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은 퍼질러져야 아름답다(강남시사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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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은 퍼질러져야 아름답다
사실 사랑할 때야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때가 되면 분명하고 당당한 자세로 돌아설 줄 알 때에 우리는 비로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남은 미련 가슴에 꼬옥 싸매두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 그 때에도 역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오히려 사랑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결코 칼로 무 자르듯 분명한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사랑에 분명한 모습이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지만 사랑에는 어떤 모습도 정해진 것이 없다. 사랑은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고 냄새도 없고 소리도 없다. 그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치 밤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왔다가 해가 뜨기 전에 존재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적인 에너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혹자는 어떤 사랑에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사랑도 비판받거나 매도 당할 사랑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의 마음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보다 더 생명체에 가까운 것이며,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논리일 것이다. 인간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빠져버린다고 가정해보자. 인류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누추한 사랑도 어떤 불합리한 사랑도 어떤 패륜적인 사랑도 우선은 그의 건강한 생명활동에 어쩌면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이 시대 우리는 충분히 감각적인 사랑에 빠져있음을 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비록 겉으로는 불결하게 바라보려고 하지만, 실은 그 왕성하고 건강한 에너지에 먼저 존경심을 표시하지는 아니하고 있는지 되물어볼 일이다. 어떤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인가. 어떤 사랑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랑인가. 그런데 만약 그런 사랑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랑을 해볼 텐가. 할 수 있어서 해볼 수만 있다면야 누구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런 사랑의 권리나 자격이 주어지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는 샘솟듯이 솟아나는 사랑의 감각적인 얼굴을 가능한 한 철통같은 이성의 울타리로 막아두는 것만이 최선의 상식적인 사랑법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방식에 있어 점점 더 노골적인 방식에 길들여지고 있다. 새로운 사랑행위, 창조적이며 아름답고 건강한 사랑법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랑의 정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에 무슨 창조적인 얼굴이 따로 있겠느냐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감각적인 사랑으로 난무한다. 사랑은 술에 취한 모습으로 언제 어디서나 춤을 춘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그런 춤을 가장 관심 있는 자세로 지켜본다. 훔쳐본다. 모두가 자신이 바로 그런 사랑이기를 원한다.
사랑에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사랑은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쓸개를 버리듯이 내던져 버리는 것이 보다 더 강렬한 감성을 자극시켜준다고 믿는 탓이다. 그래서 남몰래 나누는 비밀스런 사랑에 더 현혹당한다. 인간에게 무덤까지 들고 갈 비밀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불륜이 섞인 사랑인지 모른다. 사랑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인륜에 묻히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죽어야 비로소 체통 있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그것이 바로 인간의 제대로된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안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시 한번 물어보라. 정말 인간다운 것은 죽는 날까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우리들 이 시대의 사랑은 언제까지 지속이 될 것인가. 로마가 목용탕문화로 인해 망했다는 것은 정말 사실인가.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고도로 발달이 되거나,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변화 없이 지속이 된다면, 이 시대도 얼마든지 그 역사적인 멸망의 과정을 반복하게 되지는 아니할까. 아니, 정말 이 시대의 사랑이 그 시대처럼 무분별하게 범람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는가. 그러나 언제나처럼 강한 수컷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그 질문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컷도 암컷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생명체로서의 자신만을 이해한다. 그들은 절대로 허무하게 죽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혼자만의 우주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그것이 생명체로서의 가장 건강한 얼굴이고, 그것이 가장 진정한 자연의 실제 모습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믿을 때에 비로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내가 나를 믿을 때에 비로소 나도 아름다워진다. 그러니 그들에게 사랑의 얼굴에 분바르라 말하지 마라.
마지막 남아있는 양심의 얼굴을 보기 위해 돋보기라도 들고 자신의 마음을 까고 또 까보라. 무엇이 남겠는가. 양파를 한 꺼풀씩 까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 허망한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긴다. 양심의 껍질을 벗겨낼 때마다 당신은 당신의 소중한 생명력을 하나씩 둘씩 도려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도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고 자지러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껍데기를 닫고 또 닫으라. 껍데기 위에 또 다른 껍데기를 씌우고, 그 껍데기 위에 또 껍데기를 씌우라. 어차피 드러내보아야 별 볼일 없는 나의 알맹이는 감추고 감추어서 흙으로 돌려보내는 일도 무익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 사랑이란 사랑은 모조리 곰삭아서 훗날 봄날이 오면 꽃으로 피기를 바란다.
사랑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말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원래가 얼굴이 아니고, 소리가 아니고, 향기도 아니었다. 바람에 아무렇게나 날리고 빗물에 아무렇게나 흘러다니던 보잘 것 없는 들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보는 사람도 없고 꺾어줄 사람도 없다. 열심히 분바르고 치장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질서를 말해보라. 그에게 천국을 말해보라. 그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완벽한 백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벌은 이놈저놈 날아들고, 나비는 이년저년 찾아든다. 그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는 늘상 꿈꾸면서도 실은 스스로 멀리멀리 달아나고 있는 것이다. 들꽃은 제맘대로 퍼질러져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아름답기만하다.
(강남시사화집 제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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