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왕리(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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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
새 모가지처럼 꾸불꾸불 해변길 가다보면
의미도 없이 을왕리는 자빠져 있습니다.
먼 길이 가까워지고 황금이 무지하게 밀려들어도
을왕리는 자빠진 을왕리일 뿐 갑왕리가 아닙니다.
사람 눈이 모두 거기가 거긴 것이지
갑종이냐 을종이냐 겨우내 짜댄 가마니가
갑자기 최하품으로 곤두박질을 쳐도 아버지는
한 번도 공판장에 친구 없다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을왕리는 서러워도 을왕리이고
을왕리가 갑왕리가 되면 천지가 개벽이라
천지개벽하고 되는 일 없었다는
조상님들의 거룩하신 경험이 바다에서 물결칩니다.
을왕리에 가면 바다새는 보이지 않고
을왕리에 가면 그 흔한 바닷고기도 보이지 않고
을왕리에 가면 멋진 여자 찰진 남자 하나 없고
싸가지 없는 쌍놈들이나 겨우내 화투를 치다가
문득 방문 열고 시발, 오줌을 갈기던
해변 모래밭에 양반년놈들 발가벗고 드러누워
아싸라비야, 모래찜질을 즐깁니다.
썩은 똥바다의 썩은 모래밭의 썩은 물고기의
썩은 것들이 참 건강합니다. 싱싱합니다.
*乙旺리는 새 을자에 성할 왕자를 사용하는데, 이 을자는 십간의 두 번째 글자로 두번째를 의미하는 것이 본래적인 사용이다. 동시에 굽다, 구불구불하다 라는 뜻이 가장 근접한 의미이다. 이것이 새라는 뜻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을왕'은 '을한'의 변형이고, '을항'은 '늘어진 목'의 의미로 줄어서 '늘목'이라고 한다. '길게 늘어진 목'이라는 의미일 듯하다. 성한 것의 출발은 미세한 꿈틀거림으로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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