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논문> 구용 김영탁 시 연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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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존적 각성과 초-현실적 결말 처리 방식
전후의 金丘庸 詩는 점점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金丘庸은 이 점에 대해 詩를 압축적으로 쓰지 못한 것은 자신의 한계라고 겸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金丘庸 詩의 장형화는 전후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재현 욕구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金丘庸의 「꿈의 理想」(1958)에는 “목욕탕, 관청, 형무소, 군부, 아편굴, 외국기관, 은행, 불량 소년, 사기배, 매육녀 등 도시 내부에서도 태양은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손금 위를 걷고 있었다. 그는 이성의 현미경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계를, 꼬무락거리는 자기 자신을 확대시켰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金丘庸은 「疲困」(1950)에서도 “과일집, 이발관, 구두점, 극장, 다방, 은행, 골동상, 포목전,(……)”하는 식의 열거법을 사용한 바 있거니와, 「꿈의 理想」의 나열은 「疲困」에 비해 더욱 의식적으로 어두운 도시 풍경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疲困」의 열거법이 시적 자아의 步行에 따른 풍경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반면, 「꿈의 理想」의 그것은 시적 자아의 보행에 따른 풍경 변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E. H. 곰브리치(E. H. Gombrich)가 ‘기타 등등의 원리(etc. principle)’라고 부른 재현 방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현실에서 지니기 마련인 몇몇 개의 나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현실 전체를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E. H. 곰브리치, 차미례 역, 「환영의 조건」, ꡔ예술과 환영ꡕ, 열화당, 2003, 212~214면 참조.
金丘庸은 ‘관청’, ‘형무소’, ‘군부’와 ‘불량소년’, ‘사기배’, ‘매육녀’를 같은 문장 내에서 나열하고 있다. 이를 통해 金丘庸은 그들이 모두 서로 모종의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암시함으로써 戰後의 현실을 制度에 의해 惡이 양산되고 또 惡이 制度를 지탱하는 악순환의 연쇄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꿈의 理想」의 주인공인 ‘그’는 그와 같은 현실 앞에서 자기 분석적인 포즈를 취한다. ‘그’가 ‘이성의 현미경’으로 자기 자신을 분석하려 하는 것은 이성이 통용되지 않는 전후의 각박한 현실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식인의 모습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됨직하다. 이와 같은 장면은 자의식 과잉의 李箱 詩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존주의․不條理派의 절망적 포즈와 좀 더 근접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스스로를 현미경 대물렌즈 아래에서 ‘꼬무락거리는’ 세균과 같은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꿈의 理想」은 여러 모로 戰後 金丘庸 詩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詩라고 할 수 있다. 이 詩에 등장하는 ‘그’는 자신의 실존을 찾기 위해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詩의 서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알 수 없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다. 무엇의 노예인가. 그럼 주인은 누군가. 누가 어떠한 證言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나 이외의 神을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 神을 부정하면서까지 ‘그’가 추구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꿈의 理想」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 나서는 긴 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의 결미에서 金丘庸은 다음과 같은 장면에 이르고 있다.
<세 女人 중의 누군가가,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날은 둘이서 오렌지를 먹기로 하자. 그리고 求婚하자.> 그것은 미신도 과학도 아닌 心境이었다. 잊지 못했던 흰 옷차림의 여자는 念頭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버리면 버릴수록 몰랐던 것이 나타나는 듯하였다. 그들은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여러 가지로 廻轉하였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實相을 그들에서 보았다. 그는 전부터 不變에 의해서 動作하던 그대로였다. 몸과 마음은 冊床의 한 오렌지였다. 새벽을 향하여, 그는 <이유는 원래부터 없다>고 發聲하였다.
―「꿈의 理想」 중에서
여기서 세 여인이란 ‘미혼여성 좌담회’에서 우연히 만난 여의사, 여교사, 여대생을 말한다. 이 세 여인과 ‘그’는 연애에 대해 토론하게 된다. 그 토론은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토론을 계기로 세 여인과 ‘그’는 번갈아 가며 데이트를 하는 등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세 여인 중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가 이미 ‘흰 옷차림의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흰 옷차림의 여자는 ‘그’가 실직자로 전전할 때 굶주린 ‘그’에게 오렌지를 선물한 여자였다. ‘그’는 가게에서 오렌지를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켰는데, 白衣의 여인이 그를 대신하여 오렌지 값을 물어주었던 것이다. ‘그’는 흰 옷차림의 여자를 관세음보살과 동일시한다. ‘그’는 흰 옷차림의 여자를 찾아 헤맨다. 그것은 진정한 인간관계, ‘사랑’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흰 옷차림 여자의 慈善은 ‘이유 없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차츰 알아 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세 여인의 마음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진정함이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 ‘그’는, ‘白衣의 여자’는 ‘꿈’일 따름이고 ‘세 여인’은 ‘현실’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白衣의 여자를 좇는 행위는 그녀의 관음보살을 연상하게 하는 사랑, 자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관념에 얽매여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관계는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가 “이유는 원래부터 없다.”고 발성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유’에 의해 사람을 만나거나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깨달음을 발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로써 「꿈의 理想」의 줄거리에 대해 조금 살펴본 셈이다. 詩를 감상하는 자리에서 詩의 줄거리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사뭇 생소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金丘庸의 詩는 자주 小說的 양상을 띠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작업을 피하기 어렵다. 金丘庸 詩가 小說的 양상을 띤다는 것은 등장인물이 있고 스토리가 존재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사건이 있고 詩가 사건의 해결을 향해 전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면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金丘庸의 소설적 양상을 띠는 長詩들의 결말은 자주 어떤 ‘깨달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측면이 있다. 金丘庸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부조리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詩를 지리하고 난해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詩가 소설적 양상을 띤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詩에 흥미를 주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 金丘庸의 詩들은 소설적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金丘庸이 소설의 한 요소로서 사건 자체보다도 주인공의 각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詩가 관념적으로 흐른 데도 한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깨달음’에 이르기 직전에 金丘庸 詩의 주인공들이 겪는 혼란의 强度이다. 金丘庸 詩의 소설적 양상은 소설 일반의 사건 해결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金丘庸 장시에서 사건의 해결은 주인공의 내적 각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 내적 각성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金丘庸은 그의 주인공들을 극도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꿈의 理想」의 주인공은 병에 걸리기까지 한다. “그는 마침내 발병하였다. 문은 닫히자 벽으로 변하였던 것이다. 정신이 비바람에 비둘기처럼 시달린 결과였다.”라는 구절은 그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다. 金丘庸의 장시에서 극도의 혼란, 극도의 회의, 극도의 긴장감 없이 주인공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金丘庸 詩의 주인공들은 자주 ‘자기 내면에 囚禁된 존재’로서 자의식 과잉인 데다가 自閉症的인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분열증으로도 비쳐지는 면이 있다.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金丘庸의 詩로 「消印」(1957)을 거론하는 데 주저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이 시의 주인공 ‘나’는 늦은 시간 밤 전차에서 차표 한 장 때문에 운전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녹빛 외투의 여자 대신 차삯을 치러준다. 녹빛 외투의 여자는 ‘내’가 목적지에서 하차하자 따라 내렸고 차삯을 갚겠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한다. ‘나’는 이름과 직장 주소를 적은 쪽지를 그녀에게 건넨다. 그런데 이 쪽지로 인해 ‘나’는 그날 밤 돈암교 근처에서 피살당한 녹빛 외투 여자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된다. ‘나’는 수금된 채 취조를 받는다. ‘나’는 취조관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취조관은 이를 묵살한다. ‘나’는 점차 ‘내’가 진짜 녹빛 외투의 여자를 죽였는지도 모른다는 혼란에 휩싸인다. 그것은 이 詩의 서두 부분에서 시적 자아가 ‘거미’를 죽이는 장면과 결부되면서 더욱 심화된다. 이 시의 주인공은 감옥에 수금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내향적인 데로 흐를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囚禁’ 모티프는 부조리한 세계 속에 구속․감금당한 실존의식에 대한 표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홍신선, 「시의 논리 현실의 논리」, ≪문학과창작≫, 2002, 2, 142면 참조.
