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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李孝石文學의 特質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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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5,526회 작성일 02-06-1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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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孝石文學의 特質 考察
--작품 [花粉]을 중심으로


1. 들어가기.
36세로 요절한 李孝石(1907∼1942)은 17년 남짓한 창작기간 동안 비교적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25년 18세의 나이로 ≪매일신보≫에 시 [봄]을 발표한 것이 맨 처음이었으며, 이후 그는 ≪조선지광≫에 [都市와 幽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된다.

1) 연구사
1980년대 이전의 평론가들은 대체적으로 李孝石의 창작시기를 前期와 後期로 양분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검토해 왔는데, 前期는 경향적 색채가 농후한 同伴者 作家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後期는 그에서 벗어나 自然과 性의 세계에 탐닉해 들어가 審美主義的 색채를 띄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李孝石의 작품에 대한 비평적 관심은 1930년대 말엽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연구물들은 그의 문학의 해석과 평가에 있어 지나친 칭찬에서부터 극단적인 비판에 두루 걸쳐있어, 적지 않은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李孝石 문학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언어감각과, 풍부한 詩的 서정성,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소 특별한 性이라는 소재를 작품으로 形象化시켜 한국소설의 소재의 영역을 확충시켰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李孝石이 性이라는 소재를 통해 구현하고 있는 소설적 세계상의 反社會的이고 反歷史的인 요소에 주목하여, 李孝石이 추구하는 自然과 性의 세계가 시대나 역사의 현실을 외면하는 일종의 현실도피주의의 부산물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이들과, 소설과 시의 장르가 통합되면서 나타나게 되는 플롯의 해체나 인물의 행동적 특성이 약화된 것은 산문의 객관적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아마도 李孝石文學의 비판적인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2) 1930년대와 李孝石
1930년대는 당시 조선사회의 중대한 시련기였으며, 한국의 精神思想이나 現代文學史에도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1926년의 6·10 만세운동과 1929년의 학생만세운동 등을 통한 저항운동은 그 동안 유화정책을 펴오던 日帝가 강압적인 무단정책으로 돌아서게끔 하는 빌미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민족독립의 의지를 약화시켰으며, 지식인들을 어쩔 수 없는 변절자로 만들거나, 혹은 패배주의자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러한 점은 해외유학 출신이거나 신식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더욱 심했다. 외국으로 망명하여 행동으로 조국독립운동을 이끌어나가지 못한 지식인들은 '내부로 망명'하여 日帝와 손을 잡고, 自主獨立의 가능성을 점치지 못한 채 체념에 빠져 버렸다. 동시에 20년대 초기에 등장한 社會主義 이데올로기는 3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 이념의 이데올로기로 변모해 민족독립운동의 분열을 社會主義와 民族主義로 양립한 이들은 서로 정면으로 대립하여 결과적으로 日帝의 민족말살정책에 동조한 꼴이 되어 버렸다.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식민지 자원의 수탈 등 日帝의 탄압은 극에 달하여 1930년대는 글자 그대로 민족의 암흑기였다.
그러나 그 때에 이르러 한국사회는 사회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반성을 하게 되며, 韓國語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實學의 개념이 재정리되어 朝鮮學이라는 개념으로 발전되고,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학적 발언이 대두된다. 또한 30년대 후반기는 한국문학이 近代文學의 성격을 벗고 처음으로 現代文學的 성격을 띄기 시작한 시점으로, 20년대 후반기 이래로 근 10년 동안 문단을 석권했던 카프 계열의 정치주의가 퇴조하고, 작가들이 새로운 국면의 문학을 모색하던 국면이었다. 그 새로운 국면은 일련의 藝術至上主義的 문학운동인 純粹主義였다. 31년 카프의 대검거 사건 이후 작가들은 의식적인 사상성의 노출을 기피하고 오직 예술, 그것에만 몰입하는 純粹主義 경향이 일어나면서 은둔적 기질을 보이거나 도피주의로 흐르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李孝石이 처음의 同伴者的 입장에서 純粹主義로 빠져 나오게 되는 배경에는 그의 이른 바 '경무국 사건'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처가가 있는 함경북도 경성으로 내려가 칩거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가 결혼했던 31년 11월에 기고한 글에서 그 해 년간 문예계의 부진에 대한 이유로 첫째는 문인 진퇴의 변동이요, 둘째는 문예물에 대한 간행물의 태도요, 셋째는 원고 검열난이라 하여 검열의 폐해가 심각한 정도임을 지적한 바 있었다. 이로 미루어 李孝石은 그의 문학적 태도와 실제 생활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으며, 그가 입은 상처는 아마 그 점에서도 심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孝石은 시대의 현실에서 벗어나 自然과 性에 탐닉해 들어가는 純粹文學的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그의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비판에 관계없이 우선 李孝石文學의 特質을 거론하자면, 그것은 전기의 同伴者的 자세에서 벗어난 이후의 自然으로의 도피적 귀의와 엑조티시즘(Exoticism 異國指向的 의식), 에로티시즘(Eroticism), 그리고 詩的 서정성이라고 믿어진다. 본고에서는 그의 문학에 나타나는 이런 특질들에 관해, 그간의 연구가들의 논문을 검토하여, 그 特質들이 [花粉]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파악해 보고자 한다. 그의 문학적 特質들은 작품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그 중의 대표적인 작품 [花粉]을 중심으로 하여 고찰하여도 크게 무리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이 글의 텍스트는 {韓國文學全集} 8권(민중서관, 1975) 李孝石편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2. 심미적 자연의 세계
李孝石文學은 [들], [산], [메밀꽃 필 무렵] 등에서 보이는 自然的이며 鄕土的인 세계가 가장 주목받는 특징이며, 그런 시적 정서가 테에마로 된 단편이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金東里는 "이효석은 초기 同伴作家로 불려지게 된 [도시와 유령], [노령근해]에서 탈피하여, 쓰레기와 같은 [인간산문]을 버리고, [모밀꽃 필 무렵] 등의 아름다운 자연과 詩의 세계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꽃다지, 질경이, 나생이, 딸장이, 민들레, 솔구장이, 쇠민장이, 질오장이, 달내, 무릇, 시금치, 씀바귀, 돌나물, 비름, 늘쟁이, 들은 왼통 초록전에 덮여 벌써 한 조각의 흙빛도 찾아 볼 수 없다. 초록의 바다.

