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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현실 인식과 눈뜨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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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987회 작성일 02-06-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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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인식과 눈뜨는 자아
-- 박태순의 [서울의 방], [동사자], [三頭馬車Ⅰ]을 중심으로


1. 들어가기.
1960년대는 자유의 문제를 제기했던 4·19와 근대화라는 이름을 제기했던 5·16으로 시작이 된다. 물론 그것들의 징후는 1950년대의 전쟁과 자유당 정권의 부정 부패, 자유의 억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자유화와 근대화라는 두 개의 축은 우리의 60년대가 안았던 역사적 의의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 둘의 갈등과 지양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웠던 지는 이후 70년대의 중산층 의식의 성장과 민중 의식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한국 소설에 있어 60년대와 70년대의 소설이 50년대의 소설과 구별되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현실적인 삶과 역사로의 회귀'라는 사실이다.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세계와 현실에 대한 소설적 질문은 대체로 실존적인 차원과 일상적 삶의 차원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삶의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자유롭게 탐구하는 소설작품은 제대로 산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분단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콤플렉스에 대한 천착, 산업사회가 창출한 계급모순과 분배의 정의에 대한 관심, 몰락해 가는 농촌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탐구, 개인의 자유와 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천착, 왜소화해 가는 개인과 벗어날 길 없는 일상적 삶의 세계에 대한 섬세한 관심 등이 소설적 질문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인훈의 [광장]과 [회색인]으로 대표되는 6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적, 관념적 관심은 70년대의 현실적인 삶의 문제와 관계된 관심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박태순은 1942년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1947년 서울로 와 이후 서울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는 1960년의 4.19에 직접 가담했으며 이 대에 상당한 충격을 받는다. 1964년 단편 [공알앙당]이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입상하고, 1966년 중편 [형성]이 {세대} 제1회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으며, [향연]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약혼설]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되었다. 그는 1974년 '문인 61인 선언' 발기에 참여하고, 그 해 문인간첩단 사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으며, 그 해 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에 참여했다. 1975년 당분간 절필하기로 작정하기도 했으며 1980년 무크지 {실천문학}을 발간했고, 1988년 중편 [밤길의 사람들]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본고는 그의 60년대 단편 중 세 편([서울의 방], [동사자], [삼두마차])을 텍스트로 하여 그의 60년대의 한국사회에 대한 현실인식과, 작품 속에서의 해학적 비판과 박태순식 유머를 살펴보고, 그런 속에서 주체 곧 자아를 찾으려는 자세가 어떻게 시도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보고서가 될 것이다. 여기에는 아직 미흡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간의 몇몇 논자들이 파악한 박태순 소설론을 참고로 했음을 밝혀둔다.

2. 연구사.
박태순에 대한 그간의 평가는 현실인식과 관련하여 그 특성과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밝히는 데 집중되고 있으며 평가의 주요 항목은 '4·19 체험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 '소시민적 일상성을 비판한 작가', '역사 의식을 바탕으로 민중을 탐구하고 있는 작가'로 압축되어진다. 이처럼 4·19 체험과 도시 빈민의 삶에 대한 추구가 작가의 문학적 귀결로 분석되어 투철한 리얼리즘계 작가, 혹은 민중작가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민중문학을 표방했던 70∼80년대를 박태순 문학의 본령이라고 규정하면서 그런 선입견 아래 60년대 박태순의 문학은 대체적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박태순에 관한 그간의 연구를 분석하면 대체로 야생의 삶의 의미를 추적한 것, 소시민적 일상에 대한 부정의식을 지적한 것, 민중에 관한 것, 4·19 체험을 다룬 작품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김병익은 [단씨의 형제들]에서의 단기호 등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정상적인 삶의 거부가 곧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그에 대한 대안이 바로 방황과 야성이라고 지적했다. 오생근은 박태순 문학의 출발점을 시대에 대한 부정정신으로 파악하고 부정의 대상은 소시민적 안락에 안주하려는 배신적 인간상이라고 했다. 김병걸은 [정든 땅 언덕 위]와 [단씨의 형제들]을 분석하면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소시민의 안주를 추구하는 도시적 삶, 그리고 양심과 책임이 부재하는 지식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최원식은 박태순을 '4·19의 순수성과 미덕, 그리고 한계까지 모두 갖춘 작가'로 평가했다.

