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귀곡산장'에서의 하룻밤/내항, 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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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산장'에서의 하룻밤
--율사리 워크숍을 다녀와서
처음이 아니어도 처음이라고 하자. 내항문학회가 향토문단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닻을 올린 지 어언 이십 오년,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설레임은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너무너무 어울릴 뿐이다. 비록 다섯 번째 시도되는 '내항 시적행위'의 심화를 숙제로 안고 떠나는 길이지만, 떠나는 순간만은 그 부담감마저도 오히려 더 큰 설레임으로 우리를 매혹시키고 있었다.
1월 16일 오후 2시 30분. 만수동의 문성여상 정문에 하나둘 모여드는 동인들의 얼굴에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도 불구하고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들어서는 발길이 금방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였다. 그러나 초장부터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긴 하였다. 고광식 시인의 봉고차에 실려 박익흥 회장과, 임봉주 시인, 그리고 오석균 시인과 우리들의 가수인 정동기 형이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학교를 향해 봉고차가 좌회전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임을 뒤따라 들어오는 경찰 순찰차로 인해 깨닫고는 모두다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때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 한 사람의 희생자가 필요한 법이다. 그것이 이 땅의 짐승과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통의 법칙이다. 통사정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경찰관에게 우리는 모르는 척 희생양으로 고광식 시인을 던져 주었다. 운전기사는 당신이고, 봉고차도 당신 것이니, 딱지도 당신이 떼시오. 찍소리도 못하고 딱지를 떼이는 고광식 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멀찌감치서 피식피식 웃어대는 동인들의 얼굴에 겨울 햇살이 요염하게 반짝였다.
이어서 '내항교'의 교주(?)인 정승렬 시인의 얼굴이 나타난다. 강화도 교동의 섬학교로 부임한 정 시인은 이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부랴부랴 바다를 건너고 강화도를 뛰어 날아서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 정성이 참으로 가상타. 교주답다. 그는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여간해서는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닌 이 정 시인을 내항의 교주로 갖다 앉혀놓고 마냥 즐긴다. 그렇게 즐겨도 그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이니까 마음놓고 즐기는 것이다. 그는 종신 교주다.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다. 우리가 그 말고 누구를 앉혀놓고 희희닥거리며 즐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내항의 교주는 하고 싶어서 하는 자리가 아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뒤를 이어서 류제희 시인이 들어선다. 이번 행선지 율사리 '귀곡산장'의 주인마님이다. '귀곡산장'에 걸맞는 '마녀'라 불러야 옳겠지만, 류 시인의 어느 구석에도 '마녀' 비슷한 구석은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당장은 주인마님이라고 해두자. 신랑은 아이와 함께 우리를 위해 벌써 '귀곡산장'을 향해 떠났다 한다. 혹여라도 불편한 것은 없을까 미리 살피려는 고마운 배려임이 분명하여 일동은 한 순간 숙연해진다. 일동 차렷! 박수! 류제희 시인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그러는 사이에 최성민 시인의 차가 들어서더니 이가림 시인과 작가회의의 이세기 시인을 토해놓는다. 이가림 시인을 향해 반가운 인사가 쏟아진다. 우리들의 여행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시니 참으로 거룩, 거룩, 거룩하신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을 모신 최성민 시인의 수고에 치하를 아끼지 않으면서 그제서야 살펴보니 운전기사가 최 시인의 어부인이시다. 당연지사다. 최성민 시인 가는 곳에 어부인 가는 것은 바늘 가는 데에 실 가는 것이다. 아니, 실 가는 곳에 바늘 따라가는 것인가? 실은 무어고, 바늘은 무어야? 그게 부부인가? 동인들은 모두가 안다. 최 시인은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내항은 절대로 부부를 동인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가끔은 좀 혼자 나와라. 아니면 당신이 빠지고 어부인을 보내라. 그래, 그것이 차라리 낫겠다.
최일화 시인의 넉넉하고 푸짐한 얼굴이 들어서고, 조혜원, 이영숙, 김재칠 동인이 합류했다. 그런데 아차, 막내둥이 신종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근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그 놈의 회사 사장은 문화예술도 모르는 무뢰한이란 말인가. 내항이 대단한 포부를 갖고 워크숍을 가겠다는데 왜 앞날이 창창하고 예쁜 신종녀를 놓아주지 않나?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쩔 수 없이 율사리에 다녀온 적이 있어 지리를 알고 있는 최성민 시인이 박 회장과 남아서 막내를 기다리기로 하고 우선 빠방 빠방 우리는 기세 좋게 율사리를 향해 출발했다.