주인공 ‘내’가 수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수금 상태는 일종의 한계 상황으로서 ‘나’의 실존을 짓누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한계 상황이 아니라면 ‘내’가 ‘나’의 실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꿈의 理想」에서 주인공의 깨달음은 주인공의 囚禁, 주인공의 한계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綠빛 외투 여자는 復活하여, 그녀는 웃음의 假面을 쓴 犯人과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그들은 둘이 아니라>고, 나는 속삭이었다. 運轉手는 半獸神처럼, 고장난 電車를 열심히 硏究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그늘에 여자의 고무신들이 어떤 것은 꽃잎으로, 新羅曲玉으로, 나비로, 반달로, 거미로, 下宿집 少年에 의해서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樹木 뒤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흩어진 것들은 <錯覺>이 아니었다. 문득 불 속에서 한 女人의 裸體가 室內로 들어왔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요> 비로소 ‘나의 인형’은 한 번도 말한 일이 없는 소릴 하였다. <내가 바로 너다> 하고 대답하자, 웬일인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綠빛 외투 여자와 운전수와 ‘나의 인형’과 殺人犯이 縱列로 直立하여, 보기에는 한몸 같으나, 각각 얼굴을 左右에 내놓고 ‘同’과 ‘異’를 일시에 構成하였다. 취조관의 指揮로 경관과 의사와 中折帽와 간호부와 택시 운전수와 茶房 레지들이 겹겹으로 둘러앉아, 나에 대한 ‘讚頌’을 演奏하고 있었다. ‘고오’, ‘스톱’의 三色信號燈이 비치자, 그들은 나를 祝福하는 天使로 化하였다. 나는 ‘本質’이었다. 동시에 모든 ‘因子’였다. 나는 그들과의 ‘전체’였다. ‘세계’였다. 동시에 그들은 人間心靈現象論처럼 꺼져버렸다. 날이 새자, 監房 바깥 복도의 石油燈불은 나의 出發을 告하듯 꺼졌다. 强姦犯은, 끌려나가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나는 남고 하나는 떠나건만, 우리는 ‘同形’이었다. 나는 비로소 모든 愛情을 죽인 殺人者가 되어, 强姦犯에게 微笑를 주었다. 나는 綠빛 외투 여자가 現實로 죽기 전에, 이미 綠빛 외투 여자를 마음으로 죽였는지도 모른다. 바라던 外界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橫道, 曲道할 것 없이 거리를 걷는다거나 차를 몰며, 사람들은 왕래하는 데 불과하지만, 누구나 각기 正面을 向하고 가듯이, 나는 흰 눈이 쏟아지는 無限大路에 護衛되어 자동차를 타고, 주검에 쫓기며 疾走하였다. 변호사를 댈 만한 돈도 없으려니와, 벌써 適用에 의해서 喪失되었는지 모른다. 豫審 判事 앞에서 사실 이상의 변명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앞날은 어디까지나 未知數였다. 이제는 存在와 空間의 一致에서 평화로운 呼吸을 찾을 수밖에 없다. 鐵窓 속에서 擴大될 歲月의 領域이 나를 기다린다면,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나에게 필요한 生命은 ‘無必要’였다. 그러면 나는 內包할 뿐, 무엇도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나는 綠빛 외투 여자는 무엇인지 모른다. 영원히 모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偶然의 役割을 한다 하여, 욕하거나 同情할 수는 없다. <囚人은 그날그날을 노동으로 消日하며, 鐵窓 너머 구름과 벗하며, 붉은 벽돌담을 등지고 선 樹木과 對話하며, 밤이면 燈불과 별들을 기다리며, 저 눈바람에서 音樂을 듣는다면 내 地上의 安定은 아무나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消印」 중에서
인용한 「消印」의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 ‘나’의 내적 갈등, 즉 ‘내’가 綠빛 외투의 여자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사라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사라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은 이 詩에서 유감스럽게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깨달음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 詩의 주인공은 인용한 부분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꿈’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 金丘庸은 ‘꿈’ 장면에 이 詩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심지어 ‘거미’나 ‘나비’와 같은 상징들도 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재등장은 사건을 정리하는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金丘庸은 이 한편의 미스터리가 지닌 비밀을 ‘꿈’이라는 환타지를 통해 더욱 신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詩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손에 손을 잡고 圓舞를 추는 장면을 통해 金丘庸은 ‘내’가 본질이자 세계이며 각각의 因子이자 부분이기도 한 ‘무차별의 사상’이라고 부를 법한 깨달음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유 체계에서 ‘거미’를 죽인 것이나 ‘녹빛 외투의 여자’를 죽인 것은 결코 다른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기실 이와 같은 깨달음은 보편적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깨달음이다. 金丘庸은 살인 사건도 囚禁도 모두 하나의 인간 존재 조건에 대한 ‘내포’라고 말하고 있다. 