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샤만적 토양에서 꽃피운 신화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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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만적 토양에서 꽃피운 신화적 상상력
--[질마재신화]를 읽고
1. 들어가기.
未堂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연구가들의 다수가 수긍하는 그의 경이로운 모습은 그의 시편들의 양적인 규모에서 뿐만이 아니라, 60년이라는 세월을 넘겨버린 시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더욱 드러난다. 한마디로 말하면 未堂은 한국어의 풍부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내장한 채, 그 어느 시인보다 역동적인 생명력을 자신의 모국어에 지속적으로 불어넣고 있는 시인이다.
未堂의 제6시집 {질마재 神話}(일지사 발행)는 1975년 5월 15일에 발간되었다. 이 시집의 발문을 쓴 박재삼은 "후배들이 그 분(미당)의 회갑을 기리기 위해 이 창작시집을 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집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부는 '질마재 神話'로 33편('新婦'∼'金庾信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2부는 '노래'('새벽 애솔나무'∼'오동지 할아버님')로 1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전 1972년에 민음사에서 발행된 {서정주문학전집} 1에 이미 '질마재 神話'라는 이름 아래 '밤에 핀 난초꽃'({질마재 神話}에 수록되지 않음)을 포함하여 9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로 미루어 {질마재 神話}의 나머지 작품 24편은 대략 1972년부터 1975년 4월경까지 사이에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 연구사
그 동안 여러 연구가들이 이 시집을 연구 검토하여 왔는데, 그 일부는 현상학적인 방법이나 인상비평을 통하여, 토속미학적 가치와 토속적 인간상의 구현에 그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다. 허영자는 미당시와 관련되는 문헌 설화를 밝혀 놓았으며, 정효구는 "본래 시를 비롯한 예술은 모두가 은유와 상징의 세계로 이루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시인과 예술가는 부족한 대로 과거의 샤먼들이 담당했던 우주적 은유와 상징의 해독자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 점에서 서정주는 다른 많은 시인이나 예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의 시집 {질마재 神話}가 흥미로운 것은 시인 자신의 은유 해독 능력은 물론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질마재 마을 사람들의 신화적인 삶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시집 {질마재 神話} 속에 등장하는 질마재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주적인 은유와 상징을 해독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이른바 시인이나 예술가 또는 샤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현실적 삶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어도 그들의 신화적 삶은 우주적인 풍요와 조화를 이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윤재웅은 未堂의 가장 중요한 두 테제를 '생명의 탐구'와 '영원성의 지향'으로 파악했으며, {질마재 神話}가 구현하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들을 神話와 가난과 농경문화 등으로 세분했다. 그는 "이 세목들은 기억의 재생과 풍토의 역사성 등으로 다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논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사성의 문제가 그것이다. 이 시집 속에는 한국 특유의 토속적 풍경들이 한 입심 좋은 이야기꾼에 의해서 마치 다큐멘타리 필름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서정적 순간보다는 서사적 구성이 훨씬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동규는 그의 서평에서 "{질마재 神話}는 언어의 긴장감이 없으며, 시들이 풍속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으나, 풍속 뒤에는 풍속들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전 편이 想이나 리듬과 짜임새에 있어 너무 정적으로 진전이 없다"고 비판했으며, 김윤식 역시 "{질마재 神話}는 시적 긴장을 주지 못하는 줄글에 지나지 않으며 주술적인 태도가 역사의 무방향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김준오는 "{질마재 神話}는 시로서, 즉 예술로서는 실패다. 독자를 끌기 위해 시에 액션을 도입했고, 설명체의 산문을 구사한 것이 결과적으로 反詩的인 형태로서 시 예술을 상실해 버린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이다. …… 그러나 {질마재 神話}는 이런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질마재 神話}에 제시된 그의 체험 세계는 개인적 회상의 영역에 머문 것이 아니라 개인의 유한한 기억의 영역을 초월한 경지로 확대된 삶의 세계다."라고 말했다. 임우기는 미당 시의 핵심적인 문제를 '세속과 삶의 역사를 멀찍이 비켜선 아름다움'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질마재 神話} 시편들의 의미를 '민족의식의 뿌리와 한국인의 원형'의 발견이며, 새세대 속에 다시 살아나는 '재생의 원형'으로 보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질마재 神話}에 대한 연구는 첫째는 그 산문적 형태와 서사성, 둘째는 토속적, 주술적 가치에서 나아가 신화적 입장에서의 검토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고는 한 인간으로서 이순의 나이를 맞이하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인간적 정서를 감안하여, 우선 작품 외적으로 {질마재 神話}가 출간된 시점까지의 未堂의 유년과 故鄕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 또한 그 동안 연구가들의 논문을 바탕으로 하여 {질마재 神話}의 특질인 신화성과, 그 신화성이 근거한 기층문화의 한 뿌리를 작품을 통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 시들의 텍스트는 일지사에서 발행한 {질마재 神話} 중의 제1부 '질마재 神話'에 속한 작품만을 대상으로 했다.
