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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논두렁의 풀섶을 헤치면서(손현숙 시인, 웹진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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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3,461회 작성일 15-09-0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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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 촉촉한 논두렁의 풀섶을 헤치면서
 
 
어머니의 몸꽃
 
 
어머니는 내게 한번도 생리대를 들킨 적이 없었다
장롱 구석 깊은 곳에 꿈처럼 숨겨진 어머니의
자줏빛 기다란 옥양목 생리대를 끌어내리며 풀풀
나는 어머니의 몸 어딘가에서 피는 꽃인 줄만 알았다
어머니 조금만 떨어져도 헛것이 보이던 유년의 우주에서
그녀보다 더 위대한 신은 도무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유혹하는 숱한 신들은 모두 어머니의 딸이었다
그 어머니의 딸들 다독이며 나는 오늘 역설의 꿈을 꾼다
이별하지 않고도 제 얼굴 전설처럼 볼 수 있다면
이별한 뒤에는 무엇이 될까 두려울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옥양목 생리대는 아직도 시골집 장롱 위에
마른 꽃처럼 금방이라도 부서질 몸짓으로 앉아있는데
나는 그녀의 피로 뼈로 살점으로 이 땅을 기어다니며
피고 지는 꽃밭 사이나 헤집는 꽃뱀이거니 물뱀이거니
진홍으로 함께 물들며 숨이 막혔던 기억에 전율하면서
아직도 저물지 않는 하루해를 몸살하는 핏덩이거니
 
질문 9/ 시 역시도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다는 말씀 마음 깊이 새기며 공부하겠습니다. 저는 참으로 오랜 시간 선생님의 시를 읽고 공부하면서 살았던 시의 독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유년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네요. 보통 중견의 작가들은 그들의 시와 함께 유년은 늘 양념처럼 붙어 다니잖아요. 그 또한 조금 독특합니다. 선생님의 유년은 어떠했는지요?
 
대답 9/
그 시절 누구나처럼 제 유년 역시 순탄한 유년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픈 기억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행복한 기억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 시가 좋은 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드넓은 김제평야를 아시는 분 많을 것입니다. 고개 들어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아득한 땅이지요. 그 들판에서의 사계는 그야말로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지평선에서 솟는 아침 해였지요.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로 많이들 가시지요. 거기 가셔도 제 고향에서 보던 일출은 절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쟁반보다 큰 해가 온통 붉은 빛으로 달궈진 채 서서히 떠오르면 그것은 빛남이 아니라 따뜻함이었고, 가까움이었고,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바지를 걷은 채 이슬이 촉촉한 논두렁길 풀섶을 헤치면서 잘 자라는 벼포기들을 쓰다듬으며 대보에 오르면 그 날 거기가 세상의 입구였고 시작이었습니다. 비록 머지않아 풍비박산이 되어 부모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전 절망도 후회도 원망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 인생이니까요. 견디면서 사랑하면서 살아내야할 오로지 내 인생이니까요.
 
질문 10/ 이렇게 앉아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선생님 마음의 근력이 느껴집니다. 유년이 분명 슬픔을 동반하고 있었음에도 그 속에는 원망이나 어리광이나 여튼, 흐린 구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서정시들 또한 부드러우면서도 결기가 보였던 것이었네요. 그렇다면 선생님 시의 인생에서 화두랄까, 영향이랄까, 우정이랄까, 뭐 그런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답 10/
제 인생은 별 다른 인생이 아닙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 신뢰해야 한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사람은 본래 자신을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므로 당연히 남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무의식 세계나 본능적인 작용을 더 선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믿자. 나의 본능을 사랑하자. 그것이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의 본능적인 행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길이다. 노력 중이라는 것입니다.
 
질문 11/ 본능의 작용을 선호하는 것으로 선생님의 시를 이해하면 조금 더 선생님의 시와 가까워 질 수 있겠네요. 선생님은 오랫동안 고등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셨던 한문 선생님이셨습니다. 혹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셨던 자작시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선생님 재직 당시의 교육 현장에서는 시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나요?
 
