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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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개나리꽃이 지날 같이 피었습니다.
지난해 호박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담장 아래입니다.
그 담장을 타고 밤새 왕쥐들이 오락가락하고
뱀구멍이 송송 뚫린 아랫도리에서는
미친년처럼 자꾸 치마가 펄럭입니다.
개나리꽃이 지날 같이 피었습니다.
아무도 정색하지 않는 갈보 같은 얼굴입니다.
하필이면 개,
사실은 개조차 바라보지 않는 똥꽃입니다.
뱀구멍, 쥐구멍 사이로 잡년처럼 머우대가 자라고
수십 년 묵은 시누대가 죽지도 않고 살아나려 합니다.
산다고 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돌아보는 이 없어 혼자 심심타가 시드는 목숨입니다.
숱한 꽃들이 따라 피었다가 여지없이 사라집니다.
바람이 알겠습니까.
안개가 알겠습니까.
어둠이 알겠습니까.
질퍽한 비 한 번이면 요절이 나는 봄
나리 나리 개나리 개나리꽃이 지날 같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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