3. 현실 인식-근대화 속의 황폐한 樂土
박태순은 60년대의 근대화라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4·19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그에게 닥쳐든 5·16과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사회개혁은 그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황폐함으로 보여진 듯하다. 1966년 12월에 발표된 그의 단편 [서울의 방]은 하숙방을 옮기고 난 '나'라는 인물이 애인 지온이를 만나서 문득 두고 온 거울을 찾으러 예전 하숙집 방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그 방의 황폐함을 발견하고 심각한 허무감에 빠져든다는 내용이다. 그의 눈에 비쳐진 도시 서울의 모습은 사뭇 심각한 상태이다.

삼백만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득실거리는 이 더러운 도시에서 마음에 맞는 방을 바란다는 것은 굉장한 사치일 것이다. 방이 없이 헤매는 사람이 그 얼마나 많으냐.

우선 '나'가 갖고 있는 서울에 대한 느낌은 더러운 도시이며, 집 없는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곳이다. 근대화의 열풍은 곧 바로 이농현상을 가속화시켰다. 농촌은 텅텅 비어 갔으나 서울만은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바쁜 이 많은 사람들은 서울의 거리를 여기저기 헤매면서 포화상태의 도시에 마치 쓰레기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있었다.

밤에 높은 지대에 올라가 시내를 굽어보는 때가 늘었다. 도깨비 불 같은 수천 수만 개의 등불이 빛을 발하면서 그곳에 지쳐빠진 영혼들이 허덕이고 있음을 속삭여준다. 그 속삭임은 바로 시끄러운 금속음의 소음이 되어 돌아온다. 거기에서 받는 느낌은 암담한 것이다. 나는 그 불빛에서 아주 강력한 적을 보게 되고 가장 무서운 애정을 그 불빛에 보내기도 한다. 그 불빛은 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불빛보다도 더 까물대고 허덕인다.

그들의 지쳐빠진 영혼은 소박한 꿈조차 가질 수가 없었다. 안온한 한국적 정서는 근대화의 쇳소리에 여지없이 깨어지고, '나'는 그 속에서 가장 강력한 적을 발견하며 그러나 그 적에게 가장 무서운 관심을 돌려주고도 싶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 치이며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 거리의 변화는 음식점에까지 미친다.

음식점은 구공탄 냄새가 났고, 지저분하게 더웠다. 연기가 자욱하게 들어차 있었고, 숟갈질 소리들이 요란했다. 그것은 암만해도 내가 익숙해질 수 없는 더러운 풍경이었다. 주문을 받으러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꽤나 불친절했으며, 우리 앞에 음식이 놓이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흡사 식사란 자기 집에서 해야 한다고 삿대질을 하는 것처럼.

가족적 분위기가 사라진 서울은 마치 동물들의 우릿간과 다를 게 없다. 그것은 '나'가 머물렀던 하숙집도 마찬가지였다. 오십 줄의 주인남자와 갓 서른을 넘은 주인아주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부부싸움을 벌여 집안을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만들곤 했다. 모두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다급한 분위기이다. 박태순은 그것이 근대화라는 전차가 끌고 가는 요란한 불협화음의 풍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근대화에 대한 소시민의 반응은 변소에서도 잘 나타난다. 식모애 윤실이는 시골의 지저분한 재래식 화장실에서 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 수세식 화장실을 접하자 시간이 날 때마다 화장실 바닥을 닦는다. 그것은 보릿고개로 고통을 받던 시골처녀가 상경하여 그 동안 동경하여 마지않던 근대화의 쓸만한 맛을 보고는 그것을 긍지로 받아들이는 우스꽝스러운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내 방이 없는 하숙생활에 대한 피로와 권태에 시달리는 주인공 '나'는 하숙생활을 전전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에게는 사랑하는 애인도 있지만, 그에게 미래는 불분명한 모습으로 멀리에 서 있을 뿐 그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비쳐진 서울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은 한가지로 이토록 절망적일 뿐이다.