대답 11/
1982년부터 2008년까지 인천의 모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쳤고 가끔은 국어 관련 수업도 한 적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자작시를 학생들에게 들려준 적은 기억에 없습니다. 아마도 학생들은 제가 시를 쓰는 사람인지 아예 모를 것입니다. 문예반을 지도한 적이 있기도 했으나 학생들에게 시를 지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짧은 생각으로 시는 대학에 가서나 쓰든지 하거라, 했지요. 인문고 학생들의 입시공부를 해야 하는 머릿속에 시 창작 공간을 만들어 주기에는 벅차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질문 12/ 우리나라 전반적인 교육의 현장을 압축 설명해 주신 듯합니다. 참으로 섭섭하고도 암울한 우리들의 교육실정입니다. 시인 선생님이 시를 말할 수 없는 교육현장이라니요. 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울울합니다. 선생님의 시집을 완독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호박꽃 나라’의 알레고리적 시쓰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애매하고 모호하고, 그러나 확실한 언어를 삽입하는 그 기능적인 시쓰기가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요, 뭐 여튼 그런 의미에서 ‘호박꽃 나라’를 오래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선생님 시쓰기의 전략이랄까, 정신이랄까,를 평론가의 입을 빌리지 않고 직접 시인에게 듣고 싶습니다.
 
대답 12/
직설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독선일 가능성, 편견일 가능성, 오판일 가능성, 착오일 가능성이 많은데다가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고정, 고착화시켜 수렁에 빠질 위험성도 많습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 이치이므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도록 배려해 둘 필요도 있는 것이고, 답을 만들어 놓거나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리고 시 역시도 읽는 재미가 있어야 독자에게 접근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내 이야기가 아닌 제3자의 이야기나 제3의 상황을 재미있게 엮어나가면 자연스럽게 속에 담아둔 의미까지도 파악할 가능성이 짙어진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대단히 수준이 높습니다. 거의 모든 시를 읽어냅니다. 단지 말을 안 할 뿐이지요. 문장의 메타포는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하지만 시 전체의 알레고리화는 그보다는 좀 쉽지 않을까요.
 
 
# 시와 정치를 바라보는 눈
 
 
호박꽃나라 1
 
 
호박꽃은 저마다의 이름이 없다
기껏해야 호박이라는 동네 이름 정도다
사람으로 치면 성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호박꽃들은 저마다의 모양도 비슷하고
향기도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소리가 있다면 그것도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러니 텃밭머리에 피는 호박꽃을
무어리 달리 이름 부르고
담장을 기어오르는 호박꽃을
무어라 달리 이름 부를 이유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냥 호박꽃일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호박꽃 개개의 존재들과
굳이 대화를 할 일도 없고
어느 호박꽃 한 송이를
특별하게 사랑할 이유도 없다
어디에 핀 호박꽃이든 보기에 좋으면 그만이다
사람들의 생각이다
아직 호박꽃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아직 벌들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
신도 우리에게 아마 이럴 것이다
 
