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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시인론>결박당한 自由, 풀기 위한 화해의 언어/이영유(시로여는세상, 2006 겨울,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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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813회 작성일 06-12-1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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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시인론/이영유 시인
결박당한 自由, 풀기 위한 화해의 언어
장종권

한유의 명문 ‘잡설’이 오늘날에 이르도록 사라지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천리마가 없는 것이냐, 아니면 백락이 없는 것이냐.’ 천리마는 백낙이 있어야 비로소 천리마일 수 있는데, 백락을 만나지 못한 천리마는 결국 천리마로서의 능력을 한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도 지극히 비극적이다. 천리마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보통의 말로 푸대접을 받다보니 상대적으로 상처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숱한 비운의 천리마들을 기억한다.
한국시단의 요절시인들이 적어도 몇은 이 천리마에 속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들이 세상을 뜨고서야 비로소 그가 천리마였음을 깨닫게 되는 이 땅의 문학애호가들은 분명 백낙은 아닌 셈이며, 그로 인해 좋은 인재를 눈 뜬 채로 잃어야하는 현실적 책임을 과연 누구에게 물을 수나 있을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우리는 천리마의 천리마다운 기상을 그가 살아있는 세상에서 보았어야 옳고, 그의 남다른 능력을 그가 살아 있을 때에 인정하고 축복했어야 옳다.
시인 이영유는 요절시인은 아니다. 50이 훨씬 넘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 것은 옛날에 비추어 볼 것이면 천수를 다한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떠난 후 그가 일찍 세상을 떴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역시 천리마였던 때문은 아닐까. 살다 간 나이를 떠나 적어도 그가 살다간 안타까운 여정은 그가 천리마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세상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의 아픔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인천, 부천, 서울 등지에서 쉬임없이 작업을 벌였으며, 문화예술계의 일거리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인물이었다. 어디에든 그의 일거리는 있었고, 그는 그 일 속에 자신을 남김없이 집어넣었다. 그 뿐이었다. 그는 떠났고, 이제 우리는 그를 잊어야하는 시점에 와 있다.
9월 30일 인천 수봉공원 문화회관 소극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 시인의 희곡작품 <이용마 정형외과>가 최규호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교통사고 나이롱환자들이 병원 내에서 벌이는 어렵지 않은 이야기가 줄거리의 대부분이다. 막이 오르자마자 누구나 알 법한 상식적인 대화들이 막이 내릴 때까지 계속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비뚤어진 면들을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슬그머니 웃게 만든다. 그러나 그 웃음은 대개 반성을 동반하거나 부끄러움을 유발하는 실소인 경우이다. 자연스럽게 가슴이 아파지게 된다. 사람들은 이 연극이 그대로 이영유의 전형적인 어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의 어법에 익숙한 연출가는 마지막 처리를 대본과는 달리 반전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영유의 어법에 충실하기 위해서. 최대한 그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 날 이영유는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유고작품집 『이영유 희곡집』도 이 날 출간되었다. 무대가 열리기 전 미망인 김진숙 여사는 책을 받아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더디나 외길을 버리지 않았던 그 걸음’이라는 제목이 달린 서문 끝에는 정준석, 신종택, 윤영일, 임종우, 이관형 등의 후배라는 문구가 달려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들은 시인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인천의 문화운동가들이다. 전공하는 장르도 다양하다.
그는 엄밀한 의미로 보면 시인이 아니라 연극인이다. 그가 인천에 둥지를 튼 것도 연극 때문이었다. 아내 역시도 연극의 팬으로 만났다. 그가 80년대 말 인천 동인천역 부근에 ‘사발통문’이라는 막걸리집을 차렸을 때 필자는 처음 그를 만났다. 가게 안의 벽이란 벽은 모조리 휘갈겨 쓴 그의 시들로 가득하였다. 첫 인상은 한 마디로 자유인이었다. 그는 시보다 문화예술운동에 더 심취했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시인보다 더 많은 문화 운동가들이 득실거렸다. 그들은 그를 사랑했으며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신뢰를 보았고, 그 신뢰 속에서도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떠난 고인의 절박한 가슴을 읽는 듯해 가슴이 저리다.

