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곳에 있었느냐 묻지 않으마<弔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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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곳에 있었느냐 묻지 않으마
--새싹들을 앗아간 인천화재
우리는 너희를 이런 끔찍한 궁지로 몰아 넣었구나.
우리는 너희를 이런 참혹한 사지로 몰아 넣었구나.
모든 땅과 모든 하늘은 우리가 송두리째 차지하고,
너희에게는 발 딛을 만한 땅 한 평도 주지 않았구나.
너희에게는 숨쉴 만한 하늘 한 구석 주지 않았구나.
아름다운 만남을 기뻐하기 위해 너희는 만났는데,
땀 흘린 학교 축제의 해갈을 위해, 뒷풀이를 위해,
소중한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해,
어른들이 보이지 않고, 선생님도 보이지 않는,
너희만의 공간에서 손을 잡고, 혹은 어깨동무하고,
너희는 따뜻한 가슴들을 활짝 풀었는데.
그러나 너희가 차지했던 그 작은 공간은 고작해야
이처럼 참혹하고 보잘것없는 슬픈 땅이었구나.
얼마나 웃고 싶었느냐, 얼마나 춤을 추고 싶었느냐.
컵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대학 갈 성적이 아니어도 포기하지 않고,
거리를 헤매면서도 끝내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아, 그러나 정녕 쉴 곳 없어 헤매던 너희들은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
너희가 떠나고 난 자리에 엄마는 가슴을 쥐어뜯고,
너희들의 빈자리에는 국화 향기만이 그윽하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제자들아.
왜 그곳에 있었느냐 묻지 않으마.
왜 그리 서둘러 떠났느냐 묻지 않으마.
비바람과 천둥번개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꿈을 찾아 비행하는 학이고 싶었던 너희들.
세상이 무어라 해도 소중하게 키워서 언젠가는
보란 듯이 내보이고 싶었던 부끄러운 세계.
이제야 이해하노니, 용서하라, 용서하라.
그리고 이제 독려도, 꾸지람도, 금지도 없는
하늘나라 그 온전한 자유로움 속에서
부디 꽃처럼 별처럼 영생하여라.
--<인천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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