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한반도
장종권 작품세계

평문

 
 
소눈문, 기고문, 서평, 기타 글

<리포트> 李奎報 主意論의 現代的 意味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473회 작성일 02-06-15 11:52

본문


李奎報 主意論의 現代的 意味


1. 들어가기
李奎報는 高麗朝(서기1168년 12월 16일 生 - 1241년 9월 2일 卒)의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800년 전의 인물인 셈이다. 가히 천 년 세월에 묻혀 버린 神話的인 인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는 그의 시대와의 사이에 이미 李朝라는 500년의 장구한 한 王朝의 역사도 끼워두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도 詩의 역사에 비하면 별로 길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李奎報의 詩를 읽기 전에 이미 東坡의 詩를 알고 있으며, 그 전에 李白과 杜甫의 詩를 알고 있으며, 그 전에 詩經(B.C. 11∼12세기 경)과 楚辭를 기억한다. 詩經이 쓰여진 시기는 어림잡아 2,500년 내지 3,000년 전의 과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詩經과, 楚辭와, 李杜의 詩와, 東坡의 詩를 우열에 있어 시기적으로 구분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비록 남의 나라 문자를 빌어 쓴 漢詩이기는 하나, 우리는 李奎報의 詩를 대함에 있어 마치 골동품이나 별로 쓰잘 데 없는 옛 시대의 詩나부랑이로 치부해 버리거나 해서, 우리 先人들의 훌륭한 詩情神을 스스로 업신여기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는 過去之事로 흘러가지만 인간의 위대한 情神은 영원성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남아있는 법이다. 본 고는 李奎報의 '主意論'을 바탕으로 한 詩情神을 기존 연구가들의 論文을 바탕으로 분석한 후에, 그것이 오늘날의 현대적 안목으로 돌아볼 때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검토가 될 것이다. 李奎報의 主意論은 '新語', '新奇', '創新論' '新意論' 등으로 연구가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본 고에서는 李奎報의 '詩以意爲主'에 입각하여 '主意論'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2. 연구사 검토
李奎報의 '主意論'은 '新意論'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연구가들이 오히려 많다. 민병수는 이에 대해 "新意를 맨 먼저 이름한 것은 李仁老이며, 그것을 즐겨 쓴 사람은 崔滋이다. 李奎報는 주로 新語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新意라는 말은 [論詩中微旨略言]에서 한 번 있었을 뿐이다."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이 '新意論'과 李仁老를 대표로 하는 '用事論'을 대립적 관계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趙鍾業은 이것을 形式論과 內容論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用事'는 '故事使用'의 약어로서 '事'에는 고사뿐만이 아니라 古意, 古語, 古物 등을 모두 포함하며, '換骨奪胎'와 '琢句法'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 '用事'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 '九不宜體'를 들고 나온 李奎報의 바로 '新意'이다. 김진영은 '九不宜體'를 李奎報가 詩作活動의 체험과 사색으로 체득한 바로써, 시 창작에 있어 用事의 獨創性과, 換骨奪胎, 押韻, 難解性, 論理性, 참신성, 倫理性, 詩的 形象化의 여러 문제점들을 명징하게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崔信浩는 '新意論'과 '用事論'의 사이에는 두 가지 대립된 특징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 첫째는 新意論者는 先內容 後形式을 주장했고, 用事論者는 先形式 後內容을 강조했으며, 둘째는 新意論者의 주장은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인의 奧義를 모두 得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그것을 답습하지 않는 創出新意의 詩作이어야 참신하다 하였고, 用事論者는 유한한 능력으로 무한한 創意가 불가능하므로 고인들의 意境이나 어귀를 자기 詩와 대응시켜 심화시킨다고 했다.
全鎣大는 "표절을 일삼는 당대의 詩風을 지양하고 새로운 意境을 개척하려는 詩에 대한 자세가 新意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新意는 표절에 대한 반론이지 用事의 반대관념은 아니다."고 하여 대립설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閔丙秀도 이에 동조하여 "수사법에 치중한 用事論은 작법론에 있어서의 표현기법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詩論의 대상에 들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또 "李奎報의 主意論인 '詩以意爲主'는 원시주의적인 '詩言志'의 표현론을 천명한 것이며, '意以氣爲主'는 또 曹丕의 文氣論 이후 개성주의로 기울어진 表現論을 수용한 것이다. 이 개성주의적인 表現論은 당시 문학풍토가 東坡 일변도의 宋詩學 영향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제시한 우리 나라 批評史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김진영은 李奎報의 詩論을 한 마디로 '詩創作論'으로 규정하고, 李奎報는 獨創性을 중시하는 자신의 文學觀과 作品世界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語意의 創新을 내세웠고, 이 때 意境의 설정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그에 그치지 않고 詩想으로부터 발표단계까지의 전체 創作 과정상의 諸問題에 대하여 주도면밀한 관심을 갖고 혜안을 획득했던 시인이요, 詩論家였으며, 韓國文學史상 최초로 詩創作의 方法論을 전반적, 본격적으로 세워놓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시업은 '新意論'의 성격을 詩精神의 특질면에서 분석하여 "新意論은 用事論과 대등적 위치에 놓고 作詩의 順位문제로 취급될 일이 아니라 詩 자체에 대한 문제의 제기이며 문학이 삶의 내용과 연결되는 시점에서 파악될 일이다. 新意는 創造的] 美意識에 바탕을 두고 사물에 대한 認識의 更新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연히 現實的 社會的 영역으로 詩의 素材가 확대되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표현방법이 수반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李奎報의 詩는 創造性과 自主性을 인정받게 되며 구체적인 세계인식과 사실적인 현실파악이라는 新進士人으로서의 그의 文學觀을 뚜렷이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李奎報의 主意論은 用事論과 대립적 입장에서 다루어진 연구와 用事論과는 전혀 별개의 입장에서 다루어진 연구의 두 갈래가 뚜렷하게 드러난 양상이다. 본 고는 用事論을 참고하는데 그치고, 오로지 후자의 개별적 입장에서 그의 詩觀과 특질을 분석하여 李奎報의 詩精神에 다가가 보고자 한다.