이 詩의 주인공의 입을 통해 金丘庸은 “그러면 나는 내포할 뿐, 무엇도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消印」의 주인공 ‘나’는 꿈을 통해 자신의 존재 조건, 부조리한 세계 속에 囚禁된 실존에 대해 깨닫게 됨으로써 囚禁 상태의 위협으로부터 오히려 빠져나오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그는 “囚人은 그날그날을 노동으로 消日하며, 鐵窓 너머 구름과 벗하며, 붉은 벽돌담을 등지고 선 樹木과 對話하며, 밤이면 燈불과 별들을 기다리며, 저 눈바람에서 音樂을 듣는다면 내 地上의 安定은 아무나 빼앗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인간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빠져나올 수는 없으나[囚禁 상태의 지속], 그 조건이 ‘나’의 안정을 더 이상 위협할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주인공의 깨달음을 통해 인간 실존의 한계 상황을 넘어서는 그와 같은 「消印」의 결미부 처리 방식은 1950년대 金丘庸의 長詩들이 얼마간 공유하고 있는 詩作의 공식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꿈의 理想」의 ‘그’ 역시 흰 옷차림의 여자가 거울 속에서 관음보살로 현현하는 ‘꿈’을 통해 “이유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金丘庸 長詩의 초-현실적 결말 처리 방식은 金丘庸 詩가 소설적 양상을 띠면서도 개연성보다는 시적 자아의 각성을 강조함으로써 詩로서의 장르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후의 물질적․정신적 피폐 상황, 인간 실존의 한계 상황으로부터의 초월이라는 주제의식 역시 ‘초-현실적 결말 처리’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金丘庸 長詩의 결말 처리 방식은 그의 詩 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Ⅳ. 金丘庸 시에 나타난 ‘어머니’와 母性的 여인들
1. 金丘庸 詩의 트라우마, 그 個人史的 배경
강성민은 金丘庸 初期詩에 드러난 散文지향성의 배경에 대해 두 가지 추론을 내놓은 바 있다. 강성민, ꡔ金丘庸 초기시 연구ꡕ(동국대 석사학위논문, 1999), 36~37면.
첫 번째 추론은 전쟁 체험의 내면화가 散文지향성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戰後 각박하고 난해한 현실로 인해 金丘庸 詩가 散文化의 길을 가게 되었고 또 어려워졌다는 것일 터이다. 두 번째 추론은 전통과의 단절 의식이 金丘庸으로 하여금 散文詩라는 형식을 택하게 했으리라는 것이다. 강성민은 바이런, 테니슨, 푸쉬킨 등의 長詩들로부터 金丘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보았다. 金丘庸의 詩가 散文지향성을 띠게 되는 데는 그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다고 보는 것이 일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戰後의 피폐해진 현실이나 戰後 문단의 전통과의 단절 의식은 1950년대 모더니즘 계열의 많은 작가․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金丘庸만의 개성을 설명하는 논리로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이 대목에서 金丘庸 詩의 個人的인 트라우마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金丘庸의 個人史的인 비극 중에서 그의 詩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은 일이다. 이 어머니 상실 체험은 그의 詩的 모티프로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의 일기에서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A)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검추레한 도시, 퇴색한 하늘에 멀건 달이 걸렸다. 제트기들이 연신 난다. 햇빛이 들지 않는 거리마다 짙게 화장한 여자들은 독버섯처럼 피어 있었다.(1951. 12. 6.)
(B) 나는 소젖을 마시면서 어머님이 생각났다. 텅 빈 위장에서 우유가 온몸에 퍼진다. 남에게 신세를 지기 때문일까. 그래서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나는가. 그러나 어머님이 보시면 언짢아하실 것이다. 나는 돈이 없는 게 아니다.(1952. 1. 25.)
(C) 제사가 끝나자 아침 술을 권커니 작커니 하였다. 거나하니 취한다. 떡국을 먹는다. 나는 타관 객지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일가 집에서 過歲라는 것 같았다. 웃다가도 아버님, 어머님 제사는 끝났을까, 지금 뭣들을 하고 있을까, 생각은 단숨에 천리에 가 있었다.(1952. 1. 27.) ꡔ구용 일기ꡕ(솔출판사, 2000), (A): 219면, (B): 271면, (C): 275면.
金丘庸은 피난 생활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는 종종 어머니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했으며,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의식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날그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 내용을 주로 기록했던 그의 일기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이 정도나마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그냥 지나쳐도 되는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金丘庸 詩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결여는 그의 詩에 유독 여성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나타나는 원인을 제공하리라는 점에서, 金丘庸 詩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의미는 그의 詩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2. 모성 결핍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결핍은 ‘無’와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로서 ‘불완전한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상태’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을 초래하고, 이와 같은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결핍된 것은 그에 대한 대리물들을 통해 결핍된 부분을 보충하려는 지향을 가진다. 1950년대의 金丘庸 詩에 자주 매음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거나 시적 자아의 구원자로서 여성이 등장하는 것(「꿈의 理想」, 등)도 모성 결핍에 대한 대리 보충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金丘庸 詩에 나타나는 詩的 자아들의 분열증적인 헤맴의 양상은 대부분 그 원인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내적 갈등과 방황이라는 결과만 前景化되어 있었던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詩的 자아의 분열증적인 헤맴이 한국전쟁 때 여읜 어머니와 결부되고 있는 작품이 있어서 주목된다. 「散在」(1953)의 중요성은 바로 그 점에서 강조될 필요가 있다.