이가림 시인을 모신 류제희 시인의 승용차가 앞장을 서고, 고광식 시인의 봉고차가 뒤를 따라 우리는 어느 사이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섰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도로라서 차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율사리는 수인산업도로를 따라가다가 수원 못 미쳐서 발안 쪽으로 꺾어져 아산만 방조제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끝 부분에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금방 아산만 방조제가 기다리고 서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로인 것이다. 목적지까지는 세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듯싶다.
고광식 시인이 그 작은 체구로 이처럼 커다란 봉고차를 모니 참 신기하다. 그는 대단히 맑은 정신의 소유자다. 깔끔하고 세심하고 차분하다. 때묻지 않은 전형적 선비형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말도 그에겐 적당한 말이 아니다. 그의 시는 참으로 서정적이며 단정하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소름끼칠 정도의 완벽함이 있어 차라리 공포심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중요할 때마다 매번 쓸만한 해법을 꺼내곤 하는 그의 머리 속은 지식과 논리의 보물창고는 아닌가 의아스러울 때가 많다. 그의 옆자리에는 항상 임봉주 시인이 있다. 법무사 사무실을 갖고 있는 임 시인은 그 법무사라는 신분이 무색하다. 다른 동인들보다 한참이나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심은 아직도 순수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사심 없이 한눈 팔지 않고 평생을 길러온 시심이다. 두 사람은 앞자리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충청도 지리에 밝은 두 사람이라서 아마도 우리가 향하는 율사리와 내일의 행선지에 대해 요모조모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리라.
나는 아무래도 봉고차 탑승이 버거운 모양이다. 그러나 그 속을 누가 알랴? 류제희 시인의 차에는 이가림 시인과 이세기 시인과 여성 동인들이 탑승해 있고, 박익흥 회장의 차는 신종녀를 기다리느라 뒤에 처져 버렸으니,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율사리까지는 가야 한다. 봉고차가 아산호를 지나간다. 이곳이 요즘 나의 시를 사로잡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아산호 가는 길'이라는 연작시를 벌써 몇 년째 계속하여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산호는 적어도 지금 당장만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 도대체 아산호는 나에게 무엇일까.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어떤 사람은 연애시라고 하기도 하지. 하지만 무슨 상관야. 내가 재미가 있는데. 우리에게 아산호는 늘상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런 것일까. 아산호는 나에게 어머니의 자궁 같은 것일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산호는 지금 나의 것이니 끝까지 잘 벗겨먹어야겠다.
우리들의 가수 정동기 형은 뒷자리에 앉아 별로 말이 없다.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그는 가수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인생이 돌이켜진다. 그의 노래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진지하고 성스럽다. 그는 우리들의 '시적행위'에 노래 부분을 맡고 있다. 우리들의 시에 곡을 붙이는 일에서부터 공연시의 노래를 선정하는 일들, 가수를 초빙하는 일들이 그의 역할이다. 그는 내항의 아지트인 레스토랑 겸 주점인 '헤밍웨이'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일 년에 단 하루도 일을 쉬지 않는 억척이다. 그래서 내항은 억지로 그를 이번 워크숍에 초대했다. 제발 하루만이라도 일을 잊고 바람을 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 바람이었다.
아산호를 지나고 삽교천 방조제를 거쳐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들어 가니 곳곳에 야트막한 야산과 그 사이로 텅 빈 겨울 들녁이 펼쳐지고, 시골마을의 초가집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이곳이 율사리라 한다. 아마도 다섯 시가 조금 넘어섰으리라. 시골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가 푸짐한 산밑으로 기어드니 눈앞에 그야말로 기기묘묘한 한 채의 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귀곡산장'이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한 채의 흙벽집이 마을을 벗어나 커다란 몇 그루의 나무 밑에 홀로 서 있었다. 이곳이 류 시인의 연작 '율사리 시편'의 산실이리라. 무턱대고 마루에 올라 방문을 열어보니 가관이다. 에게, 여기에서 이 숫자가 어떻게 잠을 잔단 말이냐. 방은 두 칸이었으나 어림으로도 도무지 모두가 드러누울 만한 평수가 나오지 않는다. 도리가 없다. 먼저 드러눕는 놈이 임자다. 밤새 자리다툼을 벌일 일을 생각하니 입안에 묘한 군침이 돈다.
이런 산골에 이런 집이라니 김재칠이 기가 막혀서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다. 그의 웃음은 참 걸판지다. 그는 천성이 착해서이겠으나 아무리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하고 재미있게 들을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임을 아무도 부정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철이 없기는 좀 없다. 아직껏 장가를 들지 못하고 이런 산속에나 들어와 걸판지게 웃고 있으니 그게 맞는 말 아니겠는가.