3. 詩魔에 홀린 大詩人
李奎報의 詩歷은 그가 11세때 장난스럽게 지은 詩를 詩作의 처음으로 간주할 때에, 74세에 사망하였으므로 60여 년을 넘어선다. 그때까지 그의 작품 수를 헤아려 보면 2,000여수를 훨씬 넘어선다. 이것은 현대 한국시단에 가장 장수를 누리며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 서정주가 60여 년의 시력으로 800여 편의 詩를 쓴 것과 비교하면 여러 상황의 차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 편수에 있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李奎報는 평생 동안 詩를 사랑하여 詩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詩를 사랑하는 마음을 역설적으로 '詩魔'라 표현했는데, 그의 詩 [詩魔]는 그에게 있어 詩가 얼마나 강렬하게 자신을 붙들고 있는 존재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시는 하늘로부터 날아 내려오는 것이 아니건만
애를 태우며 찾아 헤매어 마침내 어찌하자는 것인가
좋은 바람, 밝은 달도 처음에는 서로 좋아하지만
오래 되면 오히려 홀리나니 이것이 바로 詩魔라네

詩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또한 詩가 인생에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詩를 통해서 얻어낼 것이라곤 결국 아무 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통스럽게 詩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좋은 바람이나 밝은 달이 그렇듯이,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처음에는 멋모르고 좋아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그것으로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詩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詩 또한 그저 좋아서 줄기차게 쓰다보면, 결국 그 詩에 붙들려 평생 詩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詩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李奎報는 그러한 경지를 '詩魔'에 홀린 경지라 표현하고 있다. 그는 韓愈의 [送窮文]을 본따 이 '詩魔'의 죄를 다섯 가지로 列擧하기도 했다. 그 하나는 詩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는 것이다. 物에서 興을 느끼니 들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은 詩는 숨은 秘密을 캐낸다는 것이다. 物이 무엇인가 물으니 숨은 秘密을 캐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셋은 詩는 自負心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들떠서 秘密을 캐내는 데서 自負心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넷은 詩는 비판을 한다는 것이다. 物의 올바른 상태를 따지니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섯은 詩는 傷心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詩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으니 傷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詩魔'의 죄목은 詩의 本質과 機能이 感興으로부터 출발하여 事物의 本源을 窮究하는 것이라는 그의 文學觀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지어
붓을 잡으면 으레 막힘이 없었네
스스로 말하기를 아름다운 옥이라 했으니
누가 감히 잘잘못을 논하였으리
훗날에 이르러 다시 한번 찾아보니
편마다 쓸만한 구절 하나도 없구나
차마 넘치는 상자를 어찌할 수 없어
새벽밥 짓는 아궁이에 불살라 버렸네
명년에도 다시 금년의 시를 본다면
또 이처럼 무참히 버리고야 말겠지
이 같은 까닭으로 고적 역시도
나이 오십에야 비로소 시를 지었구나

위의 詩는 그가 고통스럽게 詩를 짓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300여 편의 詩를 불사르고 지었다는 [焚藁]이다. 이로 미루어 그는 쉬지 않고 詩를 쓰면서도 그 詩들을 다시 몇 번이고 돌아보고 推敲를 거듭하면서 좋은 詩를 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처음에는 달뜬 마음에 스스로 높은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 자만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훗날 다시 그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작품들이다. 세월과 훈련의 경과로 인한 詩의 발전도 감안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끝없는 詩의 경지에 놀라게 되며 스스로 더 많은 반성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작품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게 된다. 아무리 피 같은 자신의 정신적 산물이라 할지라도 부끄러운 작품은 이처럼 과감하게 없애 버리고, 다시 새로운 작품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의 시적 정신이 얼마나 발전적이며 창조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詩作 態度는 老年期에 들어서서도 변하지를 않는다. 그는 詩로 인해 벼슬이 오르기도 하였으나 궁극적으로 벼슬을 위해 詩를 쓰지는 아니 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李奎報가 당시 산림간에 은둔하는 '海左七賢'과는 달리 군사정권의 門客이 되어 높은 벼슬까지 올라갔다는 점에 대해, 김현은 '지식인의 권력에 대한 아부'로 혹평하고 있으나, 김동욱은 그가 文才로써 公道를 택했을 뿐이지, 阿諂으로 權門에 접근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런 경우 대부분은 목적을 이루게 되면 곧 그 도구에 대한 집착력이 떨어지지만, 李奎報는 높은 벼슬에 오르고도 결코 평생 동안 詩를 놓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나이는 이미 일흔을 넘어 서고
벼슬 또한 태사에 올랐네
비로소 시에서 놓여날 만하지만
어찌 하고싶은 말이 없을 수 있으리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읊어대고
저녁에는 부엉이처럼 읊어대네
어찌할 수 없구나, 악마 같은 것이 있어
밤낮으로 은밀하게 따라다니고 있으니
한번 붙어 잠시도 떠나지 않으며
나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구나
낮이나 밤이나 폐부를 깎아내어
몇 편의 시를 짜내고 짜내었던가
비게와 기름 덩어리 뿐만이 아니라
살조차 남아나지를 않는구나
뼈만 남아 고통스럽게 읊어대고 있으니
이 모습 진실로 가소롭구나
사람을 놀라게 할 말 또한 없어라
넉넉히 천년을 남아 있을 말
손바닥 어루만지며 홀로 크게 웃다가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읊는다
죽고 삶이 반드시 이로 말미암으니
이 병은 의원도 결코 고치지 못하여라