위에 등장하는 들풀과 들꽃들의 이름은 웬만큼 자연에 접근하지 않고서는 적어내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그의 가슴은 자연에 대한 향수로 출렁거리고 있다. 이것은 곧 그가 유년을 보냈던 고향의 들에 대한 짙은 향수이기도 할 것이다. 흙빛과 초록의 바다는 달아나고 싶은 현실과 그가 추구하는 자연에의 세계가 상징적으로 대비되고 있다. 李孝石의 작품 속에는 꽃이며 수목이 빈번히 등장한다. 그 화초와 수목들이 허다하게 抒情的으로 표현이 된다. 그 꽃들이 갖는 상징성은 물론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自然的 상징으로 사용된 꽃은 더불어 그 순수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산과 몸이 빈틈없이 한데 어울린 것이다. 눈에는 어느결엔지 푸른 하늘이 물들었고 피부에는 산냄새가 배었다. 바슴할 때의 짚북더기보다도 부드러운 나뭇잎-여러 자 깊이로 쌓이고 쌓인 깨금잎 가랑잎 떡갈잎의 부드러운 보료-속에 몸을 파묻고 있으면 몸뚱어리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한 포기의 나무와도 같은 느낌이다. 소나무 참나무 총중의 한 대의 나무다. 두 발은 뿌리요 두 팔은 가지다. 살을 베이면 피 대신에 나뭇진이 흐를 듯하다.

그의 자연은 자신과 하나가 된다. 자연 앞에 서면 어느 사이 푸른 하늘이 물들고 산냄새가 몸에 배인다. 자연 속에 몸을 묻으면 자신은 부드러운 보료 속에 몸을 파묻은 한 포기의 나무가 된다. 자신의 몸이 완전히 자연이 되어 자신의 몸 속에조차 인간의 피 대신 나무의 진액이 흐를 것만 같다. 자연과의 교감과 합일이 감동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그의 고향에서 소재를 취한 듯한 이 대목은 지방색의 어휘와 강하게 발산되는 향토적 정서를 쉽게 느낄 수가 있다. 鄭漢模는 李孝石의 자연에의 귀의를 '鄕愁와 審美의 文學'으로 규정하고, 그의 審美性에 대해 첫째, 육신과 유년의 고향에 대한 혈연적 향수와, 둘째, 현대문명의 발상지로서의 구라파적인 것에 대한 향수, 그리고 세 번째로 인간의 고향인 에덴적인 것에 대한 향수라고 요약했으며, 孝石의 자연에의 귀의는 위기에 빠진 자아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곧 자연은 도피이건 귀의이건 이효석 문학의 가장 근본적인 특질인 셈이다. 또한 그의 시적 서정이든 구라파적 향수이건 원초적 에로티즘이건 간에, 거기에는 이 자연에의 정서가 기본적으로 작용한다고 믿어진다.

1) 시적 서정
우리는 바로 앞에서 인용한 [모밀꽃 필 무렵]의 한 대목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와 '달은 지금 산허리에 떠 있다'는 어떻게 다른가.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는 도대체 어떤 숨소리인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와 '달빛으로 인해 더욱 푸르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는 소설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예사로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분명 운문정신에서 비롯된 너무나 감각적이고 세련된 표현들이다.
趙演鉉은 抒情的 美學을 李孝石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특성으로 꼽았으며, 兪鎭午는 李孝石이 아름다운 정감을 갖고 또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파악하는 시인이며 소위 말하는 산문정신에 입각한 소설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동안 문단에서 산문정신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정신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 시끄럽게 논의되는 시점에서도 李孝石은 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詩와 小說을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물의 행동성과 외적 현실보다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려는 문학적 시도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 면에서 孝石의 소설은 1930년대의 모더니즘 소설과 그 美的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작가들의 일반적으로 부족한 것은 표현과 그 기술이다. 아무리 진미라도 그것을 담은 그릇이 흉하면 미각을 상하는 법이다. 표현이 조잡한 것은 떳떳한 한편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孝石은 문학에 있어 표현의 문제를 강조했다. 한 해 동안의 韓國文壇을 돌아보며 創作을 하기 전에 그는 무엇보다 文章을 더 닦고 표현기술을 더 습득하여 재출발을 꾀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소설의 목표는 다만 진실의 전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의 표현을 수단으로 궁극에 있어서는 미의식을 환기시켜 시의 경지에 도달함이 소설의 최고 표지요 이상인 것이다. 최고 표지가 시의 경지인 점에서 소설의 목표는 물론 시의 목표와 동일하다.

소설 자체는 산문이나 그것을 빚는 정신은 시.

