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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비극으로 끝난 사랑의 다원적 삼각관계/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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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153회 작성일 02-06-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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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끝난 사랑의 다원적 삼각관계
--복종과 죽음으로 나타난 두 가지 형태의 체념 (괴테의 <그의 연인 그녀의 연인>)


최근 책을 읽는 풍토를 돌아보면 이전에 비해 심각하게 달라진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은 문학작품의 쇠퇴와 지적 교양서적의 몰락일 것이다. 역사의 교훈과 삶의 무게와 영혼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담아낸 작품들은 이미 독자들의 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버린 듯하다. 소설작품에 있어서의 작품성도 알게 모르게 외면당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반소설의 경향으로 돌아서고 있는 현실은 어쩌면 시대적 변화에 의한 당연한 추이일지도 모른다.
요즘의 독자들은 주로 읽기 쉽고 단순하며 감성적이면서도 간추린 내용의 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이제 독자들로부터 버림받은 지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붙들고 외롭게 그 위의를 지키고 있으며, 독자들은 물질문명에 몰입하여 눈앞의 확실한 행복을 보다 더 추구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에는 티브이를 필두로 한 매스콤 매체와 급속도로 신세대를 공략하고 있는 컴퓨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근본이 불명확한 자본주의와 정도를 벗어난 상업주의 윗물 아랫물 할 것 없이 흙탕물이 되어 버린 우리의 정치풍토는 이제 더 이상의 질좋은 고급 정신문화를 추구하기가 부끄러운 안타까운 현실을 불러왔다. 이런 점들이 특히 우리의 다음 세대를 이어갈 신세대 독자들로 하여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만들어 버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아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의 미래는 참으로 걱정스럽다. 이로 인한 출판계의 불황과 IMF로 인한 불투명한 시장성에도 불구하고 도서출판 인화에서 세계적 대문호인 괴테의 비극적 장편소설 {그의 연인, 그녀의 연인}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괴테가 만년에 들어 완성한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원제는 [친화력]이다. 이 [친화력]이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낯설은 단어로써 본래는 화학분야에서 사용하는 술어이다. A와 B라는 두 원소로 이루어진 AB라는 화합물 속에 C와 D라는 새로운 원소가 들어온다. 그러자 A와 B라는 각각의 원소는 서로 더 많이 끌리게 되는 되는 원소 쪽으로 향하게 된다. 마침내 AB의 화합물은 분리가 되고, 이어 새로운 AC와 BD의 화합물이 성립하게 된다. 이 때에 작용하는 힘이 바로 친화력인 것이다. 괴테는 이 경향을 인간의 심리적 관계에 적용시켜 미묘한 사랑의 다원적 삼각관계를 묘사한 것이다. 동시에 이 용어 속에 자연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힘을 암시한 것이다.
이 작품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주인공 네 사람의 만남과 서서히 타오르는 열정이 그려져 있으며, 2부에서는 그 열정이 겪게 되는 여러 형태의 갈등과 그 비극적인 종말이 그려져 있다. 이것들은 다시 각기 18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가끔 편지와 작은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괴테 자신의 체념적 사랑이다. 괴테는 바이마르를 떠나 예나에 자주 들렀다. 그는 그곳에서 한 서점주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그 집의 양녀인 민나 헤르즐리프에게 뜨거운 연정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험한 상황을 깨달은 괴테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으며 끝내 그녀를 잊기 위해 예나를 떠나게 된다. 그녀에 대한 사랑의 추억이 1809년에 바로 이 작품에 담겨지게 되는 것이다.
A에 해당하는 에드아르트와 B에 해당하는 샤를롯테는 오래 전부터의 연인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헤어진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두 사람은 기어이 결합하여 부부가 된다. 그러나 옛날의 열정은 이미 사라져 버린 후이다. 극심한 환멸과 허전함이 그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지배한다.
이 두 화합물 AB에 새로운 원소인 C와 D, 곧 에드아르트의 친구인 대위와 샤를롯테의 양녀인 오티일레가 등장한다. 오티일레는 단숨에 에드아르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며, 대위는 샤를롯테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이들 사이에 친화력이 작용하여 이중의 삼각관계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샤를롯테는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그 아이는 얼굴 모습은 어머니의 연인인 대위를 닮았으며, 눈빛은 아버지의 연인인 오티일레를 닮는다. '이것은 이중의 간통에서 이루어진 산물이다.'라고 에드아르트는 슬프게 고백한다. 괴테가 이 작품을 쓴 배경을 이해하게 만드는 대단히 신비로운 대목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오티일레는 마침내 식음을 전폐하여 끝내 숨을 거둔다. 천진난만하고 자유스러운 천성을 지진 그녀는 엄숙한 현실적 운명에 봉착하여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죄의 대가를 달게 받는 것이다. 뒤이어 에드아르트도 그녀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외부적인 질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항거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체념해 버린 것이다.
이에 비해 샤를롯테의 체념은 현실에 대한 건강한 복종의 형태로 마무리가 된다. 인생의 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열정을 자유롭게 발산하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히 타협하고 어느 정도는 인내하며 한편으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정신이 누군가와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있는 주장이다.
괴테는 이 작품을 통해 결혼 생활의 중요성을 암시하고자 했으며, 일단 맺어진 부부관계는 어느 정도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물론 인간은 결혼 후에도 괴테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열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에 적절한 선에서 체념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며 그의 뛰어난 서경적 묘사와 심리적 묘사에 찬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동시에 흔들리지 않고 줄기차게 끌어가는 탄탄한 구성력과 그의 이야기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당시 귀족들의 소유지 생활과 사회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과거의 이국적인 특별한 세계, 그러나 얼마든지 우리의 것일 수도 있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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