아무래도 잠이 든 사이에 집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다. 류제희 시인은 역시 시인이다. 이런 곳에 '시와 시학' 식구들과 김재홍 교수도 다녀가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니. 글을 쓰는 사람들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남들이 보면 영낙없는 정신나간 사람들인 것이다. 저마다 경악과 탄성을 내지르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사이에 수돗가에서는 저녁준비가 시작되었다. 류 시인의 신랑이 미리 도착하여 사정을 원할하게 해주었건만 양수기가 고장인지, 수도 파이프가 도중에 얼어 버렸는지,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가 않는다. 김재칠이 막동이답게 양동이를 들고 집 뒤쪽의 샘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나는 오는 중에 장담을 했었다. 군불 때는 일은 내가 전문이지, 밤새도록 불을 지펴줄 테니 걱정 말라. 아궁이 곁에 쌓인 솔가지를 보며 류 시인의 부군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군불과 함께 점차로 따뜻해져 가는 '귀곡산장', 아, 첩첩 산골의 괴기스러운 밤은 서서히 어둠의 장막을 내리며 비밀의 첫날밤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푸짐하게 준비된 저녁을 먹고, 설거지 사단의 설거지 경연대회를 지켜보는 재미도 일품이었다. 가장 열심인 것은 최성민 시인과 오석균 시인이다. 나는 말로만 설거지를 한답시고 적당히 손에 물만 묻히고 돌아다닌다. 그래서 부득불 동인들은 나에게 사단장의 자리를 줄 수밖에 없다. 아궁이에 군불이나 제대로 지필 일이지, 그도 안 되니 괜시리 설치는 양이라.
설거지가 끝나자 우리는 일찌감치 앙증맞은 방에 빙 둘러앉았다. 아무리 바쁘고 노는 일이 중요해도 할 건 해야 한다. 막걸리와 안주를 가운데 모셔놓고 우리는 우선 박익흥 회장의 연임을 박수로 결정해 버렸다. 박 회장은 이미 이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회장을 할 만한 인재가 없으니 내항의 앞날은 뻔한 게 아니냐는 자책의 소리도 높았으나, 그것은 어쨌거나 박 회장을 한번 더 부려먹기 위한 술책이니 그렇다치고, '시적행위'의 공연을 끌어가야 할 남인희 시인이 두문불출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당분간은 내가 끌어가야 할 판이다.
최일화 시인은 막걸리를 좋아한다. 아니, 그는 막걸리 뿐만이 아니라 무슨 술이건 좋아한다. 그는 호주가이며 동시에 호인이다. 그런데 그가 술에 취하면 좀 이상해진다. 그의 얼굴 근육이 기묘하게 움직임을 시작하고 특유의 여유있는 말을 시작하면 세월아 네월아 나는 갈테니 너는 밥 먹고 술 마시고 밤새껏 놀다 가거라이다. 그도 시세에 영합하지 않는 강골의 시인이다. 할 말은 기어코 하고야 마는 겁 없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서는 인간적 따스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와 고향을 향한 그의 회귀적 시심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의 앞자리에는 술잔이 비지 않는다.
회의가 시작이 되자, 먼저 정승렬 시인이 [시 동인 운동의 전망]이란 주제로, 기존의 인천 시동인 운동의 변천사와 현실태를 분석하고, 우리가 새로이 개척해야할 차별성 있는 시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 동안 내항은 2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달려왔다. 하지만 그 세월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세월이었는가. 내항은 오늘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것이다.
뒤를 이어 내가 무모하게(?) 시작한 '내항시적행위'의 네 번째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이 작업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역설했다. 아직도 이 작업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그리하여 어쩌면 회의에 빠져 있을 수도 있는 동인들에 대한 간곡한 부탁도 덧붙였다. 내항은 결코 제 자리에 머무르거나 퇴보해서는 안 된다. 지역문학 동인이라고 해서 자격지심에 빠져서도 안 된다. 우리는 우리들의 세계를 믿을 필요가 있고, 믿어도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는 자랑스러운 내항인 것이다.
이어 고광식, 최성민, 오석균 시인이 몇 날 밤을 모여 밤을 세우며, 시퍼런 칼을 들고 분석에 분석을 거듭한 그 동안(1회∼4회)의 작업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자못 숙연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동안 최선을 다해온 선배 동인들의 노고가 너무도 힘들고 컸기에 격려 이상도 이하도 결코 아니었다. 단지 이번만은 그 동안의 작업보다도 더 알차고 의미 있게 해 보자는 뼈를 깎는 반성의 자기성찰에 다름 아니었다.