3. 질마재로의 회귀
1970년대는 未堂에게는 꽤 안정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74년에는 선운사 입구에 생존한 시인의 것으로는 처음으로 그의 시비가 건립되었으며, 75년에는 전국 대도시에서 回甲기념시화전이 열렸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본능적으로 지난날과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돌아보게 된다. 충분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볼 때마다 새록새록 다시 살아오는 유년의 산과 들, 그리고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수많은 기억 속의 얼굴들을 떠올리게 된다. 未堂 역시 이순을 맞이하면서 이 人之常情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윤재웅은 "그가 가장 한국적인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유년 시절의 체험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다. 고향 '질마재'에 대한 未堂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속칭 '질마재'라고도 하는 이 仙雲里라는 마을에서 나는 나서 아홉 살까지 자랐지만, 이렇게 유달리도 아늑하고 외진 곳을 나는 아직도 보지 못했다. 鐵路에서 6, 70리, 자동차 길에서도 20리쯤 떨어져 있는, 세 쪽이 낮지 않은 산이고, 한 쪽만이 바다인 이 마을에는 시방도 기차를 원경으로도 보지 못한 노인과 어린이들이 적지않이 살고 있을 줄 안다. 바로 어젯밤에 난 범의 발자취를 봤다는 사람들도, 도깨비 서방을 얻어 전답을 장만했다는 이쁜 과부가 살다 갔다는 집도,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 십년을 살아도 죄라고는 막걸리를 빚어 마시다가 들키어 벌금 낼 돈 대신 징역살이 가는 사람이 하나쯤 있을까 말까한 堯舜적 같은 마을이다.
이 글이 담긴 {나의 文學的 自敍傳}의 출판년도는 {질마재 神話}와 같은 1975년의 10월이다. 그러므로 '질마재'에 대한 그의 이 언급이야말로 {질마재 神話}에 담긴 '질마재'의 가장 가까운 언급일 것이다. 그는 이 '질마재'에서 아홉 살까지 머물렀다. 그동안 그는 새벽녘 정화수 한 사발의 영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한국 재래의 시골주부인 어머니와, 민속적 지식과 비방에 밝아 집안에서 의사와 신관 노릇을 아울러 했다는 할머니와, 옛날 이야기와 귀신 내력에 환하여 어린 미당을 무궁한 설화의 세계로 인도했다는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집안은 이 '질마재'를 떠나서도 결국 이 '질마재'와 같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부안과 고창에서 살고 있었으며, 나중에는 결국 이 '질마재'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으니(1941년), 그는 부친이 돌아가시기 이전까지는 고향 '질마재'를 떠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에게 고향의 선운사나 선운산은 마치 신앙과 같은 신성성을 지니고 있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혹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경우에 더욱 강해진다. 未堂은 바람처럼 떠도는 방랑벽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한국인의 이런 방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韓國 사람들은 그 資質 때문이었든지 環境 때문이었든지 일찍부터 이런 自由를 획득해 익혀 왔다. 그것은 新羅 上古 때부터 그랬다. 살아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 노릇하는 일 외에 永遠한 魂과 끝없는 自然의 浩然한 기운 속에서 사람 노릇 하는 길을 또 하나 두어, 家庭과 社會 속의 사람 노릇에서 落伍하거나 絶望하는 경우에도 여기서 쓰러져 버리지 않고 自然과 永遠의 門을 열고 들어가 다시 生者의 기운을 復活해 再起해 나섰었다. 이 風流의 길은 오랜 歷史 속을 아주 埋沒하지 않고 이어 흘러서, 日政治下의 그 酷毒한 逆境 속에서도 '閑散人夫'니 '장돌뱅이'니 하는 이름의 人格으로 再現되었었다.
