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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유토피아로 가는 길(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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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광식
댓글 0건 조회 5,184회 작성일 02-06-15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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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로 가는 길
―장종권의 시세계

고광식(시인)


1. 유토피아 가는 길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즉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유토피아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론적 가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론적 가능성이 유토피아가 갖는 진실이며 현실비판의 기준이 된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영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성에 입각한 윤리관과 사회적 공유제도를 주장하고 있다. 유토피아의 이상적인 사회제도 및 정치, 종교, 사상 등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작은 단위의 국가를 말하고 있음으로 지구촌화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 허균 또한 홍길동전을 통해 조선사회의 사회현실과 정치적 모순을 비판하면서 유토피아인 율도국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홍길동은 현실내 개혁이나 혁명이 아닌 도피적인 형태의 율도국을 세우게 되므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율도국에는 사회적 모순과 잘못된 제도가 어떻게 개혁되었는지가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이상적 국가가 될 수 없다.
장종권이 '아산호 가는 길'의 연작에서 보여준 것은 토머스 모어와 허균이 보여주고자 했던 유토피아의 가능성이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 가능성을 장종권은 아산호 가는 길에서 형상화시키고 있다. 아산호 가는 길은 현대사회가 관료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가 구성원의 갈등과 모순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지고지순한 지향점이며 꿈으로 대변된다. 또한 이미지들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에 아산호는 이 시대가 지향하는 장종권 식의 유토피아이다. 작은 음모가 꿈틀거리는, 그 음모가 현실의 익명성에서 탈출하고자하는 아산호 가는 길 1인 '아산호는 아산호일 뿐이다'에서 동적인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아산호 가는 길은 꿈처럼 출렁 출렁거리더라
다가서는 도로 표지판도 멀어지는 가로수들도
마치 불란서나 스위스 풍의 이국적인 풍경화로
닳아빠진 감상적 분위기를 건드리곤 하더라

그대와의 만남을 위하여 참말인 죽음을 위하여
아산호로 가는 길은 도처에 복병을 심어두고
시간과의 밀어내기 한 판 승부를 부추기더라
그렇다 우리에게 시간은 분명 적의 첨병이었다

우리들의 겁 없는 만남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껍데기는 도로를 스치는 시궁창에 안전하게 또는
솔직하게 여자처럼 누우면서 말하더라 참으로
발효중인 알맹이를 화려하게 감싸고 있는 일이란
결코 기쁨이지도 숙명이지도 아니하고
결국 껍데기는 껍데기로 족하지 아니한가 축하하노니

아산호의 치마 끝을 들추려는 작은 음모여, 어쩌면
당진 서산 어느 한 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아산호는
옷고름마저 풀어줄지 풀어줄지 모르지만
드디어 나는 결심했다 매일 갖는 맹세의 시간에 이제는
절대로 결심하지 않겠다는 왜냐하면
아산호의 속살은 부끄러워서 너무도 부끄러워서

겁을 먹어선 안 된다 하더라 아산호 가는 길은
비겁해도 안 된다 하더라 아산호 가는 길은
더 이상 외로워도 안 된다 하더라 아산호 가는 길은
어지러워도 참을 일, 눈감아선 안 된다
안 된다 하더라 아, 전투의 끝은 고요히 솟아오르는
달이라 하더라 손톱 만한 달이라 하더라
--「아산호는 아산호일 뿐이다」―아산호 가는 길1 전문

유토피아 가는 길은 그 꿈으로 인해 설레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우리는 현실적 사회 모순과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던가. 사회개혁이라는 틀 속에서, 사회보장이라는 틀 속에서, 사회복지라는 틀 속에서 고민하고 갈등하지 아니하는가. 장종권 시인은 우리의 시간이란 것 즉 획일화되어 젖어있는 현실상황이라는 것은 우리의 적이라고 단언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아산호로 가는 것이다. 진정한 아산호를 만나기 위해선 껍데기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유토피아 즉 아산호이므로 '당진 서산 어느 한 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아산호는/옷고름마저 풀어줄지 풀어줄지 모르지만'이라고 누구도 진정 정복하지 못한 아산호의 단단한 처녀성에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껍데기를 벗고 닳아빠진 감상적 분위기도 벗어던진 그는 결국 '겁을 먹어선 안 된다 하더라 아산호 가는 길은/비겁해도 단 된다 하더라 아산호 가는 길은'이라고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와 같은 ? 炷弱㉯?고통스럽게 진술하고 있다. 장종권의 시들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식, 그 내면 의식의 저 편에 유토피아인 아산호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의식은 정체성을 찾겠다는 몸부림이며 '전투'라는 시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자아에서 대자아로 가는 고통스러움이다.

