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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그냥 꽃인 날에 서평/강경희/리토피아 21호(2006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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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3,421회 작성일 10-09-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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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의지로 피어난 꽃
장종권의 시는 강렬하다.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은유의 형식보다는 직설법의 형식을 더 많이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당당하고 힘차게 느껴진다. 이러한 그의 문체적 특질은 그만의 고유한 인간적 기질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장종권에게 생을 밀고 나가는 힘의 원천은 ‘의지(意志)’라 할 수 있다. 시인은 고달프고 가파른 생일지라도 이 험난한 생을 중단 없이 전진하려하려는 남성성의 의지를 강인하게 드러낸다. 우리 시사에 있어 남성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시편은 많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비극적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화된 목소리, 상실과 그리움, 슬픔과 회환, 도피와 연민은 우리 시사의 대표적 얼굴이었다. 이러한 특성은 한편으로는 남성성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요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종권의 시는 상실된 아니무스의 심리와 감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꽃은 사람을 위하여 피지 않는다
다만 벌․나비를 위하여 아름답게 핀다
벌․나비는 본능적으로 꽃의 의미를 알지만
사람은 죽어서도 꽃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꽃은 사람에게 꽃으로 있지 않는다
꽃은 벌․나비를 만나야 비로소 꽃이 된다
벌․나비는 무시로 꽃의 나라에 침입하지만
꽃을 의미 없이 강간하지 않는다
벌․나비는 예외 없이 아름다운 초대장을 받아들고
꽃과의 저항 없는 사랑을 나눈다
그것은 꽃의 의지이다
―「아산호는 꽃의 의지이다」 전문

“꽃은 사람을 위하여 피지 않는다”라는 말이 선언하고 있는 의미는 꽃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에 의해 해석된 ‘꽃’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꽃’이 지니 고 있는 본질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에게 “꽃은 벌․나비를 만나야 비로소 꽃이 ”되는 것이다. ‘꽃’과 ‘벌’과 ‘나비’는 서로에 의해서, 서로를 위해서 존재할 때 마침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꽃’과 ‘사람’은 서로 적대적 관계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죽어서도 꽃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꽃은 사람에게 자신을 허용하지 않는다. 꽃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에 인간은  꽃(자연)에 대해 한없이 잔인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꽃의 세계를 파괴(강간)하는 행위로 암시된다. 장종권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처럼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것은 결국 자연과 궁극적으로 일치될 수 없는 인간의 파괴적 욕망에 대해 문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시는 철저히 생태주의를 지향한다. 특히 그는 자연의 입장에서 인간을 해석함으로써 자연주의적 시각을 견고하게 관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아산호를 찾는다
아산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지만
누구도 아산호에 다가서지는 못한다

야바위꾼은 결코 돈을 잃지 않는다

아산호의 손놀림은 신기하기 그지없어서
그들은 끝내 아산호의 옷고름을 풀지 못하고
아산호의 치마 끝 어디쯤에서 피곤한 몸을 눕힌다
―「아산호는 야바위꾼이다」 전문

야바위꾼으로 비유된 아산호는 인간과의 노름에서 언제나 승리를 한다. 아산호가 인간을 이기는 방법은 결코 자신의 몸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아산호를 찾는다”. 자연의 유혹에 현혹되지만 끝내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인간은 헛된 욕망의 노예처럼 자연에게 끊임없이 패배한다. 아니 그렇게 패배하여야 된다고 시인은 믿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 온건하게 자연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실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 어법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을 파괴함으로써 대상을 소유한다고 믿는 인간의 잔인한 이기심을 시인은 폭로한다.
장종권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조화’와 ‘평등’의 관계임을 역설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거룩한 나의 몸이 아니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누군가의 달뜨는 몸이다/몸과 몸이 어울려야 비로소 거대한 세상이 된다/몸과 몸이 어울려야 비로소 세상은 깊어”(「아산호는 출렁이는 몸이다」)지는 것이라는 말은 서로의 몸이 되어줄 수 있는 조화로운 수평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확고한 생의 철학은 우직하리만큼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그의 순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각설하고
촌놈이 사라진 시대에 촌놈으로 남는 일은
참으로 딱하다

―「딱한 자화상」 부분

오염된 자연은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그는 좀처럼 병든 자연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에게 침범당하거나, 정복되지 않는 자연 속에서만 우리의 삶도 지속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 촌놈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인, 촌놈이 사라진 시대에 끝까지 촌놈으로 남으려 하는 순수한 의지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장종권 시인의 삶의 철학이다. 그는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길이 욕망과 타협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절망과 공포와 수치와 모욕적인 사랑”을 감내해야 하는 길이라는 사실 또한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의 시의 남성적 어법은 이러한 자신의 신념을 드러내려는 의지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간혹 그의 시는 이러한 강렬한 의지로 인해 숨 가쁘기도 하다. 가끔은 이 숨 가쁜 의지의 질주로부터 한가로이 쉬어 가는 그의 여유를 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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