미당은 학교조차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했다. 한 구석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도 못했으며, 적어도 청년기까지는 어떤 직장에도 끈질기게 머물러 있지를 못했다. 그는 1933년 貞洞의 빈민촌에서 넝마주이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부터, 1934년에는 금강산 참선길로, 1936년에는 陜川 海印寺로, 그곳에서 돌아와서는 고창의 대숲 초당에서 몇 달을 묵다가, 1936년 가을 다시 상경하여 동인지 '詩人部落'을 꾸몄으며, 1937년 4월부터 6월까지는 제주도에 머물렀다. 1937년 6월 그는 고창으로 돌아왔으나, 이듬해에 장가를 들고는 1940년 가을 다시 만주로 떠나 局子街에 머물면서 滿洲糧穀株式會社에 입사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비극적인 전쟁을 만나 이 시대에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으나, 부산과 전주와 광주를 어쩔 수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떠돌이성을 보여 세계의 각지를 여행했다. 이런 끝없는 방랑과 여행은 결국 그 자신에게 더욱 강렬한 고향으로의 지향성과 회귀의 의지를 심어주었으리라 믿어진다.
4. 샤만적 토양에서 꽃피운 신화적 상상력.
神話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神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승적인 說話'이다. 神話나 神話性의 개념규정은 아직 정확하게 설정되어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질마재 神話}를 神話의 입장에서 분석할 때에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설화와 전설과 민담, 민요 등을 神話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질마재 神話}에서의 신화적 요소는 개인적인 일화가 지닌 신비체험이다. 신화와 신화적 인식은 우주를 살아있는 생명이며 동시에 무한한 상징과 은유의 바다로 받아들인다. {질마재 神話}는 이처럼 우주와 세계를 상징과 은유의 장으로 생각하고 그것과 교감을 이루거나 합일을 형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그는 신라정신을 공부하면서 그의 영원관을 보다 확고하게 간직하게 되었다. 未堂의 시에서 영원은 순환, 반복, 재생하는 영원이며, 그래서 본질적으로 신화의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未堂이 가장 한국적인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유년시절의 체험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는 명백히 민담의 시적 변용이고, 기억의 재생이다. 이야기란 이처럼 반복되고 재생됨으로써 영원의 속성을 얻는다. 미당은 자신의 담론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영원은 곧 신화의 품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담론은 탁월한 상상력에 의하여 변이되고 재생된다. 결국 신화란 그것이 반복과 순환과 재생으로서의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인의 思惟세계는 역사의식의 上層文化와 민간전승의 基層文化로 구분이 된다. 우리가 말하는 文化라는 것은 대개 상층문화를 말한다. 그러나 오랜 피지배민족으로서의 우리의 역사의식은 몰락의 길로 치달았으며, 그것은 곧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나름대로의 문화가 존재하지 못하거나 제 자리에서 정지해 버리는 극단적인 현상을 초래했다. 피지배민족으로서의 역사의식은 곧 죽음과 파멸과 고통을 불러왔다. 그러므로 역사의식의 접근으로서는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마저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이든 예술인이든 간에 눈물을 머금고 감내해야 할 천형과 같은 형벌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이 나라의 당대 상층문화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일제 36년간의 우리 문학은 정상적인 우리 문화를 수용할 수 없었던 데에서 오는 비극적인 희생물이라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상층문화가 회생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과 갈등이 필요했다. 다소간 절멸되거나 이질화되어 버린 부분도 없지 않았으며, 곧바로 이조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와 버린 듯한 어색함마저도 감출 길이 없었다. 밀려들어오는 서구적 문화와, 이데올로기적인 분열과 전쟁, 온갖 변화의 홍수 속에서 민족 전체가 혼란 상태를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해 상층문화는 혼돈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속에서 미당은 상층문화와는 달리 아직도 변함없이 민족적 색채를 간직하고 있는 기층문화에 눈을 돌리면서 비로소 그가 안주할 곳을 찾았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기층문화는 민족의 민간신앙, 巫俗, 祭儀, 년중행사, 通過儀禮, 관습만이 아니라, 口碑傳乘, 民間演戱 등을 포함한다. 기층문화의 핵심은 곧 어둠의 聖化이며, 母胎回歸이며, 나아가 인간회복이며 자연회복이다. 이것들은 비록 근원에서 멀리 흘러와 변형되고 개작되고 접목된 흔적은 있더라도 그 역사적 시간 속에서도 불변한 것으로 남는 핵심으로서 우리는 오늘날 이것을 '한국적 심상의 원형'이라 부른다. 그것은 미개적 퇴행현상으로 쉽사리 규정되는 반근대적 지성의 오만만 없다면 그 始原에서 우리는 한국적 心像의 원형과 얼마든지 해후하게 될 것이다.