비록 短篇小說에 대해서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가 이처럼 시의 경지를 최고 우위에 두고 시적 소설을 추구한 것은 그가 강조한 표현상의 기교와 결부되어 李孝石文學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저녁기운이 안개같이 자욱한 속에서 뜰도 푸르고 창도 푸르고 미란의 마음도 푸르렀다. 푸른 것은 바다같이 먼 것을 실어 오면서 아득한 생각이 마음 기슭을 아물아물 감돌았다. 그 아물아물한 것을 노리고 있노라면 줄을 타는 광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위태위태한 느낌이 나면서 당돌하고 신기한 생각이 차례차례로 마음을 스친다. 보통 때에는 생각도 못하던 당치도 않은 대담한 광경의 토막이 요지경 속의 그림같이 펀득펀득 지나는 것이다. 수풀 속이 나오고 바닷속이 나오고 기선 속의 방 한간이 나오고 절벽 위가 나오고 -

[花粉] 중의 그의 詩的 抒情이 넘치는 대목이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분위기이다. '뜰도 푸르고, 창도 푸르고, 마음도 푸르렀다.' 이 또한 散文이 아니라 분명 韻文이다. 게다가 '위태위태', '차례차례', '펀득펀득'의 반복어는 詩的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李孝石의 詩的 문체의 특징은 이상태에 의하면 특히 대상이 自然일 때에는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대상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객관적 서술에 의존해야할 소설에 시의 주관적 정서를 함축하여 담아내자는 시도는 사실 무리가 따를 가능성이 많다. 그것은 시가 최소한의 간결한 문장으로도 시인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플롯과 성격 창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할 소설은 그 길이가 너무도 장황하기 때문이다. 시와 시적이라는 말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효석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상황의 시적 묘사 속에는 '바다 같이 먼 것', '마음 기슭'처럼 그대로 시나 시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허다하게 존재한다.

2) 구라파적 엑조티시즘
李孝石의 作品들에서 보이는 西歐的이고 문명화된 도시풍의 세계가 곧 엑조티시즘이다. 그의 自然的이며 鄕土的인 세계는 그가 산간벽지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들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엑조티시즘은 어디에서 生成된 것일까. 鄭漢模는 '孝石의 엑조티시즘은 다만 作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절실한 生活感情에서 기인한 生理的인 것으로, 음식에서 취미까지 孝石은 구라파적인 嗜好를 지니고 있었고, 그가 좋아하는 꽃들조차 거개가 西洋의 꽃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구라파적인 것이 李孝石 엑조티시즘의 基調이다.

아무리 고집을 피우고 뻗디뎌도 간에 오늘의 세계는 구석구석이 그 어느 한 거리도 구라파의 빛을 채색치 않은 곳이 없으며, 현대문명의 발상지인 그 곳에 대한 회포는 흡사 고향에 대한 그것과도 같은 것일까.

메주내 나는 문학이니 버터내 나는 문학이니 하고 시비함같이 주제넘고 무레한 것이 없다. 메주를 먹는 풍토 속에 살고 있으므로 메주내 나는 문학을 낳음이 당연하듯, 한편 서구적 공감 속에 호흡하고 있는 현대인의 취향으로서 버터내 나는 문학이 우러남도 이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닌가

孝石에게 있어 구라파에 대한 鄕愁는 마치 故鄕에 대한 鄕愁이며, 自由에 대한 갈망의 발로이다. 孝石은 西洋文明은 希臘文化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고 믿었으며, 그 希臘文化에 대해 그 이데아의 세계를 '조화와 균형의 완전한 형식미와 침착하고 정확한 감각의 전제와 토대 위에 개인의 자유와 안정의 절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구라파에 대한 갈망은 곧 천박하기 짝이 없는 祖國으로부터의 脫出이며, 비참한 現實로부터의 逃避와 동일한 感情이다. 이런 現實離脫에 대한 욕망은 現實幻滅로부터 逃避하려는 審美主義的 성격과 연결되면서 病的이고 頹廢的인 후기의 면모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孝石은 그가 19세기 말을 전후하여 유럽문단을 휩쓸었던 耽美主義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하고 있다. 耽美主義는 藝術을 삶으로부터 떼어내서 생각하는 것이 그 思潮의 기본철학이다. 純粹藝術을 지향하는 극단적인 藝術運動이며, 데까당스 思潮는 이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동시에 孝石의 作品 곳곳에 드러나는 꽃과 여인, 엑조티시즘, 現實逃避的 성향은 그대로 耽美主義의 特質이다.
그의 집 정원에는 늘 갖가지 꽃들이 가득했으며, 그는 대단히 스마트한 복장을 즐겼고, 외부에 대한 동경으로 러시안들의 별장이 많은 주을 온천지대를 즐겨 찾았으며,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아픈 배를 움켜쥐고 먼 밤길을 걷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같은 환경은 그대로 작품 [花粉]의 배경이 되고 있으며, 곧 그의 엑조티시즘의 한 단면이다.