오히려 더욱 각고의 노력으로 마음에 드는 좋은 詩를 쓰기 위해 애를 태우고 있다. 그의 詩에 있어서의 목표 중의 하나는 '千年이 지나도 남아있을 만한 소중한 詩句'였다. 황동규는 시를 '언어절제를 통한 체험의 극화'라고 정의했다. 시는 언어의 절제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이라는 말이다. 방만한 언어 속에서, 특히 남의 글귀를 표절한 가운데에서 훌륭한 시구를 얻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천년이 지나도 남아있을 만한 소중한 시구'는 뼈를 깎아내는 듯한 언어의 절제와 창조적 자세에서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마음에 드는 詩句가 없음에 그는 스스로 失笑를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김없이 다시 붓을 잡고야 만다. 詩는 한 마디로 그의 인생이며 숙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것을 그는 醫員조차 고칠 수 없는 天刑같은 고질병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적 자세는 가히 '온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가 온몸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오늘날과 유사한 시대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文臣들은 몰락하여 더 이상 예전의 文으로써 그 체통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리 文에 능하여도 결국에는 武臣들의 지배하에서 굴욕적인 자세로 머리를 수그려야 한다. 그러므로 당당한 經國濟世의 文章은 사라지고 文臣의 명맥을 이어가는 文章에 빠져 어쩌면 도래할 지도 모르는 다음 시대를 기다려야 한다.

나는 본래 시를 좋아한다. 전생의 빚이라고도 하지만, 병중에 있을 때에는 더욱 좋아해서 보통 때의 배가 되니, 또한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매번 興이 나고, 物에 촉발될 때마다, 읊지 않은 날이 없고, 그러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李奎報가 詩를 쓰면서 제기한 근본적인 물음은 '詩는 왜 쓰는가'이다. 前生의 業報처럼 詩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왜 詩를 써야 하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다. 興이 나고 物에 촉발될 때마다, 쓰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쓰게 된다. 몸이 불편해지면 더욱 많은 작품을 쓰게 되니 생각할수록 괴이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습관적으로 쓰게 되는 詩인데, 무엇을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아파진다. 그것은 천성적으로 세상에 대해 비판적이며 불만에 가득한 詩人으로써 갖는 일반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詩人은 자신의 존재 의의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詩의 세계가 막연하다고 해서 그냥 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고통스러운 작업 속에서 詩人은 삶의 의미를 찾게 되며, 그 삶의 가치를 위해 다시 끊임없이 詩를 쓰게 된다.

4. 새시대의 詩精神을 예견한 先覺者
시를 쓰는데 더욱 어려운 바는
시어와 뜻 모두의 아름다움을 얻는 것이라.
함축하면 뜻은 진실로 깊어지나니
씹으면 씹을수록 맛은 더욱 순수해지리.
뜻을 세우다가 시어가 원만하지 않더라도
조삽하게 그 뜻을 행하지 말라
나아가다가 맨 나중에 해야 할 일은
아름답게 꾸미는 것일 따름이라네
어찌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반드시 싫어하리
자못 또한 정신과 생각을 쏟아 부었으니.
화려함만 취하려다 그 실을 잃으면
시의 맛을 잃게 되는 까닭이 되리
요즘 시를 쓰는 사람들은
풍아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겉으로만 아름답게 꾸미어
일시적인 좋음만 구하고 있네
뜻은 본래 하늘에서 얻는 것이니
쉽게 이르기는 어려운 법이라
스스로 생각에도 얻기가 어려우니
돌아서서 아름다운 구절에만 힘쓰는구나
이것으로 사람을 현혹시켜서
부족한 것을 감추고자 하네
이런 습속 이미 오래 되어서
문장은 땅바닥에 떨어졌구나
이백과 두보는 다시 오지 않으니
누구와 더불어 진위를 분별할까
나는 퇴락한 기반을 다시 쌓고자 하나
아무도 한 삼태기 도와주는 사람이 없네
홀로 시 삼백 편을 외워보나
어느 곳에도 풍자를 보탤 곳이 없어라
스스로 거닐며 또한 읊을 뿐이니
외로운 노래 사람들은 모두가 희롱하기만 하는구나