1
나아갈 수 없는 一步, 물러설 수 없는 一瞬! 이 石鏡에는 퍼렇게 녹슨 鐵線이 엉클어져, 그 너머 부서진 벽돌들의 참혹한 市街를 背景하고, 표정도 없는 나의 얼굴이 비쳐지다. 利益으로 축복된 造花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옛 부엌터를 지나, 무너진 장독대로 돌아나가면, 평화의 태양은, 강제와 복종에 의하여 어느 童心에서 잃어진 人形 위에, 綠陰과 黃鶯의 노래를 나타내고 있었다. 죽음은 어리석은 자의 빛나는 信仰! 聖은 지난날 舞姬들도 理解하던 취미였다. 나의 中心은 廢墟에서 存在에의 可能인 現存이 전부! 나도 모르는 그 누구의 彈丸인가, 또는 流彈인지! 破裂하는 石鏡 앞에서, 나는 피할 것을 의식적으로 단념하다. 조각들이 난 나의 전부는 조각마다 明滅하며, 무수한 角度에서 大小 遠近! 무수한 생각의 위치로 散在하여, 거울 조각들은 눈을 반짝이며, 모든 疑問의 視線을 나에게 集中하다. 草木 사이에 쓰러진 光景의 錯雜, 정신적 律格의 理想도 타버린 破屋들 위로 구름이 깊은 하늘 아래서, 굶주린 蒼鼠들이 恐怖를 잊고 구석마다 널려 있는 屍體를 씹고 있다. 果然 너는 生死의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아아, 나는 아무데도 없는 것인가, 너와 같이……
2
外界와의 벽이 떨어져 나간 나의 뒤에서, 石鏡이 없어진 내 正面의 樣式에, 강렬한 日光으로 또 하나의 投影이 내 그림자에 合致하다. “여봅시오. 社會가 여기서 아직도 멉니까.” 어두운 적막에 波紋을 일으킨 음성은, 틀림없이 내가 미소와 근로와 豊年에서 서로 사랑했던 너에 대한 追憶의 蘇生이건만, 그러나 너는 아니었으며, 동물보다도 추악한 盲目의 老婆가 나무가지를 민감히 짚고, 눈물이 글성글성하여 서 있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나의 물음을 듣자 “아들을 찾는다오” 하고, 노파는 처절한 街頭가 돌연 다시 살아난 듯 밝게 웃더니 “꿈에도 모두가 철조망이드군요” 하고 念佛처럼 중얼거린다. 그러나 나의 대답이 없자, 노파는 散在한 瓦礫 사이를 묘하게 비켜가며, 炎熱한 大氣 속에 타버리듯, 아득한 저 멀리 조그만 黑點이 되어, 그 자신의 희망처럼 사라지다. 나는 反射的으로 잃었던 自己를 의식하기 시작하다. 헤아릴 수 없는 深淵! 나의 거울 조각들 안으로 더 沈沒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事物을 말할 수 있음은 自我에 充實하는 일이라 느꼈던 것이다. 나는 見解를 잃은 機械가 되어, 스스로 비바람에 돋는 毒을 참을 수 없어, 또 다시 否定과 肯定을 되풀이한다. 하루면 千萬 번도 더 되풀이하는 나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이 변함없는 陰影이 움직이고 있다.
―「散在」 全文
이 시는 형식상 두 개의 삽화를 병치시킨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첫 번째 부분(제1연)은 시적 자아의 내면 의식을 표상하는 거울의 파손, 破鏡 모티프와 의식의 분열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제2연)은 시적 자아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 老婆와 遭遇하면서 잃었던 자기 정체성을 의식하게 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두 번째 부분은 첫 번째 부분의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도 볼 수 있다.
제1연은 시적 자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진단을 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시적 자아는 나아갈 곳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그것은 ‘石鏡’에 비친 시적 자아 자신의 내면 풍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石鏡’에는 전쟁으로 인해 참혹하게 변해 버린 市街를 배경으로 하고 서 있는 시적 자아 ‘나’의 얼굴이 비치고 있거니와, 그것은 시적 자아 자신의 살풍경한 내면 풍경이자 시적 자아가 처해 있는 한계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적 자아의 시선이 石鏡 속에서 더듬고 있는 옛 부엌터에는 ‘造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이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가져다줄 어떤 이익이나 영광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가짜일 뿐이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童心을 짓밟고 간 전쟁이 남긴 것은 버려진 ‘人形’뿐이었다. 시적 자아는 그 버려진 ‘人形’ 위로 평화가 다시 찾아오고 있음을 본다. 자연은 평화로운데, 어리석은 인간들만이 신앙처럼 전쟁에 매달린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빚어낸 살풍경 앞에서 시적 자아는 환멸을 느낀다. 전쟁의 비정성을 표상하는 ‘流彈’은 시적 자아를 분열증으로 내모는 충격으로 작용을 한다. 시적 자아의 내면을 표상하는 石鏡이 ‘流彈’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그 파편들 속의 ‘모든 疑問의 視線’들이 시적 자아에게 다시 집중된다. 이와 같은 破鏡의 모티프는 의식의 분열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적 자아 ‘나’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혹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제1연 끝 부분의 말줄임표는 일종의 혼절 상태를 암시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제2연 도입부의 老婆와의 遭遇는 분명히 꿈의 상태로 보이기 때문이다. ‘石鏡’에 비친 풍경이 꿈과 현실 사이의 중간 단계라면 ‘石鏡’이 깨어지고 난 뒤 老婆와 만나 이야기하는 부분은 꿈의 상태,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시적 자아는 老婆의 음성을 듣고 ‘서로 사랑했던 너’를 연상하지만, 음성의 주인공은 의외로 ‘동물보다 추악한 盲目의 老婆’였음이 드러난다. 동물보다 추악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아들을 찾아 헤매는 老婆에 대한 연민을 극대화시키는 외형 묘사로 이해할 수 있다. 老婆는 “꿈에도 모두가 철조망이드군요”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사라져버린다. 老婆의 헤맴은 기실 시적 자아의 헤맴이다. 老婆가 사라진 다음 시적 자아가 ‘反射的으로’ 잃었던 자기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老婆는 시적 자아의 무의식에 의해 변형된 시적 자아 자신의 어머니로서 아들을 찾기 위해 온통 철조망뿐인 대지를 헤매고 다닌다. 그런데 시적 자아는 자신의 내면(‘石鏡’) 속으로만 깊이 침잠할 뿐 어머니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동물보다 추악한 노파’로만 보았다.