"버려둔 정원이나 빈민굴 같은 속에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고려나 신라 때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 있었던지는 모르나 오늘 어느 구석에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까? 흰옷을 입기 시작한 때부터 빛깔을 잊었고 아악과 함께 음악이 끊어졌고 - 천여년 동안 흙벽 속에 갇혀 있느라구 아름다운 것을 생각할 여지나 있었습니까? 제 고장을 나무래기가 야박스러우니까 허세들을 부려보는 것이지요."
"흰옷은 흰옷으로서 아름답지 않아요?"
"흰것과 초록과 어느 것이 더 아름답습니까? 흙과 팽키와 어느 것이 더 아름답습니까? 흰것이나 흙은 문화 이전의 원료이지 아름다운 것이라구 발명해낸 것은 아니거던요.……

"무지개 별 꽃 인물 치장 음악 - 그런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가지고 할 때 마음이 뛰고 행복스럽지만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할 때에 얼마나 사람은 불행스럽습니까? 제일 훌륭하고 위대하고 힘을 가진 것이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돼지두 꽃만은 먹지 않는다든가요. 아름다운 것을 구하랴고 애쓰는 건 예술가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같어요. 그것을 제일 흔하게 가진 백성같이 행복스럽고 넉넉한 백성은 없어요."
"구라파 사람이 제일 행복스럽단 말씀이죠?"
"얕잡아봐도 사실은 사실인 걸요."

[花粉] 중의 위 두 대목은 영훈과 가야, 영훈과 미란의 대화이다. 비록 두 등장인물의 대화이지만 이 대화 속에 李孝石 자신의 생각이 다분히 담겨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다. 그의 엑조티시즘은 구라파를 동경하다 못해 끝내는 朝鮮은 버려둔 정원이요, 빈민굴에 불과하다고 토로한다. 또한 朝鮮의 흰옷과 흙벽을 경멸하는 입장으로까지 치달으며, 마침내는 그의 말 속에 등장하는 돼지가 곧 우리 민족일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과 만나고야 만다.
결국 영훈은 미란과 함께 그가 꿈에도 그리던 구라파를 향해 떠나게 된다. 아름다운 藝術과 접하기 위해서 빈민굴 같은 祖國을 떠나는 것이다. 이 作品의 인물들 중에서 그래도 건강한 思考方式을 갖고 있는 사람은 영훈과 미란이었다. 그런데 그 주인공들이 결국 이 땅을 떠난다. 민족의 앞날을 위해 새로운 思想을 찾아가거나, 쓸만한 힘을 배우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개인의 '創造的인 生産과 藝術의 完成'을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그것은 영훈과 미란에게는 한 마디로 '아름다운 것의 創造를 위한 여행'이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비전도 기다림도 필요하지 않는 무의미한 떠남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李孝石의 엑조티시즘은 일면 그의 自然觀과 原初的 生命力이 숨쉬는 탈문명, 탈도시화의 세계와는 矛盾된 성질을 드러낸다. 孝石은 나름대로 사회의 비자연적인 비틀림이 인간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自然과 性의 세계로 잠입하였으나, 그것이 엑조티시즘과 뒤섞일 때에는 그 健康美를 잃고, 물질적 快樂主義와 삼각관계가 만연하는 병들고 俗惡한 도시생활의 性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 [花粉]이다. [花粉]은 문명화되고 도시화된 구라파적 모습에 불과하며, 당시 韓國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결국 孝石의 지나친 엑조티시즘은 그의 性에 대한 태도를 自然的, 鄕土的인 세계에서 오히려 都市的, 西歐的 세계로 끌어내려 버린 결과를 초래했으며, 건강성을 잃은 변태적 특성으로 人間關係를 분열시켜 버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원초적 에로티시즘
화단에 피어있는 새빨간 실비야 - 이것의 표정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번역하여 놓은 것이 아닐까. 조개같이 방긋이 벌어진 떨기 사이로 불꽃같이 피어오르는 한 송이의 붉은 꽃 - 이것이 곧 나의 마음의 상징인 것이다.

여기에서 '꽃은 여성의 성기, 또는 특수하게 처녀성을 표시한다'는 프로이트의 분석결과를 참조하면 재미가 있어진다. 孝石은 그의 작품 속에서 꽃과 식물적 이미지를 여성을 비유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식물성으로서의 인간, 및 인간의 性 本能을 연역해 내고 있다 李孝石은 性을 예찬함으로써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보다도 더 根源的이며 本質的인 인간을 나타내고자 했다. 性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생명감정이며 모든 인간은 모두 그 생명력의 발현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性이란 생명력에 지배된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를 것이 없으며 有機體的인 自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孝石의 작품 곳곳에는 動物들의 交尾와 發情이 그대로 인간의 性行爲로 연결되고 있다.
鄭漢模는 "孝石은 純粹化를 위하여 藝術的인 심상을 미처 이루기 전에 作家意識의 너무나 적극적인 참가는 이리하여 創世記的인 純粹性에 성급하게 접근해 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李孝石은 자신의 글에서 '에덴낙원의 상실은 곧 지상낙원의 건설을 의미했다. 이 새로운 낙원에의 한층의 동경과 원망감이 사상을 냈고, 문학을 배이게 했던 것이다'라 하여 에덴의 의미 파악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樂園과 뱀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동시에 곧 바로 이브가 연상되기 마련이며, 이 樂園과 뱀과 이브는 인간의 原罪를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는 인간의 절대적 본능인 原初的 性이 변함없이 숨을 쉬고 있다. [花粉]의 푸른 집은 바로 에덴이요, 그곳에 순수의 세계에 빠진 이브들이 살고 있으며, 뱀은 어김없이 그들의 原初的 本能을 일깨우고 있다.