위의 詩는 李奎報의 詩論에 가깝다. 그는 詩를 쓸 때에 表現技巧만이 아니라 詩精神에도 유의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더욱 새로운 맛이 생기는 詩의 含蓄美에 대한 禮讚이 돋보인다. 그러나 表現技巧에서 오는 詩의 아름다움 역시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形式的인 技巧에 치우치다가 땅바닥에 떨어져 버린 詩를 한탄하면서,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다시 詩의 세계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李奎報는 表現技巧보다는 作家意識을 더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동시에 李奎報는 당시의 시인들이 주로 범하고 마는 폐단에 대해 경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맨 처음 범하기 쉬운 오류는 시적 꾸밈이다. 부족한 알맹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들은 미사여구를 통한 시적 장식을 사양하지 않는다. 그래도 부족할 경우에 그들은 내용에 있어서까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나열하여 읽는 이들을 현혹시키려 든다. 이른바 위장된 難解詩이다. 李奎報의 이 경고 메시지는 천년 후인 오늘날에 와서도 변함없는 가치를 발휘한다.
李奎報는 東坡를 추켜세우면서도 東坡로부터 배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옛 시인은 뜻을 창조하고 말은 창조하지 않았으나, 자신은 新語를 만들고 新意를 창출한다 하며 자신의 개성을 과시한 면이 적지 아니 존재한다. 文言으로 중국시를 배운 우리 나라의 한시가 辭語나 聲律 같은 형식적인 기교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李奎報는 일찍 간파한 것이다. 그는 자신도 韓愈, 柳宗元, 白居易, 李白, 杜甫, 王勃, 歐陽修, 梅聖兪, 蘇子瞻처럼 자신의 개성이 뚜렷하게 각인된 詩로써 일세에 이름을 떨치고 싶어했다.