세상 도처에 놈은/웅크리고 엎드려서/엿본다/호시탐탐이다/무얼 그리 노리는지, 아는 놈은 암뿐이다/암일 뿐이다/도처에 엎드리고 누워서/침 뱉기다/뱉은 침 제가 도로 맞기다/누군들 어디로 가겠나,/암의 속성이며 본질이다/암은 자기 자랑이다/암은 자기 이름이다/그러한 고로, 나는 암이다(「나는 암이다」 전문)

투병 중에 병실에서 쓴 시다. 우인들이 마련한 그의 마지막 시낭송회에서 이 작품을 필자가 낭독했다. 거대한 암세포와 맞서면서 마지막까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자 했던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을 암과 동질화시키면서 체념의 길로 들어섰다. 그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결코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듯이, 육체의 암세포 역시 그의 마지막 화해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본 고는 작품론이 아니다. 필자는 평론가가 아니며 이런 종류의 글을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고인의 평가와 조명은 평자들의 몫으로 돌리며, 이 글은 아마도 이 시인을 회고하는 감상문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객관성이 결여된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므로 읽는 분들의 이해를 먼저 구한다.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의 시대적 인식은 어떤 것이었으며 또한 그에게 시는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나름대로 다시 읽어보는 정도에 머물 것이다.

온 산하가 흰 눈으로 덮인
달밤
누렁이 홀로 어둠 향해
짖어대다
‘컹컹’

바람 한 점 없는 차가운
空中
(「불쌍한 歲寒圖」전문)

그의 마지막 시집 『검객의 칼끝』(문학과 지성)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어두운 달밤에 홀로 짖어대는 누렁이, 그래도 바람 한 점 없이 차갑기만 한 空中은 그 소리를 듣는 둥도 하지 않는다. 그는 존재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 자신의 허름한 존재를 이런 방식으로 존재시킨다. ‘새벽닭’(「住民稅」)이 그렇고 ‘가랑잎’(「麻浦 새우젓길, 뱃길을 따라」)이 그렇다. 아직도 누렁이의 컹컹거리는 울음소리는 차가운 가을 하늘에 남아 있다.
그의 첫 시집 『그림자 없는 시대』(1985년 문학과 지상)에는 그의 젊은 시절 그가 갖고 있던 세상과 시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는 작품들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 그는 70년대와 80년대를 대단히 바쁘게 살아온 시인이다. 직업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보다 몇 개는 더 가졌던 인물이다. 특히 출판계나 언론계, 방송계 등이 주를 이루어 시대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여건은 충분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그의 시대적 인식은 다분히 비관적이다. 방관자적인 자세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조롱하기도 하고 야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로 하여금 시대와 끝없이 타협하게 만든다. 거기에서 오는 불협화음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반성과 스스로에 대한 경멸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후미진 골방에서 그런 세상을 인정하고 가끔은 어루만져야하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을 만나고는 홀로 깊은 울음을 울게 된다.
그가 인식하고 있던 세상은 ‘오라고 하면 오나 안 오나 시험해’(「悲歌, 意志의 韓國人 1」)보는 세상이고, ‘온장고를 냉장고로 개조하는 실험을 하다가 급기야는’(「悲歌, 意志의 韓國人 2」) 망하고 마는 세상이며, ‘인권과 자유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알쏭달쏭한 쇠붙이를 가지고 편 갈라 싸우고 싸우다 죽’;(「悲歌, 意志의 韓國人 3」)는 세상이다. 또한 ‘길거리에 쎄고 쎄게 굴러다니는 별!’(「悲歌, 意志의 韓國人 4」)이 있고, ‘사람들이 서 있’는 ‘불 꺼진 마을’(「悲歌, 意志의 韓國人 5」)이며, ‘많은 책을 읽은 후 비로소 희망을 포기하’(「悲歌, 意志의 韓國人 4」)는 세상이기도 하고, ‘끝없이 찾아오고 한없이 밀려들고 후회 없이 버리면서 내던져지면서 인사 없이 등 돌리는 야망의 땅, 바람 죽은 봄’(「悲歌, 意志의 韓國人 8」)의 세상이다. 그것이 사회적 문제이건 개인적 문제이건 간에 그는 세상을 다분히 부조리한 세계로 보고 있으며, 무척 불편한 심기로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그런 세상과 어울릴 수 없는 묘한 갈등이 일상성이라는 껍데기 아래 좌충우돌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개구리가 크다/세상이 크다/개구리가 잠 깨는 세상이 크다/하늘 아래 모든 어둠이 크다
(「각설이 2」)

하루저녁에 詩를 오십 편씩 만드는/시인과 커피를 마신다/⋯⋯/하루에 시를/오십 편씩 읽는 제자들을 만난다/⋯⋯/학교로 가는 길이 보이고/불쌍한 제자들이 보이고/불쌍한 개천 보이고(「각설이 2」)

