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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새/2013년 가을/리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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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453회 작성일 10-04-09 14:07

본문

텃새
 
 
텃새들이 사는 숲에는 다른 새들이 둥지를 틀지 못한다. 텃새들은 똘똘 뭉쳐 숲을 지킨다. 하늘을 지키고 땅을 지키고 나무들을 지킨다. 바람을 지키고 이슬을 지키고 공기조차 지킨다. 텃새들의 숲은 그래서 질서가 있다. 텃새들에게는 통솔자가 필요하다. 조직도 필요하고 군대도 필요하고 무기도 필요하다. 잘 훈련된 사냥개도 필요하다. 오염 가능성이 있는 침입자들은 발붙이기 어렵다. 텃새들의 피와 땀으로 숲은 탈 없이 푸르다. 잠시 머물다가는 철새들은 숙박비만 잘 내면 된다. 오염물질을 배설해서도, 위험자들을 유인해서도 안 된다. 텃새들은 대부분 색깔도 비슷하다. 신토불이 탓이다. 색깔이 다른 새들은 숲에 들자마자 노출이 된다. 색깔이 다르니 불러 주어야할 이름도 필요가 없다. 굴러온 돌멩이로 발에 채인다. 그러나 굶을 수는 없다. 아무 데서나 잘 수도 없고 숨을 곳도 마땅치가 않다. 규율 잡힌 숲에 기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텃새와 철새의 화해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철새는 언젠가는 떠나야할 입장이니 그렇다. 텃새가 되려면 천 년을 숲에서 머물러야 한다. 같은 벌레를 잡아먹고 같은 이슬을 마시고 냄새와 색깔과 목소리까지 비슷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쉽사리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화라는 말은 해석이 좀 다르다. 텃새들만의, 텃새들의, 텃새들을 위한, 이 숲이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역병이나 돌아야 텃새들은 잠시 위험에 빠진다. 역병이 돌면 숲에는 텃새도 사라지고 철새도 사라지고 바람도 사라지고 햇살도 사라지고 이슬도 사라진다. 숲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일 뿐이다. 텃새들은 워낙 적응력이 높으며 영리하고 강하다. 그래서 텃새도 텃새들의 숲도 영원한 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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