영문을 몰라 옥녀는 사잇문을 열고 목욕실에 뛰어 올랐다. 흰 대리석 목욕실 안의 물이 짜장 오미자 화채인 양 불그스럼하게 물들어 있다. 자욱하게 서리었던 물김이 말끔하게 걷힌 후이라 흰 도가니 안에 고인 물이 유리잔 안의 술과도 같이 깨끗하고 선명한 빛깔을 띠고 있지 않은가?
"수돗물이 망녕을 피웠나요?"
(중략)
옥녀는 목욕물을 한움큼씩 움켜서는 손가락 사이로 흘리면서 미란의 몸의 다달이 정해놓은 날수를 속으로 따져 보았다. 조금 일찍 온 듯하나 아마도 뱀에게 몰란 탓인 듯하다. 뱀의 독이 무서운 것을 깨달으며 그 화채물 속에 그대로 뛰어들까 어쩔까를 생각하려니 별안간 부끄러움이 왈칵 오면서 옥녀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뜰에서 뱀을 본 자기의 자태가 바로 낙원의 이브였던 듯한 생각이 들며 몸서리를 쳤다. 유혹의 장면을 보아나가는 동안에 한 가지 의문이 가슴 속에 서리우기 시작했다. - 금단의 과실을 먹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여간한 허물이 아니기 때문에 금했을 터인데 아무리 유혹이 컸다고 하더라도 얼마나한 용기로 그 천법을 범하게 된 것인가. 그 무서운 공포와 불안이 두 사람을 어떻게 정복한 것일까. 허물을 범하는 첫 순간의 용기를 두 사람은 대체 어떻게 얻은 것일까.

"놀라는 바람에 또 몇 치나 자랐겠군. 찔렛순 같이 키만 자꾸 자라면서 …… 첫뱀은 복이라는데 올 복은 미란이 독차지할 모양인가?"

李孝石의 작품에 보여지는 性에의 傾斜는 당시 유교적 남녀 구별 사회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거북한 近親相姦이나 同性戀愛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性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거나 여성의 자유로운 性行爲를 묘사하여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데까당스의 作品을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은 언니 세란이 동생 미란의 모르는 사이에 성숙해 버린 몸을 보고 내뱉는 예사롭지 않은 말이다. 그녀는 기묘하게도 동생에게서 인간의 몸을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온 형의 얼굴을 꽃송이를 휘어 가볍게 갈기며
"장미 냄새 같잖우?"
"글세."
"꿀 냄새 같구."
"냄새두 잘은 맡어."
"사향 냄새두 나구."
"수다스럽다……."
형은 꽃봉오리 하나를 뜯어서 코 끝에 대면서
"바로 말하면 라일락 냄새는 몸 냄새라나. 잘 익은 살 냄새라나. 갖은 비밀을 다 가진 몸 냄새…… 알겠니?"
(중략)
"무르녹은 봉오리가 하룻밤 비에 활짝 피어 버린다는 게 슬픈 일이란다."

치마 아래를 뻗친 찔렛순같이 밋밋한 동생의 다리를 탐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면서 꽃덤불 쪽으로 가까이 갈 때 미란은 흘낏 세란을 바라보고 괴덕스럽게 꽃망을을 잡아 흔드는 - 그 희멀건 얼굴이 꽃다발같이 향기롭다.

[花粉]은 현마와 단주간의 동성애로 시작이 된다. 현마는 미모의 어린 단주를 거두어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하며 곁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현마의 단주에 대한 사랑은 이성인 세란에 대한 사랑과도 비슷하다.

단주의 몸을 달랑 안아서는 찻속에 앉히는 것이다. 세란의 몸을 장난삼아 몰래 들어보는 적이 있었으나 그 세란의 몸보다도 부드럽고 해사한 단주의 몸이다.

짐승같이 육중한 현마와 아름다운 단주와의 대립되는 인상은 삼십대와 이십대의 차이도 아니요, 이십관과 십오관의 체중의 차이도 아니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괴이한 애정관계에서 오는 것이었다.

한 송이의 꽃을 대하듯 현마는 신화 속의 미소년같은 단주를 정신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자리가 이상하게 되어 나갔다. 마침 옆에 애영이 없었던 까닭에 현마는 일어서서 단주의 옆으로 간 것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 거의 일종의 간질거림과도 같은 다따가의 야릇한 거동이었다. 별안간 솟아오르는 애정의 표현으로 단주에게 몸을 쏠리며 그의 입술을 찾은 것이다. 당초에 현마가 단주를 알기 시작했을 무렵에 그의 아파트를 찾아가서 비밀한 시간을 가졌다. 그때의 애정의 부활인 듯 벅찬 힘으로 단주의 육체에 접촉해오는 것이다. 침대에서 아내 세란과 같이 지낼 때와 같은 세찬 애정의 발로였다.

孝石의 작품에 나타나는 同性戀愛에 관한 숨은 요인으로 孝石의 과거 어린 시절과 그의 수필 등을 통해 유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孝石은 치성을 드려 얻은 외아들로서 서울서 교편생활을 하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다 孝石은 네 살 때 비로소 서울로 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전까지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소아기의 4∼5세 때 이미 현저한 정신활동이 시작된다는 정신분석학의 연구결과를 믿는다면 孝石에게는 훗날 동성애적 경향이 키워질 충분한 요소가 마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단주는 주체스런 수영복까지 벗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늘 속에 가려진 집안은 세상과는 떨어진 별천지여서 그 속에서는 옥녀도 단주를 본받았다. 기발하고도 자연스런 의욕 원시로 환원하려는 것이다. 그 야릇한 세상 속에서 원시인의 자웅은 멀거니 서있기가 거북해서 술레잡기를 시작한다.

