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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평>정우영 시인의 깜빡잠(문학과의식 2003 겨울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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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851회 작성일 04-01-0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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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잠
정우영
시와사람 2004년 가을호


까닭없이 눈이 붉어지고 부아가 치밀 때마다 내 고향 안산은 바람 서늘한 그늘 하나씩을 날라다준다. 나는 그 그늘 아래 눕자마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든다. 나는 꿈을 꾸는데 그 꿈 속에선 늘 안산에 안겨있다. 벌거벗은 태초의 몸인데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아주 평안해서 마치 안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그런 느낌으로 나를 둘러보면 내가 문득 소나무가 되거나 안산에서 뛰노는 다람쥐가 되거나 혹은 잔잔한 풀이거나 흙이 되어 있다. 그럴 때쯤이면 마음이 아주 가볍고 풍요로워진 나는 눈을 번쩍 뜨는데, 이미 모든 부아는 다 사라져버리고 없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전혀 딴 사람 같다고 낯설어한다. 나도 분명히 그걸 느낀다. 깜빡 잠이 나를 바꿔놓은 것이다. 나의 삶은 이렇게 윤회되는 모양이다.


시인은 긍정적인 시대일수록 부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 이때의 부정적 사고는 아마도 보다 더 치열한 긍정적 답을 위한 반작용일 것이다. 그런데 부정적인 시대에 오히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이것도 치열한 부정을 위한 준비작용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정우영의 ‘깜빡 잠’은 힘들고 가난해진 요즘의 정신세계를 모두가 떠나버린 고향과 자연으로 끌고 가 치유하고 있다. 그러나 고향이나 자연은 이미 얼굴이 짓뭉개진 전통처럼, 혹은 역사처럼, 부정으로 범벅이 되어 멀찌감치 버려진 곳이다. 모두가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지만, 그래도 시인은 변함없이 그곳이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아플 때마다 그곳을 다녀오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만난 고향 사람 같다. 옳은 것을 옳게 바라보려는 바보스럽고 고집스러운 면이 더욱 선명한 생명감으로 다가온다. 내게도 아직 고향은 살아있으며, 때묻지 않은 채로 건강하게 버티고 있다. 비록 오늘도 버려져 있지만, 앞으로도 언제까지 버려져 있을 테지만.

-문학과의식 2003년 겨울호
* 장종권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1-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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