지은 지 고작 이년 남짓한 집치고는 벌써 제목이 썩고 못이 빠져서 층계는 요란스런 소리를 냈다. 그래서 층계가 와삭 무너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고가의 붕괴와도 또 다른 이 퇴락. 표면의 현대식 양상과 이 내부의 지저분함은 어떻게 연관이 될까? 정신의 연륜 축적이 전혀 없이도 발생되는 이 고물. 몇 백년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던 집이 썩고 낡았다면 얼마든지 이해될 만하다. (중략) 하지만 지은 지 이년밖에 안 되는 집이 썩어 문드러져 있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게 되는 것인가.

계절조차도 외면하고 비껴가 버리는 황량한 도시.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신축된 각종의 주택들은 이 년도 채 못 가서 금방이라도 지저분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다. '나'는 얼마 전까지 머물렀던 하숙방을 돌아보며 마치 환각에 빠진 듯 놀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성급하게 진행되는 근대화에 대한 냉철한 비판일 수 있다. 이 땅의 근대화는 정신의 연륜이 축적되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진행이 되어 세월의 때가 묻은 전통적 고물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모습의 전혀 쓸모 없는 고물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거울은 원래 엉터리 제품이어서 제대로 상을 비추지 않았다. 얼굴을 들여다 볼라치면 코가 주먹코로 변형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표정도 이상하게 뒤바뀌어서 내가 아주 둔한 바보처럼 보여졌다. 나는 그 거울에 대하여 하나의 편견을 가져오고 있었다. 말하자면 출세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대인관 같은 것에 그 거울을 비유시키기를 즐겨했다. 그러므로 내 얼굴이 괴상하게 찌그러져 보이는 것은 아직 초라한 나로서는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와중에서도 자신을 끈질기게 돌아보기 위해 '거울'을 들여놓는다. 그것은 4·19와 자유와 혁명과 젊음의 맛을 기억하는 자의 모습이다. 거울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 지를 알아보자는 데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 거울은 자의이던 타의이던 간에 불량품이어서 얼굴의 형태가 정상적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60년대의 서울은 한 젊은이에게 자신의 실체조차도 파악할 수 없을 만큼 허황되거나 날조되고 있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비춰보기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대략 이 삼년 동안의 여러 일들이 뒤범벅이 되어 나를 닦아세우고 있었다. 나는 졌다. 나는 저항 없이, 입술에 묻어나고 있는 저 번거로운 기억들을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지리하구나. 귀찮구나. 시시하구나. 허무하다. 텅 비었구나. 위대한 황무지. 과연 무엇을 건설할 수가 있겠으며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지고 이 황폐를 부정할 수가 있단 말인가? 누가 이다지도 비참해지는 상태를 얘기해 줄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서 우리는 웃을 수 있단 말인가? (중략) 세상이란 그렇고 그런 것이니 일찌감치 파멸을 자인해 버리라는 말인가? 그리하여 시궁창 밑으로 들어가서,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고 있으란 말인가? 도대체 황폐를 인정하고 그 황폐가 낙토인 양 기만하여 우선 기만부터 배우란 말인가?

'나'는 체념한다.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거대한 힘은 무서운 속도를 가지고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이 땅은 황무지로 변할 뿐이다. 그러나 포기하면 할수록 속이 뒤집어진다. 당치 않은 꿈으로 민중을 기만하는 거대한 세력들은 그들의 잘못을 인정할 자세가 아니다. 그들에게 이 황무지는 당연한 낙토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민중은 얌전하게 잠이나 자면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머지 않아 도래할 근대국가 시민으로서의 축배나 들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처럼 개인의 자유와 정신이 황폐해진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건설될 수가 없다는 것이 박태순의 견해이다.

과연 그곳은 방이었을까? 나는 이쪽저쪽으로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몹씨 추웠다. 방안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가물이 들어있던 자리에는 그대로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는 하숙방 속에서 거리를 보았고 소음을 들었고 쪼들린 직장의 풍경이 나타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것에 의하여 너무나도 박탈당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방은 방이 아니었다. 그곳은 소음이 일고 있는 거리 한복판이었다. 나는 신축 양옥이라는 것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꼈다. 방은 밀폐되어 있지 않았고 비밀하게 축소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껏 문 바깥, 방 바깥에서 서성대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나'는 나의 방이 방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공리적인 상황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무너지고 있었으며, 먹고 살기에 바쁜 사람들은 그것조차 까마득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허술한 근대화로 인해 비뚤어져 가는 사회에서 소시민의 체념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한 구석에서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소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박태순은 한국적인 전통적 정서를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시도한다. '나'는 하숙방에 애인인 지온이의 사진과 함께 천하대장군인 장승을 걸어두며, 난로가 놓인 마루방보다 전형적인 한국의 고가와 온돌방을 선호하는 한국인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무차별로 침투해 들어오는 서구적 문물과 환경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텅 비어버리고 만 이 방에서 나는 새로이 허무의 거품이 태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싶었고, 그 허무의 기분으로 지온이를 나에게 일치시키고 싶었다.