뒤를 이어 박익흥 회장의 '내항 시문화운동의 취지'의 낭독이 있었다.
<우리들의 작업 [시와 시적 행위]는 기존의 고답적이고 구태의연한 시낭송회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것을 시적 감동으로 변용시키려는 몸짓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기존의 시낭송회는 우리 문자와 우리 언어와, 궁극적으로 우리 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는 독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못해 시낭송에 궁색하게도 마임이나 무용이나 음악, 영상 등, 타 장르의 협조를 끌어들이긴 하였으나, 그것들조차 시와 적절하게 동화되거나 시에 상승작용을 하지 못하여 결국 그들의 의도대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데에는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작업은 그간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새로운 형태의 접근방법을 찾아내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시를 들고 다시 독자들에게 다가서려는 작은 시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작업은 난해하고 위의적인 시의 세계를 보다 더 간결한 상징과 이해하기 쉬운 몸짓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업은 독자들로 하여금 시의 세계에 손쉽게 다가서도록 해 주려는, 시를 정점으로 하여 노래와 연극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종합적 시문화운동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 작업은 기발하거나 특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형태의 퍼포먼스나 전위적인 작업은 이미 타 장르인 연극이나 미술, 음악, 무용에서 뿐만이 아니라, 문학 자체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시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문학 부문에서 있어왔던 작업은 순수한 작품의 창작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문학을 보다 더 난해한 곳으로 끌어올려 독자들로부터 더욱 멀어져 버렸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업은 문자를 통한 시의 창작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자 외의 많은 것을 활용하여 시적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시의 세계와 시의 정신이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적인 그림이 있으며, 시적인 음악이 있고, 시적인 무용이 있으며, 시적인 연극이 있습니다. 어떤 예술에도 시적인 감동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업은 이런 타쟝르의 절대적인 극대치를 추구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시에서 출발하여 시로 돌아올 것입니다. 모든 작업은 시적인 행위로만 연출이 되며 그것은 동시에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행위는 하나의 주제에 따라 일관되게 연출이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돌발적인 헤프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작업에는 세상의 어떤 예술 쟝르나 형태도 과감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며,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도 놓치지 않고 시적인 감동으로 재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작업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바로 소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행위에 있어서만은 시 또한 소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전통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그 전통을 이 시대에 다시 살아 꿈틀거리게 할 것입니다. 모든 죽어 있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며, 생명체로 변한 그것들이 다시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짜릿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조차 한 변화 속에 우리를 던져 넣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입니다. 숙련된 연극배우나 가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행위에 있어서는 시인들의 어설픈 몸짓에서 배어나는 치열한 상징성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21세기를 맞으며 시의 언어에 대해 잠시의 배반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열린 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열린 시의 세계에 개방적인 발전과 혁명적인 창의성이 담겨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본질적인 시의 정신과, 이 시대의 시의 의미와, 새로운 시대의 시의 희망을, 그들의 주인인 독자들에게 돌려주고자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가 시인들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올 다섯 번째의 공연계획 발표와 함께 정동기 형과 인천시 문화예술과의 김병훈 님의 명예동인 가입을 통과시켰다. 김병훈 님은 본래 연극인으로서 인천의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수고하시는 인물인데, 우리의 행위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의지를 보내왔으며, 특히 이 작업에 대해 뜨거운 갈채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다.