미당 시세계의 근거는 이 기층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누구든 미당의 시를 읽고서 적어도 그가 질마재를 고향으로 둔 전형적인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시가 이 민족의 기층문화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는 그 땅에서 자양분을 얻어 보다 더 확장된 세계를 열고자 노력했다. 임문혁은 노드럽 프라이와 엘리어트의 말을 인용하여 "보편적인 정서를 활용함으로써 누구에게나 시공을 초월하여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시가 누리는 가장 중요한 기능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 보편적 정서로 기층문화의 민간전승 만큼 어울리는 것은 없다. 미당의 신라 정신 역시 역사적이며 문헌적 입장에서보다는 오히려 설화적이며 민담적인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미당은 그가 젖어있는 기층문화의 토양에 씨를 뿌려 상층문화로의 재도약을 모색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질마재는 우주 속의 한 작은 마을이지만 이미 우주의 보편성을 그 속에 담고 있는 마을이며, 그 속에 나타나는 신화들 역시 질마재라는 한 마을의 신화이면서 동시에 우주 공동체의 꿈과 삶을 담고 있는 보편성의 신화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도 제일로 싸디싼 아이가 세상에서도 제일로 천한 단골 巫堂네 집 꼬마둥이 머슴이 되었습니다. 단골 巫堂네 집 노란 똥개는 이 아이보단 그래도 값이 비싸서, 끼니마다 얻어먹는 물누렁지 찌끄레기도 개보단 먼저 차례도 오지는 안 했습니다.
단골 巫堂네 長鼓와 小鼓, 북, 징과 징채를 늘 항상 맡아 가지고 메고 들고, 단골 巫堂 뒤를 졸래졸래 뒤따라 다니는 게 이 아이의 職業이었는데, 그러자니, 사람마닥 職業에 따라 이쿠는 눈웃음- 그 눈웃음을 이 아이도 따로 하나 만들어 지니게는 되었습니다.
[그 아이 웃음 속에 벌써 영감이 아혼 아홉 명은 들어앉았더라]고 마을 사람들은 말하더니만 [저 아이 웃음을 보니 오늘은 싸락눈이라도 한 줄금 잘 내리실라는가 보다]고 하는 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놈의 새끼야, 이 개만도 못한 놈의 새끼야, 네 놈 웃는 쌍판이 그리 재수가 없으니 이 달은 푸닥거리 하자는 데도 이리 줄어 들고 만 것이라……] 단골 巫堂네까지도 마침내는 이 아이의 웃음에 요렇게쯤 말려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아이는 어느 사이 제가 이 마을의 그 敎主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언간에 그 쓰는 말투가 홰딱 달라져 버렸습니다.
[……헤헤에이, 제밀헐 것! 괜스리는 씨월거려 쌌능구만 그리여. 가만히 그만 있지나 못허고……] 저의 집 主人 - 단골 巫堂 보고도 요렇게 어른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쯤 되면서부터 이 아이의 長鼓, 小鼓, 북, 징과 징채를 메고 다니는 걸음걸이는 점점 점 더 점잖해졌고, 그의 낮의 웃음을 보고서 마을 사람들이 占치는 가지數도 또 차차로히 늘어났습니다.