2. 아름다운 아나키스트의 생명 사상
아나키즘이 일체의 권력을 부정함으로써 자유인의 연합에 의한 사회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라면 장종권은 인간 중심의 권력을 부정하고 생명을 중시하는 자연친화적인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1)
아산호 가는 길은
죽은 풀잎조차 살아있어라
돌멩이 하나 지푸라기 하나 머리칼 하나
자빠지는 바람 속의 뒷물 한 점까지도
모두 다 미친 듯이 살아있어라

…………… 중략 ……………

세상을 과감하게 능욕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능욕하면서
가다가 엎어져도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
매일 밤 찾아가는 그대 아산호
--「아산호는 끝을 말하지 않는다」―아산호 가는 길 5에서

2)
아름다운 시는 사람을 먹는다
사람의 피로 시는 진한 꽃을 피운다
아니면 어찌 꽃이랴 하기에
기운 없는 꽃의 창백함은 고독한 자의 천국이다
아산호 가는 길에 나는 사람을 묻으리라
사람의 피로 아산호를 물들이고
머지 않은 날에 선혈 낭자한 한 송이 꽃
피게 하리라 그대 치마폭에 피게 하리라
--「아름다운 시는 사람을 먹는다」―아산호 가는 길 8에서

1)의 '아산호 가는 길은/죽은 풀잎조차 살아있어라'에서는 이 시대를 획일화된 문화로 보고 있으며, 획일화된 문화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연친화적인 생명사상이 나타나 있다. 아산호 밖의 세상은 인간중심이지만 아산호는 자연중심인 것이다. 죽은 풀잎조차 살아있음은 생명사상의 집요한 자연 증명이다. 장종권의 시적 표현은 죽은 생명뿐만 아니라 생명이 아닌 돌맹이도 미친 듯 살아있게 만든다. 아산호의 연작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산호 가는 길을 통해 인간중심의 유토피아를 인간을 포함한 자연중심의 유토피아로 치환시키고 있다. 우리는 사상이나 정치로는 그 실체에 닿을 수 없다. 그것을 감지한 시인은 고통스럽게 시적 진실을 찾아 감성의 촉수를 들이민다. 우리의 사회나 문화는 생명을 은폐한 죄와 악의 문명이며 아산호는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상징화된 유토피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장종권은 능욕할 수밖에 없고 가다가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생명에 대한 인식은 불교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2)에서 시는 생명사상의 본질로 통한다. 시는 사람을 먹고 사람 즉 인간 문명을 부정한다. 또? ?사람의 피로 꽃을 피운다. 이곳에서 파스칼이 말한 우주에 대한 인식이 장종권 식의 사상으로 나타난다. 파스칼은 인간의 위대함은 인간이 사고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사고로써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주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장종권은 시로써 우주를 인식하고 생명을 인식하고 사회를 인식한다. 그리고 시로써 우주를 포용한다. 아산호 가는 길에 사람을 묻고 사람이 이룩해낸 사회를 묻고 문화를 묻는다. 인간이 소유한 영토 위에 시인은 선혈 낭자한 한 송이 꽃을 피게 한다. 이것은 생명사상의 독특한 미학의 발견이며, 생명 공존의 가능성이며, 생명의 순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산호의 치마폭에서 피어나는 꽃은 생명의 거듭남이다.