서서히 깊어 가는 겨울밤, 화롯가의 군고구마가 떠오르고, 시원한 동치미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니 이 구비구비, 서리서리한 오붓한 밤을 이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정동기 형의 신명나는 노래가 뒤를 이었다. 그 사이에 바깥의 마당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비좁은 방안에 미처 들어서지 못한 동인들은 마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저마다 열띤 논쟁과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막내 신종녀의 노래는 가히 일품이다. 그녀의 가창력은 가수를 뺨친다. 거기에다가 노래부를 때의 진지함은 그것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녀의 약간 손위인 이영숙 동인 역시 끝내주는 노래꾼이다. 하기사 노래방이 들판의 나락알처럼 흔해빠진 이 대한민국에서 노래를 잘못 부르면 그것은 분명 간첩이다. 음치에 가깝던 박 회장이 몇 년 사이에 거의 가수 수준이 된 것은 명백히 노래방의 덕분일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 우리 내항은 노래방에 심심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 노래 못 하는 회장을 모셔서야 내항의 체면이 말이나 되겠는가. 어쨌거나 이제 박 회장의 노래를 들어보라. 그곳에도 알 수 없는 시가 보인다. 시는 참말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정승렬 시인이나 내가 부르는 그것은 노래가 아니다. 다만 고전적인 뽕짝일 뿐이다. 내가 부르는 노래는 무엇이든 뽕짝이 되고 만다는 최성민의 말은 거의 성경말씀에 가깝다. 그러니 정 시인이나 나는 앞으로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듣는 사람들의 고통도 조금은 생각해줄 줄 아는 아량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항의 대단한 시적행위에 즈음하여서. 조혜원 동인도 잘하는 노래이다. 만약 이 말을 빼먹으면 그녀는 내항을 탈퇴하고야 말리라. 그러니 거짓말이라도 한 마디 붙여줘야 한다. 그녀도 가수는 가수다. 그러나 그녀가 쓰는 시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니 조혜원 시인은 그 신선하고 날렵한 시를 쓰시라. 노래는 신종녀만 불러도 되느니. 진심으로 고백하노니 내항에서 알아주는 음치 시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광식 시인이네요. 그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셨나요. 보셨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무언가 잘못 먹은 날일 겁니다. 음치요? 잘 살펴 보시면 또 한 분이 계시네요. 본인은 절대로 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오석균 시인 말입니다. 본인은 아주 잘 부르는 노래로 알고 부르니 그야 어쩔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노래는 왜 부르는 겁니까? 노래는 부르면 내가 즐거운가요? 아니면 노래를 불러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건가요? 아, 그렇군요. 노래도 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거 아닌가요.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오석균 시인을 한번 바라봅시다. 나는 그를 보면 저 무슨 영화인가요, 노틀담의 꼽추던가요? 그 영화 속의 주인공이 떠오르거덜랑요? 혹시 못 생겼다는 말로 알아듣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럴 분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그보다 못 생긴 사람을 내항에서 찾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기보다 어렵긴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살고 있어요. 우리는 그 하나님의 정체를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바라보고 감탄할 뿐이지요.
밤이 저윽이 깊어가면서 바깥 마당의 장작불은 그 빛나는 불티를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다. 잠시 막걸리와 류 시인이 만들어온 이상한 고깃덩어리를 씹으면서, 그리고 그 맛에 천박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우리는 이가림 시인과 함께 시의 숲, 시의 뜨거운 겨울, 시의 신비한 어둠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시간은 열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야기는 그간 시단의 흐름과 문단풍토에 관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문단이나 문예지가 끼리끼리로 무리지어져서 대다수의 시인들에게는 발표 지면이 너무 협소하지 않는가. 시인들이 너무 많은 점도 문제이긴 하지만 공평한 지면의 할애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었다. 비평에 대한 비판도 쏟아져 나왔다. 지금(19세기)까지의 비평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재단하는 것이었음에 반해-다리가 아픈 사람을 진찰하며 눈만 뒤집어 보고 건강하다고 판단하는 의사처럼-앞으로의 비평은 작가의 생각과 동일한 방향으로 고뇌하며 안내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이가림 시인의 말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늘날 재미도 없고 골치가 아픈 시를 점차로 떠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방향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평론이 오히려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럼으로 인해서 독자와 멀어지는 시가 당당하게 데뷔되는 현실이다라는 점을 꼬집었으며, 정승렬 시인은 입시교육으로 인해 시에 뭔가 있다고 간주하고 찾아내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시를 존중해주고 학생들도 부단히 써보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창작은 역시 작문 공부에서부터 시작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었으며, 이에 정승렬 시인은 문학 교육은 감상과 수용 위주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이가림 시인은 그간의 학교 현실은 분석하고 우수 비평가의 견해를 전달함으로 상상력을 죽이는, 그래야 높은 점수를 따는, 나아가 시를 정나미 떨어지게 하고 무진장 죄를 짓는 것의 반복이었다고 비판했다. 나는 내가 시를 쓰게 된 단초가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읽어주신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었는데, 당시에는 그 작품의 제목도 지은이도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감동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오히려 고등학교에 가서 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시와 멀어졌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역설했다.