그에게 세상은 큰 개구리가 잠 깨는 큰 땅에 지나지 않았다. 상식과 정도에서 벗어난 일들이 자연스럽게 상식화되는 세상, 꿈과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이득에 더 눈이 밝아있는 세상, 무엇이든 진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시용 몰상식이 난무하는 세상, 사실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도 부끄럽지 않은 세상, 그러나 이런 못마땅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굳이 그 틈에 끼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징어를 파는 놈이 왜 나쁜 놈인지는/오징어를 씹어보면 안다
(「十年」)

아내가 외출했다가 가지고 온 먼 동해바다의 냄새가 가득한 오징어를 씹다가 그는 문득 세상이, 혹은 자신이 오징어 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잇몸이 아프도록 잘근잘근 씹으면 씹을수록 묘한 맛이 나는 오징어는 그에게 완벽한 포기를 유보하게 만드는 세상이거나, 아니면 오징어나 씹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내몬 세상에 대한 야유이다. 어쩌면 대단하지는 않다하더라도 충분히 살아봄직한 세상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을지 모른다. 그의 당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희화적인 면도 강하다.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세상에 대한 인식도 이 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 아들 손자 다 합하면/태권도 18단이었지만 그들 삼대는/모두 매맞아 죽었다//사람들은 운동은 할 것이 못된다고 말하였다/아예
(「공황 시대」)

알갱이는 어디 가고/껍질만 뒹구느냐
(「그림자 없는 時代의 노래」)

전염병을 앓는 마을로 가서, 빈속에/소주를 마시고/전신이 부어오르도록 소주를 마시고/모두를 용서하지 않으면 안 돼/⋯⋯/능숙한 그들의 손과 젊으나 교활한 손과/능란한 인사를 나누는 손을 붙들고
(「시간의 생각」)

개들이 싸운다/개가 싸우는 데 가지 말아라/물려봐야 너만 손해다//호가호위 이 얼마나 찬란한 한글이냐
(「혼자서 또는 둘이서」)

‘거짓말이 정말 없다면/참말밖에 없는, 이/세상’의 제목은 「저녁」이다. 참말밖에 없는 세상은 쓸쓸한 저녁이다. ‘거짓말’을 ‘상상력’으로, ‘참말’을 ‘현실’로 바꾸어 보면 보다 분명한 의미가 잡힐 듯도 하다. 그는 시적 거짓말이 현실에서도 중요하게 작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듯하다. ‘닭의 모가지와 흔한 누이의 모가지를/그냥 비틀어서 잠자코 세워둔/ 땅,’에는 ‘웃는 사람이 없으니 우는 사람도 없다’(「사슬 2」)고 비아냥거린다.

그에게도 꿈은 있었다. ‘조종사가 되고 싶다 잠자리나/신문사 비행기가 아니라/전투기나 폭격기 같은’(「音樂의 問題」). 그러나 이런 꿈은 자유를 실현하고자하는 그의 본능적인 의지에서 쏟아져 나온 언어로 보인다. 그의 시에 대한 생각도 상당히 조소적이다. ‘문학은 읽을 줄도 모르는 詩를 따라가며/밤눈이 어두운 계집들’(「사슬 4」)이 횡행하는 문학판 속에서도 ‘나는 질 좋은 詩를 쓰고 싶은 詩人이다./열심히 해/뭐 세상 너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너무 고결하게 처신하지 말고’(「사슬 3」)를 되뇌다가 다시 ‘바위에다가 詩를 새겨두라/그러면 썩지 않는 시인이 되리라/⋯⋯/바위를 뽑아 땅 속에 묻어 주춧돌이나/삼자’(「이 시대의 詩人들 또는 바위돌」)로 돌아서 버린다. 또는 ‘詩를 쓰는 일과 人相을 쓰는 일’(「우리들의 시간」)에서는 양자를 동일시해야 하는 아픔이 묻어있고, ‘국파불행시인행’(「湖水에 내린 빛」)의 시구에서는 그것이 더욱 심하게 노출된다. 그는 항상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무엇일까’(「시간의 생각」)를 막연하게나마 생각한다. 그러나 ‘싸잡아 죽은 돈 몇 푼에/비를 맞으며/내가 가는 그 길에는/꽃도 없었다/⋯⋯/그냥/실성한 저녁길’(「쥐꼬랑지」)이 현실적인 그의 길이다. 그는 자신의 시가 ‘이 시대의 아픔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토로한다. ‘스스로 자유롭지도 못해/한세상 뒤흔들 구라가 넘치지만/들려줄 아우가 없어 그냥 하늘만 쳐다보’(「사슬 1」)는 심정을 무척 답답해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그의 시에 대한 희망은 대부분 소박하며 어느 정도는 체념적이다. 젊은이다운 강력한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반면 절망과 포기에 가까운 화해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할 뿐 그렇다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는 토해 놓을 뿐 결론을 내리지도 않는다. 결론이라 해봐야 대부분 비꼼이고 비아냥이고 역설이다. 그는 은근하게 하고 싶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뱉어 놓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세상을 경멸하면서도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했다. 그는 칼을 들고 싶었으나 언제나 빈손이었다.