--[단골 巫堂네 머슴 아이]
위 시에 등장하는 당골 무당은 충청, 전라,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무당에 대한 호칭이다. 대부분 무업을 세습하는 여무의 호칭으로써 주로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데 주력하는 무당이다. 다른 지역의 무당처럼 '忘我體驗'이 없어 샤마니즘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당골무당은 그것이 샤마니즘이다 아니다와는 상관이 없다. 김열규는 "한국전승에 있어서 무당은 초자연적 존재의 전문적인 통어자로서 민간신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무당은 스스로가 공포스러운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 대해 존경이나 외경감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질마재 사람들에게 당골 무당은 결코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물론 당골 무당이 자신들과 똑같은 평범한 인물도 아니다. 그는 신과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만나는 신조차도 질마재 사람들은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질마재 사람들에게 그들은 즐겁고 희화스러운 존재이며, 어느 정도는 신비스러운 존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신과 그들과의 사이에 통로가 되어주는 당골 무당과 또 다시 그 통로로 성장해 가고 있는 머슴 아이를 지켜보며, 질마재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우주적 화해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당골무당이나 머슴 아이는 이승과 저승,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통로요 신의 메신저이다. 뿐만 아니라 질마재 사람들은 모두가 스스로 당골 무당과 머슴 아이처럼 신의 메신저로 변해가고 있다. '그 아이 웃음 속에 벌써 영감이 아혼 아홉 명은 들어앉았더라'나, '저 아이 웃음을 보니 오늘은 싸락눈이라도 한 줄금 잘 내리실라는가 보다'와 같은 말들은 분명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신의 메신저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려 주는 말이다. 특히 미당과 같은 질마재의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그 말들은 어김없이 당골무당이나 머슴 아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질마재 사람들이 스스로 신의 메신저인 경우가 {질마재 신화}의 많은 시편에서 나타난다.
小者 李 생원네 무우밭은요, 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 그건 이 小者 李 생원네 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이 집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小者 李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 중에서
<눈들 영감 마른 명태 자시듯>이란 말이 또 질마재 마을에 있는데요.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 중에서
질마재 사람들 중에 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드물지마는, 사람이 무얼로 어떻게 神이 되는가를 요량해 볼 줄 아는 사람은 퍽으나 많습니다.
--[李三晩이라는 神] 중에서
옛날 옛적에 하누님의 아들 환웅님이 新婦깜을 고르려고 白頭山 중턱에 내려와서 어쩡거리고 있을 적에, 곰하고 호랑이만 그 新婦깜 노릇을 志望한 게 아니라, 사실은, 까치도 그걸 志望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까치 마늘] 중에서
邊山의 逆賊 具蟾百이가 그 벼락의 불칼을 분지러 버렸다고도 하고, 甲午年 東學亂 때 古阜 全琫準이가 그랫다고도 하는데. 그건 똑똑히는 알 수 없지만, 罰도 罰도 웬놈의 罰이 百姓들한텐 그리도 많은지, 逆賊 具蟾百이와 全琫準 그 둘 중에 누가 번개치는 날 일부러 우물 옆에서 똥을 누고 앉았다가, 벼락의 불칼이 내리치는 걸 잽싸게 붙잡아서 몽땅 분지러 버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깁니다.
--[분질러 버린 불칼]
옛날 옛적에 中國이 꽤나 점잖했던 시절에는 <수염 쓰다듬는 時間> 이라는 時間單位가 다 사내들한테 있었듯이, 우리 질마재 여자들에겐 <박꽃 때>라는 時間單位가 언젠가부터 생겨나서 시방도 잘 쓰여져 오고 있읍니다.
[박꽃 핀다 저녁밥 지어야지 물길러 가자] 말 하는 걸로 보아 박꽃 때는 하로낮 내내 오물었던 박꽃이 새로 피기 시작하는 여름 해으스름이니.
--[박꽃 時間] 중에서
<싸움에는 이겨야 멋이라>는 말은 있읍지요만 <져야 벗이라>는 말은 없사옵니다.
--[紙鳶勝負] 중에서
앞니가 분명히 한 개 빠져서까지 그네는 달 안 좋은 보름 동안을 떡 장사를 다녔는데, 그 동안엔 어떻게나 이빨을 희게 잘 닦는 것인지, 앞니 한 개 없는 아무 상관없이 달 좋은 보름 동안의 戀愛의 소문은 여전히 마을에 파다하였습니다.
--[알묏집 개피떡] 중에서
[在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人情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었읍니다.
--[神仙 在坤이] 중에서
그래, 바람부는 날 그네가 그득한 옥수수 광우리를 머리에 이고 모시밭 사이 길을 지날 때, 모시 잎들이 바람에 그 흰 배때기를 뒤집어 보이며 파악거리면 그것도 [한물宅 힘 때문이다]고 마을 사람들은 웃으며 우겼습니다.