무릇 시는 意를 으뜸으로 삼는다. 意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며, 辭를 얽는 것은 그 다음이다. 意는 또한 氣를 으뜸으로 삼는다. 氣의 우열에 따라 깊고 얕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氣는 하늘에 근본을 둔 것으로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氣가 열등한 사람은 글을 아로새기는 것을 공교로운 것으로 여겨서 일찍이 意를 앞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대개 그 글을 아로새기고 그 글귀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깊고 두터운 意가 함축되어 있지 않으면 처음에는 가히 볼만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거듭 음미함에 이르면 맛이 이미 다하여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白雲小說}에서 발췌한 내용으로써 詩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여기에서의 意는 物의 숨은 秘密을 캐내고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意味를 갖고 있다. 詩가 어렵다거나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 意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意를 設定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 것이다. 氣는 詩的 才能이나 詩的 氣質을 말한다. 그러나 조동일은 이 氣 역시도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의 氣도 스스로 생기고 스스로 변하는 것이지 하늘이 정하는 것은 아니다. 詩를 쓰기 전까지의 體質的인 것이며, 社會的인 성격으로서의 氣質을 말한다. 물론 뛰어난 詩人은 태어날 때부터 詩的 재능을 갖고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詩的 才能이 있다고 해서 모두 훌륭한 詩를 쓰고 뛰어난 詩人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천부적인 이 詩的 才能과 후천적인 詩精神 意가 결합이 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詩人이겠으나 그런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李奎報는 열등한 詩的 氣質을 인간의 힘으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간주하고 후천적인 詩精神으로 意를 강조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 다음에 표현상의 기법으로 아름답게 꾸며진다면 더욱 좋은 詩가 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氣는 접어두고 設意와 綴辭만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設意는 詩에서 뜻을 설정하는 것이며, 綴辭는 말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李奎報는 詩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적극적인 의지를 갖은 경우에 綴辭보다는 設意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綴辭를 주장하는 李仁老와 대립이 되는 부분이다. 李仁老는 문학의 표현은 다듬을수록 '무지개 같은 광채가 난다'고 했다.
綴辭와 設意의 문제는 獨創的이냐 아니냐와 깊은 관계가 있다. 李奎報는 詩人이 物이나 현실에 부딪히는 경험으로 문학을 창작한다면, 設意가 중요할 뿐만이 아니라, 독창적 세계가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학이 獨創性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것이었으며 파격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문인들은 글쓰기를 格式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獨創性은 그의 '新語'라는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비록 육경이나 제자나 사기의 글이라도 섭렵하는데 그치고, 그 근원을 캐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하물며 제가장구의 글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 글에 익지 않으니 그 체를 본받고 그 말을 훔칠 수 있겠는가. 이것이 新語를 지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가 '新語'를 창작하는 의미는 자신의 공부가 부족한 데에 있지 않으며, 옛사람의 글을 剽竊하는 것이 도둑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 했다. 