이 대목은 마치 로오렌스의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을 보는 듯하다. 李孝石은 이미 로오렌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음이 그의 글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어린 두 남녀가 벌거벗은 채 원시로 돌아가자는 발상 속에서는, 아무래도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에서 보이는 性의 아름다움과 인간적 신뢰감은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그들에게는 性行爲를 나누는 의미도 없고, 사랑의 희망도 미래에 대한 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오직 이 순간의 快樂만이 존재한다. 이상섭은 孝石의 愛慾小說에서 性行爲 후의 남녀간의 더 충만한 이해와 같은 創造的인 면이 언급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動物的인 관계를 초월하여 신비스러운 힘, 곧 사회적 윤리성을 강조한 로오렌스와는 대조가 되며, 저항의식과 비판의식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혹자는 孝石과 로오렌스를 비교분석한 결과 性觀 형성의 조건들에 의해 변이 되어 간 두 사람의 문학세계의 鳥瞰圖는 로오렌스의 경우는 '분열에서 화해로', 효석의 경우는 '화해에서 분열로'라는 상반된 구조의 선상에 드러나게 된다고 평가했다. 인간과 인간과의 결합은 육체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로오렌스의 생각이다. 그는 마음은 결국 육체를 기조로 하며, 육체의 완전한 결합에서 오는 성욕의 만족은 곧 자아의식의 승리와 만족감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이처럼 확실한 논리가 바탕이 된 로오렌스와, 순수한 의미에서 논리적 받침이 없이 원초적인 것에 대한 향수로 출발한 李孝石은 차이가 없을 수 없다. 孝石의 세계는 아름답기는 하나 성을 작품 속에서 창조적이거나 가치가 있는 세계로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반성이 남을 수 있다.

수선을 피우는 프로펠라는 씨근덕거리는 동물 같다. 아니 비행기 전체가 혼을 가진 짐승임이 완연하다.
(중략)
그 기계새가 좀 있으면 자기들을 후려쳐가지고 날아갈 것을 생각할 때……

"… 닭을 본 일이 있지 웨. - 울 아래 한 자웅을."
(중략)
" …… 두 마리가 고함을 치구 법석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싸움이나 하는 것 같더라. 사랑은 싸움 - 평범한 말이나 사랑은 싸움이란다."
(중략)
"숫탉이라는 것이 워낙 부락스러워서 암놈만 가엽거든. 날개를 포득이고 거역을 해봐야 헛일이구 고생고생 욕을 당하구야 마는 걸. 사랑이 아니구 싸움. 지배를 받구 모욕을 받는 것이 암탉의 운명인지 모르지."

[花粉]에서의 그녀들의 性意識은 상당히 보수적이며 수동적이었다. 그녀들에게 비행기는 씨근덕거리는 짐승으로 보인다. 그 짐승은 물론 씨근덕거리는 男性일 것이다. 그 男性들에게 후려쳐져서 무너지는 자신들의 보이지 않는 본능적 性慾이 꿈틀거리고 있다. 수탉과 암탉의 교미에서도 마찬가지의 수동적인 자세가 엿보이지만, 사랑의 행위가 마치 싸움과 같다는 의미는 결국 그녀들의 속에 얼마든지 능동적일 수 있는 性의 의지가 살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李孝石이 이처럼 動物들의 交尾를 묘사하여 곧바로 인간의 性行爲로 연결시키는 것은, 우리 인간 속에 내재하는 性의 본능은 動物的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인간은 인간의 탈을 쓰고, 가치라고는 별로 없어 보이는 文明과 秩序의 위력 앞에서, 그야말로 순수한 본능적 욕구를 제어 당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孝石은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한 개의 계란을 손아귀에 주고 깨트리려다 깨트리지 못한 단주였다. 눈 꼭 감고 주먹을 꼭 쥐면 탈싹 깨트려지련만 종시 두려운 생각에 눈 꼭 감고 주먹을 꼭 쥐지 못한 그였다.

단주 역시도 愛慾에 물들기 전에는 계란 하나도 깨트리지 못하고 담배 연기조차 빨아들이지 못하는 연약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 속에도 계란을 바싹 깨트리고 싶은 性的 本能은 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처녀지를 한곳두곳 점령해서 영토가 점점 늘어가는 것이 단주에게는 둘도 없는 인생의 기쁨이었다.

"두 사람을 웨 못 좋아해. 넌 꽃밭의 꽃을 꼭 한 가지만 좋아하니? 따리아도 좋구 에스터도 좋구 카카랴두 좋구 해바래기도 좋구 봉선화 패랭이꽃 다 좋지. 한 가지나 싫은 것이 있다드냐? 꽃을 가지구 먼 좋구 먼 싫다구 태를 피우는 녀석같이 거짓말쟁이는 없드라. 꽃이란 다 좋은 게란다."

愛慾에 익숙해진 단주는 이제 거칠 것이 없는 性의 탐구자가 되어 버렸다. 야수적인 愛慾은 처녀지를 하나하나 점령해가면서 승리감에 도취한다. 꽃은 두말 할 것 없이 女性을 상징한다. 꽃은 어떤 꽃이든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꽃을 오직 한 송이만 보고 즐기라는 것은 그야말로 속박이다. 눈을 돌리면 어디에나 꽃은 피어있고, 그 아름다운 꽃은 가능한 한 여러 송이를 모두 갖고 싶은 것이 男性的인 본능이다. 이것이 과연 자유로운 性의 발로일까 하는 의문에 앞서, 인간의 심연에 본능적으로 존재하는 야수적인 性의 얼굴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대단한 용기나 文學的 소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란이 이제 와서 자기를 경멸하든 말든간에 그 한번으로서 그의 비밀을 들추어 보았다는 듯 그의 전부를 차지해 보았다는 듯 흐뭇하게 포화된 감정이 솟았다. 손수 탐험하고 점령한 깊은 처녀지에는 자기의 발자취를 남기고 자기의 깃발을 꽂으면 족한 것이지 뒤에 누가 이민을 하고 어느 자손이 와 살든 그것까지를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실에 첫입자리를 넣으면 자기의 것임이 틀림없고 한번 받은 잔칫상은 다 먹든 말든 받은 사람의 차지이다.