시를 쓰고 싶어 안달이 난 그녀는 아산호를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미 시인이었던 그녀는 시가 두려워 아산호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그녀의 시를 경멸했을 때 그녀는 아산호가 그립다고 말했다
아산호만 보고 나면 모든 울타리 허물어지리라 눈처럼 녹으리라
아산호에만 가고 나면 그리하여 뜨겁게 살아있는 시 만나리라
나는 그녀에게 아산호를 보여줄 수도 가르쳐줄 수도
말해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아산호를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비겁해졌을 때 나의 아산호는 나를 묻으리라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게도 아산호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참말이지 아산호는 거기에 있었지만 기실 아산호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산호는 희망이었지만 그러나 아산호는 결코 목적도 답도 아니었다
--그녀는 아산호에서 아산호를 찾는다」―아산호 가는 길 13에서

인간은 삶을 살아갈수록 삶이 두려워진다. 삶의 내부에 감추어진 또는 가시화되어 떠오르는 온갖 현상들은 인간의 모든 감각 기능을 마비시킨다. 그 마비는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모든 사회 구성원을 익명화한다. 시인이 시를 쓰면 쓸수록 시가 두려워지는 현상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누군가가 시를 비판한다는 것은 매너리즘적 비판이며 그 비판은 획일화되어 있는 이 시대의 잣대임이 분명하다. 그것을 감지한 그녀로 지칭되는 시인은 아산호를 만나고 싶고 아산호가 그립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그곳에서 매너리즘을 허물고 자기 시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장종권 시인은 그녀에게 아산호를 가르쳐줄 수도 아산호를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아산호는 인간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실재로 존재하는 곳이 아닌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가능성에 의미를 두고 있는 아산호의 이미지는 존재론적 상상력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장종권 시인이 '참말이지 아산호는 거기에 있었지만 기실 아산호는 어디에도 없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산호는 유토피아로 가는 희망이었지 아산호! 자체에 목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산호 가는 길은 탈일상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절망과 희망의 완전한 소통이다.

3. 배꼽과 운명의 의미
그대는 배꼽이다 바다를 떠나서 바다를 그리는 배꼽이다 바다는 그대의 어머니요 시의 어머니요 나의 어머니이다 그대는 그 너그러운 바다와 만나는 우리들의 배꼽이다 우리는 그대를 우리들의 어머니와 만나는 배꼽줄로 삼는다 그대는 배꼽이다 바다를 그리는 반도의 배꼽이다

…………… 중략 ……………

배꼽의 때를 벗기며 그대의 바다를 돌아보자 그대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절대적인 자궁을 생각하자 어머니 같은 바다와 바다 같은 어머니의 자궁을 한번쯤 돌아보자 그곳은 해구요, 호천이요 망극한 세계이다 그러므로 어둠은 길이요, 무지는 진리였다 당신의 빛나는 눈과 어설픈 지식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우리들의 시커먼 배꼽 무심한 배꼽 부끄러운 배꼽을 닦으며 어머니를 생각하자 바다의 침묵과 어머니의 용서를 생각하자
--아산호는 때가 낀 배꼽이다」 ―아산호 가는 길 18에서

장종권 시인은 '배꼽'의 이미지를 통해 아산호를 바다와 어머니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것은 운명론적 인식을 넘어서는 개방성이다. 이 열린 세계는 어둔 운명의 심연을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구 역할을 한다. 배꼽의 인식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자아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배꼽의 때를 벗기며 그대의 바다를 돌아보자 그대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절대적인 자궁을 생각하자'라고 진술한 것은 배꼽이라는 운명을 극복하려는 의지이며 그것은 또한 자궁으로 표현되는 생명 사상으로 가는 길이다. 자궁은 바다이며, 자연이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행간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둠은 길이요, 무지는 진리였다 당신의 빛나는 눈과 어설픈 지식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볼 수 있는가'라는 시적 진술에서 인간의 눈과 지식은 무지라는 인식에 닿아 있다. 이것은 파우스트가 인생을 탐구하려 무한한 노력을 기울이다가 절망하는 모습과 같다. 파우스트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지만 장종권은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아산호와 계약을 맺는다.

