서도 나는 아주 편하게 잠을 잘 줄을 안다. 그러니 우리는 부부이면서도 언제나 별거 중이며, 별거 중이니 다음에는 두 사람 중 누군가가 이 집에서 사라지는 일만 남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나보다는 아내가 사라져 줬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나가지 못한다.
아, 우리 부부가 같은 점에 있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빼먹었다. 그것은 그녀나 내가 모두 불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어쩌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이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만약 분을 참지 못한 내가 접시 한 개를 던질라치면, 어랍쇼, 그녀는 두 개를 집어던진다. 내가 방바닥을 두어 번 내리치면 그녀는 머리로 사정없이 방바닥을 치받는다. 혹시라도 내가 아내에게 거친 행동을 보이면 아내는 사정없이 나를 두들겨 팬다. 아이들은 주로 제 엄마를 말린다. 아버지가 죽을상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무서워한다. 그러니 제발 그녀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언젠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가 다른 여자와 다툰 적이 있었다. 새벽까지 작업을 하던 나는 가까스로 잠이 들었던 것인데 아침에 인터폰이 울렸다. 차를 좀 빼달라는 전화였다. 아내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면허증을 따고도 운전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못해서 겨우 일어나 내려가 보니 차주인 듯한 여자가 심각하게 자신의 차와 내 차를 살피고 있었다. 다가가 보니 닿을락말락한 두 대의 차가 아슬아슬하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여자의 차가 엊그제 구입한 듯한 새 차였으며, 나를 불러내지 않아도 뒤쪽으로 얼마든지 차를 뺄 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여자의 차 뒤쪽은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은 내가 ‘괜히 왜 사람을 불러 내렸느냐?’고 따져 물었다.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내 신경은 화를 내기 딱 알맞게 예민해 있었다. 그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아저씨 차가 다쳤을까봐 그랬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 차가 흠집이 생겼을까봐 그랬지요?’ 참지 못한 내가 눈을 부라리는데 그 여자는 설상가상으로 ‘남자가 그 정도로 웬 화예요?’ 하고는 비웃는다. 어느 사이 따라 내려온 아내가 마침 그 여자의 싸가지 없는 대꾸를 들었겠다. 기어이 노발대발을 했다. ‘이 아주머니 아주 못된 아주머니네.’ 그러자 덩달아 핏발이 선 그 아주머니가 그녀가 조금 두렵기는 했던지 나를 향해 말을 받았다. ‘아저씨 부인이 맞아요? 이런 여자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요?’ 참말이지, 말이야 바른 말을 했는데 그 여자는 조심을 했어야 했다. 그런 말을 하고도 살아남을 줄로 알았다면 그건 대단한 오해인 것이다. 세상은 무서운 사람들로 가득하고, 이 아파트도 무서운 사람들로 가득한데, 내 아내는 그중 가장 무서운 여자인 것이다. 당연히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아내로부터 머리채를 채이고 귀뺨까지 얻어맞아야 했다. 정말 무서운 아내였다. 나는 종종 그런 일을 당하곤 했다. 대개는 졸지의 기습이기 때문에 미리감치 손을 쓰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를 말리느라 전전긍긍했는데, 덕분에 어느 사이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말 아내는 불같은 여자이며, 내 아내라고 말하기조차도 두려운 여자이다.
나는 이처럼 아내가 두렵다. 두려우니까 제발 없어져 버리길 원하는 것이다. 내가 부부싸움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부부싸움을 한다 해도 나는 집을 나서지는 못한다. 내가 집을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도 집을 나가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비슷한 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내가 술을 마시는 것처럼 그녀도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마셔도 아주 왕창 마신다는 것이다. 새벽녘 베란다에서 이상한 팔자타령이 흘러 나와 잠을 깨어보면 그건 분명 만취한 아내이다. 그녀는 취하면 어머니를 자주 부른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처럼, 세상의 모든 남자들처럼, 그녀도 어머니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좋아하기로 했고, 가능한 한 아내에게 어머니를 만날 기회를 자주 주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 덜 무서워질 것 같다는 그런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내는 입으로만 어머니를 찾는다. 아내는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나지는 못한다.
나는 틈만 나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는 것이 있다. 내가 그녀와 왜 더 살아야 하는가이거나, 아니면 나는 왜 그녀와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되는가에 대해서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답답해질 때도 있고 즐거워질 때도 있다. 왜 나는 그녀와 더 살아야 하는가. 물론 그 첫째 이유는 다른 여자는 나의 아내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는 평생을 살아야 아내가 되는 것이다. 도중에 헤어지면 부인이라고 말한다. 뭐, 첫 번째 부인이라거나 두 번째 부인이라거나 말이다. 나는 아내가 없이는 일단 불안하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하등의 이유도 곧 사라져 버리는 것이고, 내가 자존심을 상해 가면서 욕을 먹어가면서 돈을 챙겨야 할 이유도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아내가 필요하긴 하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나를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다. 평생 기다려야할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갈증을 풀 수가 있다. 기다려야 할 사람이 없어지면 곧 목이 마르게 된다. 목이 마르면 물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 물을 어디에서도 구할 수는 있다. 세상에 남자는 많을 테니까. 그러나 하릴없이 간이역에 가서 누군가를 기다려 보라. 그리고 그 기차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고 기차가 다시 출발해 버릴 때의 그 텅 빈 가슴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는가.