‘거리에서/텅 빈 극장 앞에서/자고 나도, 오지 않는 거지를 기다리며/나는 별처럼/거짓 없는, 나는 순진한 별처럼’
(「나는 별처럼」)

아무도 안 사는 나라에 가면 나도/대통령을 할 수 있을까
(「사슬 3」)

그때는 이런 집도 있었다//새로 집을 옮긴 날/따라온, 말없는 나의 집
(「이사」)

나를 부르는 곳으로 소리내지/않고 따라갔더니/죽은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산」)

봄이 아니다/꽃피는 봄의 밤이 아니다
(「사슬 5」)

그는 스스로 자유인이길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보이는 것도 없는데/눈을 그냥 떠둔다’(「산문, 물간 눈으로 오는 바람 1」)이나, ‘나는 가진 것이 없다/가진 것이 없는/나는 지킬 것이 없다/지킬 것이 없는/나는 자유롭다/자유로운/나는 행복하다’(「생각하는 배」), ‘홀라당 벗고 발라당 까져서 스물스물 기고 싶다’(「나는 바퀴벌레다」)는 주장들이 얼핏 자유인으로서의 신념을 피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자유인으로서의 의지는 스스로 자유인이고 싶은 의지와 자유인일 수밖에 없도록 내모는 세상의 압박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그는 밥벌이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서 시 역시 가닥을 잡지 못한 억울함을 배제하지 못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 것이다.
세상은 그에게 결코 끼어들 곳을 내어주지 않았고, 그 알량한 자유조차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가슴이 뜨거운 친구야/⋯⋯/또 쫒겨난다 나는, 나는 간다/쫒는 것들로부터는 쫒겨나는 것이지만/나가는 나는 내 발로 가는 것’(「나는 바퀴벌레다」), 비어있는 것은 끝까지 채워지지/않았으므로, 그것만으로도/안녕이다(「出家」), ‘죽은 사람이/또 죽으면 그건 어떻게 되는 거니’(「살풀이」), ‘漁夫는 늙고 병이 들어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漁夫와 王」)고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집요하게 세상의 한 귀퉁이를 붙잡고 동시대인으로서 참여할 권리를 주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반복되는 상실감과 좌절뿐이었다. 자신을 ‘무섭게 깨끗한 현관 앞을/서성거리는 가랑잎’(「서울 1986년 봄, 아무도 희망을 갖지 못한다」)으로 묘사한 그는 다시 ‘이렇게/살아있음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고 자신을 협박하기도 하고, ‘나의 억눌림은 더 무엇을 구할 수 있으랴. 달리/무엇을 이야기하랴’(「告別」)고 체념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그 굴레에 묶이어’(「自由에 대하여」), 그 상실감과 좌절이 세상과 그와의 간격을 벌리게 되면서 마침내는 자기 합리화와 세상에 대한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타협으로서 구원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이게 슬픔이냐/이게 슬픔의 자랑이냐/누가누가 더 슬플까/내기하는 일만 남은 서글픔//아무 것도 아니지
(「냄새」)

못 배운 게 죄라면 배운 것은 벌이다
(「뮤지칼」)

그의 시가 세상에 무슨 역할을 하였으며, 그에게 시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필자는 분명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몇 권의 시집과 희곡집, 그리고 아내와 아이 하나를 남겼다. 그 미망인과 아이에게 그의 시는 무슨 역할을 할 것이며, 무엇으로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살아생전에 밥이 되어주지 못했던 시가 그가 떠난 후에 밥으로 돌아올 리도 없다. 이것이 한국 시와 한국 시인의 현실이다. 시가 자본과 만난다면 이것은 분명 문제이다. 그러나 자본과는 별개인 시가 이 땅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도 궁금하다. 천리마가 사라진 아픈 땅에도 준마들은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천리마일 수도 있다는 희망적 신념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땅의 환상에 빠진 준마들이여, 백락이 없는 세상임을 주목하라. 지금 슬픈 천리마는 영면 중이다.

시로 여는 세상(2006 겨울)

* 장종권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1-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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