한번 야산으로 나서 짐승맛을 들인 이리의 식욕 앞에는 골짜기를 뛰는 한 마리의 토끼도 심상하게는 보이지 않는다. 인생을 알기 시작한지 단시간에 우둔한 백치같이 다른 생각 다 없이 식욕만이 무섭게 날카로와지면서 어느 결엔지 이리의 악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 두 대목은 단주의 생각을 적은 대목이다. 앞 대목에 등장하는 '탐험, 점령, 발자취, 깃발, 이민, 독점, 첫입자리, 잔칫상' 등은 전혀 독자의 체면이 고려되지 않은 形而下學的 낱말들이다. 李孝石은 作品 속에 詩的 정취를 끌어넣어 소설의 한 경지를 개척해 보려는 야심과, 동시에 인간의 심연에 존재하는 本能的인 性의 문제를 끌어내려는 적어도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기울였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세란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서 단주는 무더운 정염에 둘러싸이고 있을 때에는 일신의 뼈끝에서 푸른 불꽃이 날리는 듯한 피로감이 나고 문득 독약냄새를 코 끝에 맡은 것같은 착각이 생겼다. 옥녀에게서도 같은 것을 느끼던 판에 이번의 피서는 일종의 도피행인 것이었으나 세란에게서 또다시 전날의 연속을 당하고 날 때 생각나는 것은 미란 뿐이었다.

愛慾에 빠져 눈앞이 보이지 않는 세란은 젊은 단주에게조차 버거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궁극적으로 사랑의 행위에 포함되어야 하는 부분은 조화일 것이다. 나만의 性이 아니라 상대방의 性을 넉넉하게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바로 나의 性을 위한 길이다. 動物이나 짐승들에게는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낙원의 한계는 순간이라는 것이며, 이브 역시 반드시 죽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금단의 열매를 먹어 버렸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기묘하게도 孝石은 이브의 사과가 결국 독약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아이러니칼하게도 바로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다.

색정의 유희라는 것이 도시 위험하고 걱정 많은 것임을 느끼면서 자기들의 자극없고 무의미한 생활을 다시 한번 고쳐 반성해 보게 되었다. 그 결과 그 깐에는 자기들의 단조한 생활이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니고 행복된 것이라는 것, 행복 속에 있기 때문에 그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세란의 친구인 죽석의 생각이다. 죽석은 세란의 자유분방한 性意識에 일면 부러웠던 적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性의 動物的 포로였던 세란과 단주의 종말이 비극적으로 결말이 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꾸로 자신의 단조롭기는 하지만 애욕에 물들지 않은 생활에 대해 행복감을 느낀다. 이른 바 勸善懲惡的인 古典的 결말이다.
趙演鉉은 "[花粉]은 나체미인을 보는 것과 같은 감각적 미의식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철범은 "李孝石은 [豚]을 기점으로 한국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자연 속에 포함된 미분화 상태의 순박한 한국인을 주제로 그들의 애욕문제를 그리고 있으나, 그 주인공들이 사회의식을 갖기 이전의 상태에 있으며, 자아의식에 눈뜬 근대인들이 아니며, 오직 원초적인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花粉]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죽석과 만태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성적으로 상당히 복잡하다. 터무니없게도 세란이 어린 단주의 육체를 탐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들은 비도덕적이고 변태적이며, 동물적인 애욕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애욕에 정신을 잃은 세란은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고, 그녀로 인해 애욕에 눈을 뜬 단주는 곧 미란과 옥녀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사랑의 감정과는 관계가 없이, 오로지 늘어가는 처녀지의 정복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야수가 된 것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非道德的인 性意識이다.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동성간의 애정 뿐만이 아니다. 사랑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이임에도 마치 동물이 본능적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끝내는 상대를 범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물론 그런 性行爲의 상대는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쉽게 용납할 수 없는 관계의 인물들이다. 李孝石은 이 비도덕적인 관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등장인물을 최소화시키고, 거기에 서로 범해서는 아니 되는 가까운 사이로 관계를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李孝石은 끝내 자신이 추구하던 세계조차도 거침없이 펼치진 못했다. 그는 미란과 영훈을 결합시켜 새로운 세계로 출발시켰으며, 죽석으로 하여금 세란의 처지를 안타까이 여기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오히려 행복함을 느끼도록 했고, 그보다 이전에 현마와 미란을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설정하지 않았다. 그는 非道德的이고 頹廢的이며 惡魔的이기 조차한 난잡한 性을 추구하면서도, 역시 현실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권선징악적인 결론으로 龍頭蛇尾와 같은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욕을 그리기를 치욕으로 여기는 작가가 있다면 모름지기 창작의 붓을 꺾어 버리라. 아내를 사랑하기를 부끄러워하고 겸연하게 여기는 것과도 같은 격이어서 인간 본연의 길의 모독인 까닭이다.
(중략)
반드시 애욕을 위한 애욕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본연적인 것 건강한 생명의 動力과 신비성이라고 할 것을 추구하고저 하는 그 한 표현으로 애욕의 주제가 뚜렷이 떠올랐던 것이다.
(중략)
다같이 생명의 비밀을 구명해 보려고 했음에 지나지 않는다. 병든 장미를 찬미한 것도 아니요, 매음의 사실에 한눈을 판 것도 아니다. 병든 장미의 타락한 인물이나 성화의 점잖은 인물들이나 작자에게는 우열의 차별이 없는 똑같은 본연의 생명체로 보일 뿐이다. 생명체의 건강을 바라보는 나머지의 한 逆喩로 불건강한 면을 취해 보았을 뿐이지