맛보고 즐기고 실감나는 시가 되지 않고 먹기 전에 영양요소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 같은 것이 시에 대한 설명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상상력을 개발하고 자극하며 안내해야 하고, 찰나를 포착하여 생생하게 보여주는 생명체의 퍼뜩임이 곧 시의 생명이다. 분석은 시의 주변을 분석할 뿐이며, 느낌 포착은 순간이다. 언어로 규정해 포착하는 순간 이미 사라지는 것이 본질이다. 그것은 이미 물고기가 아니라 죽어버린 언어의 잔해이다. 지관과 순간적 판단력으로서 어렴풋이 감을 잡아나가는 것이 시다. 이가림 시인의 알기 쉬운 강의가 계속되었다. 그는 지금은 비록 독자들이 시로부터 멀어지긴 하였지만, 우리는 노래를 좋아하고 춤을 사랑하는 민족이라서 결국에는 시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시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도 시인의 역할이며,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시는 시가 아니다. 그리하여 시는 그 누군가에게 바치는 연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는 시 쓰는 행위는 그 자체가 사람의 행위라고 말했다. 가장 쉬운 언어인 풀, 나무, 돌 등 원초적인 일천 자 이내의 구체적 언어로써, 무한히 깊은 사색-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인-의 깊이(이데아, 생각, 느낌)를 담은 것이 가장 좋은 시이며, 무지무지 어려운 단어로 구체성이 없는 허공에 뜬 세계를 잡는 시가 가장 나쁜 시이다. 관념 투성이이며 말이 어려운 사람은 오히려 수상한 시인이다. 나아가 독자를 진저리치게 만드는 것 또한 일종의 사기이다. 그의 말은 게속되었다. 독자도 시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함축적인 언어가 환기하는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주로 교육에서 책임을 지고 시켜야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서 10편의 시를 외우게 한다. 살아가면서 조국어를 문화어로 키워나가게 되며, 의미를 파악하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계속되는 이가림 시인의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분석보다 '12음절시' 등의 따라하기 쉬운 전형적인 시를 계속 외우게 하여 스스로 느낌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시적 상황과 비슷한 곳에서 고도의 수사법으로 대화하게 만든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시를 외우지 못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직업에 관계없이 절절한 순간에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어울리는 시어를 사용할 줄을 안다. 대통령도 정상끼리의 만남에서 자랑스럽게 시 한편을 외우고 평을 한 다음, 뽕삐르가 편찬한 엔솔로지 1권씩을 배부한다. 그 후에 정치적 대화를 나누어 대화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이후 모든 시험을 논술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논술은 철저한 암기교육에 기초한 정확한 텍스트를 인용해야 하며, 정확한 비평을 인용해야 한다. 한국보다 몇십배 더 철저한 암기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박식한 소양을 갖고 있으며, 대화에 적극적이고, 흥미로운 자세를 보여주며, 절대로 비폭력적인 대화로 언쟁을 한다.(그들은 입으로만 싸운다. 결코 주먹이 나오는 법이 없다. 하루종일 싸워도 입으로만 싸운다. 반면에 우리는 싸울 때 주먹부터 나온다. 프랑스인들은 참을성이 많다. 오늘 못다 싸운 것은 반드시 다음날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끝내 쌍방간의 이해를 도출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를 들을 때에 우리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나와도 그들은 알아듣고 기가 막히게 웃을 때가 있다. 생활 속에서 이미 암기된 시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인 상사원이 불어를 알아도 대화를 이해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유치원부터 철저한 암기교육이다. 암기는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지금보다 우리도 강화해야한다. 서울대 면접에서 시 외어보기를 시켰는데, 50명 중에서 겨우 5명이 시를 외웠다고 한다.
나는 예전에는 외우는 교육이 기본이었는데, 오늘날의 교육가들은 이것을 구시대의 교육방법으로 매도해 버린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최일화 시인은 역시 외국어도 무조건 외우는 방법이 중요하며, 응용력은 스스로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림 시인은 천자문도 3년을 공부하면 음풍영월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냐며 웃었다. 뒤를 이어 현재의 백일장에 대해 최 시인은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모처럼 신종녀 동인이 끼어들었다. 어렸을 때의 천자문이나 구구단은 음률상으로 외우기가 편리했으며 즐거웠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갈수록 못난 교육이 되어 버렸다. 다시 장 시인이 요즘 학생들의 수첩에 적혀 있는 두 가지의 유형을 소개했다. 하나는 박주연의 가사와 같은 유행가 가사이며, 하나는 아마츄어 시인들이 내놓는 삼류시들이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노천명이나 김영랑의 시를 외우곤 했는데, 요즘은 상업적인 시가 전부라는 것이다. 이가림 시인이 그 말을 받아 그것은 상업에 굴복한 공급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그것을 끌고 가는 것이 시인의 책임이고, 같이 가려는 줄(시인과 독자를 연결하는 새끼줄)을 던져 주며,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로 끌고 가려는 임무를 행하는 자가 시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오늘날 노래하는 가수가 노래만이 아니라 춤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하고, 다시 뮤직비디오라는 것으로 그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시인 역시 시만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시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최 시인은 기본적으로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으며, 이가림 시인은 음식에 비유하자면 달콤하고 자극적인 것만 모아서는 안 되는 것이며, 맛있는 껍질 안에 건강한 것을 집어넣어야 시인이 양성된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일 이천 원짜리 마스터 시집을 만들어 지인들끼리 돌려보는 풍토가 시작된 것 같다고 말했고, 오석균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는 누군가 읽고 따스한 마음을 전해 받을 수 있는 시라고 말했다. 느닷없이 최 시인이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의 고시조 7편 외우기와 그 시조의 오역을 거론하자, 이가림 시인이 한국에서 30년을 산 프랑스인 케벤 오록 레백도 오역이 많다며 미소를 지었다. 여름 워크숍은 외어오기를 할까부다. 장종권 시인의 말도 안 되는 중얼거림이다.