도둑질은 아무리 아름답게 잘해도 도둑질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사람들이 옛사람의 글을 剽竊하는 것은 그 글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한 剽竊은 오랜 인습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剽竊한 것 역시 아름다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李奎報는 뚜렷하게 자신의 獨創的 文學觀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당시는 文臣이 몰락하고 武臣이 집권하면서, 文의 지위는 땅으로 떨어졌으며, 文은 이제 '能文能吏'이라는 官人群의 도구로 전락하였다. 그래도 문학적 역량만이 문인들이 입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궁극적으로 文은 나름대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李奎報의 主意論은 당연한 時代的 反應일 수도 있다. 게다가 구시대의 문인들은 몰락하여 옛날의 鄕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新進 士大夫의 변화의 摸索이 계속해서 시도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獨創性에 대해 조동일은 그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風潮에 대한 반발도 아니요, 자신의 독특한 個性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도 아니며, 새시대의 文學을 客觀的으로 인식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굳이 李奎報의 '新語'를 現代的 意味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아무도 하지 않은 오로지 자신만의 새로운 말이며, 동시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막연한 세계라 표현될 수밖에 없는 '모호성'이나 '애매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이데거적 槪念에 집착한 現代의 김수영은 詩의 方法을 '모호성'으로 인식했다. '모호성'으로 인식되는 詩作은 '無限大의 混沌', 곧 '宇宙的 無秩序'에 접근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이 '無限大의 混沌'이나 '宇宙的 無秩序'는 李奎報가 말한 詩魔의 다섯 가지 죄 중 '詩는 숨은 秘密을 캐낸다'의 '숨은 秘密'과 통한다. 그러므로 '無限大의 混沌'은 곧 '새로운 始作'을 제공하는 것이며, 나아가 '누구도 하지 못한 말'의 始作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李奎報의 '新語'는 김수영의 '누구도 하지 못한 말'과 일부 부합된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李奎報가 말하는 '詩魔'의 죄상은 모두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일상적 관계를 깨트리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물과 세계의 순수한 실체를 드러나게 하는 詩의 본질을 두고 한 말이다. 이것이 곧 李奎報가 주장하는 創造의 美이며 新意의 美意識이다.
김시업은 李奎報의 主意論을 그의 詩와 관련지어 검토한 결과로 그의 主意論은 표현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대상 선택에 있어서도 구체적 체험 속에서 느껴진 바를 새롭고 참신한 소재로 다루어 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것은 곧 李奎報의 시세계가 체험과 인식의 모든 국면으로 소재의 영역을 확대시킴으로써 보다 폭넓은 現實性과 社會性을 얻고 있다는 결론을 얻기에 충분한 것이다.
李奎報는 비록 체계적인 哲學的 論理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나, 나름대로의 世界觀的 自覺을 갖고 있었으며, 그 自覺을 문학을 통해 발표한 인물이다. 그러나 李奎報가 意를 존중하고, 獨創性을 주창하면서, 自主的인 입장을 취한 것은 그의 個性으로써만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물론 아니다. 李奎報는 당시 新興士大夫로서의 先進的 입장을 공통적으로 지니고서 문학의 근본적인 문제를 새로운 사상으로써 해결하고자 한 인물이었다라는 것이 옳은 평가일 것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곧 기존 문학의 변화와 民族的 自主的 정신의 도래가 충분히 점쳐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政治的인 입장에서의 文臣과 文學의 몰락은 오히려 文人들을 홀가분한 상태로 만들어, 詩精神의 근본적 문제의 파악과 創作 態度의 치열성에 도움을 주었으리라 짐작이 되며, 外勢에 의한 반도의 침탈은 그들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함과 동시에 새 시대를 향해 自主的인 變革을 모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적 흐름을 타고 중국과 기존의 詩로부터의 改革과 變化를 모색하는 自主的인 정신과, 詩의 내용면에 있어서의 獨創的인 세계를 추구한 個性的 정신이 바로 李奎報의 詩精神이다.