'나'는 모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애인 지온이와 함께 있는 순간에도 언제든 다른 것을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는 '울음이 터져 나올 듯한 따분함'을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문득 지온이를 껴안고 싶어한다. 그녀를 자신만의 황무지로 확인 받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 조급함으로 쉽사리 흥분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박태순의 60년대를 극복해나가는 '야성'이기도 하다. 그가 등단작에서부터 소시민적 일상의 문제를 소설적 대상으로 삼고, 그 대상에 대한 탐닉과 초월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갖게 된 근원에는 연애 모티브와 야생 모티브가 중요한 배경으로 파악되어진다. 이 연애 모티브와 야생 모티브의 근저에는 바로 생명력이 있는 야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4. 풍자적 비판과 박태순식 유머
세 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삼두마차]는 그 전편이 1968년 6월에 발표되었다. 후편은 1969년에 발표가 된다. 이 [삼두마차Ⅰ]은 우리 고전 중의 [허생전]을 모델로 하여 그것의 풍자적 비판 정신까지도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은 가장 리얼리틱하면서도 이야기 구성상 허구임을 또한 가장 강하게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보인 풍자와 비판이 핵심적인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박태순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거리낌없이 작품 속에 삽입하고 있다. 더군다나 세번째 이야기인 [八金山으로 가자] 는 대부분 이 허생에 관련된 이야기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의 [허생전]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 의도는 다분히 풍자적일 수가 있다. 그런 만큼 현대적 입장에서 작품성을 논한다면 한 수 아래로 밀려날 수도 있는 작품이다.

"선생님은 박 연암이 지은 허생전을 읽은 적이 있습니까?" 이 삶은 허생전을 가지고 왔더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패관문학은 읽은 적이 없거든. 전통적인 유학으로 따져보자면 박 연암이란 사람은 좀 외도를 한 위인으로 치는 법이 아닌가.

그의 의도적인 자세는 이미 첫 번째 작품인 [김씨신문]에서부터 드러난다. [김씨신문]의 주인공은 허씨 성을 가진 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또한 그 주인공의 행적이 [허생전]의 허생과 거의 차이 없이 일치한다. 게다가 대학 동창 변오석 역시 [허생전]의 변부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왜 이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은근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드러내 놓았을까. 그것은 박태순의 유머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고 가장 실감나는 유머로 그는 가장 단순한 작품을 시도했던 것이다. 60년대적 정서는 아직 미적 예술적 가치에 깊숙이 빠지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러한 경우에는 드러내놓고 [허생전]을 되살려 내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박태순의 풍자적인 자세는 '김씨신문'이라는 성씨신문에서도 엿볼 수가 있으며, 땅 투기를 쥐꼬리 장수로, 釜山의 釜라는 글자를 파자하여 八金으로 사용한 데에서도 역력하게 들여다볼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삼두마차]를 애당초부터 풍자와 비판이라는 주제로 넉넉하게 받아들이며 읽기 시작할 수가 있고, 만화와 같은 작품 세계 속에서 시원스러운 현실 조롱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있게 된다. 작가의 의도에 순순히 빨려 들어가 그의 말장난에 열심히 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전혀 화가 나거나 우습게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이 주는 맛이다. 게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가 이미 충분히 감지하고 있는 허생전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소설적 사기가 전혀 없음을 솔직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끊임없이 재난이 잇달을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정감록}을 들먹이며 '면면이 생을 이어온 민중의 의식이 박혀 있다'고 하여 마침내 민중의 개념을 형상화시켜 가는 흔적이 엿보인다.