질문 13/ 저는 선생님 시에서 시대에 저항하는 ‘깡패’의식. 즉, 앞을 향해 무섭게 밀고 가는 힘도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시와 정치’에 관하여, 그리고 그 범주에 관하여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대답 13/
‘시와 정치’라기보다는 ‘정치를 바라보는 눈’으로서의 시 정도가 맞는 말 같습니다. 요즘 부쩍 정치 역시 생명체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생명체의 본질이 살려고 하는 욕망이지요. 죽으려고 덤비는 것은 건강한 생명체가 아닐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거나, 더 좋은 위치에 자신을 가져다 놓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욕망이 없다면 정치도 자라지 못하게 될 것이고, 정치가 없이는 사회는 굴러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어디에도 답은 없고, 누구에게도 잘잘못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 시가 직접적으로 정치에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사회적 현상을 나름 느끼는 대로 적어볼 따름입니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이 말은 ‘죄’와 ‘돌’이라는 인과응보적 관계에서 ‘돌’을 과감하게 빼야 한다는 예수의 거룩한 가르침입니다. ‘죄’를 생명체의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읽어주는 대신 ‘돌’은 함부로 던져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돌’이 너무 많습니다. ‘돌’이 너무 크고 잔혹합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잔혹한 ‘돌’로 인하여 ‘죄’들이 쓸데없이 커지고 있는 세태가 걱정이라는 말입니다. ‘돌’이 커지면 ‘죄’가 줄어들까요?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본능에서 만나기가 가장 쉽다고 생각합니다. 본능적으로 시를 쓰다보면 내 생각을 의심할 필요가 없지요. 그래서 약간 거침없이 전개되는 것을 밀고 나가는 힘으로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질문 14/ 선생님의 시는 정말로 거치미 없답니다. 자, 잠시 쉬어갈까요? 선생님 마음 안 하늘 어디에 혹시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 있으신지요? 왜냐하면 선생님의 시를 읽다가 보면 아, 이건 사랑이구나, 싶다가도 나중에는 앗! 아니잖아, 로 끝나버리는 때가 많아서요. 선생님 시의 기호들은 쉬운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수십 번씩 미끌어지거든요. 그것은 곧 선생님께서 오래 탁마하고 구사하고 계신 시의 작법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한 번 시인의 육성으로 장종권표! 사랑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대답 14/
도를 도라 말하는 순간 도가 아니게 되고, 깬 화두를 발설하는 순간 모든 수련의 공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정녕 있다면 그 사랑을 발설하는 순간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제게 가슴 깊이 간직한 사랑이 있든 없든 어차피 이 질문은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저는 사랑하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것이지, 시를 쓰기 위해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로써 사랑을 욕보이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버려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한 부분이 사랑입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지요. 그러나 제 좁은 틀로는 우주나 세상을 끌어안을 능력은 당연히 없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것도 주제 넘는 듯해서 멈칫거리는 형편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은 역시 사람을 향한 사랑일 것이며, 이 사랑하는 마음을 접으면 그 순간 제 시는 그나마도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모든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제 시의 원천입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연모의 정이야말로 창조적인 생명 에너지의 바탕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비록 짝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사랑하지 않고서 누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답 없는 답을 물어 그대의 집앞’을 타이틀로 뽑으셨는데 이 문장을 사용해 말씀 드리자면, ‘없는 답 만들어주어도 답이라 믿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 아닐까요.
 
질문 15/ 요즘의 사랑 풍속도(?)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약하다는, 음~ 서로를 지켜내는 힘이 약하다는, 시시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감동적입니다. 선생님정도는 되어야, 뭐 사랑이든 독이든 뛰어들 용기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그 굳은 힘으로 잡지사를 꾸려나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오래도록 시를 써오시면서 시가 구원이었을 때도 있으셨나요?
 
대답 15/
한마디로 없었습니다. 인생은 죽기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내야 하는 것이지요. 그 인생 전체를 시로 포장한다고 해서 시 인생이 될까요. 시를 구원으로 삼는다고 해서 시가 내 인생을 구원해 줄 수 있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제 시가 가치 있는 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0평생 살아오면서 제가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이나 구원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도움이나 구원은 사람이었지 시는 아니었습니다. 시로 인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여러 관계망을 통해 맺어온 따뜻한 사람들이 제 도움이었고 구원이었지요. 그러니 제 시는 사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것들
 
 
오늘이라는 낙원
 
 
누가 이중섭을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았을까.
황금 제단에 탐스러운 천도화를 놓아두었을까.
보는 이마다 간절하게 낙원으로 끌고 갔을까.
망우리 그의 하얀 비석에는 이끼도 자라지 않아
빈 무덤에 이름 없는 들꽃들만 무더기로 피어
흘러가던 구름도 궁금하면 때때로 돌아보지.
누가 이중섭을 산채로 십자가에 매달았을까.
눈먼 민중들에게는 어떤 비명도 들리지 않아.
파도 소리에 귀 막고 등 돌려 벼랑으로 가네.
벼랑 끝 도열한 십자가는 오늘도 경매가 한창이고,
경매가 끝나면 또 다른 이중섭이 십자가로 가네.
얼굴 다른 이중섭이 도살장 소처럼 끌려가네.
보는 이마다 낙원으로 향하라 시든 꽃비 내리네.
 