--[石女 한물宅의 한숨] 중에서
오래 이슥하게 소식 없던 벗이 이 마을의 친구를 찾아들 때면 [거 자네 어딜 쏘다니다가 인제사 오나? 그렇지만 風便으론 소식 다 들었네] 이 마을의 친구는 이렇게 말하는데, 물론 이건 쬐끔인 대로 저 옛것의 꼬리이기사 꼬리입지요.
---[風便] 중에서
꽃 옆에 가까이 가는 아이들이 있으면, 할머니들은
[얘야 눈 아피 날라. 가까이 가지 마라]
고 늘 타일러 오셨습니다.
--[꽃] 중에서
兇年의 봄 굶주림이 마을을 휩쓸어서 우리 食口들이 쑥버물이에 밀껍질 남은 것을 으깨 넣어 익혀 먹고 앉았는 저녁이면 할머님은 우리를 달래시느라고 입만 남은 입 속을 열어 웃어 보이시면서 우리들 보고 알아들으라고 그 분의 더 심했던 大兇年의 경험을 말씀하셨읍니다.
-[大凶年] 중에서
위 시들은 모두 질마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시가 출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오랜 세월 동안 질마재 사람들이 이쿠고 이쿼온 경험적 확신이 신비스럽게 숨어 있다. 어느 누가 먼저 그런 소리를 뱉어내도 듣는 사람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 마련이다. 이미 그들은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이런 신성을 획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샤만적인 당골 무당이나 꼬마둥이 머슴은 기껏해야 약방의 감초이거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일 뿐이다. 미당의 시는 민간전승에 발을 담고 있으면서도 그 민간전승마저 뛰어넘고 있다. 이 신계와 속계의 메신저의 존재는 [海溢]에서는 외할머니가 담당한다. 화자는 외할머니로부터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의 신화를 전달받고 있다. 신계와 속계의 메신저는 인간만이 아니다. [신발]에서는 '신발'이,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에서는 '툇마루'가 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할 것은 {질마재 神話}에 관한 한 미당은 대부분 유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유년의 질마재에 머무르면서 이미 그 자신 속에 이야기로 남아있는 전설들을 꺼내 아름다운 신화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얼마든지 샤만이 될 수가 있다. 어른들의 소리는 다만 중얼거리는 소리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전혀 예사로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먼 세월의 무게와 신비스러움까지 덧붙어 있다면 거기에 빠져들어 가슴이 뛰지 않을 아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시궁창에 오줌을 누면 고추가 붓는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어쩌다가 그 말을 잠시 잊고 시궁창에 오줌을 누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고추를 며칠이고 돌아보기 마련이다. 어른들이 '꽃 옆에 가지 마라, 눈 아피 날라' 말하면, 어쩌다 꽃 옆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눈 아피 날까 봐서 밤새 잠못 이루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서정주 시에 있어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문제는 '靈通의 문제'이다. 김우창, 김윤식, 김인환 등은 미당의 영통의 날개가 전근대적 미신의 세계로 날아가는 것이며, 이는 곧 경험 세계의 모순을 시 속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하며, 미당의 시를 궁상맞은 토방집에서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재웅은 이같은 관점은 한국문학사에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 전제하고, 미당의 영통은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원시신앙이 진하게 배여 있는 것이 사실이나, 결국 그의 시에 있어서의 샤마니즘적 제재가 문제가 된다면 한국의 고대 역사조차도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그의. 시가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일 수가 있는가의 문제는 남는다.
{질마재 神話} 이후에는 예전에 자주 보이던 피, 숨결, 눈섭, 손톱 대신에 오줌, 똥, 사타구니, 아이 낳는 구멍, 응뎅이, 용변 등과 같은 생식과 관련된 요소들이 자주 나타난다. 시인의 의도는 이것들을 걸죽한 음담의 맥락 속에 배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몸생명의 생기발랄함 속에 자유분방하게 내던져 놓음으로써 몸생명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데 있다. 성적 욕구와 행위를 생명 현상의 긍정적이고 숭고한 추동력이라고 이해할 때 그런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특성은 생산숭배를 토대로 하고 있는 농경문화이다. 농경문화의 전통 속에서 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풍요를 예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이들의 생명관의 핵심이며, 윤리로부터 해방된 성의 본모습이다. 未堂의 상상력은 저열한 것으로 믿어졌던 속신적인 질서를 유머러스한 입심과 넉살로 되살려낸다.
