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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의 변화를 예감한 세계의 정신/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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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081회 작성일 02-06-1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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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변화를 예감한 세계의 정신
--28년 만에 돌아보는 상파뉴에의 회상(괴테의 <프랑스 기행>)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예기치 못한 불행이란 없는 법이다. 인간은 현재로 미루어서 본능적으로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개는 그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모른 척하거나, 무시하거나, 잠시 두고 보거나 하다가, 결국에는 극복할 수 없는 불행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그 소중한 교훈을 얻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불어닥친 IMF의 폭풍도 어쩌면 그런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행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불시에 다가선 이 불행도 현명한 판단과 긍정적인 자세로 극복해나간다면, 오히려 이것이 더 나은 새로운 역사를 일구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배워야 할 것이다.
1999년 8월 28일은 괴테 탄생 2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괴테를 추모하는 기념사업이 다양하게 기획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세계적인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의 전집류를 비롯해서 다양한 저작물이 출판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즈음에 그의 [프랑스 출정기]와 [마인츠 점령기]가 한데 묶어져 {괴테의 프랑스기행}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달고 출간되었다.
괴테는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그는 우리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추앙받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그와 같은 불멸의 작품 속에서 이미 오랜 동안 그를 만나왔으며, 또한 다양하고 원숙한 경지의 여러 서정적 시편들을 통해 늘 그와 함께해 왔다. 최소한 우리는 그로 인하여 칠순의 나이에도 어린 소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소멸되지 않는 인간적 열정을 확인했다. 그의 이 뜨거운 사랑의 정신은 만인에게 던져준 인간적 구원의 빛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괴테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인생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하여 승화된 문학작품 뿐만이 아니다. 그는 실로 다양한 세계를 섭렵한 예술가로써, 전인적이며 보편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보다 더 폭넓게 보여 주었다. 그래서 그의 정신은 우리로하여금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본질을 분명하게 파악하도록하여 지극히 건강한 인간성을 형성시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괴테가 1809년 말경 그의 자서전적인 작품 《시와 진실》의 초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 프랑스와 마인츠의 종군 기록이 나타난다. 그러나 괴테는 이 부분에 대한 집필을 그 10년 후인 1820년에야 비로소 시작한다. 이미 28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집필한 셈이 되는 것이다. 1820년 2월에는 《마인츠 점령기》의 초안에 대한 기록들도 나타난다. 그가 이 시기에 이미 최종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미 원고를 완성했다는 것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두 작품은 《나의 인생, 5부중 2부》란 제목으로 초판이 되었고, 자전적인 작품 《시와 진실》에도 실려 있다.
1789년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유럽세계가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프랑스는 혁명기를 맞이하여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는다. 내부적으로는 혁명파와 반혁명파간의 치열한 갈등이 벌어졌으며, 혁명파는 다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져 처형으로 이어지는 피의 잔치가 연일 전국을 뒤덮고 있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왕권을 수호하려는 주변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견제와 협박을 받게 된다. 어떤 나라의 혁명이든지 그것이 대외적인 관계가 없이 존재하기는 어렵다. 프랑스 혁명기의 유럽은 어떤 나라든 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혁명은 독일의 지식인이나 저작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혁명이 발전함에 따라 프랑스 주변 국가의 제왕들은 사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 등은 반혁명의 감정을 키우게 되며, 결국 이들 연합군은 일체가 되어 프랑스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프랑스군을 일거에 격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발미에서 시작된 포격전에서는 프랑스군에 압도당하고 만다. 점차 보급은 줄어들고, 병든 병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기가 오른 프랑스군에게 밀려 연합군은 때마침 쏟아지는 빗속에서 퇴각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의 기록이 [프랑스 출정기]이다.
이어 프랑스군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국경을 넘어 라인주에 있는 여러 도시를 점령한다. 그들은 독일의 서부지역까지 진격하여 1792년 10월에는 마인츠를 점령하게 된다. 그래서 1793년 3월에는 프로이센의 3만 2천여 병력이 마인츠의 요새를 포위하여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괴테는 이 공격에 가담하기 위해 1793년 5월에 다시 바이마르를 떠나 전선으로 향한다. 이것이 [마인츠 점령기]에 기록된다.
괴테의 프랑스 출정기는 글자 그대로 출정에서 얻은 종군기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풍물과 유적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적국의 병사로 종군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당시 혁명기의 프랑스 정경과 민심을 배경으로하여, 그 자신의 심정적 세계가 솔직하게 그려져 있다고 보아야 옳다. 그것들이 또한 적절한 회상을 통하여 폭넓게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유의해야할 점은 바로 그런 와중에서도 자신의 세계와 사고의 발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그의 정신일 것이다.
괴테에게 있어 프랑스 혁명은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시대적 예감의 하나였다. 그는 그 순간 세계 역사의 변화 조짐을 예감하면서 혹독하고 암울한 혼란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적 정신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바이마르 공작과의 인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동맹군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그가 프랑스로 향하는 동안 전쟁은 너무도 참혹한 재앙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게다가 발미에서의 패전으로 그는 눈물겨운 죽음의 후퇴를 경험한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프랑스의 아름다운 정경에 감탄을 연발하는 것이다. 동시에 프랑스인들의 흔들리는 정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뜨거운 인간애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지켜본다. 또한 혐오스러운 전쟁터로부터 가능한 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며 더욱 더 자신의 세계로 몰입해 들어 갔던 것이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혁명기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의 국민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국난을 극복했는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세계의 지성 괴테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역사의 대변혁기와, 전쟁이라는 참혹한 재앙이 인간에게 어떤 희망과 상실을 남겨주게 되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어느 한 부분에 멈추지 않고 무한하게 열려있는 위대한 인물의 정신을 마치 손에 잡을 듯 확연하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적 고난이야말로 그 고난을 좌절하지 않고 현명하게 극복해내는 사람들에게는 더 없는 신의 축복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괴테는 세계의 대변혁을 예감한 천재였으며, 변혁의 와중에서도 멈추지 않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상을 창조한 선각자였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우리는 괴테의 지극히 인간적인 풍모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그의 무서운 집념과 만나게 된다. 동시에 현장감이 있는 혁명기의 프랑스와 공포의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무의식중에 사라진 역사의 시간 속으로 끌려들어가서 꿈같은 여행을 즐기고 있는 우리들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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