1)
가엾게도 아산호는 마침내 포로가 되었다
백일하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본래는 물빛이었으나 본래는 별빛이었으나
본래는 이승의 바람의 보이지 않는 빛깔이었으나
이제 눈도 코도 입술도 없는 아, 결코 그리운 그대가 아닌
치마가 벌렁 까진 싸구려 매춘부의 볼품 없는 몰골이었다

…………… 중략 ……………

순식간에 아산호는 부석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보라 그 균열 속에 갇혀 사라지는 꿈같은 얼굴을
봉긋하게 솟아올랐던 희망을 신비롭게 출렁이던 몸살을
부서져 내리며 절망조차 하지 못하는 메마른 그리움을
--「아산호는 아산호를 잡아먹는다」―아산호 가는 길 29에서

2)
너희가 감히 아산호의 넓이를 아느냐
너희가 설마 아산호의 깊이를 아느냐
어림으로야 한갓 구덩이에 지나지 않지만
아산호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너희는 스스로의 거대함을 과신하며 오만해 있지만
기억하라 그녀의 동굴은 사람이 기어나오는
거대한 바다이며 끝이 없는 우주이다
무모하게 자신의 몸을 던져 아산호를 채우려든 자
아직 아무도 살아 남지 못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대의 한 뼘도 채 되지 못하는 조촐함으로는
아산호가 원하는 기쁨의 절반도 채울 수 없는 일
그러니 차라리 태양의 아들다운 뜨거움으로 승부하라
꾸밈없는 존경심으로 바다보다 넓은 마음으로 접근하라
세상의 오직 한 사람 그녀의 뜨겁고 넓은 그대만이
그녀의 신비로운 동굴을 넉넉하게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기적처럼 신의 세계처럼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다가올 것이다 아, 마치 꿈인 것처럼
--「아산호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아산호 가는 길 41 전문

1)에서 '아산호는 마침내 포로'가 되었다고 말한 것은 유토피아인 아산호의 본질이 인위적 상황에서 바뀐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본래의 아산호는 물빛이었고 별빛이었기 때문이다. 물빛과 별빛이라는 표현은 시인이 지향한 아산호는 현실을 지배하는 산업화된 문명과 획일화된 도시문화의 황폐함을 벗어난 이상향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치마가 벌렁 까진 싸구려 매춘부의 볼품 없는 몰골이었다'에서 보듯 아산호에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보았으나 아산호는 인위적으로 변질되었고 다만 그 가능성만이 존재한다는 인식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자기 모순적인 이미지는 현실과 이상은 현실적 괴리에서 생겨난 산물이라는 상황에 도달한다. 때문에 장종권 시인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몸살 앓는 그리움을 동반하게 된다.
2)에서 우리는 장종권 시인이 현실과 이상이라는 두 영역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다양한 욕구로 채워진 현실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감지하게 된다. '너희가 감히 아산호의 넓이를 아느냐'라는 장종권 시인의 질문에서 우리는 유토피아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너희가 설마 아산호의 깊이를 아느냐'에서는 인류사에서 철학자나 정치가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왔으나 도달하지 못한 이상적 사회 건설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오만과 욕구는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이상적 사회는 건설하지 못했다. 장종권 시인은 가능하지 않으나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기적처럼 신의 세계처럼/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다가올 것이다 아. 마치 꿈인 것처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산호'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장종권 시인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4.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산호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이상향을 꿈꾸어 왔다. 정치·경제·문화·인권·법 등에서 평등하기를 추구했다. 사실 이런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능성에 목적을 둔다. 인간은 상상력이란 신이 부여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 상상을 현실 속에 적용시키며 끊임없이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현실비판을 한다. 장종권 시인은 현실 속에 매몰되어 가는 이 사회의 모습에서 새로운 시세계의 가능성을 찾는다.