李孝石은 세간의 에로티시즘의 작가라는 칭호에 대해 관자노리에 핏줄을 키우면서 항변했다. 자신이 비록 애욕의 주제를 다루기는 하여도 그 어디에도 비속한 대문은 없으며 티끌 만큼도 부끄러워할 문자가 없었음을 장담했다. 李孝石은 또한 자신의 에로티시즘과 自然에의 경사가 '건강한 생명력의 추구'일 뿐 다른 뜻은 없다고 고백했다. 동시에 아름다운 性을 추구하기 위해 아름답지 못한 性을 그렸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花粉]의 실질적인 주조는 感覺的이며, 官能的이며, 耽美的이고, 享樂主義的이며 도착적인 것이 사실이다. 작품 속에서의 愛慾의 갈등은 건강한 본능적 性이라기보다는 오히려 肉慾에 가까우며, 전체적으로는 猥褻的이고 通俗的인 냄새마저 가득하다.

대체 애욕 갈등을 그린 작품 중에서도 골육간의 애욕 내지 친간을 그린 작품은 그 자체 이미 비극적 경우를 구성하여 가장 마음을 찌르고 훌륭한 문학을 이룰 때가 많다. 고대의 명문학 중에서 이런 것을 집어내 보면 상당한 수에 오를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도 가령 곡토의 [레장땅 데리블(무서운 아이들)] - 친 남매간의 애욕을 그린 이 소설을 나는 이러한 범주내의 작품으로서 확실히 명문학의 하나로 꼽으려 한다.

近親相姦은 소포클레스의 오디푸스(Oedipus)왕의 이야기가 가장 성공한 사례이다. 이로 미루어 孝石은 의도적으로 近親相姦을 작품 속에 추구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그로 인해 그가 탈출구로 믿었던 이러한 近親相姦은 결국 '近親相姦의 小說을 위한 近親相姦의 추구'가 되어, 보다 더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승화된 愛慾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
自然主義者들은 그 동안 物質文明의 발전과 복잡한 社會의 변화가 人間 本性을 무참하게 억압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原始的인 自然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人間의 本性이 善한가 惡한가는 아직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人間의 本性이 善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本性의 세계로 돌아가면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믿는 것이며, 그 아름다움 속에서 人間的인 快樂과 기쁨을 인간답게 누리길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自然과 原始를 추구하는 것은 이런 人間的인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李孝石의 에로티시즘에서 줄기차게 드러나는 性愛는 극단적인 動物的 本能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비판에 얼마든지 부딪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花粉]은 안이한 헤피엔드의 결말로 수준 낮은 멜로드라마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과. 그의 과도한 엑조티시즘이 오히려 건강한 自然的인 性의 가치를 하락시키고 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만하다.

4. 나가기
李孝石 세대는 傳統的인 漢文學이나 구비적 民衆文學 어느 쪽과도 깊은 교섭을 하지 못한 채 近代的인 정신을 추구하여 文學을 구상하고 실천한 初期 開拓者들이다. 이들의 限界와 失敗는 實驗이라는 全體的 맥락 속에서 이미 部分的으로 결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性愛의 본질이나 원형에 대해 깊이 의식하고 고뇌한 흔적이란 거의 보이지 않는 韓國文學史에 있어 孝石文學의 性과 自然은 현대적인 의식이며 先驅的인 것이며 결코 過小評價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李孝石(1907∼1942)은 韓國文學史에 있어 인간의 性 문제를 作品 속에 도입한 최초의 作家로 평가를 받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있을 수 없어 보인다. 그는 1930년대의 아직도 儒敎的이고 閉鎖的인 우리 社會에 破格的이고 挑戰的인 性의 문제를 文學에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져서 깊이 있는 文學的 世界를 획득하기에는 우리 社會가 너무나 무너져 있는 社會였다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의 무너진 性모랄은 가난한 피압박민족의 감추어진 現實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文學은 독특한 性 意識에 있어 뚜렷한 感動이나 警鐘을 울리지 못했다. 그가 다루었던 性 문제는 儒敎의 엄격한 道德性에 억압되었던 人間의 本性에 噴出口를 마련해 주려는 意圖로 파악할 수는 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지 않았느냐는 反省에 도달할 수 있다.
한편, 日帝의 文學人과 知識人에 대한 탄압은 과연 얼마나 잔혹했는가. 우리는 우리 民族文壇에 뚜렷한 抵抗文學이 없음으로 미루어 그 탄압의 강도가 극심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동시에 變節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끝까지 民族的 自尊心을 챙겨 民族의 가슴에 태양처럼 묻힌 뚜렷한 文學人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民族의 自矜心을 떠난 作家와, 民族의 獨立이 사라진 文學世界가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價値가 있을 수 있는가. 孝石의 생애와 작품을 검토하며 한번쯤 다시 돌아보아야할 문제이다. (각주는 생략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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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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