5. 나가기
李奎報 主意論의 현대적 의미는 그것이 古今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詩精神을 명료하게 꿰뚫어 보았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李奎報는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하려 노력한 인물로써 千年의 歷史를 거슬러 내리며 우리에게 다가와 있는 것이다. 우리는 先人들이 문학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문학을 해왔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古代文學은 個性的 文學觀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나 著作은 없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觀點의 제시는 있어 왔다. 앞으로 先人들의 개별적인 연구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겠으나 그에 앞서 先人들의 文學精神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신뢰감부터 회복해야 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다.
李奎報는 한 편의 詩를 써서 발표하기까지 詩人으로서 가져야할 냉철한 자세를 잃지 않은 詩人이었다. 철저한 손질과 함께 발표 후의 비판도 겸허하게 수용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未來 指向的 獨創性에 입각한 詩的 形象化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동시에 千年이 지나도 후세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만한 아름다운 詩句를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新意의 詩語이며, 곧 新語인 것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생사를 건 처절한 창작태도를 잃지 않았으며, 궁극적으로는 그의 시세계를 소재의 현실성과 다양성에까지 확대시켜 자신의 詩의 문학성을 한층 높여 놓았다. 그러한 자세는 오늘날의 詩人들이 변함없이 본받아야할 詩情神이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詩的 態度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李奎報의 문학 작품이 실제로 變革과 自主性에 입각한 獨創的인 작품인지는 그의 작품들을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한 후에야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각주는 생략되어 있음)


<참고자료>

東國李相國集
白雲小說

김동욱, [變革期의 文學人-李奎報], {李奎報硏究}, 새문사, 1986
김수영, [시여, 침을 뱉아라], 1968. [반시론], 1968.
김시업, [李奎報의 新意論과 詩의 特質], 한국한문학연구 제3-4집.
김진영, [李奎報 文學觀의 몇 局面], {李奎報硏究}, 새문사, 1986.
김 현, [중세지성과 권력], {知性} 제1호, 1971.
민병수, [李奎報의 新意에 대하여], {李奎報硏究}, 새문사, 1986.
徐首生, [高麗漢文學硏究], 형설출판사, 1979.
이승훈, [김수영의 시론], {한국현대시론사}, 고려원, 1993.
全鎣大, [麗朝詩學硏究], {國文學硏究} 제26집, 1974.
조동일, [李奎報의 사상적 입장과 詩論], {李奎報硏究}, 새문사, 1986.
趙鍾業, [李奎報의 詩評과 主意論], {李奎報硏究}, 새문사, 1986.
崔信浩, [初期詩話에 나타난 用事理論의 樣相], 韓國古典文學會, {古典文學硏究} 제1집, 1971.
황동규, [시의 소리], 197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