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新郞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新郞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다. 그것을 新郞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新婦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니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읍니다.
그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新婦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新婦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新婦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新婦] 전문
이 시 속의 新婦의 모티프는 미당이 젊은 시절 만주에서 들은 어떤 민담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하나, 사실은 한국의 민담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유형이다. 재로 변해버린 신부로부터 우리는 무의식 속에 살아 있는 서럽고도 아름다운 한국 여인의 전통적인 인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 시의 의미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가슴 설레는 시간을 파국으로 몰아가 버리고 만다는 데에 있다. 오줌 누러 가는 신랑의 옷자락을 붙드는 신부의 음욕이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랑의 내면 의식에서 비롯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첫날밤 도망간 신랑은 늙은이가 되어 다시 돌아온다. 오해는 풀리지 않았지만 안쓰러운 생각에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자 그만 그녀는 매운 재가 되어 내려앉고 만다. 이 과정은 신부의 억울함이 불처럼 타올랐던 내면의 시간을 암시한다. 이 내면의 시간이 바로 측정하기 어려운 신화의 시간이다.
그런데 위 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모티프는 바로 門이다. 제주도의 무속 중에 특이한 神房이 있다. 이 神房은 무당이 아예 신을 모셔놓고 신의 말을 들어 전하는 곳이다. 무당은 먼저 격렬한 춤을 시작으로 하여 神房門을 연다. 이 '신방문을 연다'는 말은 곧 이승과 저승 사이의 닫혀진 문을 연다는 뜻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門은 지상과 천상, 신계와 속계를 연결하는 통로인 것이다. 門의 자원적 의미는 듣는다(聞)이다. 밖에서 안을 들을 수 있고, 안에서 밖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門이다. 門은 소리의 통로이면서 또한 드나드는 통로이다. 神房에서의 門은 비록 조상신과의 만남에 그 본의가 있으나, 결국 속계와 신계의 통로로써 門을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돌아와 속계에 머물던 신랑은 우연히 신계의 門을 열고 신성화된 신부의 내면과 부딪치는 것이다. 인간이 신계와 만날 때 그것은 대부분 갈망이거나 기도이거나 반성이다. 그때 그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질마재 신화}에 등장하는 신적인 존재들은 그런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공포스러운 신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나서 갈구하고 반성하며 화해를 시도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신이다.
첫 시집인 {花蛇集}에 [門](가슴 속에 匕首 감춘 서릿길에 타며 타며 / 秘藏한 荊棘의 門이 운다)이라는 시가 있다. 여기에서의 門은 달아나고자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지혜의 뒤안 깊이에 존재하는 자아의 문으로써 희망과 구원의 탈출구이다. 그러나 과감하게 밀고 나갈 수 없는 門이어서 荊棘의 문이었다. 門은 이후 전혀 보이지 않다가 두 번째 시집인 {歸蜀途}의 [密語](순이야. 영이야. 또 도라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 문을 열고 나와서)에서부터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門은 [門 열어라 鄭道令아](門 열어라 門 열어라. 정도령아), [누님의 집](大門 열고 中門 열고 돌門을 열고),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정해 정해 정도령아 원이 왔다 門 열어라)에서부터 속성과 신성 사이에 존재하는 門으로서의 구체적인 신성을 획득한다. {서정주 시선}에서는 겨우 [光化門](光化門은 /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宗敎)에서 언뜻 보이던 이 門이 다시 {新羅抄}에서는 [꽃밭의 독백], [古調 壹](門틈으로건 壁틈으로건 가기야 가마. / 하지만 너, 내 눈앞에 매운재나 되어 있다면), [石榴開門](어쩌자 가을되어 門은 삐걱 여시나?), [오갈피나무 향나무](오시는 임 門前에 / 오갈피나무 향나무), [가을에](門으로 열릴 때는 지금일세. 휘영청한 開闢은 또 한번 뒷門으로부터), [다섯살 때](뛰어내려서 나는 사립門 밖 개울 물가에 와 섰다.), [無題](一千年 자네 집 門지방에 울더라도 / 鐘이야 될테지, 되려면 될테지) 등의 여러 편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新羅抄}의 [꽃밭의 독백]을 예로 들어본다.