시적 자아는 바로 거기서 ‘헤아릴 수 없는 深淵’을 경험한다. 시적 자아는 자아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면으로의 침잠을 중단하고 사물을 제대로 보아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의 ‘비바람’은 시적 자아를 내면으로 침잠케 하는 ‘毒’을 돋게 하고, 그로 인해 시적 자아는 내면 의식의 ‘石鏡’과 現實을 직시하는 것 사이에서 否定과 肯定을 되풀이하며 혼란을 겪는다. 궁극적으로 시적 자아가 내적인 혼란을 거듭 겪는 것도, 그리고 그와 같은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시적 자아의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老婆의 陰影에서 비롯된다는 데 이 시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金丘庸에게 ‘어머니’는 트라우마이면서 동시에 구원이기도 했다는 점은 「散在」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으나, 그것은 전적으로 詩作과 관련된 사항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트라우마로써의 ‘어머니’가 그의 시에서 분열증적인 양상을 촉발시켰다면, 구원으로써의 ‘어머니’는 그의 시에서 일차적으로 사물을 정확하게 보려는 의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가면 그의 ‘어머니’는 종교화의 과정을 거쳐 무차별적인 사랑이라는 하나의 사상을 형성하기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진다. 「깨독나무」(1953)는 종교화의 과정을 거치기 전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할 만하다.
떨어진 깨꽃들은 물에서 誕生한 듯 아름다운데, 바위들의 沈黙은 스스로의 모양같이 嚴하고 영원하다. 周圍의 나무들은 제게서 떨어진 꽃들을 굽어보며 깨독을 점점 익히고 있다. 나는 기름을 分泌하는 파란 열매를 쳐다본다. 나무들이 沼를 굽어보듯이. 시원한 그늘처럼 생각의 濃淡과 明暗의 山沼로 정서가 풀리 듯, 盛裝한 아롱나비가 물 위 깨독꽃에 앉을 듯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산속 姿勢가 均衡진 고요에서, 꾀꼬리의 평화한 音色이 일어난다. 나도 法則과 差別과 習性을 버리고 깨독 기름을 바르고 싶다. 산들바람에 힘 있고 有爲한 나무 가지들이 제 모습을 흔들면, 하얀 꽃들이 흩어진 水面도 옛 故鄕을 생각하는 피리 가락으로 팔랑거리며, 서로 대답하는 綠陰의 映形에서, 나는 어머님을 분명히 본다. 꽃 사이로 잎 사이로 하늘의 조각 밑으로 구름 밑으로 고기와 가재들이 노니는 물을, 나무들은 굽어보며, 그리고 제 얼굴을 비추어 보며 만족하고 있다. 여러 가지 변화가 生動하는 순수한 山沼에서, 나의 꽃은 나무를 우러러보며, 지난날의 어머님과 對話하는 瞑想이 있다.
―「깨독나무」 全文
이 시는 사물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고자 하는 金丘庸의 의지가 투영된 작품이다. 1950년대 金丘庸 詩의 전반적인 경향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깨독나무」는 자연의 세밀한 부분을 매우 유심히 관찰한 작품이다. 이 詩에서 金丘庸은 연못가의 깨독나무가 깨꽃들을 떨어뜨리고 선 모습에서 어머니를 ‘분명히’ 보고 있다. 그것은 깨독나무가 그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린 깨꽃들을 굽어보는 모습이 자식들을 굽어보는 慈愛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金丘庸은 자연의 평범하지만 오묘한 섭리에서 이 세상 어머니들의 사랑을 보았다. 어머니들은 때가 되면 자식들을 떠나보낸다. 떠나보내는 것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죽을 때까지 지켜보며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헌신한다. 깨독나무 역시 깨꽃을 떨어뜨리지만, 떨어진 깨꽃을 굽어보면서 ‘깨독’을 점점 익힌다.
그런데 金丘庸은 이 시에서 깨독나무와 깨꽃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金丘庸은 연못의 변화를 비롯하여, 아롱나비의 움직임, 꾀꼬리의 음색, 고기와 가재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연물들은 저마다 선명한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으며, ‘균형진 산속 자세’를 형성하고 있다. 金丘庸은 자연의 균형이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근원에 깨독나무와 깨꽃을 위치시키고 있다. 그것은 ‘法則과 差別과 習性을 버린’ 차별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잘 보여주는 것이거니와, 이 시의 시적 자아가 ‘깨독 기름을 바르고 싶다’고 한 것은 마음의 질서와 평화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깨독나무」는 金丘庸의 어머니에 대한 개인적인 그리움에서 촉발된 시이지만, 이미 거기에는 ‘차별 없는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 깃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金丘庸은 자연의 섭리로서 보편적인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신뢰를 보냄으로써 모성 결핍에서 오는 자아 분열을 넘어서고자 했던 셈이다. 한편으로 「깨독나무」는 詩作에 있어서 사물을 정확하게 말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金丘庸은 漢詩의 이미지즘적인 편향에 착안하여 「깨독나무」와 같은 시를 썼던 것으로 여겨진다. 金丘庸은 이 단계를 경과하여 어머니의 사랑에서 하나의 사상을 도출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종교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3. ‘어머니’의 宗敎化, ‘觀世音菩薩’의 의미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 그 자체가 金丘庸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의 죽음이야말로 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의미가 아닐 수 없었다. 「散在」에 잘 드러나 있듯이 金丘庸은 그의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서 어디에선가 그를 찾고 있는 것만 같았고, 그와 같은 강박으로 인해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희망과 절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成人이 이토록 어머니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의 특수성에서 오는 죄의식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마땅치 않다. 그의 시에 나타난 분열증, 囚人 意識도 어느 정도는 이와 같은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데, 金丘庸은 이 죄의식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구하고자 했다.
그 방법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친숙했던 불교에서 발견되어졌다.
廢墟의 해바라기를 보게나.
내 마음에
復活하신 어머님은
관세음보살,
그 圓光을 받아
무성한 그림자는
어머님을 감돈다.
꽃술의 금빛 反射는
내 前生,
밤의 종소리.
―「해바라기」 全文
金丘庸은 ‘廢墟의 해바라기’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생을 본다. ‘해바라기’는 꽃 중에서도 매우 화려한 꽃의 하나거니와,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대지 위에 화려한 해바라기 하나가 피어 있는 것은 그 극명한 대조로 인해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흡사 ‘관세음보살’의 現身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관세음보살은 불교에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救世菩薩]’, ‘중생에게 두려운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보살[大悲聖者]’로 일컬어지는 존재이다. 金丘庸은 廢墟 속에 핀 해바라기를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관세음보살로 復活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바라기’는 눈부신 햇살 속에서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거니와, 金丘庸은 해바라기의 그림자도 관세음보살이 되신 어머니의 ‘圓光’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믿는다. 어머니가 永遠不滅의 존재로 거듭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戰場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보상 심리의 發露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바라기」는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至高의 존재로 復活하기를 소박하게 기원하는 차원에 머무는 시만은 아니다.