이야기를 정리하는 의미로 이 가림 시인의 짧은 특강이 있었다. 오래간만의 포근한 장소에서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기쁘다. 그간의 내항 공연을 보지 못 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시 쓰기도 시적 행위이다. 대중과 가까이 하는 친숙함이 필요하다. 공연이라는 것은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다. 에프 투랭코는 특이한 경우이다. 프랑스의 샹송과 오늘날의 시인을 비교해 보자. 샹송은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다. 카페에서의 자유로운 몸동작이 함께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마당극과 같은 것이며, 가락 보다 가사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한국은 인접 예술과 함께 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는데, 백남준은 이미 레이저 아티스트로 재출발한 시점이다. 시 낭송은 목소리도 좋으나 투사(프리젠테이션)도 간간이 섞으면 시각적으로 어필할 수가 있을 것이다. 판소리는 그간은 일정하고 단조로운 가락과 리듬 때문에 원초적인 에너지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해 못하는 예술행위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오히려 자막처리 등으로 호흡을 맞추어 관객의 이해를 끌어 들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는가. 전달 방법의 개선이 필요하다. 새로운 방법의 도입도 좋을 것이다.
대화의 시간이 다하자, 정동기 형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합창이 시작되었다. 저마다 그가 미리 준비한 악보를 나누어 들고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이것도 불러보고, 저것도 불러보고, 끝내는 정동기 형이 어부인의 연애편지로 만들었다는 노래 '꿈속의 날개'가 이어졌다. 뜨끈뜨끈한 스토브 조명을 받으며 동인들의 노래 잔치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 사이 간간이 이런 밤에나 있을 법한 전형적인 추억담과 고향에 대한 기억들이 나누어졌다. 류 시인의 이곳 율사리에서의 소쩍새 이야기가 말 물꼬를 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박 회장의 영흥도의 달밤이 등장하고, 나의 김제 평야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시간은 너무도 아쉽게 흐르고 우리들의 끈끈한 정은 길고 긴 겨울밤을 타고 깊이깊이 쌓여만 갔다. 문득 누군가가 새벽녘이면 식어버릴 방안의 온기를 걱정하자, 나는 내가 알아서 군불을 땔 것이라고 호언한다. 그러자 괜히 큰소리만 치는 게 아니냐는 듯한 최 시인의 비아냥이 모두를 웃긴다. 이야기 거리는 왜 그리도 많은지. 달이며, 꽃비(배꽃)이며, 진달래꽃이며, 시이며, 문학이며.
신종녀가 슬며시 가라앉은 고요를 일깨운다. 그녀의 새타령이 등장한 것이다. 막걸리에 취하여 부르니 더욱 듣는 맛이 좋다. 그러니 부르는 맛은 더하지 않겠는가. 술 한 잔 마시고 노래를 불러 보라. 그 신명이란 그 맛과 바꿀 것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때부터는 분명 듣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법이다. 그저 부르고 싶으니 무작정 부르게 되는 것이다.
마당에는 모닥불이 사그러들 줄 모른다. 임봉주 시인은 아예 모닥불 곁의 소파에 앉아 밤을 세울 요량이다. 김재칠도 줄기차게 땔감을 찾아 나르며 외진 겨울밤을 지키고 있다. 안방으로 건너가 잠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있자니, 오분도 채 안 되어 어디선가 고기 익는 냄새가 난다. 필시 누군가의 살덩어리가 익어가고 있는 중이리라. 제기랄, 왠 군불은 이리도 심하게 지폈는고. 적당히 식은 새벽녘에나 지필 일이지. 이미 드러누운 서너 명의 동인들이 잠결에도 뜨거움에 비명을 지르며 웃목으로 웃목으로 몸을 굴린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그만일 텐데, 그놈의 잠에 취해서 제 살이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쿨쿨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가림 시인께서도 교수 신분을 완전히 망각한 채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곤한 잠에 빠져 버렸다. 건넌방에서는 아직도 거나한 노래 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고, 벌써 방바닥의 비닐 장판은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막내 신종녀 동인이 흐느낀다. 시에 대한 논쟁이 갈수록 격해지면서 어딘가 부끄러운 곳을 다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만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에 다가섰다는 이야기이며, 그만큼 남보다는 더 아름답다는 이야기이다. 서로간의 진지한 애정과 이끎이 순박하게 모습을 드러내니, 마침내 이 하룻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들의 영원으로 시 속에 끊임없이 되살아나리라.