노래가 낫긴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門에 기대 섰을 뿐이다.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海溢만이 길일지라도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구름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마는 노래도 이제는 진저리가 났다. 바닷가에 머무르면 멎을 것이 뻔한 말에도 이제는 관심이 없다. 산돼지 고기도 산새의 고기조차도 이제는 싫증이 났다. 아침마다 피어나는 꽃에조차도 이제는 고개를 돌린다. 이들 모두는 유한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한계이다.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말을 달리고, 음식을 즐겨도, 그리고 아름다움을 즐겨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것이 화자의 가슴 속에 꽉 차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꽃밭에 기대어 서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제발 門을 열어다오, 벼락과 해일이 세상을 뒤집는다 하여도 그 열려질 門을 열고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밟고 싶다. 화자가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는 곧 신성이다. 그는 이 신성의 세계를 향하여 강렬한 욕구로 몸을 불사르며 끝없이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花蛇集}의 [古調 壹]에도 門이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며, 그 외에도 '하늘', '동아줄', '샘', '길', '바람', '문', '벽', '재', '물'이 어우러져 있다. 여기에서 동아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민담에서 취재한 것이며, 샘 속 몇 만리 길은 {歸蜀途}의 [누님의 집]에서 등장하는 설화의 재생이다. 매운재는 훗날 {질마재 神話}의 [新婦]에서 더욱 구체화된 모티프이다. 그렇다면 門은 분명 이런 민담과 설화에 바탕을 둔 속성과 신성의 통로로서의 門임을 이해할 수가 있다.
5. 나가기.
신화와 신화성, 무속과 샤만의 정의와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미당의 시세계를 샤마니즘으로 격하시킬 위험이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는 상태에서의 이 작업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리고 시인의 외적인 상황이 내적인 세계와 얼마나 관계가 있을 것인지도 짐작에 불과한 정도라서 굳이 그의 시 세계에 관련지은 것 역시 크게 자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세계가 우주적이고 포괄적이고 전인류적인 깊이와 통찰이 있다 할지라도, 그 출발은 한국인이요, 질마재 사람으로서의 출발일 것임을 염두에 두었다.
미당의 시는 젊었던 날의 역동적인 관능과 혼돈에서 점점 안정된 세계로 나아갔으며, 거기에 신라 정신이 추가되어 더욱 깊이 있는 세계를 구축하였다. 미당 역시 인간이었으므로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년의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세계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농후했고, 그곳에 질마재가 마치 태고인 것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질마재는 신라정신과 동일한 위치에 서 있다. {질마재 신화}의 신화적 상상력이 {신라초}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신라정신에서 질마재로 수평적인 동시에 시간적으로 이동했다는 점일 뿐이다. 그러나 물론 {질마재 神話} 이전에 그에게 질마재적 모티프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질마재 神話}를 전라도 민속 풍토기쯤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것은 명백히 한국의 역사이고 풍토이며 민속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질마재 神話}는 {삼국유사}의 변형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미당 역시 생명의지를 갖고 있는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부단히 살려고 노력해 왔으며, 더욱 오래 살기 위하여 지금도 피나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그는 방랑과 기억의 시인이다. 방랑은 새로움에 대한 편력이다. 새로움이 늘어갈수록 기억의 세계 또한 그 영역이 확대된다. 그는 기억하기 위해 살려고 노력한다. 그에게 기억의 상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그것은 곧 인간적 사고, 또는 존재적 가치와도 동일한 것이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본능적인 심리작용으로 치욕스러운 기억조차도 아름답게 변형시킬 줄을 안다. 그것 또한 생명 의지이다. 어떤 과거도 기억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한결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무엇이든 아름다운 것이다. 그 기억의 세계에 부활과 화해의 영원한 신화적 세계를 구축한 미당의 시 세계는 아무리 당대의 갈등과 고통이 실존되어 있다 할지라도 버릴 수 없는 민족적 가치와 향기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우기가 주장하는 바 '시인의 삶의 그늘'에 관하여는 다시 한번 돌이켜 보아야할 부분이다. (각주는 생략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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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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