질문 16/ 선생님 시에 종종 출몰하는 ‘유령’의 정체를 우리는 무엇이라 짐작하면 좋을까요?
 
대답 16/
제 시에 유령이 출몰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단순하게 우리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두려워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겠지요. 하지만 유령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면서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만들어내 나를 두렵게 할 수 있는 것들, 세상이 만들고, 사회가 만들어낸 세상과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 그러나 분명 존재하지는 않는 것들, 그러면서도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들, 바로 우리 자신이거나, 그도 아니면 우리들의 숨겨진 모습 정도가 아닐까요. 유령은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유령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늘상 유령 만나고 싸우고 화해합니다. 유령이 없으면 아마도 생명도 삶도 운치가 줄게 될 것입니다.
 
소리 되는 소리
 
 
입에서 나간 소리도 출구가 있어야 소리다워진다.
출구를 못 찾은 소리는 방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한밤중에 느닷없이 자는 사람을 깨운다.
그때는 이미 때를 놓쳐서 간담까지 서늘한 귀곡성이 된다.
소리는 사라져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소리가 된다.
소리도 죽을 줄을 알아야 다음 소리가 생명을 얻는다.
오래도록 살아있는 소리라야 말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라진 소리가 다음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 죽어 다시 다음 소리를 만들어야
소리가 소리 되어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질문 17/ 제목과 관련해서 질문드릴 게요. 시의 언어가 무척이나 어지러운 요즘 선생님 시의 제목들은 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과 본문과의 관계에서 제목을 조금 간명하게 택하시는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지요?
 
대답 17/
공자의 가르침 중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밥을 의미하는 食입니다.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빠를 수밖에 없지요. 요즘 사랑이나 죽음 같은 단어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연결선 상에서 이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는 예를 들어 ‘꽃’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속성과 ‘바닷가 모래 한 알’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속성 범위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일 것입니다. 의미 확산의 범위가 작은 단어는 분명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용이할 것이고, 범위가 그야말로 넓은 단어는 포괄적 의미를 다양하게 전달하는데 용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없는 답을 제아무리 명확한 언어로 설명한들 답이 되겠습니까. 답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답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대로의 답이 되는 것이고,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대로의 답이 될 가능성이 더 많지요. 그야말로 저마다의 답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본능 속에서도 말없이 모두가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시는 그곳에 서 있기로 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시의 제목이나 문장의 전개가 갈수록 단순해져 가나 봅니다.
 
질문 18/ 저마다의 답,이라 말씀해 주신 그 말씀이 장종권표! 시론이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참으로 자유롭고도 이미지의 이타성이 강한 시쓰기를 이어오셨습니다. 어디서 읽었는지 선생님의 시 중에 ‘전설’이라는 시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가 선생님께서 바라보는 시의 미래가 아닐까, 라고 막연하게 짐작도 해보았습니다. ‘전설’을 쓰셨을 때 선생님 신체의 감각들은 어떤 변용을 일으키고 있었는지요?
 