부지런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마당에서 동전 따먹기를 시작했다. 이런 유치한 일은 대개 김재칠이나 최성민이나 오석균 시인의 발상이 틀림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유년에 머무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는 한심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런 유치한 발상에 동참하는 나머지 동인들은 어떠한가. 더 말해 무엇하랴. 유치의 극치이리니, 두고두고 남사스러운 일이다. 마당 한 켠에 금을 그어 놓고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동전을 던져 금에 가장 가까이 던진 사람이 나머지 동전을 다 차지하는 놀이이다. 처음에는 그저 그렇게 시작한 놀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재미있어졌다. 금새 새로운 법칙이 생겨나고, 나중에는 법칙도 없이 우기면 그냥 승자가 되어 버렸다. 시인들이란 원래가 이렇다. 우기기를 좋아한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족속들이니까. 어거지로 이긴 승자는 그 전리품을 편들어 준 사람들과 나누어 갖는다. 얄미운 행태이다. 이 중 가장 얄미운 인물들이 바로 최 시인과 오시인의 짝자궁이다. 당한 사람은 안타깝게도 나이다. 불쌍타. 이곳까지 와서 왕따를 당하고, 돈까지 뺏기다니.
'귀곡산장'을 뒤에 남기고 우리는 율사리를 떠났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서산의 '마애 삼존 불상이다. 관리인의 불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장난꾸러기 소녀의 모습에서 시골 처녀의 모습까지 너무도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구경꾼들은 탄성을 발한다. 그 옛날 이 석불을 다듬기 위해 인생을 바친 석공의 수고는 오래도록 빛나건만, 인생이란 어쩌면 이처럼 모두가 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발길을 돌려 간월도(看月島)를 찾았다. 철새때가 은빛 날개를 반짝이며 군무를 벌인다는 천수만. 그러나 철새의 모습은 아무래도 보이지 않고, 길가에서 어부인을 닥달하며 구타하는 불쌍한 중생의 모습만 우리들의 발길을 무겁게 만든다. 고요한 모습으로 침잠해 있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우리는 다시 발길을 돌려, 예산의 몇몇 문인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수덕사로 향했다. 우리 나라는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격의 없이 술 한 잔을 나누어 마실 수가 있다. 김삿갓도 그 명성 때문이기는 하였으나, 어디서든 술 한잔과 밥 한 그릇과 잠자리를 쉽사리 얻을 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아름답고 선량한 인심이 아니겠는가. 예산의 문인들은 고 시인의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덕사 경내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여승의 목탁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가야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를 껴안고 경내를 휘도는 듯하다. 예산 문인들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마지막으로 남연군의 이장 때 사용했다는 상여를 구경했다.
이토록 찐한 여정이 아쉬워서였는지 돌아오는 길에 류 시인의 승용차가 갑자기 퍼져 버렸다. 이건 낭패였다. 이런 휴일, 이런 저녁 시간에 어디에 가서 이 차를 수리한단 말인가. 봉고차를 먼저 보내고 두어 명의 동인들이 류 시인과 남아 문제를 처리하기로 했다. 결국 여기저기 손을 써서 차의 수리를 끝냈을 때는 또 하루의 시간이 다 저물어 버린 자정녁이었다.
돌아보면 우리가 하룻밤 머물렀던 율사리 '귀곡산장' 뒷곁에는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와 그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작은 개울을 이루고 있었다. 그 맑고 순결한 샘으로부터 우리는 자연과 우주의 무너지지 않는 생명력을 보았다. 우리 늘 변하지 않는 맑은 물살로 흐르면서 목마른 자들의 목을 촉촉이 적셔 줄 수 있는 시인이길 원한다. 그런 샘물이 우리들 가슴에도 솟는다면 내항은 결코 쓸모없는 지역동인으로 묻히지는 않을 것이다. 율사리의 밤은 오늘도 아름다운 물소리에 젖어 내항의 식구들을 다시 부르고 있다.
--<내항, 18집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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