이 시에서 주목할 것은 정작 마지막 세 행이라고 할 수 있다. 꽃술에 금빛으로 反射되는 빛에서 순간 ‘前生’을 보았다는 것은 그럴 법한데, “밤의 종소리”는 언뜻 가슴에 와 닿지를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는 빛 무더기 속에 핀 해바라기에 대한 心象으로부터 촉발된 시이기 때문이다. ‘밤’은 시간적으로 모순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실 ‘觀世音菩薩’의 어의에서 비롯된 메타포이다. ‘觀世音’이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대목의 의미는 해바라기 꽃술에 反射되는 금빛은 觀世音菩薩인 어머니 해바라기가 시적 자아의 前生의 소리를 듣는 것의 현현이라는 것일 터이다. 청각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 빛 속에 가만히 서 있는 해바라기의 형상에서 무언가 귀를 기울여 듣고 있는 듯한 觀世音菩薩의 모습을 간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觀世音菩薩로 復活한 어머니는 해바라기의 形象으로 서서 ‘나의 前生’ 뿐만 아니라 ‘밤의 종소리’도 듣고 계신다. 觀世音菩薩로 復活하신 어머니는 시간을 초월하여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계신 것이었다. 觀世音菩薩은 이제 시적 자아 ‘나’의 어머니인 동시에 온 세상의 어머니로서 戰爭으로 피폐해진 어두운 세상에서 구원의 종소리를 듣고 있는 存在로 復活하신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金丘庸 詩에 나타난 ‘어머니’는 하나의 종교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종교로서의 金丘庸 詩에 나타나는 ‘어머니’는 天上的인 존재로보다는 地上的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金丘庸 詩에서 어머니 ‘觀世音菩薩’은 자주 廢墟가 된 거리를 배회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觀音은 나의 어머니, 내 內部에 계시니
死者들의 흙 위에 建立되는 市街를 굽어볼
다음날 樹木의 눈동자에도, 그 自體는 生命할 것이다.
觀音은 모든 마음이기에, 어느 室內의 저녁
노을에서나 音響에서나 偶像을 보지 못한다.
믿음은 당신이 苦惱로써 꽃피우신, 나의 實在에 있다.
肉身에 묶인 정신이 피를 만든다.
鼓動은, 門을 짚은 날개에 金環侵蝕으로 反映하고
자유의 石塊는, 나갈 수 없는 스스로를 뚫어
검은 빛에 젖어 누워 있다. “소금 사세요.”
獸肉집 앞을 지나가는 女人의 소리
그것은 하늘의 流血이며 感性의 불길이다.
울고 있을 아기를 잊지 못하며, 어머니가 부르는 色調.
관세음보살, 이제 당신은 蓮座에 없다.
배고픔에 외치는 音光에서, 당신을 본다.
旋律은 슬픔 없는 눈물이 되어, 골목과 창에 번지고
그것은 당신의 瓔珞으로 드리워져 빛난다.
그것은 透明하게 精刻한 어둠의 實相이었다.
지난날 戰火에 타오르면서, 변하지 않던 觀音의 미소가 나타난다.
어떤 思考도 소용없는 終極을 破壁에서 보듯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本性에, 綠陰의 毛髮이
沼를 안아, 슬픔의 발끝까지 노래로 愛撫한다.
念願의 딸기밭은 더러운 하늘을 裝飾하고
그대의 품으로 歸鄕하는 霧笛이 앞을 열었다.
밤마다 사랑의 기쁨은 괴로움으로 點火한다.
생활의 그림자들이 전등 빛에 휘청거리며 지나간 뒤
술집의 바이오린 소리는 不協和의 祈禱를 드린다.
觀音은 여러 각도로 光線을 뻗어
不忘의 病에 變貌하는 無限으로서 示顯하고 있다.
당신은 죽음의 形成에서도 깨어지지 않는 食器,
동시에 허무가 近接할 수 없는 나의 蓮꽃을 피워 올렸다.
바깥 十字架를 내다보는, 나 이외의 觀音은 없다.
咆소리는 흙과 電信局 위로 피어오르던 구름을 印象하고
언제나 시간은 黃金의 아픈 몸짓을 아르킨다.
自我의 發足點마다 나부끼는 萬國旗에 대하여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는가.
否定은 내일의 장독대에 봄비를 誘發하며
非情의 창에서, 孤兒는 얼굴을 돌려 陰影의 思想을 본다.
石鏡 속에 피는 미소, 어떤 對象에서도 意味를 찾지 못할 때
너는 觀音의 마음이 될 것이다.
때묻은 乳房의 열매, 가난한 家具, 괴로운 밤의 觀音,
모두 다 모습은 다르나 어디고 있다.
觀音은 그의 本性, 찢어진 機構에 넘쳐흐르는
月響을 背景하고, 나는 당신의 位置에 安坐하였다.
―「觀音讚 2」 全文
「觀音讚Ⅱ」에서 ‘觀世音菩薩’은 어떤 우상으로서 현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의 내부에 존재하는 ‘마음’으로 제시되고 있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불상이 觀世音菩薩이 아니라, ‘노을’이나 ‘音響’에도 사실 觀世音菩薩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의 와중에 죽은, 사람들의 시신 위에 새롭게 세워지는 市街를 굽어보는 ‘樹木의 눈동자’에도 觀世音菩薩이 있다는 구절에서 觀世音菩薩은 구원의 상징이며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觀世音菩薩은 더 이상 ‘蓮座’에 앉아 있지 않다(제14행). 觀音은 울고 있을 아기를 잊지 못하는 소금장수 여인네의 “소금 사세요.” 소리의 빛(音光)에 깃들여 지상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觀音은 ‘지난날 戰火에 타오르면서도 변하지 않던 미소’를 품은 채 어두운 골목에 빛으로 示顯한다.