대답 18/
살아있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분명 살아있음으로 우리는 분명 실체가 있는 것이지요? 손 시인께서 내 앞에 서 있으므로손 시인도 분명 실체가 있는 것이지요? 그럴까요? 분명 실체가 있다는 것이 참말일까요? 참말의 정체를 알아봅시다. 손 시인이 생각하는 참말이 있다면 예를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 예가 무엇이든 그것이 참말이라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그 근거는 왜 확실한 근거인가요? 직접 보았나요? 직접 만드셨나요? 그걸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참말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참말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참말이나 거짓말이나 똑같은 의미로 변해버린 겁니다. 그리고 참말을 하고 살자보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면서 살자로 쓰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해져버린 것입니다. 훨씬 더 아름다워져 버린 것입니다. ‘거짓말 속에서 거짓말로 살다가 거짓말로 사라지는 거짓말의 위대한 상상이여. 밥상이여.’가 ‘전설’이라는 시의 핵심 문장입니다. 욕망도 살려고 하는 기본적인 욕망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더 잘 살려고 하는 욕망은 위험하겠지요.
질문 19/ 선생님 약력 중에는 ‘문화예술 소통 연구소’ 소장이라는 직함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시와 어떤 연결고리가 지어지는 것인가요?
 
대답 19/
계간지와 시노래 공연활동을 묶어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보다 폭 넓은 전반적 예술 활동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계간 문예지는 고사하기 십상이라는 판단이 들었지요. 자연스럽게 사단법인 설립이 추진되었고, 이 법인 안에 계간 ‘리토피아’와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는 시노래 공연단체가 투톱으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이 안에는 다른 사업이 더 추가되어 있습니다. ‘아라포럼’과 ‘리토피아문학회’, 시창작교실인 ‘막비시동인’도 함께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최근에는 계간 ‘아라문학’이 새롭게 창간되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시작에도 끝에도 걸려드는 것은 노을
 
 
전설
 
 
가죽 중 최고급 가죽은 개미가죽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왕개미 어린 암놈 수만 마리를 산 채로 잡아서 숨이 끊어지기 전 순식간에 껍질을 벗겨야 질이 좋다는 것인데, 그리고 이 가죽들을 돋보기도 쓰지 않고 모조리 손으로 이어 붙여야 질이 더 좋다는 것인데, 그리고 천 도 만 도의 불구덩이에서 수십 년을 구워내야 최상품이 된다는 것인데, 이 기술을 제대로 터득한 장인이 도무지 존재하지를 않아서 개미가죽 구두와 개미가죽 가방과 개미가죽 코트가 유행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옛날에 한 번은 이런 장인 있어서 한 벌의 구두와 한 개의 가방과 한 개의 코트가 만들어질 뻔도 하였다는데, 그런데 이 가죽 제품을 주문한 군주가 완성품을 보기도 전에 저승으로 가버리고, 그 다음 군주도 이 완성품을 기다리다가 그냥 떠나버리고,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기다리다가 모두 떠나버리자 이 장인마저 홀연히 떠나기 전 한마디 하였다고 하는데, 이 가죽구두와 가죽가방과 가죽코트는 천 년 만 년 후에나 완성이 되어 지구를 구할 사람이 입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숙련된 후예 장인들이 은밀한 동굴 속에서 대를 이어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들어본 일 있으신가. 없으시지요. 개미나라 교과서의 전설입니다.
사실이든 거짓말이든, 신화이든 전설이든,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각하면 무엇 하랴. 시작에도 끝에도 걸려드는 것은 노을이다. 말은 말로서 배를 채운다. 신화에는 마른 피가 묻어 있고, 전설에는 뜨거운 피가 묻어 있고, 역사에는 차가운 피가 묻어 있다. 믿는 자여 그대의 몸이 흙이 되는 순간에도 그 피가 콸콸콸 솟구칠 수 있다면 그대는 당연히 절대적 신이 될 것이다. 거짓말 속에서 거짓말로 살다가 거짓말로 사라지는 거짓말의 위대한 상상이여. 밥상이여.
 
질문 20/ 오랜 시간 시간을 함께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의 최전선에서 활동 중이신 선생님께 우리 시의 미래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대답 20/
시 역시도 계속 변하면서 자신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려 노력하겠지요. 그러나 시가 미래사회에도 계속 살아 남아있다면 그건 지금과 같은 시의 얼굴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얼굴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도 시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줄기차게 바꾸어 가면서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겠지요. 시가 세상을 끌어가던 시대는 이미 아닙니다. 변한 것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변할 확률은 0프로 아닐까요.
 