아산호를 맨 처음 사랑한 사람은 단군왕검이었다
그는 어머니 웅녀가 태어난 아산호를 잊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고주몽일 수도 있고 의자왕일 수도 있다
이성계일 수도 있고 이퇴계일 수도 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아산호를 그리워한다
아산호는 단군왕검도 고주몽도 의자왕도
이성계도 이퇴계도 이름으로 다가서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아산호로 인해 나는 종종 단군왕검만큼
고주몽만큼 의자왕만큼 이성계만큼 이퇴계만큼
위대해지기도 하고 자랑스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일찍이 아산호가 이름지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사람들은 아산호를 찾아 먼길을 떠났으며
그들은 오늘도 아산호를 찾아 끝없이 떠돈다
아산호를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늘 외롭지 않다
--「아산호 가는 길은 외롭지 않다」―아산호 가는 길 46 전문

아산호를 맨 처음 사랑한 사람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할 때부터 유토피아를 추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왜 가능하지 않은 이상향을 꿈꾸어왔을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사회현실에 정체되어 버린다면 새로운 문화 창조에 장애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종권 시인은 아산호 가는 길 속에서 유토피아의 진실성을 찾는다. '아산호는 단군왕검도 고주몽도 의자왕도/이성계도 이퇴계도 이름으로 다가서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유토피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장종권 시인의 뼈아픈 성찰을 찾을 수 있다. 그 누구의 이름으로도 다가서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토피아의 이상적인 사회제도 및 정치, 종교, 사상 등 여러 분야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이상사회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아산호를 찾아 먼길을 떠났으며/그들은 오늘도 아산호를 찾아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종권의 시적 자아는 현실세계에서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끝없이 떠난다. 그 떠남이 지향하는 종착점에 아산호가 있다. 자아는 대자아의 모습인 유?鄂퓸틘?주목한다.

1)
아산호 가는 길에 붉은 일몰이 몰려오면
버러지를 먹고살아도 허공의 새는 마냥 곱더라
썩은 물을 빨아먹어도 꽃은 그저 황홀하더라
뜯어보면 고울 리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단지 살아있음만으로 그토록 예쁘고 소중하더라

…………… 중략 ……………

그러나 습관처럼 다시 절망하며 돌아오는 길에는
그 고왔던 새들이 입을 모아 나를 비웃더라
꽃은 왜 그렇게 숱하게 피어서 나를 조롱하더라
꽃은 왜 그렇게 숱하게 피어서 じ?조롱하더라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일어나
미처 죽지 못한 나를 무덤 속으로 밀어 넣더라
--「그리움은 사랑보다 아름답다」―아산호 가는 길 58에서

2)
오름 중에 오름이라는 '용눈이 오름'에 올랐더니
어랍쇼, 기가 막히게도 거기에 아산호가 누워 있었다

…………… 중략 ……………

어떻게 아산호는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왔을까
아산호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현답의 우문이다
--「나는 아산호의 아들이다」―아산호 가는 길 51에서

1)에서 아산호는 유토피아적인 붉은 일몰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 일몰을 따라가다 보면 새는 버러지를 먹고살아도 아름답고 꽃은 썩은 물을 빨아먹어도 황홀하게 피어있다. 아산호는 자연친화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적 사회는 찬란한 물질문명에서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삶에서 이룩된다는 성찰을 담고 있다. 과연 우리의 삶은 문명 이전의 삶보다 삶의 질이 높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장종권 시인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 사유의 끝없는 여행을 떠난다.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일어나/미처 죽지 못한 나를 무덤 속으로 밀어 넣더라' 세상의 살아있는 것들은 변혁을 원한다. 현실세계에서 찾지 못한 것을 이상세계에서 찾고자 한다. 절박한 유토피아의 갈망은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대자아의 이상세계를 이루어내지 못한 나는 또 다른 나를 향해 질책한다. '무덤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표현은 절박성을 나타낸 것이다. 무덤은 죽음이고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끝없는 순환적 고리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의식과 통한다.
2)의 시에서 우리는 그렇게 갈망하던 아산호를 발견하게 된다. 유토피아적 장종권의 상상력은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나가는 소통이며 통로이다. '어떻게 아산호는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왔을까/아산호는 어디에나 존재한다'에서 유토피아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땅이지만 그 존재 가능성이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장종권의 이런 시적 시도는 우리 시단의 새로운 가능성이며 추구해야 할 선언적 의미로 이해된다. 유토피아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정치나 철학이 아니라 문학임을 그는 선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는 유토피아 구현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가능성을 문학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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