이와 같은 金丘庸 詩의 ‘觀世音菩薩’에 대해 조해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金丘庸의 詩에서 觀世音菩薩은 1950년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고통을 여러 모습―과부, 매춘부, 고아, 등―으로 현현하면서 전후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로 나타난다. 매춘부는 金丘庸의 詩에서 전후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러나 金丘庸이 현실 속에서 그것을 포용하는 觀音의 모성적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현실에 대한 그의 直視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시정신인 것이다. 조해옥, 「전후 인간의 파괴적 자화상」, ≪리토피아≫(2002, 여름), 69~70면.
金丘庸 詩에서 ‘觀世音菩薩’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존재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세상의 모든 소리라고 했거니와, 그것은 金丘庸 詩에서 대개 ‘생활의 그림자’로 인해 어두운 색조를 띠고 나타난다. 觀音의 視線은 이 생활의 그림자들, 어두운 골목의 풍경들을 철저하게 추적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50년대의 戰後詩들이 얼마간 공유하고 있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金洙暎이나 朴寅煥의 詩에도 生活苦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金丘庸의 詩에서 ‘생활의 그림자’는 탄식의 대상이나 센티멘탈리즘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金丘庸은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처와 가난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金丘庸 詩의 시적 자아는 “바깥 十字架를 내다보는 나 이외의 觀音은 없다”라고 함으로써, 스스로 觀音이 되어 전쟁의 상흔과 생활의 어두운 그림자를 치유하고자 한다.
「觀音讚 2」의 시적 자아는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는가.”라고 自問하면서, 다시 한 번 모든 인간들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만이 ‘내일의 장독대’에 ‘봄비’라는 희망을 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전쟁으로 인해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金丘庸이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十字路가 내다보이는 창에서 눈을 돌려 얻은 ‘陰影의 思想’이란 기실 ‘差別 없는 사랑’으로 대변되는 휴머니즘이나 불교의 어떤 경지를 지칭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石鏡 속에 피는 미소가 어떤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무 이유 없이 저절로 피어나는 것일 때 觀音의 마음이 되리라는 이 시의 결미 부분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사상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상이 “觀音은 나의 어머니”라는 등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4. ‘어머니’의 變形, 救援으로서의 女性
지금까지 金丘庸 詩에 나타나는 ‘어머니’에 대해 몇 가지 관점에서 간략하게 검토해 보았다. 金丘庸에게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어머니’는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그는 유독 ‘어머니’에 대한 詩를 많이 남겼거니와, 그의 시에 자주 나타나는 여성 편력의 문제도 모성의 결핍에서 오는 대리 보충의 성격이 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꿈의 理想」에 등장하는 매춘부는 자신이 매춘부가 되기까지의 사연을 시적 자아에게 하소연하거니와, 시적 자아는 매춘부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준다. 매춘부와 金丘庸 詩의 시적 자아들은 서로 상처받은 존재들끼리의 묘한 연대감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金丘庸 詩에서 여성들은 하나의 육체이면서 동시에 어머니로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이율배반적인 이미지의 결합은 金丘庸 詩의 시적 자아들을 당혹감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하는데, 1954년作인 「벗은 奴隸」는 그 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벗은 奴隸」에서 매춘부를 찾은 시적 자아는 매춘부의 방 한구석에서 ‘엄마’를 찾으며 우는 넝마를 입은 어린 아이를 보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버린다.
비단 매춘부만이 아니고 金丘庸 詩의 여성들은 자주 ‘어머니’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觀音讚Ⅱ」에 등장하는 소금장수 여자는 집에 두고 온 어린것을 생각하는 어머니로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꿈의 理想」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아픈 시적 자아를 간호하는 모성적인 측면이 부각되기도 한다. 「꿈의 理想」에서 이상적인 여인을 시적 자아가 ‘白衣觀音菩薩’로 여기는 것은 이 장의 앞 절에서 살핀 ‘母性的인 觀音’과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金丘庸 詩에서 여성은 자주 구원자로서 등장하거니와, 이것은 초현실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향이다. 「消印」에서 ‘綠衣의 여인’은 시적 자아를 곤경에 빠뜨리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시적 자아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피살된 ‘綠衣의 여인’은 모든 비밀을 간직한 채 살해됨으로써 영원히 未知의 상태로 남는다는 점에서 신비스러운 뮤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꿈의 理想」에 등장하는 ‘白衣의 여자’는 시적 자아에 의해 ‘觀音菩薩’로 신비화된다. ‘白衣의 여자’는 시적 자아의 꿈에 나타나 아무 이유 없는 사랑, 차별이 없는 사랑에 대한 암시를 주기도 한다. 「꿈의 理想」의 시적 자아는 그 암시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어떤 여인과 결혼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여성들의 원형이 되는 것이 金丘庸 詩에서는 바로 ‘어머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한편으로 종교화의 과정을 거쳐 구원의 사상을 형성하게 하는 밑바탕이 되기도 하고, 母性的인 여인으로 등장하여 시적 자아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는 데 金丘庸 詩의 특징이 있다.