질문 21/ 아, 한 가지 질문이 빠졌습니다. 리토피아에서 주관하는 ‘김구용시문학상’은 문단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학상입니다. 김구용 선생님은 우리시 문학사에 초현실적인 시를 자리매김하게 하는 초석이 된 분이신대요. 김구용 선생님의 시는 지금 읽어도 시어가 대단히 모던하면서도 모험적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지금 논문을 하나 구상 중입니다. 음~, 김구용시문학상을 제정하신대 대한 특별한 에프소드라든가 혹은 장종권 선생님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지요
 
대답 21/
1976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성균관대학교 2학년 때인데요, 당시 성대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성대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 김구용 선생님께서 심사를 하셨고, 이후 김태일 시인이 구성한 행소시동인에 참여를 하였는데 지도교수가 김구용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김구용 선생님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됩니다. 1985년 전봉건 선생님 생전 현대시학에 추천을 해주셨는데 등단에 9년이 걸렸으니 질리도록 긴 시간이었습니다. 김구용 선생님은 평생 네 분의 시인만을 추천해 주셨고, 그 중 제가 막내 제자인 셈이 되었습니다. 평소 늘 제게 당신이 큰아버지라 말씀하셨지요. 제 시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챙겨주셨습니다. 김구용 선생님과의 에피소드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언젠가는 이야기할 날도 있겠지요. 그 날을 위해 아껴두렵니다. 지금은 선생님을 제 시를 꾸미기 위해 쓸 수 없습니다. 제자 된 제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좋은 시를 쓰는 겁니다. 노력해야지요. 그 다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한국시사에서 선생님의 자리를 찾는 일입니다. 그 일은 더 노력해야겠지요. 우선은 김구용시문학상을 제정하여 5회째 진행 중입니다. 머릿속에 몇 가지 다른 계획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제 한계를 느끼기 전까지는 아마도 계속되지 않을까요.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긴 시간동안이었는데, 눈동자 한번 흔들리지 않고 지금의 삶에 관하여 이야기 했다. 그와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 내 속에서는 그에 관한 딱 한 줄이 지나갔다. 그는 삶과 시를 절대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삶 속에서, 혹은 시 속에서 삶과 시를 한꺼번에 길어 올리는, 다시 말하자면 그는 욕심이 굉장히 많은 시인이었다. 삶을 포기하면 시 또한 없다는 것에 관하여 은은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리고 시는 음악이라는 것과 그 음악성을 되찾는 운동에 나머지의 시간을 모두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는 결의를 보였다. 만나기 전보다 만나고 나서의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훌륭한 시인을 더욱 더 뛰어 넘는 힘이 있는 시인이었다. 왜냐하면 시를 잘 쓰는 시인은 우리 주위에 흔해도, 시를 위해 자존심을 지키는 시인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만의 위의를 지키기 위해 주변을 해치는 이기적인 시쓰기가 만연하는 요즘, 그는 오히려 시의 이타성에 대해서 골똘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마음 안쪽에 간직한 비밀, 사랑을 한번 털어놓으시지요? 미끼를 던졌지만, 그는 사랑은 마음속에 매일매일 섬처럼 혼자 간직하고 가야하는 것이라 일갈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참으로 마음이 놓이는 시인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모든 것을 턱, 믿고 따라가면 그가 세우고 싶은 시의 나라가 보이는 듯 했다. 그가 세우는 시인의 나라까지 따라가 보려면 우선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혼자서 곰곰 그를 되새김하면서 밥을 먹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그쯤에서 인터뷰를 마쳤다. 우리는 둘 다 옆구리에 그의 시를 끼고 한 사람은 좌심실 쪽으로 또 한 사람은 우심방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201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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