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출판기념회 인사말
페이지 정보

본문
저는 문자는 일종의 부호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문자와 부호의 차이는 문자는 모양과 뜻과 그에 맞는 소리가 있으나 부호에는 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문자도 일종의 부호입니다. 시인은 이 문자를 통해 아름다운 신호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 신호가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분석이 어려운 신호였다면 문제일 것입니다. 복잡하고 난해한 신호를 싫어하는 현실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능하다면 단순한 신호를 통해 다른 면의 시적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시집을 통해 많은 분들의 답신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예전 시집보다 좀 쉬워졌다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감사한 말씀으로 받아들여 이후에도 좋은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시를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회에 시적 사고와 시적 언어와 시적 태도를 제공하고, 또한 꾸준히 요구하며 이끌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는 시를 어려운 것이라고 기피하면서도 다방면에 시적 인식을 활용하고 있으며, 시적이지 못한 경우 일단 주변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하는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숨은 공로자이며 미래를 열어가는 중요한 리더 중 하나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시인 한 분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김구용 시인께서 제자를 참 잘 고르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고마웠습니다. 또 하나 시집에 자주 보이는 꽃의 의미를 궁금해 하더군요. 꽃의 의미를 모르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제 꽃의 의미가 아직 제대로 신호화 되지 못했다는 지적일 것입니다. 저는 25년 동안 다섯 권의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그런데 맨 앞 두 권의 시집은 등단 이전 청년 시절에 썼던 작품들입니다. 등단 이후의 시는 아산호 가는 길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등단 이전의 핵심이었던 바람불은 치기였으며, 아산호 가는 길은 연시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그 다음이 꽃입니다. 꽃은 생명과 창조의 의미입니다. 생명과 창조의 문제는 성의 인식과 통하기 마련입니다. 바람불은 성의 욕망 정도에서 머물렀습니다. 아산호에서는 이 욕망의 자궁을 만들었지요. 이제 꽃에서 본질과 핵심을 끄집어내고자 하는 겁니다. 저는 이 성의 문제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분의 이해가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을 그려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보여주려는 작업이지요. 저는 제 시를 시의 그림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자는 실체 뒤에 존재하는 허상이지만 사실은 본질이며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그림자를 통해서는 그것이 나무냐, 꽃이냐, 사람이냐는 쉽게 알 수 있지만 그것이 무슨 꽃이냐, 혹은 어떤 사람이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세상의 다양한 현상 속에서 단순화된 본질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그림자를 통해 실체의 본질만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본질과 핵심을 통한 단순화의 시도입니다. 꽃은 생명과 창조의 본질이고, 자연입니다. 개나리꽃과 호박꽃, 박꽃은 길러지는 자연이 아니라 버려진 자연입니다.
- 이전글만화․1/2012년 7월/시에 11.03.17
- 다음글만화․2//2012년 7월/시에 10.12.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