Ⅴ. 결론
이 글은 李箱에서 金丘庸으로 이어지는 한국 시사의 한 계보를 확인하는 데서 출발했다. 金丘庸은 우리 시사에서 전통적인 재현 방식을 거부하고 무의식-꿈을 강조한 초현실주의적 방법을 매우 의식적으로 밀고 나갔던 시인이다. 金丘庸의 독특한 시적 개성은 1930년대 전위적 모더니스트 李箱의 당대 서정시 규율에 대한 否定만큼이나 혁신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過言은 아닐 것이다. 유종호 같은 비평가마저도 金丘庸의 시적 실험에 대해 ‘산문에의 무조건적 항복’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그 파격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金丘庸은 李箱 詩의 방법을 수정주의적으로 계승․발전시켰다. 그가 李箱論으로 쓴 「‘레몽’에 도달한 길」에서 보여지듯, 그는 우리 詩史에서 유독 李箱 詩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金丘庸은 李箱 詩의 분열증적 양상에서 현대인의 분열증을 보고자 했다. 즉, 金丘庸은 현대인이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자기 동일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情神과 肉身의 戰爭’으로서 의식 분열이 꼭 있어야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金丘庸은 이와 같은 자기 동일성 회복을 위한 의식의 분열을 6․25로 인해 훼손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장치로서 재창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金丘庸의 李箱 계승은 일면 李箱의 자괴감 섞인 냉소보다는 지나치게 인간의 심층 의식으로서의 관념에만 치중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이 점은 金丘庸의 李箱 해석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전후 실존주의의 압도적인 영향 등 시대적 상황이 金丘庸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한국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전쟁이 야기한 문제들에 대해 반응해야만 했었거니와, 이것은 金丘庸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한국전쟁 중에 씌어진 金丘庸의 詩들은 대개 짧은 줄글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며 내용적으로는 인간의 實存이나 인간의 威儀에 대한 물음을 포함하고 있었다. 金丘庸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전쟁터에서 ‘너’와 ‘나’의 구분을 부정하고 彼我의 차별이 없는 상태를 강조하는 詩들을 썼다. 이와 같은 면모는 실존주의의 휴머니즘적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金丘庸은 차츰 그와 같은 경향에서 1952년의 「腦炎」을 기점으로 해서 이른바 난해시로 분류될 수 있는 경향으로 시적 스타일을 바꾸어갔다. 金丘庸은 난해한 漢字 造語를 사용했고 메타포를 여러 개 중첩시킴으로써 이성적인 방법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전쟁으로 야기된 난해한 현실을 형상화시킬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金丘庸 詩의 장형화는 좀더 나중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戰後 金丘庸 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떠올랐다. 金丘庸 詩의 장형화는 戰後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재현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金丘庸의 戰後 長詩들은 두 명 이상의 등장인물과 일정한 사건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詩想의 전개가 사건의 해결과정과 일치하는 양상을 띠었다는 점에서 전후 실존주의 소설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金丘庸의 長詩들은 본질적으로 메타포와 상징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더러 현실의 재현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 초월에의 지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주의 소설과는 또 다른 초현실주의 詩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金丘庸의 詩가 難解해지고 점점 길어지는 데는 전쟁의 와중에 어머니를 잃게 된 시인의 비극적인 원체험에도 어느 정도 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金丘庸 詩의 시적 자아들이 자주 창녀를 찾는다거나 이상적인 여성을 찾아 헤매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라고 해도 전혀 엉뚱한 해석은 아니다. 金丘庸은 戰場에서 헤어진 어머니를 관음보살로 종교화하고, 거기에서 각박한 현실로부터의 구원을 찾고자 했던 셈이다. 그러나 金丘庸 詩의 시적 자아들이 자기 동일성을 회복하고 구원을 얻는 과정은 그리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 것이 사실이다. 金丘庸 詩의 시적 자아들은 자기 분열과 숱한 방황 끝에 깨달음을 얻고 자기 동일성을 회복하며 구원의 길을 찾는다. 이와 같은 구조는 각박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현실을 초월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초-현실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지금까지 金丘庸의 시집 ꡔ詩ꡕ를 중심으로 金丘庸 詩의 초현실성에 대해 대략 살펴보았다. 金丘庸은 李箱의 초현실주의 시 계열을 계승, 한국 전쟁을 經過하는 동안에 더욱 발전시킨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나타난 초현실성은 다분히 求道的이고 宗敎的인 색채를 띠었다는 점에서 우리 詩史에서 단연 개성적인 세계를 개척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면모는 「九曲」, 「頌百八」, 「九居」 등 연작 장시 실험으로 나아가면서 더욱 심화되었거니와,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없이는 金丘庸 詩에 대해 온전하게 해명했다고 하기 힘들 것이다. 이 점은 이 글의 한계이기도 하거니와, 金丘庸의 연작 長詩들에 대해서는 추후에 지면을 달리 하여 살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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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Yong Kim, Young-Tak's Poem Study
-The Focus of ꡔPOEMꡕ-
Jang Jong-Kwon
depar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graduate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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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writing starts from confirming the genealogy of the history of Korean poetry from Lee Sang to Kim, Ku-Yong. He refuses to reproduce the traditional forms of our poetry and emphasizes surrealism, consciously emphasizing unconsciousness and dreams. Kim, Ku-Yong's unique poetic personality is as innovative as Lee Sang, an advanced modernist who denied lyric poetry in 1930. Yu, Jong-Oh, a critic, said of Kim, Ku-Yong's unconventional poetic experiment, Unconditional surrender about prose.
Kim, Ku-Yong develops and revises Lee Sang's methods. As he showed in「Way to Lemong」, he was very interested in Lee Sang’s poetry. He desired to analyze modern peoples mental schizophrenia through Lee Sang's poetry. So Kim, Ku-Yong thought it must be the awareness of disunion as collision between spirit and body in processes in which modern people find their own self and recover their own identities. Kim, Ku-Yong recreated the means for human beings, damaged by the Korea War, to recover their character. Kim, Ku-Yong’s accession to Lee Sang's way is not a sneer with a sense of shame, but an idea as the deep consciousness of human being. That is the limit of analysis of Lee Sang, but it can be said that a period situations like pressure of existentialism, led Kim, Ku-Yong in that way.
In 1950, Korea poetry should respond to the issue caused by Korea War in some way, and Kim, Ku-Yong did, too. Most of Kim, Ku-Yong's poetry were short forms. And they included the question of human being's existence and dignity. Kim, Ku-Yong denied the classification between ‘I’ and ‘you’ in the battlefield that human beings killed themselves. He emphasized the state of indiscrimination between ‘I’ and ‘you’. Kim, Ku-Yong changed his style of poetry into what is called ‘hard-poetry style’ with 「Noi-Yum」in 1952 as its starting point. Kim, Ku-Yong used difficult Chinese character and metaphor reiteration that normally can't be understood. But he had made his own style approaching the reality caused by the war. The long-matrix of Kim, Ku-Yong's poem appeared later, which was the most import feature of his poem after the War. The long-matrix of Kim, Ku-Yong could be understood as a reflection of the poet's reproduction desire of hard reality after the War. Kim, Ku-Yong's long poem after the War seems influenced by existentialism novels after the World War in that there are more than two dramatics personae and events and the development of poetic sentiment takes on the aspect to consist with the settling process of the events as well. It might not be overestimated, however, that Kim, Ku-Yong's poems have the feature of surrealism poem distinguished from the existentialism novel since they are mainly consisted of metaphor and symbols in nature and they strongly reveal the poet's will to surpass the reality resisting to settle down the reproduction of it.
That Kim, Ku-Yong's poem became abstruse and longer caused in some part from his tragic experience of the lost of his mother in the middle of the War. It might not be an extravagant i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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