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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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여름해가 마침내 기울고 마지막 지열이 몸살처럼 후끈거리는 시간. 한낮에 끌려간 똥개의 집에는 파리 두어 마리만 한가로이 날고, 그가 남긴 밥그릇만 뎅그라니 남아있다. 끌려가 아주 사라진 자의 유품은 어쩐지 슬프다. 그는 대대로 자자손손이 이 집을 지켜온 충복이었다. 뎅그라니, 뎅그라니, 뎅그렁, 뎅그렁, 뎅뎅, 멍멍멍, 으르렁, 멍멍. 그는 사라졌어도 밥그릇은 남았다. 생명보다 더 위대한 이 지저분한 밥그릇이여. 떠난 그는 밥그릇만도 못한 천한 생명임을 알지 못하고, 무엇이 그리도 소중하고 당당하여 평생 짖어댔을까. 으르렁거리는 그의 소리에 산천은 과연 떨었을까. 어쩌다 들른 밤손님은 떨었을까 오줌을 쌌을까. 밤은 떨었을까. 내내 사시나무 데불고. 밥그릇만 뎅그라니 남기고 이미 사라져 버린 똥개. 밥그릇에 무수한 타액만 남겨놓고, 그것이 다 마르기도 전에 황급히 떠난 똥개. 이 여름은 내년에 다시 오지만, 다시 못 오는 똥개. 아, 그러나 멍멍멍, 이 땅은 멍멍거리는 똥개로 아직도 가득하다. 떠나도 떠나도 끝이 없이 몰려온다. 그래서 이 땅은 똥개들의 나라인가 똥개들의 천국인가. 그것이 자연이고 생명이던가. 아, 이 밤, 밤을 새우며 부질없이 나도 짖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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