어찌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을까 가르쳐주려 했더니 관둬야겠군. 하지만 자네가 화를 내다니, 그래 세상이 그렇게까지 달라졌단 말인가? 달라졌자면 어디 잘 좀 해보지 그래? 고얀 녀석 같으니라구.

그는 자신이 마치 허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에 당장 필요한 방책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나 받아들일 자세가 아니라서 그만 둔다는 식이다. 허생의 이야기를 이완이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해서 고칠 수가 없었던 옛날 그대로 오늘 현재도 그렇게 될 것임을 선언하며 야유하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하고 능력 있는 지식인이 소외당하고 괄시를 당하는 세상이니, 바보 같은 너희 끼리나 잘 해보라는 식이다. 그러나 잘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의식이 짙다. 그것은 지식인의 능력이 버려지는 사회에 대한 허무감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준열한 꾸짖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허생전적 구성과 의도를 넘어서서 상당히 사실적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너무나 분명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1700년대 중기 이후의 인물이다. 그는 20대부터 탁월한 문인으로, 진보적 사상가로 두각을 나타내어 양반전이나 허생전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냈으나, 그는 당대의 양반 사대부들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않았으며, 농민이나 상인들에게도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다만 기이한 재주를 가진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고독하게 은거하며 세상을 개탄하다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현실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라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허생전]을 들 수 있다. 우리는 그의 [허생전]을 통하여 당대의 정치와 경제와 외교 등 다양한 모습을 파악할 수가 있으며, 한 허구적인 인물을 통하여 선각자적인 정신과 예언자적인 혜안을 발견할 수 있다.
박태순이 이 고전적인 [허생전]을 드러내놓고 작품 속에 삽입한 의도는 유머에 가깝다. 굳이 [허생전]을 실명으로 삽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애써 [허생전]을 삽입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재삼 그 의도를 분명하게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슬그머니 어린애다운 실소와 아울러 시원스러운 웃음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5. 삼인칭화된 '나' 찾기
박태순이 인식한 60년대의 한국사회는 주관을 상실한 서열이 낮은 한국적 귀신들이 언제든 바로 자신일 수도 있는 동사자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 지를 스스로에게 반복하여 묻는 상황이다. 그의 66년 작 [凍死者]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수없이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는 주인공의 독백이 마치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인칭 소설처럼 전개되어진다.
낙하산계라는 것을 만들어 영세민들을 농락했던 주인공 세현의 회사는 드디어 법망에 걸려들고, 정형태라는 동료는 사람들로부터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하였으며, 지철만이라는 인물의 고발로 세현은 형사범이 된다. 그 날 그는 살인을 목격한다. 그런데 그는 그 날 아침 87번 급행버스를 타려했으나 어찌하다가 87번 완행버스를 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그는 어째 실수한 것처럼 생각되었던 그런 기분으로 이날의 저쪽에서 살인이 이루어지는 광경을 면밀하게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 바 사람들의 낙원이어야 하는 낙원동 뒷골목에서 일어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살인사건이다. 그러나 사실 사망자는 길거리에서 죽어간 늙은 동사자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 죽음을 살인으로 인식하며 살인자는 바로 다름 아닌 겨울의 여신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불어닥친 근대화의 열풍은 한국적인 인간성마저 빼앗고 있었다. 꿈과 상식이 사라진 현실. 어디에선가는 누구의 책임이랄 수도 없는 죽음들이 생겨나고, 그것은 어떤 죽음이라도 살인으로밖에 간주할 수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60년대의 한국 사회를 비관적 자세로 조망하고 있다. 60년대의 한국사회는 영하의 세계였으며, 무엇인가에 냉혹하게 도취되어 있는 세계였다. 무성의하게 거리로 향하여진 레코드사의 스피커는 추운 거리를 향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발사하고 있었으며, 사막과도 같은 거리, 얼어붙은 바다와도 같은 거리에는 소년들이 금수품인 킹 에드워드 시가를 팔고 있으며, 어머니와 아들이 아스팔트에 엎드려서 '한푼 보태 주세요'를 되뇌고 있으며, 소시민들이 서열이 낮은 귀신처럼 떨고 있는 사회였으며, 골목엔 언제나 낯선 사내가 서성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 땅은 모가 났기에 생명은 잔인했다. 햇볕이 아쉬웠고 시장 마당이 떠들썩한 것은 저저금들 햇볕을 차지하고 싶어서인 것 같았다.