나는 왜 아내와 더 이상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가. 그 문제는 엄밀하게 말하면 아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내 마음하고 같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저 아내가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논리적으로 이러저러하니까 이제는 절대로 둘이 함께 살 수가 없다는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굳이 억지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점에 있어서는 필경에는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는 정해 놓은 목적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도중에 내려 버리는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부산을 향해 떠나다가 나는 대전에서 내리기를 좋아한다. 강릉을 향해 떠났다가 나는 춘천 어디쯤으로 발길을 돌려버리는 것을 더 즐긴다. 그러니 빈말을 한 마디 더하자면 굳이 죽기 위해서 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나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거기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천 년 전부터 예쁜 얼굴로 화장을 하고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누구인가? 참, 그가 여자였던가? 아, 참, 그리고 아내는 가끔 나를 사이코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기필코 아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 대해 이제부터 연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아내에 대해 잘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왜 그녀가 없어져야 하는지를 알고 싶기도 해졌으므로 나는 결국 아내를 연구하게 될 것이다. 아내를 연구하다 보면 그런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나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아내는 가장 가까운 남이요, 그리고 가장 먼 나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이지, 자유롭고 싶었다. 나의 그런 자유를 위해서 도대체 이 여자를 어떻게 처치해야 옳은가. 심각한 문제였다. 보따리를 싸서 처갓집으로 보내 버려야 하는가. 아니면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들하고 묶어서 분가를 시켜 버려야 하는가.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었다. 내가 아내를 처치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이에 아내도 역시 나를 처치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늙으면 양로원 들어가요. 난 싫어요. 늙은이 냄새 나는 것도 싫고, 이만큼 밥해 주고, 빨래 해주었으니, 늙어서는 좀 벗어나고 싶어요. 당신이 내 뒷바라지 해주지는 않을 것 아녜요? 아니면 일찌감치 작업실 챙겨서 나가시거나…….”
농담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가출을 결심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다음이었다.
“평생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주었더니 기껏 나더러 양로원에 들어가라구? 그래 한 번 잘 먹고 잘 살아 봐라. 나 없이도 집구석 잘 돌아가겠지.”
나는 무작정 집을 나섰지만 아내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아이들조차도 기분 나쁠 정도로 무심했다. 용감하게 밖으로 나선 나는 잠시 아파트를 벗어나 호프 한 잔을 기울이다가 돌아왔다. 하지만 들어가기가 민망했다. 나는 그날 밤새도록 아파트 10층까지의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되면 멈추어 설 때마다 띵동거리는 소리가 귀신처럼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 발자욱 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느낌만으로도 알 수가 있다. 그녀는 밤새 현관문을 열어놓은 채로 대단히 속 편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아내는 그런 여자이다. 나는 그런 아내가 무섭다. 아이들도 그렇다.
“아버지, 뭐하세요?”
“그래, 난 병신이다.”
나는 이런 아내가 정말로 무섭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아내가 차라리 없어져 버리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이 하나 있다. 이제까지는 아내도 용서하겠지만 만약 이 말이 아내의 귀에 들어가면 나는 요절이 날지도 모른다. 가끔, 아주 가끔, 나는 아내가 죽어 버리길 바랄 때도 있다. 그래야 내가 사랑하고 싶은 새로운 여자를 만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금방 후회하기도 한다. 내가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아내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지 않는다. 죽을 필요가 없다. 필요가 없으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는 대놓고 아내에게 이럼 악담을 할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내도 자신이 죽을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별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약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아내는 나를 당장 묶어서 경찰서에 보내거나 정신병원에 보냈을 것이다. 그녀는 충분히 그럴 만한 여자이고 그럴 만한 힘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더욱 두려워지는 것이다. 나에게 아내는 정말로 처치가 곤란한 여자이다.
나는 아무래도 이 여자를 처치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누구 다른 사람이 내 대신 아내를 처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차제에 아내의 처치를 위해 현상금을 준비할 예정이다. 그녀가 숨겨놓은 그녀의 비밀 장부에서 나는 요령껏 자금을 빼낼 요량이다. 그런데 이 일을 맡아줄 남자가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두드리면 돌문도 열린다지 않는가? 그런데 나의 이 소름이 끼치는 계획을 만약 그녀가 알면 그녀는 웃을까, 아니면 울까. 모르겠다. 그것은 그 다음 문제이거나 아니면 아무 문제도 아니다. 나는 이제 오직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새로운 꿈이다. 그녀가 사라져 준다면 그래서 난 무척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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