하늘은 둥글므로 원만하지만, 땅은 모가 나서 거칠고 잔인하다. 이 잔인한 땅덩어리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시끄럽게 다툰다.

꽁꽁 얼어붙은 땅. 그리하여 단단해진 땅. 바람이 땅 위를 바로 훑었고, 맞는 사람은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땅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땅 위를 훑고 가는 바람이다. 제 마음 대로 얼마든지 불었다가 그쳤다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은 일반 소시민들의 어깨 위에 군림하는 기득권 세력임에 틀림이 없다. 소시민들은 그런 무지막지한 바람을 어쩔 수가 없다. 피할래야 피할 곳도 피할 방법도 없다. 그 자리에 서서 그저 견디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통스러운 나는 자꾸 사라지지만 전반적인 상황을 인식하려는 눈은 새롭게 자라기 시작한다.

나너 없이 다 아웃사이더로 자처하는 이 사회에서, 당신이라는 이인칭의 영원한 부재를 느낀다. 도대체 나는 있는 것일까? 나는 나를 삼인칭적인 존재로 느끼는 데에만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나도 없고, 너도 없다. 오로지 삼인칭적인 존재들로만 가득하다. 뒤집어 보면 나도 너도 주인이 될 수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도 없으며, 권리도 주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런 사회가 과연 어떤 형식으로 발전할 수가 있겠는가. '자기의 목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목구멍으로 듣는 것'이 다반사인 사회. 그것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목소리에 대한 인정이며, 그 목소리의 가능성조차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60년대적 상황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목소리는 저 외로운 내부의 음성으로, 저 혼자만에 반향하는 또 다른 울림으로만 괴롭게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목구멍으로 듣게 되는 것은 일종의 비극이다. 그것은 갇힌 자의 모습이이거나 아니면 자폐자일 수밖에 없으므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놓았다고 주장하는 관리들의 어조에 형성되어 있는 세계-그 세계에 참여할 수 있을 뻔뻔스러움을 당신은 가지고 있는지? 사회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전쟁터로 의식될 수도 있고, 감옥소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전쟁터는 노곤한 평화시대의 외양을 꾸미고 있으니 개지랄이고, 그리고 이 감옥소는 불안한 혼돈을 허용해 주고 있으니 뻐근하다. 세현은 열등감을 느끼고 따분해질 적에 더욱 한국인이었다. 아무렇든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어떤 조처가-파충류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윤리이다.

전쟁 중으로 보자니 총격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감옥으로 보자니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는 있다. 그러니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60년대의 근대화는 불명확한 모습과 얼굴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인데 적절하게 적응해가지 못하는 주인공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파충류적인 조처란 다름 아닌 따뜻한 동면이다. 주인공 세현은 미국인처럼 일본인처럼 중국인처럼 행동하다가도 중요한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으로 돌아오는 인물이다. 겨울을 느끼고 겨울을 물리치는 한국적인 방식, 그것은 따뜻한 온돌방이며, 텁텁한 숭늉이며, 또는 저 고대에 있었던 겨울의 사랑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6. 나가기
박태순은 좌절된 4·19 세대의 작가로서 4·19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기를 희망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그것은 4·19 세대가 패배주의자로 전락하여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것을 불안한 모습으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또한 당시의 사회가 황폐화된 상태의 낙토로 위장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젊은이와 지식인들이 갈 곳을 몰라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그의 이런 현실인식은 그가 70년대의 민중문학으로의 혈로를 뚫는 데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으로 작용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거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박태순이 그 동안 감추어진 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나'라는 주체를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나'가 주체적으로 운신할 수 없는 60년대의 상황을 풍자적인 안목으로 비판했다는 점이다. 5·16 혁명의 주체자들이 주인이 되어 불도저처럼 끌고 가는 근대화에 나머지 모든 민중은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그저 삼인칭적인 존재로 그저 끌려만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현실을 주체적으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60년대를 '그들'의 세계가 아닌 '나'의 세계로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에서 그가 70년대 한국문학이 민중문학으로서 꽃을 피우게 된 과정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이룩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각주는 생략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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